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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플레이어-36화 (36/244)

00036  사업도 슬슬 시작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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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해보니 확실히 다르긴 달랐다. 비밀거래품목이라고 말을 하자마자, '훌륭한섹시팬티'는 거래품목에 관한 질문은 일절 하지 않았다. 그 딸이라는 '맛팬(맛있는 섹시팬티를 줄여서 맛팬이라 표기하기로 한다.)' 과는 사뭇 달랐다.

다만, 그 거래가 정말로 '군수품'과 관련된 거래인지만 확인하자고 했다. 비밀거래계약서를 통해 팔려고 하는 것의 물품의 종류만 확인했다. 훌팬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했다.

' 스킬포토...? '

품명이 스킬포토다. 그런데 이 것을 군수품으로 취급해달라고 했다.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모르겠다만.

' 스킬포토로... 군수품을 납품한다...? '

스킬 포토가 군수품으로 사용될 수 있는건가. 애초에, 스킬포토란 스킬을 스크롤의 형식으로 임시 저장해놓은 아이템이 아니던가.

' 그렇다면 군수품을 만들어내는 스킬이 있다는 뜻인가? '

아직까지 그러한 클래스는 밝혀진 적이 없다.

그러나 중요한 건.

' 유토피아의 세 세력은 전쟁중이다. 그렇다면... 군수품을 만들어내는 클래스 역시 생길수도 있어. 불가능한 게 아냐. '

히든클래스란 유토피아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만들어낸 특별한 클래스다. 앞서 설명했다시피 그 것은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히든클래스도 복불복이다. 똥을 금으로 만드는 클래스가 생길수도 있고, 반대로 금을 똥으로 만들어버리는 클래스가 생길수도 있다는 뜻이다.

어쨌든 유토피아는 현재 전쟁중이며, 그래서 군수품을 스킬의 형태로 찍어내는 클래스가 생길수 있다고 가정하고 보면.

' 그래서... 비밀거래를 원하는 거다. '

히든클래스는 자신의 클래스를 밝히길 좋아하지 않는다. 히든클래스라고해서 무작정 좋은 건 아니다. 메리트가 있으면 페널티도 있다. 그게 유토피아의 법칙이다. 예를들어 판타리아의 삼손같은 경우 그 어떤 상태에서도 갱생할 수 있는 특수스킬과 타캐릭과는 비교가 안 되는 힘을 가지고는 있으나 머리카락이 치명적인 약점이란게 밝혀지면서 P.K는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상황이다.

'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게 설명돼. 히든클래스. '

그리고 이 남자는 딸 친구의 오빠라고 했다. 그 것 자체로 남자를 믿을 수 있다는 건 아니지만 아예 신원을 모르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무엇보다 '훌륭한섹시팬티'는 게임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의 사업경험도 많다. (반 이상은 말아먹었지만.) 그 말은 추진력과 결단력도 어느정도는 갖추고 있다는 소리다.

" 비밀거래라... 하도록 하죠. 대신 비밀거래는 수수료를 많이 뗍니다. 알고 계시죠? "

" 알고 있습니다. "

그걸로 이야기는 끝이었다. '맛있는섹시팬티'와는 조금 달랐다. 거래품목에 대해서 코치코치 캐묻지도 않았고 개인적인 호기심을 표출하지도 않았다. 다만 이 상품이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지 되지 않는지에만 관심을 두었다.

' 확실히... 민서랑은 달라. '

윤석은 내심 이 남자와 거래하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알아보니 꽤 커다란 조합인 다수정예회의 조합장이란다. 힘도, 능력도, 게임 내의 인맥도 '맛있는섹시팬티'인 민서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았다. 윤석이 말했다.

" 가능하시다면... 군 고위 NPC와 직접 얘기를 하시는 게 좋을 듯 한데요. "

" 물론 가능합니다...마는 1004에서 두고보려하지는 않겠죠. "

" 1004요? "

" 예. 아시다시피 1004는 군에 납품을 하면서 덩치를 불린 거대 유니온입니다. "

윤석이 씨익 웃었다.

" 그리고 1004는 상인의 조합이죠. "

" 아...예... 뭐... "

" 그러니까 1004의 방해만 없으면 군 고위 NPC와 거래를 트는게 가능하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

확실한 게 좋다. 확실하게 말을 받아놓으려고 했는데 '훌륭한섹시팬티'는 그렇게 호락호락 넘어가주지는 않았다.

