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플레이어-47화 (47/244)

00047  별이 보인다  =========================================================================

* * *

은현은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연신 우와~ 우와~를 연발했다. 그런 대단한 사람과 식사를 같이 했다는 것이 신기한 듯 했다.

" 우와. 아빠 진짜 그 형이 아빠 밑에 부하직원이었어? "

" 물론이지. "

정차장은 어깨를 쭉 폈다. 지금이야 어찌됐든 과거에 부하직원이었던 건 맞으니까. 허세도 좀 부렸다.

" 그게 다 아빠한테 잘 배우고 커서 그렇게 성공한거야. "

" 흐음.... "

정은현과 정은미가 동시에 말했다.

" 근데 난 왜 그래? "

" 근데 나는? "

정차장은 뜨끔했다.

" 너희가 뭐 어디가 어때서? "

정은현이 농담이야, 농담. 말하고선 한숨을 푹 내쉬었다.

" 근데 진짜 대단하긴 하다. 하루 거래되는 코드량만해도 몇 억이라던데... 유토매니아는 어디서 그렇게 코드가 나는거지? "

정은미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 글쎄... 뭐... 유토피아에서 상인으로 성공한 거 아닐까? 일단 규모만 해도 지구보다 훨씬 크니까... 돈도 쉽게 벌 수 있다잖아, 상인은. "

" 역시 그렇겠지? "

" 자유무역지대에서 유토매니아 거래한 사람 얘기 들어봤는데... 건물이랑 NPC보니까 현캐래. "

" 하긴. 현캐 상인이 돈은 잘 번다 하더라. "

" 음... 그건 그래. "

" 대신 재미는 진짜 없나봐. 게임하면서 스트레스 쩔게 받는다나. 누가 게임하면서 스트레스 받고 싶겠어? 진짜 독하게 돈벌려고 하는 거 아니면 안하는게 좋을걸. "

정은현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 오빠. 왜 그래? 미친 사람처럼. "

" 생각해봐. 현캐에 그런 대단한 상인이 있어. "

" 근데? "

" 근데 내일인가? 모레인가? 호크도 3차 길드전 참여하잖아. "

킥킥대고 웃었다. 현캐를 하려면 그렇게 상인을 해서 대성공을 거두는게 낫다. 그건 유토피아 내에 널리 퍼진, 일종의 진리 비슷한 것이었다. 그도 아니면 픽업아티스트를 하던가. 하여튼 현캐 전투클래스는 쓰레기다.

정은미가 벌떡 일어섰다.

" 아 맞다! "

그리고 쿵! 커다란 소리가났다. 이 곳은 차 안이다. 천장이 그리 높지 않다. 벌떡 일어난 정은미의 정수리는 천장과 급격한 만남을 성공리에 성사시켰고 그 답례로 엄청난 두통을 얻을 수 있었다.

" 으으... 아파... "

정은미는 울상을 짓고 머리를 비볐고 정은현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푸하하! 배를 잡고 웃어댔다.

" 내가 아픈 게 좋냐! 이 바보야! "

" 어떻게 그렇게 부딪치냐? 으, 으, 으흐흐흐, 으하하하, 하이고 배야. 진짜 개그 쩐다 너. "

하지만 정은미는 정은현의 도발에 전혀 넘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씨익 웃었다. 그러자 정은현이 조금 불안해졌다.

" 뭐야? 너? 왜 그렇게 변녀같이 웃어? "

" 오빠. 뭐 잊은 거 없어? "

" 뭐? "

뭐? 라고 되묻긴 했지만 정은현의 안색이 몹시 나빠졌다. 뭔가가 기억날 것 같다.

' 기억나지 마라! '

이미 기억은 났다. 그러나 애써 부정했다.

" 뭐라더라... 불기둥승부사의 자존심을 걸고... 명동에서 웃통벗고 만세삼창 인증샷을 올린다고 누가 그랬던 거 같은데. "

정은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 불기둥승부사가 누구? "

정은미가 또 씨익 웃었다. 손가락으로 정은현의 어깨를 푹 찔렀다.

" You. 당신. My 오빠. "

" 난 기억 안나는데. "

" 호크가 2차전 절대 못 넘는다고 손에 장을 지진다고 그랬잖아. "

" 기억 안나. 난 그런 적 없어. "

정은미는 은현을 흘겨봤다.

