소설리스트

히든 플레이어-65화 (65/244)

00065  사내놈이 째째하게  =========================================================================

* * *

" 죽여버리겠다. "

여리여리한 자태. 포니테일로 깔끔하게 정리한 붉은색 머리. 굉장히 작은 얼굴. 가냘픈 체구. 달콤한 목소리. 그러나 살벌하기 그지없는 분위기.

개체명 스나. 유저로 치자면 스나이퍼 클래스고, 계급은 상사(진)인 윤석의 귀속 NPC다.

다른 길드원들도 스나가 누군지 안다. 1:1 대인전에서는 거의 최강이라 불리는 무캐를, 관통시켜 원샷투킬이라는 기적 -현캐의 입장에선 충분히 기적인-을 일궈낸 NPC. 총을 과연 총이라고 부를 수 있게 만들어준 미모의 NPC가 바로 스나였다.

" 스나. "

" 예. "

스나는 군화 뒷꿈치를 땅에 척! 소리가 나도록 붙이고 즉시 차렷자세를 취했다. 윤석이 일부러 목소리를 내리깔고 분위기를 잡았다.

" 까불지 마. "

" 죄송 합니다. "

" 상관이 하는 일에 제 멋대로 끼어들지 말란 뜻이야. 알았어? "

" 알겠습니다. "

힐끔, 종환의 눈치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는 있으나 종환은 위축 된 게 분명했다. 본인은 어떨지 모르나 윤석의 눈에는 훤히 보였다. 윤석이 말했다.

" 내 목숨이 위험한 경우가 아니라면 절대 나서지 마라. "

" 예 알겠습니다. "

목숨이 위험한 경우가 아니면 나서지 말라는 말은, 돌려 말하면 위험한 경우에는 나서라는 뜻이다. 윤석이 씨익 웃었다.

" 하던 얘기를 계속 해보자. 어린 놈아. "

종환은 조금 쫄았다. 건오퍼는 만만한데, 건오퍼가 데리고 있는 귀속 NPC는 별로 안 만만하다. 안 만만한 정도가 아니라 매우 무섭다.

' 척살 얘기 꺼냈으면 좆 됐다.'

아까 척살얘기를 꺼내려고 했었다. 제 아무리 건오퍼라도 무한 척살에는 답 없을 거라고 봤다. 일단 건오퍼에겐 전투능력이 없었으니까. 카오가 되더라도 괜찮았다. 어차피 현캐 전투클래스 중에선 거의 최강인데다 -그는 호크의 길드원이다- 카오를 단속하는 NPC들은 일정 구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카오가 되더라도 그를 위협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 아니 솔직히 말이 안 되잖아. 인간적으로. 그거 길장한테 해봤자 돈 얼마나 된다고. 그냥 우리한테도 주면 되지, 왜 굳이 우린 안 주는건데? 뭐가 그렇게 불만인데? "

그래도 자존심이 있어서 반말을 썼다.

" 그럼 넌 똑같이 호크였고 똑같이 길드원이었는데 왜 내 탓 하고 다녔냐? "

" 그건 길장 잘못 맞잖아. 난데없이 NPC데려오는 바람에 우리 길전 탈락된 거고. "

" 나 없었으면 길전 참여는 가능했겠냐? "

" 그거랑은 다른 문제지. "

윤석은 후- 한숨을 쉬었다. 화제를 조금 돌려봤다.

" 보상은 누구 덕분에 받았는지 알긴 알아? "

" 운영자들이 줬잖아. 미안하다고. "

" 그니까 그걸 누가 협상 벌였는지 아냐고 이 사랑아. "

그건 윤석이 유토매니아 대표의 자리를  가지고서, 유토피아와 협상해서 따냈다. 물론 비밀로 이루어진 거래였다. 비밀이 새어나가면 아이템 회수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윤석이 피식 웃고 말했다.

" 너 좀 나대지 마라. "

그 말에 종환이 또다시 발끈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전화번호가 뭐냔다. 띠꺼우면 현피 뜨잔다.

" 아무것도 못하고 뒤에서 구경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주제에 , 그리고 남이 해준 고마운 건 하나도 기억 못하고 그저 너한테 피해준거밖에 생각 못하는 놈이. 쥐꼬리만한 자존심 가지고 깝치지 말란 뜻이야. "

" 너나 깝치지 마. 띠꺼우면 현피뜰까? 어? "

도대체 말이 통하질 않는다. 내가 16살 때도 저렇게 철이 없었나. 저렇게 말이 통하지 않았나. 아니면 저렇게 세상 무서울 게 없었나, 싶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왜? 쫄았어? 현피뜨자니까 쪼냐? 쪼다가 나이 좀 많다고 행복하지 마라 진짜. 알라뷰다. "

윤석이 피식 웃었다.

