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0 별이 보인다 =========================================================================
* * *
윤석은 결국 주랑으로부터 허락을 얻어냈다. 다른 건 몰라도, 차 만큼은 남자의 로망이라는 윤석의 말에 주랑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My car 를 장만해서 무척 기분이 좋았는데 수희로부터 연락이 왔다.
<동생년>
오빠얌!! 돈 많고 재수 없는 놈이랑 밥 먹기 싫으니까 빨리 날 구원해주도록! ㅠ_ㅠ 오후 5:38
기분이 좋았던 윤석은 간만에 빠르게 답장했다.
<김윤석>
ㅇㄷ? 오후 5:38
<동생년>
여기 우리 학교 앞인뎅... ㅇ_ㅇ 어디 갈지는 나도 모르겠어. 오후 5:39
<김윤석>
ㅇㅇ 오후 5:39
<동생년>
올거얌? ㅇ_ㅇ? 올꺼면 나 후문서 기다리고이쓰께 ㅎㅎ오후 5:39
<김윤석>
ㅇㅇ 오후 5:40
<동생년>
빨리 와야댕!! >_< 이 느끼남 완전 재섭서! 오후 5:40
<김윤석>
ㅇㅇ 오후 5:40
<동생년>
너 진짜 대답 일관성 쩐다!! ㅡㅡ+!! 오후 5:41
< 김윤석>
ㅇㅇ 오후 5:41
<동생년>
이씽... 할튼 빨리왕! 오후 5:41
<김윤석>
ㅇㅇ 오후 5:41
주랑이 윤석의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 오빠. 왜 그렇게 실실 웃어요? 누구에요? "
" 아. 응. "
윤석은 핸드폰을 보여줬다. 대화를 한 번 살펴본 주랑이 인상을 찡그렸다.
" 대답이 정말 한결 같네요. "
" 귀찮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
윤석이 킥킥 웃었다. 'ㅇㅇ'라는 대답을 보며 발끈하고 있을 동생년의 모습이 떠올라버렸다. 발끈했을 것이 분명한데 그것을 티 안내려고 ㅇ_ㅇ 라던가 ~ㅁ~ 라던가 하는 이모티콘을 붙여가며 'ㅇㅇ' 이외의 다른 대답을 이끌어내려고 열심히 노력한 게 빤히 보여서 재미있었다.
" 정말이지... "
주랑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 수희가 저한테 하소연 할 만 해요. "
" 수희가 너한테 하소연 했어? "
주랑이 핸드폰을 보여줬다. 몇 가지만 추려서 보여줬다. 윤석이 주랑에게 보낸 메세지 내역이었다.
" 이러니까 하소연 하죠. "
<내사랑>
주랑아. 집엔 잘 들어갔어? 미안해 ㅠ 오빠가 오늘 데려다주질 못했네. 오후 11:48
<내사랑>
잘자요 ♥ 내 꿈 꾸고 ♥♥ 사랑해♥♥♥♥♥♥ 오전12:00
대략 이런 식이었다. 물론 주랑이 보낸 문자(톡)는 그 정도가 아니었다. 윤석보다 훨씬 장문이고 다양한 이모티콘과 하트. 그리고 훨씬 더 다양하고도 매혹적인 단어들과 화려한 어휘들이 잔뜩 사용되었다. 윤석이 피식 웃었다.
" 너무 잘해주면 기어올라서 안 돼. "
" 그래도 조금만 더 상냥하게 대해주시면 좋을텐데... "
" 벌써부터 시동생 점수 따려고 그러는거야? "
주랑이 화들짝 놀랐다.
" 그, 그런 건 아니에요. "
라고 말했다가 이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 사, 사실 맞을지도... "
하고 말꼬리를 흐렸다. 윤석은 그런 주랑이 귀여워 머리를 한 번 헝크러뜨리고 말했다.
