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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플레이어-61화 (61/244)

00061  마누라. 내가 간다!  =========================================================================

* * *

사실 주랑과 관계를 가질 때에 딱히 피임을 했던 건 아니었다. 한 차례 불같은 시간이 지나고, 서로 부끄러움도 없어진 채 알몸으로 부둥켜 안았다. 그리 넓지 않은 쇼파에 주랑이 눕고, 그 위를 윤석의 몸이 마치 이불이라도 된 것 마냥 덮었다.

주랑의 가쁜 호흡이 윤석의 귓가를 간지럽히고 윤석의 거친 숨이 주랑의 목덜미를 훑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주랑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서 미안한 듯 얘기했다.

" 사, 사실은... 피임... 했었거든요. "

당시. 이니셀에 다니고 있을 때에는 그랬다.

" 아이를 갖고는 싶었는데... 조금 불안해서... "

정말로 미안한 듯 얘기했다. 윤석은 주랑의 등 밑으로 손을 넣어 그 여린 몸을 꽉 껴안았다. 윤석의 가슴에, 푹신한 감촉이 느껴졌다. 서로의 몸 간격이 거의 없어짐과 동시에 주랑의 가슴이 납작하게 짓눌렸다. 푹신함 가운데엔 두 개의 봉긋 솟은 무언가가 느껴졌다.

윤석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 미안. 나 진짜 형편 없었지. "

" 그, 그런 뜻이 아니라.. "

무턱대고 아이를 갖는다고 다가 아니었다. 아버지로서, 또 남편으로서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충분히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고 잘 해나갈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자신감에 가득찼다. 윤석은 몸을 일으켰다. 위에서, 아래에 누운 주랑의 알몸을 빤히 쳐다봤다.

방금까지 그렇게 열정적으로 몸을 섞던 주랑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주랑은 손으로 가슴을 가렸다. 얼굴이 빨개졌다. 그 모습이 재미있는지 윤석은 여전히 주랑의 몸을 빤히 쳐다보다가 킥, 웃고는 말했다.

" 가슴이 진짜 예뻐. "

가슴크기로는 그다지 밀리지 않는다고 자부하던 김수희도 한 수 접어줬었다. 단순히 크기만 한 게 아니었다. 백옥같은 살결과 보기좋은 둥그런 모양. 적당히 탄력을 갖추었으면서도 막상 만져보면 보들보들한 느낌이었다.

" 그리고 엄청 크다. "

장난스레 말하면서.

" 주물럭. 주물럭. "

유치하게도 자신의 행위를 굳이 목소리로 표현했다.

" 노, 놀리지 마요. "

" 놀리는 거 아닌데. 진짜 예쁘잖아. "

주랑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목덜미를 지나 쇄골 언저리까지 붉으스름한 기운이 맴돌았다. 그리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을 겨우 내뱉었다.

" 가, 가슴만요? "

" 아니. 전부. "

윤석은 주랑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그 가녀린 체구에 어떻게 이런 커다란 것이 매달려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 손바닥으로도 다 가려지지 않았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핑크색 유두가 꼈다. 윤석은 그것을 장난감을 다루기라도 하듯 만지작거렸다. 윤석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그것이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눈으로 보면 거의 거기서 거긴데 만져보면 느낌이 달랐다.

왼쪽과 오른쪽의 느낌도 달랐다. 아무래도 능숙하게 움직이는 오른손의 감각에 맞추어, 왼쪽유두가 조금 더 빵빵하게 부풀어오른 듯한 느낌이었다.

하앙... 하는 그 신음소리에, 윤석은 주랑의 오른쪽 유두를 입으로  애무하면서 젖병을 빨듯 세차게 빨아올렸다. 그에따라 주랑의 허리가 팽팽하게 당겨진 활처럼 구부러졌다.

유두를 통해, 살아 움직이는 듯한 혀의 감각이 느껴지고 손가락의 감촉이 느껴지고, 그 뜨거운 흥분이 그 곳을 파고들어 온 몸 전체에 짜릿짜릿 퍼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전신을 구석구석 누비는 그 찌르르한 감촉은,

" 하응... "

가냘프지만 뜨거운 신음소리로 변해 단 둘만 남은, 서울의 야경을 담아낸 통유리가 살색의 두 사람의 비치는 통유리가 있는 사무실 안을 그득 채웠다.

그리고 주랑은 조금 고민했다.

나... 정말 어떻게 되어버린 것 같아...

스물여덟. 늦다면 늦은 나이에 남자를 처음 알았다. 처음으로 받아들인 남자는, 조금 무서웠고 조금 이상한 느낌이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냥 무섭고 마냥 이상한 게 아니었다. 좋았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정말... 나 정말...