" 오빠. "

" 왜? "

" 내가 동생으로써 진지하게 말하는건데. "

" 뭐? "

" 오빠 나중에 정치인 할래? "

" 뭔 소리야? "

" 진심이야. 오빠 정치하면 장난 아닐 거 같아. "

" 칭찬이지? "

" 물론이지. "

그리고 은현이 물었다.

" 분명 칭찬인데 왜 기분 나쁘냐 나? "

" 기분 탓이지 뭐. "

정은미는 생긋 웃었다가 이내 또 고민에 빠져들었다.

' 이번에 난 도대체 누굴 응원해야 해? '

그녀는 호크를 응원하는 몇 안되는 사람이었다. 그나마 요즘은 좀 늘었는데, 1차전부터 호크를 응원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호크와 맞붙는 3차전상대는 바로 은현이 길드장으로 있는 '불기둥'이다. 중원에서 꽤나 이름 높은 '불기둥승부사'가 길드장으로 있는 길드이며 세력 자체는 크지 않지만 개개인의 실력은 대단히 높다 평가되는 팀이었다.

" 오빠. "

" 왜? "

" 이번에 오빠 지면 어떡해? "

" 말이 되는 소리를 해. "

" 다 호크가 질 거라고 그랬는데 호크는 두 번이나 이겼잖아. "

은현이 피식 웃었다.

" 야. 그래도 내가 불기둥승부사야. 비무 전적 78전 78승 0패. "

" 오빠 쪼렙때 많이 졌잖아. "

끄응... 은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판타리아와는 약간 다른 중원만의 비무에 대해서 설명해주기 귀찮기도 했고, 또 설명하지 않자니 무패기록을 날조한 것 같은 기분이 들고.

" 하여튼 오빠가 확실히 이긴다는거지? "

" 그럼! 물론이지. 현캐는 상인이랑 픽업아티스트빼면 쓰레기야. "

" 오빠가 무조건 이긴다고 했으니까 나는 호크 응원할래. "

" 야야. 그래도 내가 네 친오빤데... "

은미가 생긋 웃었다.

" 기억 안 나. "

은현은 체념한 듯 중얼거렸다.

" 아니... 애초에 그건 기억이 안 날 수가 없는 문제잖아... 혈연이라고? "

은미가 또다시 생긋 웃었다.

" 응. 미안. 기억 안 나. "

* * *

요즘 민혁은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유토매니아가 상상 이상의 대히트를 치게 되면서 그렇다. 개인 고객은 그렇다 치더라도 덩치 큰 기업 고객도 상대하는 게 요즘 그의 주 업무였다.

그도 사실 대충 알고는 있었다. 대기업의 자본이 유토피아 내부에 깊이 잠식하고 있을거라는 생각은 했다. 아니나 다를까, 유토피아의 세 개 대륙에는 이미 대기업들이 그 막대한 자본력을 가지고 진출하여 각종 장사를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유토피아는 잘만 하면 꿈의 대륙이 될 수도 있었다. NPC의 총 인구- 혹은 개체수- 만해도 1000억 가량 된다. 그들을 상대로 장사를 벌여도 좋고, 동시접속자만 해도 5억인 유저들을 상대로 장사를 벌여도 좋았다. 게다가 게임이라 위험부담도 훨씬 적을 뿐더러 장사나 사업에 관해 잘 모르는 사람도 도전하기 쉬웠다.

' 그리고... 각종 홍보효과도 노리고 있는 셈이지. '

민혁은 의자의 등받이에 잠깐 몸을 기댔다. 너무 바빠졌다. 게임에 접속할 틈이 없다. 자본가들을 연이어 상대하고 기업들과도 접촉하면서 소모되는 심력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 아니, 바쁜게 좋긴 좋은건데. '

괜히 배알이 뒤틀리는 게 하나 있긴 있다.

' 그 놈은 여전히 놀고 있겠지. '

사실 따지고 보면 윤석도 놀고 있는 건 아니다. 윤석은 스킬포토 제작을 위해 게임에 접속해야만 한다. 이 세상에 딱 한명 뿐인 공급원이다. 윤석도 나름대로 바쁘다. 배틀필드와 탄생성 스킬포토는 그 엄청난 생산력에도 불구하고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을 지경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윤석의 일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건 아니다.