" 가능하다기보다는... 그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

" 확실하다면 좋겠지만 뭐. 좋습니다. 1004 유니온... 은 저희쪽에서 해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그 쪽 조합장이나 간부들의 신상을 좀 알 수 있을까요? "

며칠 전 깨달은 게 있다. 얼스의 전투클래스는 타 대륙의 전투클래스와 비교하면 쓰레인 것이 틀림없지만 그 비교대상을 '현캐'에만 국한하고 보자면 가히 최강의 클래스였다. 애초에 얼스에는 전투클래스가 총잡이 하나 밖에 없으니까. ( 혹여 또다른 전투 히든 클래스가 있을 수도 있지만 일단 알려진 바로는 총잡이가 유일했다.)

윤석이 씨익 웃었다.

자고로 토끼만 있는 산에선 여우가 왕인 법이다.

* * *

" 네? 카오가 되라구요? "

주랑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에 반해 민혁은 조금 더 현실적인 반응을 보였다.

" 이득은 5 대 5다. "

그리고 윤석은 콧방귀를 꼈다.

" 야. 이건 내 의뢰문제인데, 여기서 이득얘기가 나오면 안 되지. 내가 청구하는 형식으로 의뢰비만 받아 챙겨. 그건 그거. 이건 이거. 오케이? "

" 야 그래도 이건 그냥 의뢰가 아니라 살인 의뢰라고. "

" 그거랑 이거랑은 별개지. 스킬포토에 관한 이득건이랑 이거랑은  다른 문제라니까? "

" 아, 그럼 안해. 내가 코흘리개 푼돈 받자고 살인을 하겠냐? "

윤석이 콧방귀를 낀 것에 질새라 민혁도 콧방귀를 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윤석도 지기 싫다는 듯 헹! 콧방귀를 꼈고 또 그 모습을 보면서 다시 민혁도 콧방귀를 꼈는데.

" 이런 씨봉... "

얼른 냅킨을 뽑아 코를 닦았다. 주랑 앞인데 콧물이 튀어나와버렸다. 매우 민망해진 민혁은 냅킨으로 코를 문지르면서,

" 야. 근데 네 생각이 괜찮긴 하거든? "

하고 윤석을 약간 칭찬하는 방향으로 화제를 돌렸다.

" 아씨...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더라... "

주랑이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선 조심스레 말했다.

" 제 친구 중에... 요즘 조금 외로워... "

민혁이 주랑의 손을 덥썩 잡았다.

" 잘 부탁드립니다 형수님. "

" 야야. 너 그 냄새나고 더러운 콧물 묻은 손으로 어딜 잡아? "

윤석이 민혁의 손등을 탁! 쳐냈다. 제법 그 강도가 셌는지 민혁은 손등을 문지르면서 투덜댔다.

" 아오... 손 잠깐 잡았다고 닳는 것도 아닌데 예민하게 굴기는. 넌 나중에 분명 잡혀 살거다. "

그러자 윤석과 주랑이 동시에 말했다.

" 까짓거 잡혀 살지 뭐. "

" 제가 잡혀 살건데... "

아아 그러냐. 그러시겠지. 서로 잡혀 산다고? 그래라. 실컷 잡혀 살아라 이 것들아. 민혁은 속으로 욕 아닌 욕을 내뱉었지만 겉으로는 생글생글 웃었다. 주랑의 친구란다. 매우 흡족한 거래조건이었다.

민혁이 말했다.

" 뭐... 친구 좋다는 게 뭐냐. 까짓거 도와주지 뭐. 살인 한번 해준다. "

윤석이 정곡을 찔렀다.

" 그래봤자 게임 속 PK인데 그깟 걸로 분위기 잡지 마라. "

* * *

민혁과 헤어지고나서 윤석과 주랑은  자리를 옮겼다.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아 추워... 하고 몸을 부르르 떤 주랑은 윤석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윤석은 왼 팔을 들어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감싸안고 품 안으로 끌어당겨, 반 쯤 안은 상태로 걸음을 옮겼다.