" 넌 게임 말고 앞으로 인성교육이나 열심히 해라. "

스나에게 명령을 내렸다.

" 시끄러우니까 그냥 사살해."

그와 동시에 탕! 총성이 울렸다.

원샷 원킬.

깔끔했다. 머리를 관통당한 종환은 한방에 시체가 되어버렸다.

순식간에 시체로 변한 종환이 울부짖었다. 온갖 욕을 퍼부어댔다.

" 스나. "

" 예. "

" 보일때마다 사살해. "

" 예. "

윤석이 시체에게 귓말을 보냈다.

" 잘못했다고 빌고 싶으면 010-XXX-XXXX로 연락해라. 그리고 너... 아무한테나 현피뜨자고 그러지마. 세상은 생각보다 무섭거든. 너희집 자체를 쫄딱 망해버리게 만들 수도 있으니까 거리에 나앉고 싶지 않으면 입 함부로 놀리지 않는 게 좋을거야. 알겠니? 형이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

* * *

아무래도 경고는 별로 소용이 없었나보다. 넷아웃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띠링. 넷아웃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

수희였다.

[ 오빠! 큰일 났어! 어떤 사람이 오빠 죽인다고 난리 났어. 빨랑 나와봐. ]

아무래도 스나에게 사살당한 종환이 정말로 전화를 한 모양이다. 캡슐을 열고 나가보니, 수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윤석이 태평스레 물었다.

" 무슨 일이야? "

" 오빠야말로 무슨 일이야? 무슨 일 있었어? "

자세히보니 수희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핸드폰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의 진원지는 수희의 오른손 안 이었다. 핸드폰이 울림과 동시에 수희의 얼굴이 더욱 핼쓱하게 질렸다. 윤석이 인상을 조금 찡그렸다.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야.  너... 내 전화 받았냐? "

수희는 우물쭈물대며 윤석의 눈치를 살피다가 이내 으, 응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 그치만 너무 시끄러웠단 말이야 계속 울리고... 조, 조금 궁금하기도 했지만... 수희는 고개를 푹 수그리고 핸드폰을 내밀었다. 잘못했어...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 밖에 나가있어. "

윤석이 여전히 시끄럽게 울어대는 핸드폰을 받아들고 말하자 수희는 으, 응 고개를 끄덕이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걱정이 되는지 우물쭈물대며 자꾸만 뒤를 쳐다봤다. 마치 그 핸드폰 벨소리가 수희의 발걸음을 옭아매고 있는 듯 했다.

" 걱정하지마. 별 일 아니니까. "

수희를 내보내고서, 윤석은 쉼호흡을 크게 했다. 깜빡하고 휴대폰을 무음모드로 해놓지 않았나보다. 액정을 살펴봤다. 모르는 번호였다. 누군지 알 것 같았다. 핸드폰을 받았다.

받음과 동시에 온갖 육두문자가 쏟아졌다. 씨발부터 시작해서 개새끼와 십새끼가 적절히 조합된 매우 새로운 형태의, 그러나 참신하지는 않은 욕들이 반복되었고 그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애미와 애비, 아까 그 씨발년이니 뭐니, 욕설의 범위를 매우 확대했다.

윤석은 핸드폰을 멀찍이 떼어놓고서 잠깐 기다렸다가 말했다.

" 너 인마. 형이 말 조심하라고 했지. "

- 지랄 좆까지마 이 씨발놈아. 띠꺼우면 현피뜨자 이 개새끼야. 지랄 좆같은 새끼가 존나 나이 쳐먹었으면 곱게 쳐먹어야지 씨발 애미 보지 존나 핥아먹을 씨발년이. 아님 동생년 보지를 존나 뚫었냐 씨발놈아!

변성기를 갓 지났을까 싶은, 청소년 특유의 목구멍이 좁아진듯한 목소리로 욕설이 퍼부어졌다. 윤석은 잠깐 생각했다. 지금이야 안한다지만 그도 중고등학교 시절엔 한 욕 했었다. 똑같이 욕을 퍼부어줄까 하다가,

통화 녹음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마치 쫄기라도한 듯 주춤거리며 말했다.

