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3 사내놈이 째째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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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팬은 최대한 태연을 가장했다. 이럴 땐, 상인 특유의 '표정 숨기기'스킬이 꽤나 유효하게 먹혀들었다. 최대한 냉정을 유지하고 태연한 척 하지만, 유토피아에서 이토록 가슴떨린 적은 처음이다.
' 설마... '
사실 처음 계약할 당시, '안졸리냐졸려'를 만만하게 본 구석이 없잖아 있기는 있었다. 일단 나이도 어리고 이 쪽의 조건을 굉장히 쉽게쉽게 잘 받아들여주었다. 그게 사업 경험이 없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동샌친구의 아버지라 그런건지, 그도 아니면 이러나저러나 별로 상관없는 쿨가이여서 그런건지는 몰라도 어쨌든 훌팬과 다수정예회의 입장에선 반가운 것이었다.
사실 스킬포토의 가격을 책정하면서 가장 이득을 본 건 다수정예회였다. 물론 눈에 보이는 이득 자체는 윤석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 이 쪽은 세금을 비롯하여 각종 수수료를 물고 NPC들에게 뇌물을 바쳐야만 한다. 심지어는 뇌물 바치는 퀘스트가 있을 정도다. (여기서의 뇌물이라 함은, 안 그래도 부자인 NPC들을 납득 시킬 수 있을 만큼의 천문학적인 액수를 뜻한다.) 그러나.
' 이득을 훨씬 많이 챙길수도 있었어. '
윤석의 입장에선 그랬다. 스킬포토의 가격을 단 1원만 올려도 1억개를 팔면 1억코드의 이득이 생긴다. 그러나 다수정예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다수정예회 유니온에 내려진, 유니온 단위의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해서였다. 상인 클래스의 퀘스트는 일반 유저와는 약간 내용이 다르다. 아무래도 돈이나 거래, 계약에 관련된 퀘스트가 많다. 그리고 유니온 퀘스트는 개인 퀘스트보다 훨씬 덩치도 크고 내용도 어마어마한데- 심지어는 유니온의 근간을 뿌리째 뒤흔들어 놓을만큼 리스크가 큰 퀘스트가 많았다- 보상 역시 컸다.
' 생각보다... 조금 이른데. 설마 벌써 알아차린 건... '
그건 아닌 것 같다. 이 쪽의 이득을 위해 저 쪽에 약간의 피해를 감수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정도 피해는 우스울 만큼 윤석도 엄청난 이득을 가져갔다. 그래서 알아차리는게 상당히 늦을 거라고 생각했다.
' 한 달 1조 5000억이니까...'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는데 분명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시간이면 윤석과 현실에서도 친분을 돈독하게 다질 수 있을테고, 친분이란 건 굉장히 오묘해서 다수정예회를 추궁하지 못할 거란 계산이 있었다. 그러나 조금 빨랐다. 눈치를 살폈다. 무슨 말을 할 지, 걱정도 되고 긴장도 됐다. 윤석은 현재 다수정예회의 핵심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윤석이 말했다.
" 아무래도 계약 자체에서 떼가는 수수료 자체를 낮춰야 할 것 같은데요. "
비밀거래계약 같은 경우는 시스템상 수수료가 50프로다. 그건 어떻게 손 볼 수가 없다. 그렇게 정해져있는 거니까. 군과 직접 거래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매뉴얼에 없는 거래'는 오로지 상인클래스만 가능하다. 괜히 상인클래스를 따로 떼어 만들어 놓은 게 아니다.
" 그건 저희쪽에서 어떻게든 힘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
" 그러니까 제 말은. "
훌팬은 다시 한 번 '표정 숨기기'를 사용했다. 아직 스킬 지속시간이 끝나지 않았지만 괜히 껄끄러웠다.
다시금 심장박동수가 높아졌다.
" 비밀거래 대신 그냥 일반 거래로 해도 상관 없을 것 같아서요. "
비밀거래 계약서 대신 일반 계약서로 거래하면 수수료를 30프로만 뗀다.