" 같이 갈래? "
" 저는... 회사 들어가봐야 할 거 같아요. "
" 내가 사장인데? "
" 아뇨 저... 그래도... 제가 할 일이 아직 남아 있어서... "
제가 맡은 일 만큼은 제가 꼭 하겠다고 전부터 말해왔던 주랑인지라 윤석은 이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 미안해. 너만 고생시키는 것 같아서. "
" 제가 뭘요. 저보다는 민혁오빠... 아니 민혁 대표님이 고생이죠. 저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어요. "
주랑은 윤석에게 부담을 주기 싫은 듯 생긋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윤석도 안다. 주랑은 아침과 낮까지는 콜센터의 팀장으로 일하면서, 한 명 두 명 늘어가고 있는 직원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저녁에는 윤석과 와이투리스 사냥까지 한다.
주랑은 윤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 무슨 생각 하는지는 알겠는데... 전혀 안 그래도 돼요. 그냥 이렇게 짬 나는 시간에 오빠랑 만나고 얘기할 수 있는 것 만으로도 정말 좋아요. 이게 저한텐 휴가랍니다. "
그리고선 헤헷- 웃는 모습에 윤석은 저도 모르게 주랑의 볼에 살짝 키스했다. 주랑도 기분이 좋은 지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술을 콕콕 찌르면서.
" 거기 말구, 요기요 요기. "
하고 생긋 웃었다. 짧게 키스하고서, 윤석은 방금 전에 새로 뽑은 차에 올라탔다. 이제 어느정도 돈에대한 조절능력도 생겼으니, 이 것 만큼은 꼭 사고 싶다고 졸랐다. 사실 윤석이 정말 맘 먹고 말하면 주랑은 거의 무조건 접어준다. 그녀는, 정도 이상으로 윤석에게 간섭하고 이기려 들지는 않았다.
그래서 결국 구입한 것은 메르세데스-벤츠E350 카리브올레. 색상은 상아색이다.
V6엔진에 3500cc급. 후륜 구동에 자동 7단변속기를 탑재한, 소프트탑 형식의 컨버터블이다. 기존 E클래스와 비슷한 레이아웃을 유지한 채 자신이 카리브올레임을 증명하듯이 루프컨트롤러와 그 외 기능을 담은 각종 스위치 정도만 변화가 생긴, 벤츠 E클래스. 가격은 대략 8500만원. 경차, 승합차 말고 또다른 My Car를 가지게 됐는데 그게 오로지 현찰로 구입한, 따끈따끈한 신차다. 날씨가 제법 차가웠지만 윤석은 소프트탑을 오픈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이 차와 함께라면 추위따윈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차보다도 더욱 사랑스런 주랑이 방긋 웃고 손을 흔들며 말했다.
" 조금 있다가 봐요. 내 사랑. "
윤석이 차 안에 들어가기 전, 다시금 윤석의 목을 끌어안고서 살짝 키스한 주랑은 두어발자국 뒤로 멀어져선 손을 흔들었다.
윤석이 창문을 내리고서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또다시 키스했다. 민혁이 봤다면, " 잘들 놀고 있네. 아주. 인사하는데 키스가 몇 번이냐? " 라고 핀잔을 놓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주랑은 다시 차에서 몇 걸음 멀어져선 뒷짐을 쥔 채 허리를 앞으로 조금 숙였다. 그리고는 예쁘게 웃었다.
" 빨리 가셔야죠. 수희 기다리겠어요. "
* * *
경차를 몰다가 이런 벤츠를 모니 느낌이 확 다르다. 보이는 시야 자체도 다르고 몸이 느끼는 바가 달랐다. 뭐랄까. 무거워진 느낌이 실제로 든다고 해야하나. 차가 커졌고 힘이 좋아졌고, 무엇보다도.
' 운전 하기가 뭐 이리 편해? '
길도 알아서 착착 비켜주고 -실제로 비켜주는 것 까지는 아니었으나 모닝을 탈때에 비하면 거의 비켜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끼어들기도 쉬웠다. 무리하게 끼어드는 차도 없었다.
그리고 남자의 본능이라 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괜스레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돈이나 그 외에 다른 것으로 인간의 가치가 높아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저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 까지는 어떻게 조절할 수가 없었다. 그건 본능이었다.
