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2 사내놈이 째째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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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순탄가도를 달릴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일단 현실의 문제로, 윤석은 돈 문제에 조금 쪼들리게 되었다. 사실 벌어들이는 돈은 상상을 초월한다. 평생 놀고먹어도 문제 없을 만큼의 돈이다. 그러나 문제는.
' 나참... 용돈받는 신세라니. '
저번에, 이름 모를 엔지니어. 그러니까 나는 신혼이라고! 라며 울분을 토해내던 그 남자에게 돈봉투를 건네준 뒤 윤석은 주랑에게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주랑의 성격에 험한 말을 할 리도 없고, 지나치게 윤석을 몰아세울리도 없지만 윤석은 그 날 주랑이 조금 무서웠다. 주랑의 원래 성격대로 조곤조곤하게,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했었다. 아무리 돈이 있더라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무작정 베푸는 호의는 언젠가 독이 되어 돌아 올지도 모르는데 그게 오빠한테 독이 된다면 정말 슬플 것 같다고 진지하게 말을 했다. 그 날, 윤석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냥 잘못했다고 빌었다. 그 사람이 불쌍하기도 했고, 그 사람의 처지가 이해되기도 했으며, 또 그 때 기분이 워낙에 좋은 상태이기도 했다. 여러가지 상황이 복합되어 즉흥적으로 돈봉투를 건네주고 말았다.고 변명한 게 그나마 최선이었다.
어쨌거나 그 날 이후로, 윤석은 주랑에게 돈 관리를 맡겨버렸다. 주랑은 그 돈을 완벽하고 빈틈없이 관리하겠다며 엑셀파일을 만들었지만 윤석은 그걸 지워버렸다.
" 내 돈이 네 돈이니까 네 마음대로 알아서 해. "
" 그러면 안 된다니까요. "
주랑은, 내가 이렇게 말해도 못 알아 듣는 거에요? 하고 따지는 듯한 눈빛으로 윤석을 한 번 쳐다봤다.
" 돈이라는 건 그렇게 함부로 관리하면 안 돼요. 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순식간에 사람관계를 파괴해버리는 이상한 힘을 갖고 있는 물건이니까, 다룰땐 조심해서 신중하게 다뤄야 한단 말이에요. "
다른 건 몰라도, 이 문제에 있어서는 확고한 태도를 보이는지라 윤석은 그저 네네, 고개를 끄덕였다.
" 게다가... 다른 사람 돈도 아니고... 오빠 물건이니까... 확실하게 관리 할 거에요. "
이러나 저러나 별로 상관 없었다. 1억이 됐든 10억이 됐든 100억이 됐든. 그게 주랑보다 더 중요할 리는 없으니까. 그리고 주랑은 어떻게든 자신보다 훨씬 잘 관리할 거란 걸 안다.
" 아참. 나 떡볶이 체인점 하나만 살게. "
주랑의 고운 미간이 조금 좁아졌다.
" 떡볶이집이오? "
사업이랑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난데없는 떡볶이집 얘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랬다가 방긋 웃었다.
" 수희 얘기 하는 거에요? "
" 응. 하나 사주기로 약속했거든. "
" 그럼 이번달만 특별 용돈 드릴게요. "
" 오케이. "
" 이왕에 하는 거 제일 좋은 자리에, 제일 좋은 조건으로 따내오셔야 해요? "
" 제일 좋은 조건? "
주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 네. 사람 많이 오면 수희 힘드니까... 그리고 너무 외진 곳이면 또 위험할 수 있으니까... 장사는 안 되지만 사람은 많이 다니는 그런 명당이요. "
윤석이 대답했다.
" 괜찮아. 알바 많이 쓰면 돼. "
돈을 함부로 쓰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주랑도 이번 만큼은 방긋 웃었다.
" 그러면 되겠네요. "
하여튼 현실의 문제는 그랬다. 동시접속자 5억. 그 5억이 한달 만원만 현질을 해도 5조원. 요즘 윤석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월 200억 가량. 그러나 한낱 용돈받는 신세로 전락해버렸다.
그건 그렇고, 진짜 중요한 문제는 게임 내에 있었다. 윤석의 사업은 게임을 기반으로하는 사업이다.