" 저, 저기...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

전혀 심하지 않다. 적어도 그는 이병생활을 훌륭히 마쳤다. 일병이 '짬찬 척' -중대장과 다소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는- 한다는 이유로 샤워실에서 개패듯 맞고 온갖 쌍욕을 먹으면서 미친듯이 물기제거를 하던 그 시절. 빗자루질하면서 너무 서러워 울먹거리며 가족과 '그녀'를 떠올리던 그 시절, 당시 금지어였던 '잘 모르겠습니다'를 실수로 한 번 말했다가 또 개패듯 맞던 그 시절, 힘들면서도, 뒤에서 고참 전화하러 올까 전전긍긍하면서도 가족과 '그녀'에게 전화할 땐 하나도 안 힘들다고 재미있다고 거짓말하던 그 시절. 그러면서도 아버지가 '힘들지? 다 남자들은 그런 거다.'라고 무뚝뚝하게나마 위로의 말을 던질때 남 몰래 눈물 삼키던 그 시절. 그 시절을 경험했던,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예비역이다.

핏덩이가 아무리, 제 딴에는 살벌하기 그지없는 욕설을 내뱉고 무섭게 굴어도.

' 쇼를 한다. 어린 새끼가. '

별로 무섭지도 않다. 하지만 윤석이 짐짓 위축된 듯한 목소리를 내자 저쪽은 더욱 위풍당당한 목소리를 냈다.

- 너 이 좆같은 씨발새끼야. 쫄았냐? 씨발 현피 뜨자고 병신 찐따새끼야. 너 존나 왕따 새끼지? 나 숭신중학교 3학년 일짱 강한힘인데 너 씨발 진짜 깝치지마라 좆병신새끼야.

얼씨구다. 저쪽에서 알아서 신원을 쑥쑥 밝혀줬다. 아마 자신의 힘이나 능력에 상당히 자신이 있는 듯 했다. 윤석은 더욱 쫄은 목소리를 냈다.

" 수... 숭신 중학교 3학년 일짱...? 한힘이라고...? "

...요? 하고 뒤에 높임말도 붙였다. 저쪽은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지금은 아마 승리자의 기분을 느끼고 있을 거다.

' 한 여름밤의 멘탈 승리를 축하한다. '

전화를 끊고 나서, 윤석은 녹음된 통화내용을 재생해봤다. 음질은 매우 훌륭했다.

' 어려서 개념이 없는거야 아니면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거야? '

이러나 저러나 좋다.

" 김수희. 밖에서 엿듣지 말고 일로 와봐. "

수희를 불렀다. 윤석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으, 으아악! 소리와 함께 문 뒤에서 엿듣던 수희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 오, 오빠... "

" 너 아까 이 새..."

고개를 휙휙 흔들었다.

" 얘가 너한테 뭐라고 그랬어? "

아까 수희의 표정과 방금 이 놈의 통화내용을 결부시켜 생각해보면 뻔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네 애미 보지나 핥아먹어' 와 같은 몰상식한 욕을 아마 수희한테도 했으리라 짐작했다.

" 그, 그게... "

수희의 모습을 보고 확실해졌다. 그냥 욕만 좀 한거면 짜식, 귀엽네. 넘어가줄 수 있겠다.

' 수희한테 도대체 무슨 소리를 지껄인거야. '

물론 핸드폰 벨소리를 꺼놓지 않았다는 점, 수희가 몰래 핸드폰을 받았다는 점, 일부러 격동시켜서 전화를 하게 만들었다는 점은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애 놀리는 꼴 밖에 안 되니까. 그래도 그건 잊기로 했다.

' 이 개새끼. 사회의 쓴 맛을 보여주마. '

잘 걸렸다. 언젠가 한번쯤 호크에게 본보기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본보기도 보일 겸,

' 민혁이 놈이 말했던 것도 할 겸. 겸사겸사. '

이것 저것. 한꺼번에 처리할 방법이 떠올랐다.

============================ 작품 후기 ============================

제 16살시절이 떠올라 부끄러워지네요. 저건 전부 경험담입니다. 그리고 닉네임 종환의 현실이름 '강한힘'도 실제 존재하는 이름입니다.

덧붙여 군대얘기도 경험담.

저희땐 '잘 모르겠습니다' 와 '죄송합니다'가 금지어였죠. 뭐... 그 당시엔 BX도 상꺾부터 이용가능했었고... 8시20분 이후 샤워도 병장만 가능했었죠.

하루에 한 번, 동기들과 군화닦으러 보일러실에 숨어서 고참 뒷담까기도 하고 울먹거리기도 하던 그 때. 그래도 상병때부턴 참 재미있었습니다. 짬찌때 힘들수록 고참되면 편한 법이니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