신촌을 지나 홍대 근처에서 윤석이 전화를 걸려는데, 전화가 먼저 걸어왔다. 이름을 보니 '동생년'이다.
- 오빠 어디야?
" 너희 학교 근처. 후문으로 가면 돼? "
- 응. 빨리와.
오후 6시 11분. 저녁때라 그런지 홍대 후문에는 사람이 바글바글 거렸다. 외국인들도 드문드문 보이고.
' 대학교 앞이라 이건가. '
윤석은 피식 웃었다. 사실 28살이 나이를 많이 먹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이 곳에 오니 젊음과 활기가 느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자신은 캠퍼스 생활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2년제 전문대에 들어가 1년 공부후 2년 군대. 다시 1년 공부. 그리고 제대. 그리고 이니셀에 입사하여 4년간 근무. 그게 20살때부터 28살때까지 윤석이 가진 기억의 전부였다. 22살때에 가졌던 사랑의 기억 말고는 가슴속에 남은 것은 별로 없었다.
' 아... '
대학교 후문에 와보니, 잊고 있던 기억이 하나 떠올라버렸다.
' 맞아. 그랬었지. '
한 번, 킥 웃었다. 18살 때 했던 풋풋한 약속. 18살 땐 윤석이 첫사랑에 빠져있던 시기였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그게 '사랑'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과거의 연애 경험 중에서도 확실하게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건 22살때. 그 때 밖에 없었다.
그리고 18살 그 시절엔 참 아무것도 몰랐던 것 같다.
' 내 주제에 서울권 대학을 오겠다고 약속했으니. '
그게 바로 홍대였다.
10년 뒤, 우리가 헤어지든 계속 만나고 있든 어쨌든, 홍대 학생회관 앞에서 만나자는 약속이 떠올랐다. 어린 날의 추억이긴 한데, 첫사랑의 기억이란 언제나 가슴 설레는 기억이기도 했다.
' 뭐...내가 그랬었구나. '
피식 웃었다. 옛 기억이야 옛 기억이고, 지금 중요한 건.
빵-!
아주 작게 클락션을 울렸다. 익숙한 뒷통수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더욱 익숙한 안면이 보였다.
창문을 내렸다.
" 야. 타. "
수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입도 쩍 벌렸다. 그리고 놀람의 표현을 한 단어로 대체했다.
" 헐! "
그리고 한 단어를 더했다.
" 대~박! "
입이 정말 커졌다. 대~박!을 말하는데 폐로부터 공기가 참 많이 빠져나왔다. 오빠 오는 수희를 같이 기다려준답시고 옆에 있던 민서도 입을 쩍 벌렸다. 수희에게 티나게 속삭였다.
' 너희 오빠 백수라며! '
사실 그녀는 윤석이 유토매니아의 사장이란 걸 안다.
' 너희 오빠 엄청 잘 안다며? '
그런데 아무래도 수희는 모르는 모양이었다. 수희가 이렇게 놀라는 모습을 본 적은, 대학생활 2년 중 A+ 학점을 받았을 때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민서는 자동차를 잘 모른다. 잘 모르는데, 이 차가 삐까뻔쩍한 차라는 건 안다. 아무나 못 타는 차다. 척보니 뚜껑도 열렸다 닫혔다 할 것 같다. 영화속에서 튀어나온 자동차 같다. 번쩍거렸다.
수희가 더듬거렸다.
' 그, 글쎄... '
물론 아니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쪽을 쳐다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어라. 민서도 있네. 밥 같이 먹게? "
방금 전까지, 같은 과 선배인 준현과 밥을 먹으려 했고, 그냥 수희 기다려주느라 같이 있었던 민서가 생긋 웃었다. 대답은 무척 빨랐다. 거짓말도 매우 빨랐고, 한 남자가 버려지는 속도도 그에 못지 않게 빨랐다.
" 네! 오빠 기다리던 중이었어요. "
============================ 작품 후기 ============================
< 비츄 명언 1>
기다림은 길고
버려짐은 짧다.
< 비츄 명언 2>
인공이를 제외한 남자는 그저 버려질 뿐.
민혁이는 아끼는 캐릭터라 안 버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