[띠링. 슐터의 소환퀘스트가 발동 되었습니다. 2시간 내로 소집에 응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남은시간: 1:59:51]
부랴부랴 슐터가 있는 플라티곤에 들어가고 보니 군 상위서열의 NPC들이 그닥 우호적이지만은 않은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일단 윤석은 이 곳의 가장 최상급 서열자인 슐터에게 거수경례를 취했다.
슐터가 다짜고짜 말했다.
" 자네. 판타리아와 내통하고 있다는 게 사실인가? "
그 말에, 비록 NPC가 하는 말이지만서도 윤석은 찔끔 놀랐다. 얼스에서 군 상위 NPC의 눈 밖에나면 그다지 좋은꼴은 못 본다. 사용자의 편의를 최대한 지원하는 유토피아지만, 그 유토피아에도 나름대로의 법칙이라는 게 있었으니까. 그 법칙을 준수하는 한도 내에서, 유토피아는 유저들에게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하는 셈이었다.
그리고 그 법칙에는 ' 타 대륙인은 적이다 ' 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 곳이 게임 속이라는 거다. 그가 만약 현실 속 군인이고, 현실에서 상급자에게 이렇게 추궁당했다면 당황해서 진땀만 뻘뻘 흘렸을 지도 모른다. 원래 아는 것도 당황하면 모르게 되기 마련이고 손 발이 어지러워진다. 이런 난데없는 상황에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뻘소리를 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곳은 게임 속이고 상대는 NPC들이다.
비록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내뿜고는 있지만 그래도 역시 컴퓨터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에, 윤석은 침착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 무슨 말씀이신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
" 이미 확실한 증인까지 확보해 놓았는데 모르는 체 할 셈인가? "
윤석은 잠시잠깐 생각했다. 저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여러가지 사고체계를 거치기는 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대전제가 되는 것은 바로 '타대륙에 대한 적대감'이다.
아무래도 그 것에 반하는 행동이라 하면,
' 와이투리스의 계곡... 그리고 김수희. '
그 것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것의 목격자라면. 상황이 조금 이해가 된다. 일단 주랑과 윤석은 용의선상에서 무조건 제외다. 수희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남는 건.
" 유니버셜... 말입니까? "
유니버셜 밖에 없다. 상황이 이해되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 호감도를 높여 놓은 것이... 도움이 된다 이건가? '
만약 호감도가 높지 않았다면 어쩌면 바로 철창행일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 모든 것보다 우선시 되는 대전제를 침범하는 행위니까. 탄생성 스킬포토 한 장에, 세금을 떼고나면 0.3코드 가량. 손해를 보면서 팔게 됨으로써 군에게서 '애국심 강한 용사' '대륙을 생각하는 진정한 영웅'. 그와 비슷한 칭찬을 많이 들었다. 그게 지금 상황에 조금이나마 유리하게 진행되는 듯 했다.
윤석은 차렷자세를 취했다.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 제가 만약 정말로 판타리아와 내통을 했다면... 그 목격자인 유니버셜을 살려두었겠습니까? 제가 와이투리스 사냥을 위해 갔던 계곡에는 저와 제 부하. 그리고 제가 판타리아에 심어둔 첩자만 있었을 뿐 입니다. "
동생인 수희는 얼떨결에 윤석이 심어둔 첩자로 둔갑했고 주랑과 민혁은 부하의 신세로 전락했다.윤석은 매우 과장된 태도로 무릎을 꿇었다. 얼스에 대한 충정과 애국심따위 있을 리 없지만.
" 만약 그 쓰레기 같은 판타리아와 제가 내통했다면 지금 당장 저를 총살시켜도 괜찮습니다. 다만. 상황을 조금 더 이성적으로 분석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군 NPC들은 어지간해선 무릎을 꿇지 않는다. 명예심 가득하고 긍지 높은 성격으로 대부분이 설정되었다. 그래서 윤석이 무릎 꿇는 모습에 다들 흠칫 놀랐다.
그리고 총살해도 괜찮단다. 사실 유저인 윤석은 총살따윈 별로 두렵지도 않다. 그래도 NPC들은 감동한 듯 했다. 윤석이 말을 이었다.
