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6 사살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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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석에선 난리가 났다. 최약체 길드 호크가 시작하자마자 꽤나 선전하고 있었다. 개인 능력치로는 가장 뛰어나다는 무캐 두 명이 시작과 동시에 시체로 변해버렸고 또 둘의 장비가 손상됐다.
" 야... 호크... 좀 하잖아? "
" 딜레이를 없애는 특별한 스킬 같은 걸 썼나 본데? "
" 아... 그런 건가? "
침을 꿀꺽 삼키고 콜로세움 안을 쳐다봤다.
"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이 안 돼. 그런 스킬이 있으니까 일단 먼저 공격했고... "
" 하긴. 지금은 그런 공격이 안 나오네. "
" 그렇지. 딜레이가 있을 테니까. "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라는 게 전반적인 생각이었고, 포병과 스나이퍼의 긴 딜레이. 그리고 무캐들의 움직임과 현재 진영-산개한 현 상태-을 살폈을 때.
" 호크는... 어차피 졌어. 이건 못 이겨. "
호크는 절대 이길 수 없다. 그게 대체적인 생각이었다.
콜로세움 내에서, 윤석이 '괴물'이라 생각했던 '소총'이 견착했다.
" 사살 명령을 이행해도 되겠습니까? "
척!
소총이 소총을 들었다. 어깨에 견착하고서 윤석의 지시를 기다렸다. 윤석은 길드채팅으로 명령을 내렸다.
- 사살해.
마지막으로 허락을 받아내듯, 소총이 조용히 말했다. 관중들의 술렁임, 환호성, 그리고 무캐들의 함성, 해설자들의 흥분 뒤범벅된 소리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는 않았다.
" 적의 지휘관을 사살하겠습니다. "
그와 동시에.
투다다다다닷──!!!
소총.포.스나 중에서도 피통과 마나통이 상상을 초월하는 '소총'이 총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한가로이 산책을 나온 누군가가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것 처럼 여유롭기 그지 없었다. 정자세로 서서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별로 위협적인 모양새는 아니었다. 유저들과는 달리 이펙트도 화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이 없게도.
" 아, 아름다운!!! "
비명을 남기며 불기둥승부사가 시체가 되어버렸다. 순간 관중을 비롯해 검사들, 그리고 관중들까지. 모두가 조용해져버렸다. 해설자들도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중원의 네임드유저 불기둥 승부사가 순식간에 벌집이 되어버렸다. 구멍이 숭숭난 시체가 되어 말 도 안돼... 이건 사기야... 라는 마지막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비무 전적 무패. 중원의 네임드. 그리고 히든클래스이자 특수능력 '화검'을 구사하는 불기둥승부사였다. 그런데 그냥 허무하게 죽어버렸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이 벌어져버린 거다.
" 임무 완료. "
소총은 천천히 탄창을 갈아끼웠다. 진지한 목소리로 보고를 올렸다.
" 적은 매우 허약합니다. "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 다음 타겟을 설정하여 주십시오. "
윤석은 침을 꿀꺽 삼켰다. 소총의 말이 너무 어이가 없다. 매우 허약하다고? 무패 기록의 불기둥승부사인데? 중원의 네임드 유저라고. 저 무식한 강함에 혀를 내둘렀다.
' 유저와 NPC의 격차가 이렇게 컸던가... '
순식간에 벌집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 엄청난 정확도와 연사력, 그리고 그 무지막지한 데미지는 소총수라면 누구나가 꿈꾸는 지향점이었다.
관중들은 술렁거렸다.
"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
" 갑자기 현캐들 데미지가 왜 저렇게 세 보여? "
" 불기둥 승부사 누웠잖아. 뭐야 이거? "
" 그냥 녹았는데? "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아까부터 이상하긴 했다.
시작하자마자 두 명의 검사가 시체로 변해버렸고, 포병의 포탄은 두 명의 장비를 망가뜨렸으며 한 명을 죽였다. 게다가 어찌된 일인지, 그 유명한 불기둥승부사가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 소총수들 데미지가 저렇게 셀 리 없잖아. "
" 새로운 어떤 스킬이거나... 아니면... "
" 아니면? "
" NPC의 힘이 아닐까? "
" NPC? "
" 아니면 여태까지 호크가 힘을 숨겼다거나... "
관중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 상황에 대하여, 각자의 생각을 말하면서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댔다.
- 이런 아름다운! 길장이 다이했어.
- 나도 알아!
- 어떡하지?
- 부길장님 있잖아!
불기둥은 불기둥승부사가 만든 길드다. 당연히 불기둥승부사가 길드장이다. 그리고 그 밑에 부길드장이 있다. 닉네임은 흑비룡.
