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7 사업도 슬슬 시작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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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잡이는 분명 쓰레기 클래스다.
더더군다나 그 중에서도 스나이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쓰레기다. 하지만 그건 타대륙의 캐릭터들. 그러니까 중원과 판타리아의 캐릭터와 비교했을 때 그렇다는 거다.
클래스를 오로지 얼스에만 비교해서보자면 총잡이는 가히 최강의 클래스였다. 얼스에는 이렇다할 전투클래스 자체가 없었으니까. 원래 호랑이 없는 산골에선 여우가 호랑이 노릇 하는 법이고, 얼스에선 총잡이가 바로 여우인 셈이었다.
민혁의 친구채팅이 들려왔다. ( 유토피아에는 일반채팅, 귓말, 길드채팅, 친구채팅기능이 있다. 일반채팅은 말 그대로 현실에서 대화하듯 편하게 얘기를 하는거고, 귓말은 남들 몰래 특정인과 대화를 나누는 시스템이다. 길드채팅은 같은 길드끼리, 친구채팅은 친구등록을 따로한 사람들끼리만 들리도록 되어 있다. )
- 오케이. 명중.
- 저, 저도 맞췄어요. 그런데 약하긴 약한가봐요. 정확하게 급소 맞추진 못했는데 한 방에 훅 갔... 아니... 사망하시고 말으셨답니다.
주랑의 말에 민혁은 뭔가 불만인듯,
- 시체에까지 극존칭 붙이지마.
하고 퉁명스레 말했다. 그냥 극존칭도 아니고 어법마저 무시한 극의 극존칭이었다.
- 그, 그래도...
- 김윤석 앞이라 내숭떨지도 말고. 훅 갔다! 왜 말을 못 해?
그러자 김윤석이 타박했다.
- 야. 시끄러워. 주랑이 말을 하든 못하든 너랑은 상관없잖아. 형수님한테 까불긴.
거기에 주랑이 소심하게 목소리를 보탰다.
- 그, 그래요!
민혁은 그 '맞아요' 뒤에 숨겨진 '제 행동을 제약할 수 있는 사람은 윤석오빠 뿐 이라구요! 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고 덕분에 기분이 무척 불쾌해졌다.
- 커플끼리 잘 들 논다.
그러자 주랑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주랑은 민혁이 봐도 정말 예쁘게 웃고 있었다.
- 오빠. 우리 칭찬 받았지 뭐에요?
- 그러네.
윤석도 킥킥대고 웃었다. 민혁은 분통이 터졌다. 더더욱 분통이 터지는 건 주랑에게 자신을 놀릴 의도가 별로 없어 보인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자신을 놀리려고 일부러 저러는 건지 아닌지 확인할 도리는 없다만 왠지 저게 진심 같다. 만약 진심이 아니라 순진한 척 하면서 놀리는 거라면.
' 그건 더 무서운 거고. '
만약 그렇다면 저 여자는 정말 무서운 여자다. 생각한 민혁은 퉁명스레 얼굴을 찡그렸다.
- 아오. 블랙리스트 추가해버릴까 보다!
그 협박은 윤석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다.
- 하던지. 상관 없으니까 총이나 잘 쏴.
그래도 주랑은 좀 더 너그러웠다. 그냥 침묵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건 '하든 말든 네 마음대로 해라'를 아주 완곡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민혁은 이 커플 사이에 있으면 울화통이 터진다, 라는 공식을 마음속에 성립하고야 말았다.
세 사람이 평상시와 다름없는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무렵, 1004유니온의 회의장에선 난리가 났다.
창문이 깨짐과 동시에 유니온의 조합장인 Endless와 부조합장인 루털반데라스가 동시에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그리고 누가 손 쓸 새도 없이 시체로 변해버렸다.
시체로 변한 Endless와 부길드장 Limit가 쉴새없이 욕을 내뱉었다. 욕은 언어순화 시스템에 의해 순화되어 표현되었다.
" 이런 아름다운 사랑!!! 쓰레기같은 사랑!!! 친구 상황이 있나!!! 도대체 어떤 아름다운 친구 사랑 장애우냐!!! "
" 아름다운 사랑 행복해!!! 이런 아름다운 사랑!!! "
하지만 시체가 아무리 살벌하게 욕을 내뱉어봤자 그 말은 그 누구에게도 위협이 되지 않는데다가 1km가까이 떨어져 있는 주랑과 민혁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주랑과 민혁은 화기애애한 - 민혁의 입장에선 열 받는 -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이다.
시체로 변하면 1주일간 접속이 제한된다.