길 양 옆으로 높고 곧게 솟아있는 플라타너스가 늦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겨내고, 거의 앙상해진 나뭇가지들이 곧 다가오는 겨울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운동화의 밑창을 통해 느껴지는 땅의 감각은 푸석푸석 밟혀 부서져나가는 낙엽의 느낌과 어우러져 사뭇 서글프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서글픔마저도 즐겁고 따뜻하게 느껴질만큼, 품 안에 쏙 안겨든 주랑은 사랑스러웠고 그 품 안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주랑이 짓는 그 미소는 더욱더 사랑스러웠다.

제법 많은 커플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서 늦가을의 정취를 즐기고 있었으나, 윤석은 왠지 이 곳에 주랑과 단 둘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그런 기분이 든 게 아니라 주랑과 단 둘만 있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 선배님... 아니. 아이 참. 제 입 정말 못났네요. "

선배라는 말이 입에 익어버려서 이따금씩 오빠가 아닌 선배로 부르게 된다고 잠깐 자책한 그녀는 이내 배시시 웃고 나서 다시 말했다.

" 민혁 오빠는... 오빠가 말한 그대로네요? 반응이 오빠가 예측한거랑 완전 똑같아서 재미있었어요. "

" 10년 넘게. 20년가까이 친구니까. "

" 청바지랑 친구는 오래되면 될 수록 좋은거래요. "

" 청바지가 아니라 술 아닐까? "

" 흠... 그런가... "

주랑은 고개를 갸웃하고선 또 배시시 웃었다. 청바지면 어떻고 술이면 어떠랴싶다.

민혁과 만나기전에, 윤석은 확신했었다. 민혁은 무조건 도와줄 거라고. 처음엔 싫다고 뻗대겠지만 여자 소개 시켜준다면 무조건 오케이 할 거라고 예상했었다.

" 그런데... 사실 여자를 밝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주랑의 친구 얘기가 나옴과 동시에 민혁은 살인을 - 게임상의 살인이지만 살인은 살인이다.- 하겠다고 말했으니까.

" 엉. 그냥 적당한 핑계거리가 주어지면 어쨌든 도울 놈이니까. "

" 여자얘기는 그냥 핑계라는 뜻 인가요? "

" 그 놈 구슬리는덴 그게 짱이야. 그러면서 정작 여자소개는 받을 생각을 안 해. 그냥 공짜로 해주긴 싫으니까 적당한 핑계거리를 만든다고나 할까. 하여튼 재미있는 놈이야. "

주랑은 발걸음을 옮기며 곰곰히 생각하다가는,

" 사실 민혁씨도 그거 다 알고 있는 거 아닐까요? "

하고 말했다. 윤석이 민혁을 아는 것 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민혁도 윤석을 알고 있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 뭐... 그렇겠지. "

" 서로 알면서 조종당하는... 아! 서로 잡혀사는 사이인가봐요. "

" 잡혀살긴 무슨. "

윤석은 부정했지만 별로 기분 나쁜 모습은 아니었다. 킥, 웃었다.

" 그래도 그 놈 같은 친구가 내 인생에 하나쯤은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 때도 있긴 있어. "

" 가끔은 질투날 정도인 걸요. "

윤석이 풉, 웃었다.

" 우리 모습을 보면서 그 놈은 어떤 기분이겠냐? "

주랑도 웃었다.

" 하긴... 가끔 미안하긴 해요. "

" 우리 앞으로도... "

" 앞으로도 오빠한테 꽉 잡혀 살래요. "

윤석은 걸음을 옮기면서, 주랑을 감싸안은 왼 팔에 힘을 더 꽉 주었다. 주랑이 윤석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걸음을 조금 옮기고서 윤석은 어깨를 두어바퀴 돌렸다.

" 자... 일단 1차 계획부터 실행해 보실까? "

부자되는 첫 걸음을 떼기로 했다.

============================ 작품 후기 ============================

글을 쓰면서 왠지... 민혁이 짝 좀 빨리 찾아줘야겠다는 생각이...

아참. 프롤로그에서 깜빡하고 언급안했는데, 윤석이 했던 '딸 드립'은 그냥 술김에 아무렇게나 주절거린 겁니다.... 마는 기억 안나시겠죠 ㅡ.,ㅡ? ㅋㅋ

독자.

" 닥치고 연참이나 해라. "

작가.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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