현재는 모두 산개한 상태. 저쪽의 소총수들이- 이펙트를 일부러 가동한건지- 화려한 불꽃을 터뜨리며 난사중이다. 이 쪽이 산개한 상태여서 그런지 그리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 하지만... 아까같은 공격이 또 들어온다면... '
현캐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었다. 일단 치명적인 특수탄이 있을 수 있다는 가정. 그것과 비슷하게 치명적인 원샷 스킬이 있다는 가정. 또 NPC의 힘이라는 가정. 일단은 세가지 가정을 세워볼 수 있었다.
치명적인 특수탄이나 원샷스킬의 경우라면, 지금 당장 거리를 좁혀 막무가내식 사살이 좋다. 그러한 탄이나 특수스킬의 경우는 분명 딜레이가 있을테니까. 그러나 NPC의 힘 때문이었다면 이 쪽도 힘을 집중해서 NPC부터 처리해야만 한다.
- 일단 계속 거리 좁혀!
정차장. 즉, 흑비룡이 거리를 좁히라는 명령을 내렸고. 윤석도 소총에게 명령을 내렸다. 다른 놈은 몰라도 저 놈은 꼭 죽여야 한다. 비록 현실과는 모습이 약간 달랐지만 윤석은 그가 정차장임을 단숨에 알아차렸다.
- 저기. 저 검은색 옷 입은 저 남자. 저 남자를 사살해.
준장의 명령을 받든 소총이 즉시 견착했다.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진 느릿느릿하게, 편안하고 여유로운 움직임으로 사태를 관망했으나 일단 명령이 떨어지자 즉각적이고도 빠르게 반응했다.
척!
견착을 하고서, 숨을 한 번 들이키고.
- 안 돼! 멍청한 놈아! 전력을 다 보여줄 셈이냐!
민혁의 길드채팅이 들려왔고.
투다다다닷──!!!
소총이 발포했다. 유저들과 한참이나 갭이 있는 군 NPC다. 불기둥승부사인 정은현조차도 순식간에 구멍이 뚫려 즉사했다. 그에도 미치지 못하는 흑비룡 역시.
" 순삭이야... 뭐야. 저거... NPC가 총 들어올리니까 바로 저렇게 됐는데? "
" 나도 봤어. NPC가 갑자기 총 들어올리고... 검사 녹았어. "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 아... 멍청아. 아무리 정. 아니 흑비룡이 싫어도 그딴식으로 배틀을 펼치면 어떡하냐! 이쪽 전력을 죄다 노출시킬 참이야? NPC덕분이라고 지금 광고하냐?
민혁이 외쳤지만 윤석은 씨익 웃었다. 자신감이 생겼다.
- 노출시켜도... 별로 상관 없잖아. 다 사살해 그냥.
장전을 마친 스나가 다시금 한 명을 사살했고, 포가 두 명을 사살했다.
그리고 소총이 다시 말했다.
" 사살... 하겠습니다. "
* * *
반발이 거세게 일었다.
길드전은, 유저들간의 친목과 단합을 취지로 하여 열리게 되었고 이 것을 시작으로 하여 NPC에게 있는 유토피아의 주도권을 유저쪽으로 옮겨오게 하는 발판이다. 그러한 상황에서강력한 NPC로 길드전에서 승리를 따낸 건 분명 커다란 잘못이라는 게 여론이었다.
- H/P가 무려 100만. 밸런스 붕괴를 가져온 호크의 부끄러운 발악.
- 현대의 군 NPC를 길드전에 출전시켰다면, 우리 화산도 가만히 있지는 않겠다. 우리에겐 수많은 은거기인과 최절정 고수. 화산검선이 있다.
- 현대의 군 NPC? 그렇다면 우리는 대마도사 아인하젤을 영입하겠다. 유저들의 축제에 이게 무슨 행패인가.
과연 은거기인과 대마도사를 길드전에 참여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무캐와 판캐에서 거세게 반발했다.
- 해도해도 너무하다. 아무리 약체라해도, 호크는 길드전 이벤트의 본래 취지를 흐려버렸다. 이래선 길드전의 의미가 없다.
- 최약체 길드 호크. 이젠 꼼수 동원?
승리를 따낸 것 까지는 좋았다. 3차전도 통과다. 그러나 이 비난여론이란 것이 생각보다 무서웠다.
' 젠장... 테이밍한 몬스터도, 정령도. 죄다 NPC잖아. '
테이밍한 몬스터, 정령, 벌레, 뱀 등. 모두 어차피 귀속 NPC로 분류된다. 그 것들이 길드전 참여하는데는 여태까지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 뭐가 다른건데? '
윤석으로써는 조금 억울했다. 건 오퍼라는 히든클래스를 얻었고, 그 히든클래스가 가진 능력을 바탕으로 군이라는 클래스를 얻어냈고, 그 군이라는 클래스. 거기서도 준장이라는 직위는 세 명의 귀속 NPC를 부릴 수 있었다. 여기에는 그 어떤 편법이나 -물약값을 대기 위해 현질을 했던 것을 편법이라 한다면 할 말 없지만- 해킹을 동원하지도 않았다.