" 첫째. 제가 그 어떤 목격자도 없는 상황에서 유니버셜을 살려두었다는 점. 둘 째, 전쟁 중인 이 나라에 배틀필드와 탄 생성이라는. 자국 군사력에 커다란 도움이 되는 물건을 판매하고 있다는 점. 셋 째. 그 물건을 오히려 손해보는 가격에... 오로지 충심과 애국심을 원동력 삼아 군을 위해 바치고 있다는 점. 넷 째. 정말로 저를 의심하신다면, 제가 심어둔 첩자를 지금 당장이라도 장군님들 앞에 데려올 수 있다고 당당하게 밝히... "
거기까지 말했을 때, 슐터가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 사실 난 자네를 믿었어. "
[ 띠링. 슐터의 의심이 풀렸습니다. 슐터와의 관계가 더욱 공고해집니다. ]
슐터가 말했다.
" 그럴 줄 알고, 명예로운 군인을 함부로 모함을 한 계집을 구금해 놓았네. "
윤석은 끝까지 충정 가득한 군인의 모습을 연기했다. 군 시절, 이병때 열심히 갈고 닦았던 게 있다. '고참 똥꼬 빨기' 비록 저속한 말이지만 윤석은 그 기술에 매우 익숙했었고 지금 이 자리. 게임 속에서도 그 기술은 빛을 발했다.
" 아닙니다! 그녀 역시 이 얼스를 위한 구국충정이 있었기에 용기를 내어 신고를 했을 터. 대장군께서 넓은 아량과 포용력을 보여주셔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제게 조금 억울한 상황이 되기는 했지만 그녀의 이 얼스를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충분히 이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저는 그녀의 아름다운 마음에 감동했을 정도입니다! "
따로이 알림음을 들려오지 않았지만, 슐터는 몹시 감동한 모양새다. 굳이 표정을 숨기려하지 않았다.
" 내 자네를 믿네. "
충신으로 둔갑한 김윤석은 고개를 숙인 채 씨익 웃었다. 유니버셜의 행동은 의외였지만 이건 이것 나름대로 도움이 됐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 * *
알아보니 다수정예회는 다수정예회 나름대로 곤란한 상태였다.
일단 요즘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건 맞다. 윤석과 군을 이어주는 초특급 거래를 따내면서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성장하게 될 거다.
그런데, 그들은 윤석에 비하면 아무래도 손해가 좀 났다. 윤석은 스킬포토그래퍼에게 포토 제작을 의뢰하고 세금을 내고 중개 수수료를 떼고나면 순 마진이 5000억 가량이 남는다.
그러나 다수정예회는 달랐다. 기본적으로 다수정예회는 유니온. 즉, 기업의 형태를 띄고 있다. 일단 모든 수익을 훌팬이 차지하는 게 아니라는 소리다. 그것까진 좋다. 그거야 당연한 거니까.
비밀거래로 50프로의 이익. 즉 5000억을 얻는 것 까지는 좋은데 거기서 끝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 그러니까 저희의 순이익은 천문학적으로 줄어들어버린다... 뭐 이런 뜻 입니다. "
" 수익분배가 어떻게 되는데요? "
" 저희는 저희대로 다시 중개 수수료를 뗍니다. 이건 뭐 어떻게 합의를 볼 수도 없는 시스템적인 부분이라 억울할 건덕지도 없죠. "
처음 윤석이 70퍼센트의 세금을 떼는 것과는 무관하다. 그 건 윤석이 '군수품 납품에 대한 수익'에 관해 세금을 떼는 거고, 다수정예회가 떼는 세금은 '계약 중개에 따른 수익'에 대한 세금이다. 결국 중복으로 세금이 물리는 셈이다.
" 특히나 비밀거래 같은 경우는 저희 쪽에서 50프로나 떼가지만 그만큼 또 세금을 많이 떼입니다. 비밀거래는 아무래도 취급하면 안 되는 마약류나 불법 무기류... 그런 쪽이거든요.시스템이 그렇다는데 이 쪽에서야 뭐 어떻게 반항할 수 조차 없죠. "
" 몇 프로나 떼이는데요? "
" 50프로 입니다. "
5000억의 수익이 다시 반토막 난다. 그래서 2500억이다.