" 그래도 상관 없겠죠? "
" 예... 뭐... "
속은 타들어가지만 그렇다고 대답했다.
' 비밀거래 계약시 이득 5000억...에 1차 시스템 수수료 50프로. 2500억. 일반거래시 이득 3000억에... 시스템수수료 30프로. 2100억. 결국 400억 손해다. '
비밀거래에서 일반거래로 전향시 400억의 손실이 발생한다. 그 이후 2번의 세금 (유니온 유지비와 소득에 대한세금)을 내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 그래도 100억이나 손해가 난다. '
분명 손해는 난다. 그런데 방법이 없다. 제공자가 비밀거래가 아닌 일반거래를 원한다면 해줘야한다.
' 괜찮아. 그것 까진. 비밀거래를 일반거래로 돌린다... 그 것까지는 괜찮아. 감당 가능한 부분이다. '
100억의 손해가 나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는 얼마든지 손실가능한 액수로 예전부터 생각해왔다.
" 물론 괜찮습니다만...히든스킬이 밝혀지면... 그 가치가 아무래도 하락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신중을 기해서 나쁠 건 없을 것 같습니다. "
그렇군요... 하고 윤석은 고개를 끄덕였다가 이내 참아왔던 말을 꺼냈다.
이제부터 협상의 진짜 시작이다.
" 그런데... 이상한 말이 들리더군요? "
훌팬이 침을 꿀꺽 삼켰다.
" 이상한 말... 말입니까? "
" 예. 그 부분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
* * *
사실 이상한 말을 들은 건 아니었다. 혹시 이런 건 아닐까... 하고 주랑이 얘기했었다.
남들이 쉽게 말들 하는 베갯머리 송사.
윤석과 주랑은 한차례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난 뒤 서로의 체온을 느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했다. 그 시간이면 윤석도, 주랑도 서로에게 더욱 솔직해질 수 있었고 보다 많은 이야기를 좀 더 쉽게 할 수 있었다. 오늘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주랑이 일어섰다.
" 오빠. 저 좀 씻고 올게요. "
" 같이 씻자. "
" 네? "
" 내가 씻겨줄게. "
윤석이 흐흐흐 웃으면서 일어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매우 음흉한 표정을 짓고 무언가를 주무르듯 손가락을 꿈틀거리면서 말했다.
" 아주 구석~ 구석~ 말이야. "
그러면서 가까이 걸어가자 주랑은 윤석을 살짝 밀쳐냈다.
" 돼, 됐어요. 혼자 씻을 수 있단 말이에요. "
" 난 주랑이가 씻겨줬으면 좋겠는데. "
" 이, 일단 저 씻고나서 씻겨드릴게요. 여기 얌전히 앉아 계세요. "
" 구석구석? "
" 구, 구석구석이요? "
" 안그러면 지금 같이 들어간다? "
" 아, 알았어요! 구석구석 씻겨드릴게요! "
얼굴이 새빨개져 말하는 주랑을 보며 윤석은 짓궂게 웃었다. 주랑과 함께 있으면 유치한 장난조차도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주랑이 먼저 씻고 나왔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씻어봤자 별로 의미는 없었다. 윤석이 또다시 침대로 이끌고 가서 거사를 치뤘기 때문이다. 방금 깨끗하게 씻은 주랑의 몸. 특히나 질 주위엔 다시 투명한 액체가 농도 옅은 이슬처럼 피어올랐고 질 속에서 새어나온, 그러나 그 원천은 윤석의 몸이었을 것이 분명한 우윳빛 액체가 질 입구를 타고서 흘러내렸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섹스가 끝나면 으레 그렇듯 둘은 서로를 마주보고 누워 이야기꽃을 피웠다. 주랑이 말했다.
" 사실은 말이에요. 부장님 있잖아요... "
" 응? 부장님이 왜? "
" 수희 친구의 아버지라서 여태까지 말 안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스킬포토 가격이 조금 의심스러워요. 물론 미리 오빠랑 입을 맞춰놓은 상태였다지만 그래도 납득하기가 힘들거든요... 보통 한 발에 300코드 가량 하잖아요. 그런데 천 발에 1000코드. 배틀필드를 1만코드로 책정한 덕분에 수익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사실 상식적으로는 납득이 안 되거든요. "
주랑의 논리는 이러했다.