단순히 섹스가 좋다는 말은 아니었다. 섹스를 나누는 상대가. 다른 사람이 아닌 윤석이라서 좋았다. 다른 남자와 이런 짓을 벌인다는건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윤석이라서. 그래서 좋았다.

" 넣는다? "

가끔 키스하기 전에 키스해도 돼? 라고 묻는다거나 삽입하기 전에 넣어도 돼? 라고 묻는 그 모습은 솔직히 조금 별로이긴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윤석이니까.

주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샐쭉한 목소리로 말했다.

" 일일히 묻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런 거. "

윤석은 히죽 웃고는, 삐졌어? 라고 물었다. 주랑은 몰라요. 라고 대답했다. 아까처럼, 또다시 호흡이 가빠지고 몸 속을 관통하는 듯한 느낌이 수차례 들었다. 두 사람은 다시금 뜨거운 시간 속에 빠져들어 거친숨을 내뱉어 사무실의 온도를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으윽. 윤석이 짧은 신음성을 토해내고 절정에 다다랐을 때, 주랑의 몸도 절정을 맞이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온 몸의 근육이 쪼그라들고 장기마저도 쪼그라들었다가 펴졌다가를 반복하는 그 짜릿한 감각을 지나, 주랑과 윤석은 다시금 몸을 포개고 누웠다.

시간이 또 지났다. 한쪽 벽에 걸린 벽시계에선 째깍, 째깍 초침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 소리는 쿵쾅쿵쾅 뛰는 심장소리에 묻혀버렸다. 주랑이 입을 열었다.

" 저 어때요? "

" 뭐가? "

" 저는 처음인데... "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묻기는 부끄러웠다. 그래도.

" 오빠는 처음 아닐 거 아니에요. "

묻고 싶었다.

" 저... 여자로서 매력이 있어요? "

윤석을 제외하면 경험이 없어서, 확신할 수가 없었다. 윤석의 과거 따윈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지금이었고, 지금 윤석에게 매력있는 여자로 보이고 싶었다. 윤석이 다른 여자와 과거 잤든 말든, 그건 중요하지 않지만 그 다른 여자보다 매력이 뒤떨어진다면 그건.

' 그건... 조금 분해. '

조금 분할 것 같았다. 그래서 조바심이 들었다. 이럴 때면,어떤 사람들처럼 잠자리 경험이 풍부하고 테크닉이 좋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한 번 들긴 했다.

윤석이 주랑의 머리카락 속에 손가락을 넣었다. 주랑의 머릿결은, 흐르는 물처럼 부드러웠다.

" 주랑아. "

" 네? "

" 너는 말이야... "

윤석은 킥킥 웃었다. 무슨 말을 해야 주랑이 좋아할까 생각하다가.

" 진짜 맛있어. "

그 말에 주랑은 화들짝 놀라 윤석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뭐랄까.

" 으, 음란해요. "

사람한테 맛있다니... 하고 곱게 눈을 흘겼지만 이내 배시시 웃었다. 기분이 좋아졌다. 저속하기만한 말인데 그래도 좋았다. 그 말을 해주는게 윤석이어서 좋았다.

몸을 섞는다는 것. 그 자체로는 별로 감흥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행위를 통해 하나가 되는 기분이 들고, 이 남자에게 정말로 속했다는 기분이 들고, 그리고 그 남자가 윤석이라서.

" 그치만 좋아요. "

주랑이 몸을 일으켜 윤석과 짧게 키스했다.

" 나... 처음으로 받아들인 남자가 오빠라는 것도 정말 좋구요... 앞으로도 저를 가질 사람은 오빠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 "

윤석의 손을 자신의 왼쪽 가슴에 올려놓았다. 두근. 두근. 심장이 두근거렸다.

" 조마조마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고 막 이렇게 막 가슴이 뛰어요. "

주랑은 정말로 행복에 빠진, 어떤 환상속에 빠져버린 듯 행복하게 배시시 웃었다. 윤석이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할 때에, 하필이면 전화가 왔다. 받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 소리가 워낙에 크고 마구 울려대서 여간 걸리적거리는 게 아니었다. 주랑이 말했다.

" 받아요, 오빠. "

윤석을 신경써준 주랑이 먼저 일어나 책상위에 올려져 있던 윤석의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그 모습이 커다란 화면에 재생되듯, 통유리에 비췄다. 그 아름다운 주랑과의 시간을 잠깐 빼앗은 '전화를 건 놈'의 이름을 살펴보기 위해 핸드폰을 들어올렸다.

' 젠장. 어떤 놈이냐. '

액정을 살펴보니, 민혁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윤석은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받았다.

" 아 왜? "

- 어디냐?

" 사무실. "

- 아. 사무실이냐? "

" 바쁘니까 용건만 간단히하고 끊어. "

- 나 사무실 간다. 사소한 장애가 하나 발생했거든. 서버 복구해야 돼. 기술자들도 갈 거야. 금방 갈거야.

