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5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어 =========================================================================
* * *
나 참. 역시 이래서 여자애들이 성형, 성형하는 거구만.
윤석은 남몰래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현실의 박민서와 게임속 박민서는 완전히 달랐다.물론 현실의 박민서도 분명 예쁘긴 했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은 남자라면 누구나가 꿈꿀 법한 그런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자면 그렇게 많이 달라진 건 아니다. 부위별로 아주 조금씩만 바뀌었다. 이를테면 눈이 아주 조금 더 커졌다거나 이마가 조금 더 볼록 튀어나왔다거나 머릿결이 조금 좋아졌다거나 코가 아주 조금 오똑해졌다거나 광대뼈가 아주 조금 더 튀어나오게 되었다든가.
하여튼 아주 조금씩 바뀌었는데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얼굴 자체를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만 - 심지어 친동생인 수희의 경우는 알아보지도 못했다 - 너무나도 아름다운 모습에 윤석은 하마터면 넋 놓고 그녀를 바라볼 뻔 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지금 중요한건 박민서가 예쁘고 말고가 아니라 상인으로써의 자질과 능력이 충분히 있느냐에 대한 것이다.
다행히 이 곳은 현실이 아니고, 게임인 까닭에 적절한 스킬이 있고 게임 속의 적절한 인맥과 거래현황이 있으면 상인으로써의 재능을 얼마든지 발휘할 수 있었다.
'맛있는섹시팬티'란 다소 해괴망측한 닉네임의 여자. 즉, 박민서는 품 속을 뒤적거리다가 종이를 하나 꺼내들고서 말했다.
" 그... 말씀하신 비밀거레계약서거든요 이게... "
그러다가 이내.
" 오빠. 근데 그냥 뭔지 좀 알려주면 안 돼요? 혹시 막 뭐야 그 최음제라거나 마약. 뭐 이런 건 아니죠? "
" 절대로 그런 건 아냐. 그런 걸 팔려면 무기상점에 팔지 않지. "
'맛있는섹시팬티'는 " 하긴... 그건 그래요."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도 궁금하단 말이예요. 그냥 일반 거래로 해요. 비밀거래는 수수료도 비싸고 그런데 괜찮아요? "
" 괜찮아. "
상인은 말 그대로 상인이다. 물건을 떼와서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비싸게 판다. 그것이 식료품이든, 집이든, 땅이든 혹은 아이디어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적인 것이든. 하여튼 뭐라도 일단 싸게사서 비싸게 파는게 상인이다. 그리고 상인의 모든 거래는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모두 계약이란 형태(혹은 스킬)로 이루어진다.
그 상인은 일반거래와 비밀거래를 할 수 있다.
일반거래는 말 그대로 게임 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거래를 뜻한다. 예를 들어 H/P, M/P 포션이나 각종 무기, 방어구 등. 이런 것들을 사고 파는 것을 포함하여 문서 내에 물품이 공개되는 계약서 혹은 거래를 뜻한다.
비밀거래는, 물건을 상인에게 공급하는 사람이 그 물건의 내용을 비밀로 하고 싶어 할 때 이용하는 거래다. 쉽게 예를 들자면 마약, 춘약 혹은 게임 내에서 금지하고 있는 품목들, 그도 아니면 상인이 사기를 쳤을때의 페널티를 감수하고서라도 사기를 치고 싶게 만들만큼의 고가 물품 등.
계약을 하긴 하되, 상인조차도 그 물건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없다. 중개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거다. 그게 바로 비밀거래다.
" 비밀거래는 수수료 많이 떼요. 그냥 일반거래로 해요. 무기 같은 거면. "
" 아냐. 조금 특별한 무기라서그래. "
" 흠... 그래도 뭔가 수상한데... 설마하니 무슨 핵 같은 게 있을리는 없잖아요. "
" 그래서 나랑 계약 할 거야, 안 할거야? "
" 아 물론 하죠. 해서 손해볼 건 없으니까... "
현실과 게임의 차이다. 현실에선 아무렇게나 계약하고 사업을 벌리기 힘들다. 하지만 이 곳은 게임이다. 계약하는 것이 현실처럼 까다롭지 - 도장을 몇 번씩이나 찍고 법무사를 동원해서 이것 저것 작성하고 온갖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 않다.