어차피 스킬포토야 스킬포토그래퍼가 미친듯이 찍어내고 있으니까.

똑똑-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 강이사님. 들어가도 됩니까? "

" 아 예예. 들어오시죠 팔자 핀 님. "

누군가 들어왔다. 민혁이 퉁명스레 말했다.

" 사장님. 요즘 좋겠습니다? "

윤석이 피식 웃었다.

" 너 요즘 엄청 바쁘다며? "

" 바쁘지. 바빠. "

" 직원 좀 늘리자니까? "

" 안 그래도 그래야겠다. 진짜 미춰버리겠다. "

조금 퀭한 눈의 민혁은 몸이 찌뿌둥한지 고개를 두어바퀴 돌렸다.

" 야. "

" 왜? "

" 너 한스랑 거래하면서 스킬포토 좀 몇 개 얻어오면 안 되겠냐? "

" 어떤 걸로? "

" 천사의 유혹. "

" 야 그거 비싸. "

" 그게 상인 새끼들이 비싸게 팔아서 그렇지 솔직히 원가는 얼마 나오지도 않잖아. 아오 진짜 순 개사기꾼 새끼들. "

보통 유저들은 13만원선에서 거래되는 '악마의 유혹'을 구입한다. 그거면 일반 NPC들과 90퍼센트 확률로 섹스를 성공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악마의 유혹 말고, 그 보다 더 상급 스킬이 있다.바로 천사의 유혹이다. NPC를 100퍼센트 확률로 꼬실 수 있다. 그런데 악마의 유혹과 차이점이 있다면.

" 그래도 그거 효과 하나는 끝내주잖아. "

3일간 한 명의 NPC를 완전히 종속시킬 수 있다는 거다. 완전히 사랑에 빠진 NPC가 되어버린다. 간, 쓸개 다 빼줄만큼의 애정을 보여준다. 물론 제약은 있다. 일반적으로 유저들이 거래를 해야하는 일반 NPC는 그 대상에서 제외된다.

한 유저에게 귀속 되다시피하더라도 다른 유저들에게 별다른 불편함을 주지 않을 NPC들로 그 대상이 한정되긴 한다. 그래도 그것만해도 대단한거다.

애완동물만 하더라도, 온갖 사랑을 쏟으며 돈 투자하기를 아끼지 않는다. 애완동물에서 반려동물이라는 단어가 나온지도 오래됐다. 비슷한 맥락이다. 오히려 천사의유혹에 매혹당한 NPC는 고양이나 개보다 훨씬 더 인간에 가까웠고 (심지어 섹스도 마음대로 할 수 있었으며), 이용자의 심리적 만족을 충족시켜주었다.

섹스라는 육체적 필요와 애정이라는 정신적 필요를 동시에 채워주는 스킬. 그래서 매우 비싸게 거래됐다.

윤석이 말했다.

" 그래서. 진짜 말하고 싶은 게 뭔데? "

어차피 민혁이 진짜 말하고자 하는게 '천사의 유혹'이나 '악마의 유혹'같은 게 아니란 걸 잘 아는 윤석이다. 오래된 친구라서 그렇다. 민혁이 다른 말을 꺼내기 전에 그냥 냅다 던진 말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민혁이 피식 웃었다.

" 짜식이. 재미 없기는. "

민혁은 비서가 가져다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 아무래도... 주랑이나 나. 둘 중에 한 명은 길드전에서 빠져야 할 거 같은데... 보시다시피 바빠서. "

윤석이 물었다.

" 그래서 방법은? "

" 뭔 방법. "

윤석도 커피를 들어올렸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 김 사이로 민혁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 무책임하게 내뺄 놈 아니잖아 너. 방법 생각해 놨으니까 나한테 말했겠지. "

============================ 작품 후기 ============================

연재 시작한지 3주? 한달 정도 된 거 같은데... 처음으로 받은 24장 쿠폰 ㅡㅡㅋ

기쁘다 서비스(?)로 간만에 (윤석이가 간다에서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농밀한 H씬을 적었지만 비축분이 10편이상 있는 관계로 60편은 되야 나올듯...하군요 ㅡ.,ㅡ; 쩝. 비축분이 이럴땐 안 좋은듯...

아참. 그리고 혹시 못 보신 분들이 있을 수도 있어서...

3차길드전 상대는 '불기둥'입니다. 예전에 수정됐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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