그리고는, 인사도 기다리지 않고 전화를 먼저 뚝 끊어버렸다.

" 에이... 매너도 모르는 새끼. "

" 민혁오... 아니 대표님이에요? "

" 엉. "

" 왜요? "

" 서버에 문제가 조금 발생했다나봐. "

주랑은 고개를 갸웃했다. 민혁은 그런 걸 일일히 윤석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웬만해선 스스로 다 처리해왔다.

윤석이 킥, 웃었다.

" 여기 지나쳐갔나보지. "

주랑의 얼굴이 굉장히 빨개졌다. 그 큰 눈을 꿈뻑거렸다.

" 네? "

" 그렇지 않고서야 사무실 올 거라고 나한테 일일히 보고 하겠냐? "

" 그, 그건 그렇지만... "

주랑은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하고 허둥대다가 땅에 떨어진 속옷을 주워 입는다, 스타킹을 신는다하면서 우왕좌왕했다. 스타킹이 잘 들어가지 않아 한참을 낑낑댔다.

" 그리고 말야. 주랑이 네 신음소리가 워낙 커서 복도에까지 다 들렸을걸? "

킥킥 웃었다. 사실 주랑의 신음소리가 그렇게까지 컸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주랑은 정말로 당황한 듯 보였다.

" 세, 세상에...어, 어떡해요... "

" 뭘 어떡해? 이미 지나간 일인데. "

모르긴 몰라도, 민혁은 아마 이 사무실을 지나쳤을 거다. 아니면 들어오려고 했거나. 하여튼 이 곳에서 주랑과 함께 섹스를 하고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을 거다.

' 짜식이. 훔쳐듣기나 하고 말이지. '

킥, 웃었다. 왜 이놈이 굳이 전화를 한건지 알고나니 아주 밉상은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 그럼 빨리 한번만 더 할까? "

아, 안돼요. 사람들 온다잖아요. 라고 주랑은 거부하는 듯한 표현을 입 밖으로는 냈지만 가까이 다가오는 윤석을 밀쳐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윤석을 받아들이기 좋은 자세로, 다리를 살짝 벌려주었다.

다시 한 번, 옅은 신음소리가 -아까보다는 훨씬 작아진- 사무실로부터 새어나왔다.

* * *

서버를 복구하는 시스템엔지니어 중 한 명인 구덕환은 인상을 찡그렸다.

" 에이 씨팔.. 이 야밤에 뭐하는 짓이야. 에이 씨팔 진짜 더러워서. "

짜증이 치솟았다. 처음엔 괜찮았다. 7시니까 빨리빨리 끝내면 8시면 집에 돌아가서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유토매니아의 강대표에게 연락이 왔다. 한 시간정도만 늦게 와 달란다. 어쩌랴. 저 쪽에서 늦게 와 달라는데. 그래도 그러려니 했다. 저쪽에도 저쪽의 사정이 있겠지.

그런데 또 연락이 왔다. 또 한 시간 정도만 늦게 와달란다. 짜증이 치솟았다.

9시가 됐다. 그래서 가려고 했는데 또 연락이 왔다. 30분만 있다가 와달란다. 결국 9시 30분 쯤에 갔다. 열불이 터져도 이렇게 열불이 터질 수가 없다.

" 빌어먹을... "

오늘은 아무래도 집에 도착하면 12시는 되어야할 것 같다. 신경질이 나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 난 신혼이라고!!! "

그리고 누군가 나타났다. 그 누군가는 남자의 기분을 매우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 미안하기까지 했다.

지금은 기분이 매우 좋은 상태고, 마치 술에 취한 듯한 그런 기분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지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생각하며 히죽히죽 웃던 중이었다. 그리고 상대가 굉장히 불쌍하게 느껴졌다.

" 이건 보너스입니다. 죄송합니다. 저희 쪽 일 때문에 작업에 차질이 생겨서. "

그 누군가가 봉투를 하나 건넸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엄청나게 예쁜 여자와 함께 걸어가버렸다. 잠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멍하니 -사실은 걸어가버린 여자의 뒷모습에 넋을 빼앗긴- 쳐다보던 그는 봉투를 열어봤다.

아까의 분노는 온데간데 없었다. 봉투안을 살펴봤다. 한동안 어안이 벙벙해진 그는 그 봉투에 쪽쪽 키스를 퍼부었다. 그리고 남자로서의 자신감이 불끈불끈 치솟아 올랐다. 그가 외쳤다.

" 마누라! 내가 간다! "

그 봉투 안을 다시 한 번 살펴봤다. 다시 한 번. 자신감이 충천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부자된 기분이다. 주위를 휙휙 둘러보았다. 다행히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살며시 그 봉투를 품 안에 갈무리했다. 행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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