정당한 방법으로, 정해진 방식에 따라, NPC를 얻었고 그 NPC로 길드전에서 승리를 따냈다.
' 드래곤 테이머... 같은 거라도 나왔다가는 난리가 나겠군. '
물론 밸런스 붕괴가 있기는 했다. 아직까지 유저와 NPC는 그 능력차이가 너무 심했다. 그래서 너무 쉽게 이겨버렸다.
' 하지만... 이걸 얻기 위해 내가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
정말 고생 많이 했다. 지금의 보상이 너무 커서 그 고생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 그딴식으로 말하려면 늬들도 처음부터 총잡이 키우던가. 애초에 키울 생각도 안한 새끼들이. '
속이 타들어갔다. 유토피아엔 무조건적인 페널티도, 무조건적인 메리트도 없다. 메리트가 크면 페널티도 크고, 페널티가 크면 메리트도 크다.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만, 현캐의 페널티가 워낙 커서 아무도 하지 않았고 여지껏 아무도 그 메리트를 발견하지 못했었다.
' 그렇게 따지려면 9대문파도 5대세가도 죄다 사기 아냐? 12마탑은? 걔네도 밸런스 붕괴아닌가? '
9대문파와 5대세가의 특수 검법(혹은 다른 스킬). 12마탑만의 독자적인 마법영역. 극소수의 유저들이 그 것들을 얻었고 -그 과정도 분명 험난했을 거다-, 힘들게 얻어낸 그 히든클래스는 '히든클래스답게' 강했다. 그런데 그 것들에게는 관대했다. 그 것들은 원래 강하니까. 처음부터 인정하고 들어갔다. 그러나 이쪽은 아니었다. 현캐는 약해야만 한다는 게 뿌리깊은 고정관념이었고 그게 무의식적으로 강하게 작용하는 듯 했다.
' 엄연히 내가 얻어낸 힘인데. '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 비난 여론을 살펴보자면, '길드전의 취지를 흐렸다'라는 포장을 하고는 있지만 주된 얘기는 '밸런스 붕괴'였다. 그게 화가 났다. 현캐의 페널티는 누구나가 인정하는 바가 아니었던가. 그리고 그 페널티를 극복해내서 지금의 '안졸리냐졸려'가 있는 게 아니던가.
사람들은 주장했다. 호크는 길드전 이벤트에 참여할 자격이 없으면 당연히 3차전 실격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윤석은 소주 한잔을 들이마셨다.
" 주랑아. 내가 너무 우물안 개구리라 내 입장 밖에 생각 못 하는거니? "
" 오빠. 술 좀 그만 마셔요. 이러다 몸 상하겠어요. "
사실 많이 마시지도 않았다. 방금 세잔 째를 비웠다. 하지만 주랑에게는 아니었나보다. 주랑은 연신 걱정되는 듯한 눈으로 윤석을 쳐다보다가 이내 술잔을 빼앗았다.
" 저도 엄청 화 나요. 어떻게 그래요? 다들 길드전 길드전 얘기하는 척 하면서, 사실은 그런 NPC를 얻은 거에 대해 질투하는 것 밖에 안 되더라구요. 유토피아의 모토.... 다 알고 있었으면서. "
무조건적인 페널티도, 무조건적인 메리트도 없는 세계. 페널티를 극복해내면 메리트도 있다. 그걸 알면서도 아무도 현캐를 하지 않았다. 현캐만은 예외라고 했었다. 다들 그랬었다.
" 너무 화나서 막 눈물도 나고 그랬어요. "
주랑은 윤석의 옆자리에 앉아 윤석의 손을 꼭 붙잡았다. 윤석은, 주랑의 체온이 담긴 손을 잡고 있으니 괜스레 마음이 진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 윤석이 입을 열었다.
" 미안해. 추했지...? "
감정 하나 못 다스리고 여자친구 옆에서 술이나 퍼먹으면서 씨근덕대던, 바로 아까전의 모습이 떠올라 버렸다. 주랑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으음, 으음, 하고 강력하게 부정했다.
" 아니에요. 제가 언젠가 말했잖아요. "
경차를 타는 사람이 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경차를 타는 거라구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경차를 타든, 벤츠를 타든, 오토바이를 타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
몸을 더 바싹 끌어당겨 윤석 옆에 앉았다. 정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 제가 오빠를 사랑하고 있다는 거고... 그 오빠가 화를 내고 있는 거고..."
윤석의 볼에 살짝 키스했다.
" 오빠가 그 어떤 모습을 보여도... "
그리고선 조금 민망하고 부끄러워졌는지 고개를 조금 숙였다. 괜히 발을 까딱까딱 움직이면서 말했다.
" 사랑... 할 거니까요. "
윤석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고개를 숙인 채 하염없이 발끝만 쳐다봤다.
그 때. 전화가 왔다. '유토피아'에서 온 연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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