유토피아는 유저의 편의를 최대한 반영하지만 너무 무절제한 죽음까지 용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1주일간의 접속제한조치는 자신의 캐릭터에 대한 애착을 더욱 높여 결과적으로 유토피아의 성장에 이바지하게 되었다고 보는 사람도 많았다.
" 이런 신발 십장생같은 경우가 어디있어!!! "
시체로 변한 Endless와 Limit는 울분을 토해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봤자 시체가 되살아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또 다시 2명이 쓰러졌다. 한 명은 미간에서, 또 한명은 심장에서 피를 뿜었다.
또 다시 시체들이 울분을 토해냈다.
" 아름다운!!! 어떤 사랑이야!!! 알라뷰!!! 반드시 알라뷰다!!! "
그제서야 상황파악이 된 1004의 간부진들은 서둘러 대피하기 시작했다. 까딱 잘못해서 죽으면 7일간 접속이 제한된다. 그들은 상인이고 상인에게 신용은 곧 생명이다. 생각해보니 이건 꽤 심각한 문제였다.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한 번 잃은 신용은 되찾기 힘들다. 7일간 접속을 못하면 그 동안 파토나는 거래가 한 두개가 아니다. 그들은 울부짖는 시체를 뒤로 한 채 간부들이 도망쳐버렸다.
주랑이 말했다.
" 네 명이나 알라뷰... 아차. "
괜스레 윤석의 눈치를 한 번 살폈다. 사실 윤석은 주랑이 약간의 비속어를 사용해도 전혀 신경쓰지 않았지만 주랑의 입장에선 그게 아닌 듯 했다. 괜스레 민망한지 손으로 입을 가리고서 배시시 웃고 말했다.
" 돌아가시고 나서야 막 도망치네요? "
주랑이 왜 저러는지 이해하고 있는 윤석은 어깨를 으쓱하고선 주랑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 얼씨구? 쇼를 해라 진짜. '
민혁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서 저격총을 갈무리했다. 아예 저런 애정행각은 신경도 쓰지 않기로 했다. 그저 할 말만 하기로 했다. 괜히 신경써봐야 정신건강에 해로우니까. 민혁이 입을 열었다.
" 그만큼 빠졌다는 증거야. 솔직히 현캐들끼리 P.K를 하겠냐 뭘 하겠냐? "
" 확실히 현캐들은 긴장감이랄까... 그런 게 없는 거같아요. "
" 평소에 죽질 않으니까. 안전지대 밖을 벗어나는 일도 없으니까 무캐나 판캐한테 죽을 일도 없고. 얼스엔 전투클래스도 없으니까 아예 죽는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겠지. "
현캐를 하는 유저는 대부분이 픽업아티스트와 상인이다. 그들은 안전지대 밖으로 벗어날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무캐나 판캐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다.
또 얼스에는 전투클래스가 총잡이밖에 없는데, 그 수는 거의 0퍼센트나 다름없을 만큼 미비하다. 그러니까 마을 안에서도 PK를 할 수 있는 현캐로부터도 거의 위협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민혁이 쿡쿡 웃다가, 결국 으하하하! 크게 웃어버렸다.
" 주랑아. "
" 네? "
" 아무래도 이건 대박인 것 같다. "
" 뭐가요? "
" 현캐를 판캐나 무캐에 비교하면 쓰레기가 맞아. 근데 얼스안에선 최강이잖아. 아. 물론 NPC 빼고. "
민혁이 계속해서 으하하하! 으하하하! 으하하하! 뭐가 그리 좋은지 박장대소했다.
주랑이 심각한 얼굴로 윤석에게 귓말을 보냈다.
- 오빠. 어떡해요! 민혁오빠가 드디어 미쳤나봐요!
그리고 소심하게 중얼거렸다.
" 조만간 그럴 거라 생각하긴 했었지만... "
* * *
1004유니온의 조합장이 갑자기 거래를 파토낸 까닭에 화가 나있던 장군 NPC 맥칸더는 책상을 쾅 내리쳤다.
" 도대체 뭐야? 앙? 갑자기 왜 연락이 안 돼! "
" 죄송합니다! "
2성장군인 맥칸더는 군수품과 보급을 총괄한다. 원래는 준장이었는데 이번에 1004유니온과의 계약을 따내면서 기존 업체보다 군수품을 30퍼센트 가까이 저렴하게 공급받는 공로를 인정받아 1계급 특진했다.
그의 인생(?)에 재앙이 닥쳐왔다. 이번엔 병사들이 쓰게 될 탄과 무기에 대한 협상을 벌여 공급받아야하는데, 갑자기 조합장이 잠수를 탔다. 상인이 약속을 했는데 지킬 생각이 없는 듯 했다. 1004 유니온에서는, 조합장에 준하는 다른 사람이 오겠단다. 약속을 중시하는 성격의 -그렇게 프로그래밍 된- 맥칸더는 화가 단단히 났다.