비록 커다란 이득을 가져오고는 있지만, 지금보다 더 큰 이득이 생길 수 있는 그 어떤 조건을, 다수정예회에서 어떤식으로든 착취하고 있지는 않을까.
" 물론... 금전적인 이득은 아닐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제가 오빠 몰래 상인클래스에 대해서 조사를 좀 해봤는데... "
그랬더니 아무리 5천억을 벌어도 정작 남는건 고작 30억 가량이었다. 백만원 이백만원을 벌 때는 괜찮은데, 그 금액이 억단위로 넘어가면 유토피아 내에서도 세금을 무지막지하게 떼어먹었다. 중개 수수료 명목으로, 유니온유지비 명목으로 떼고나서 또 소득에 관한 세금을 어마어마하게 떼어간다는 걸 알아차렸다.
" 소득 자체는 오빠에 비할 바가 못 돼요. 그런데... 일반 유저랑은 다르게 유니온에게는 유니온 전체에게 할당되는 퀘스트 같은 게 있대요. "
" 유니온 퀘스트? "
들어본 것 같기도 했다. 유니온 전체에 떨어지는 퀘스트이고 그 난이도가 무척이나 높다고 들었던 것 같다.
" 유니온의 존속자체를 위협하는 난이도의 퀘스트도 있대요. 상인클래스는 돈을 만지는 클래스라... 함부로 도전하지도 못하고 뭐... 그렇다나봐요. "
" 그런데? "
" 그런데 이번 거래 같은 경우는 다수정예회도, 오빠도 엄청 큰 손해잖아요? 그 액수가 조에 달하니까... 다수정예회는 위험부담이 없으면서 손해를 낼 수 있는 그런 구조란 말이에요. 그래서 이게 뭔가 저희는 알 수 없는 퀘스트라든가... 다른 어떤거라든가... 포함된 건 아닐까... 그런 걱정이 들어서요. "
거기까지 말한 주랑은 문득 생각난듯 손사래를 쳤다.
" 무, 물론 오빠를 탓하려거나 오빠의 능력을 의심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에요! 절대절대 아니에요. 그래도... "
" 챙길 건 알아서 챙기자? "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던 윤석이 피식 웃자 주랑은 조심스레 윤석의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 가끔 오빠는... 너무 무신경할 때가 있어서요. 저번에 엔지니어분한테 그 많은 돈을 그냥 주셨을 때도 그랬고... 자동차 살때도 전혀 흥정도 안하셨고... 또... "
윤석은 뒷통수를 긁적거렸다.
" 귀찮잖아. 그런 거 일일히 따지기. "
" 오빠가 귀찮아 하니까 제가 챙길 거에요. 전 남한테 피해주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오빠가 손해보는 건 더더더더 싫어요. "
확실히 난 사업이나 장사는 적성에 맞지 않을지도... 하고 다시 한 번 뒷통수를 긁적거렸다. 뭔가를 살 때도 흥정이란 걸 거의 한 적이 없다. 다수정예회가 이렇느니 저렇느니 설명할 때도 대충 들었다. 다른 과정은 생략하고 수익이 현실 시간으로 한 달 1조 5000억이라는 것만 들었다. 그냥 그런가보다했다. 그런데 주랑의 말을 듣고보니 그게 또 아닌가보다.
" 그러니까... 다음번에 만나면 이렇게 한 번 얘기해보세요. "
주랑몸이 밀착되고, 주랑의 가슴이 윤석의 가슴을 짓눌렀다. 주랑의 속삭임을 들으면서,
" 그냥 껴안아달라고 말을 하지. "
윤석은 주랑을 껴안아버렸다. 주랑의 얼굴이 붉어졌다.
" 그, 그런 거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
하고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리듯 말했지만 윤석의 품에 안긴 주랑의 표정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윤석은 또 눈치없이 정곡을 찔렀다.
" 부정하지 않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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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 눈치없는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