" 그것 뿐만이 아닙니다. "
" 또 있어요? "
" 아시다시피 저희는 유니온입니다. 유니온이 유니온의 모습을 갖추려면 경제부에 등록하고 유니온 유지비를 내야하는데 그게... 10억 이상의 거래일 경우, 아이템 중개 수수료를 제한 순수익의 50프로를 헌납해야만 하죠. "
그래서 2500억이 다시 반토막나 약 1200억. 거래의 수수료를 어떻게 좀 낮춰볼까 생각하던 윤석은 인상을 조금 찡그렸다. 뭐 이리 떼가는 게 많아, 상인하면 복창 터질일이 정말 많다더니 그게 거짓말은 아닌가보다, 하고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는데.
"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닙니다. "
" 뭐가 또 있어요? "
" 일반 유저들은 일반적으로 세금을 물지 않죠. 그러나 상인은 아닙니다. 사장님도 아시겠지만 거래를 통해 군수품을 납품했을 때 70퍼센트의 세금을 떼지 않았습니까? "
" 그렇죠. "
" 저희는 아이템 중개에 대한 수수료를 떼고나서, 소득에 대한 세금을 또 뗍니다. 상인이라서요. "
윤석은 순간 환청이 들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참 더러워서. 라는 말이 들린 것만 같았다.
" 저희같이 덩치 크고 수익이 많이 나는 유니온은 무지막지하게 세금을 때려박습니다. "
" 그게 얼만데요? "
" 순 수익의 50퍼센트입니다. "
이 놈의 게임이 50프로라는 말을 어지간히도 좋아하나 봅니다 라고 한숨을 푹 내쉬는 훌팬을 보며, 윤석은 조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 그래서... 유토매니아 같은 사업을 벌이지 못했던 건가? '
저렇게 떼이는 게 많아서야 뭐 남기는 남겠냐하는 생각이 든다.
" 그나마 워낙에 큰 거래라서 비밀거래로 하고 세금을 엄청나게 떼가고 수수료 떼가고 죄다 뺏어가도... 아 참. 이걸 말씀 안드렸네요. 군인들 말고 경제부 NPC들은 뇌물을 엄청 밝힙니다. 거기에 또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갑니다. 이번에 뇌물 바치는 퀘스트가 있었는데 그 액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죠. 복창이 터질 일입니다. 결국 한 달에 실질적으로 저희가 벌어들이는 수익은... 30억 가량 되겠네요. "
물론, 저 말에는 어느정도 과장도 있을 거다. 하지만 푹- 내쉬는 한숨과 그 내용을 들어보니 반쯤은 맞을 거다. 저 말에 과장이 있다치고 한달 100억 가량 번다 치면 -물론 그 돈 역시 큰 돈이라는 사실은 변함 없지만- 자신의 수입의 겨우 2퍼센트 밖에 안 된다. 그 2퍼센트도 혼자 가지는 게 아니라 수백명에서 나눠가진다.
슐터로부터 신임을 얻어냈다. 그리고 이 쪽은 유일한 공급자다. 그래서 다수정예회와 협상을 벌이려고 했다. 수수료를 낮추려고했는데, 비밀거래의 수수료는 애초에 시스템상 정해져있는 것이라 낮출 수가 없단다. 결국 남는 방법은, 거래는 거래대로 이루어지고 그 외에 다수정예회에 따로이 코드를 마련하여 윤석에게 주는 것 밖에 남지 않는 셈이다.
윤석이 조금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 아시다시피 저는 사업가입니다. "
훌팬이 침을 꿀꺽 삼켰다.
" 사업가가 이득을 탐하는 건 잘못이 아니죠. "
"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
" 자랑스런 우리 유토매니아의 부장님이시니까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5억명이 한달에 만원만 현질을 해도 5조원인건 아시죠? "
" 물론 알고 있습니다. "
" 근 시일내에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거라고 예상한 것도 부장님이셨구요. "
훌팬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그렇게 보고했었다.
" 그래서 저는 코드를 더 많이 획득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 중이었습니다. 부장님의 말을 듣고 보니 그 방법이 확실해지는군요. "
훌팬은 쉼호흡을 하면서 윤석의 말을 기다렸다. 윤석이 말했다.
" 저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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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츄명언4>
특별용돈 하나면 떡볶이 체인점 하나쯤은 문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