맥칸더를 보좌하는 란슈르 중령이 차선책을 내놓았다.
" 중장님. 이번에 새로이 거래를 트러온 유니온이 있는데... 획기적인... "
" 획기적? 여태까지 모든 업체들이 획기적이라고 말해왔어! 도대체 가격 말고 어떤게 획기적일 수 있는거지! "
" 그래도 지금 같은 경우엔 만나보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
" 시끄러워! 시끄럽고 이번 일 잘못 되면 1004 유니온과는 끝이라고 전해! 부조합장이고 뭐고 필요없어! 무조건 그 놈 오라고 그래! "
맥칸더는 상황을 단순하게 생각하고 화를 내는데 열중했다. '약속을 중시하도록 프로그래밍 된 NPC'여서 그렇다. 그리고 란슈르 역시 군인이다. 군인은 까라면 까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고 란슈르는 즉시 차렷자세를 취했다.
" 알겠습니다! "
경례를 하고서 뒤돌아 나오다가 멈칫 하고선 혹시나싶어 물었다.
" 중장님. 그렇다면 그... 다른 유니온을 혹시 제가 먼저 만나봐도 되겠습니까? "
이토록 윗선에 직접 컨택을 해왔다는 것 자체로 이미 그 유니온의 저력은 인정해줄만하다는 뜻이다. 화가 단단히 난 상태인 맥칸더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 마음대로 해! 용변 보는 것 까지 허락 맡을 참인가! "
란슈르는 밑져봤자 본전이라며 중얼거리면서 걸음을 옮겼다.
* * *
밑져봤자 본전. 그리고 잘 되면 대박.
그리고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초대박.
지금의 거래가 그랬다.
" 아니... 이건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물건이죠? "
'훌륭한섹시팬티'는 피식 웃었다. 물론 그도 어떻게 생겨먹은 물건인지는 모른다. 겉으로만 여유를 부렸다. 아무래도 NPC를 상대할 때엔 사람을 상대할때보다 여유롭기 마련이다.
" 그렇게 생겨먹은 물건입니다. "
" 아. 이렇게 생겨먹은 물건이군요. "
'배틀필드 스킬포토'와 '노멀탄 생성스킬포토 패키지'(탄생성 스킬포토는 패키지로 1000장씩 묶어서 판매할 예정인데, 자세한 내용은 추후에 설명하기로 한다.)를 건넸다.
" 일단 사용해보시죠. "
" 그러지요. "
그리고.
" 아... 그... 그것이... "
다수정예회의 조합장 '훌륭한섹시팬티'는 침을 꿀꺽 삼켰다.
' 미, 미친 NPC인가보다. '
아무래도 이 NPC는 미쳤거나 아니면 또라이거나 그도 아니면 제정신이 아니거나. 어찌됐든 훌륭한섹시팬티는 으아악! 비명을 질렀다.
투다다다다닷───!!!
총성이 끝없이 들려오고 천장에 구멍이 천개가 뚫렸다. 건네준 스킬포토가 천장이었으니 분명히 구멍도 천개가 났을 거다. 그러나 느낌상 천장에 뚫린 구멍은 수만개가 훨씬 넘는 것만 같았다. 매캐한 화약내가 방 안을 가득채워버렸다. 탄피가 어지럽게 튀어 들깨를 한 바가지나 쏟은 것처럼 바닥에 흐트러져 있었다.
1004길드의 조합장과 핵심간부 세 명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죽음을 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라 더 놀랐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도 놀라는 법이다. 깜짝놀라 으악! 비명을 질렀으나 다행히 시체로 변하지는 않았다. H/P는 멀쩡했다. 벌집이 된 건 천장 뿐이었다.
그랬는데 또다시 으아악! 비명을 질렀다. 너무 놀라 저도 모르게 비명이 나와버렸다.
미친 NPC인 것이 틀림없는 란슈르 중령이 자신의 손을 덥썩 잡았기 때문이다. 란슈르가 말했다.
" 계약합시다 얼른. "
============================ 작품 후기 ============================
" 그만큼 빠졌다는 증거야. 솔직히 현캐들끼리 P.K를 하겠냐 뭘 하겠냐? "
병사간 계급차이가 거의 없어진 한국의 군대.
뉴스를 한 번씩 훑어보면 '당나라 군대'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많이 보이더군요.
그때마다 좀 씁쓸하긴 합니다.
p.s: 스킬포토 사용법은 다음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