계약을 하는 것 역시 상인 클래스의 '스킬'이고 그 스킬은 유토피아의 시스템에 의해 자동으로 처리가 되며, 유토피아 시스템은 유저들의 편의를 최대한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계약 과정은 간편하다.
" 여기에 판매할 물건 적어주시구요, 아. 잘 못 꺼냈다. 이거 일반계약서였네 잠시만요. 여기요. 여기에 적어주세요. 치사하다. 뭔지 너무 궁금한데. "
윤석이 피식 웃고 말했다.
" 넌 현실에선 장사하면 안되겠다. "
뭐라구욧! 그녀는 잠깐 발끈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하긴 울 아빠도 그러긴 했어요. 울 아빤 엄청 고수거든요. "
" 아버지? "
" 네. 울 아빠는 현실이랑 여기서랑 둘 다 장사하시... 엥? 이거 왜 다시 줘요? 엑? 뭐라구욧? 마, 말도 안 돼! 오빠! 그런 게 어딨어요! 나랑 먼저 하기로 했잖아요! "
윤석이 뒷통수를 벅벅 긁었다.
" 너희 아버님이 훨씬 고수라며? "
" 그 그거야... "
" 하여튼 아버님 닉네임이 뭔데? "
" 아, 안 알려줄 거 예요. "
" 그럼 너랑 계약 안한다? "
" 알았어요! 알려주면 되잖아요. "
계약 안한다는 말에, 그녀는 바로 꼬랑지를 내리고는 닉네임 하나를 알려줬다. 닉네임은 '훌륭한섹시팬티'였다. 도대체 이 여자애는 심리전이라는 걸 모르는건지 아니면 정말로 순수한건지, 순간 헷갈린 윤석은 피식 웃고는 물었다.
" 가족끼리 아이디 맞췄냐? "
" 어떻게 알았어요? 제 동생은 섹시한군용팬티구요, 울 엄마는 화끈한레이스팬티인데... "
윤석은 응, 알았어. 라고 말한 뒤 걸음을 옮겼다. 당연히 '맛있는섹시팬티'도 뒤따라왔다. 오른손에는 비밀계약서가 들려 있었다.
" 오빠! 아직 계약 안 했... 어라? 어디 갔어? "
'맛있는섹시팬티'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갑자기 사라졌다. 이상하네... 분명히 앞에 있었는데 ... 중얼거렸다.
" 어디 갔어! 나랑 계약해야죠! "
그녀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윤석은 여유롭게 걸어가면서 귓말을 보내는 중이었다. 건오퍼의 특수스킬인 고스트필드를 펼치고 유유히 걸었다.
- 훌륭한님.
맛있는섹시팬티의 아버지는 이미 접속 중이었다. 뒤에선 어디 갔어! 나랑 계약해야지! 이 나쁜 오빠야! 라는 말이 들려왔지만 윤석은 무시했다. 이왕에 할거면 더 고수랑하는 게 낫다.
- 누구신지?
- 아... 좀 큰 거래 건으로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요.
- 큰 거래요?
- 군 납품과 관련된 거래입니다.
답말은 돌아오는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어느덧 '맛있는섹시팬티'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었을 무렵, 답장이 돌아왔다.
- 직접 얼굴을 보고 얘기하도록 하죠.
* * *
유토피아의 얼스에서 현캐를 플레이하는 유저는 대부분이 픽업아티스트 아니면 상인이다.
그 두 클래스는 나름대로 상당히 많이 발전했다. 유저들간에 긴밀한 의사소통 시스템도 구축하고 있고 여러가지 커뮤니티에서 정보도 같이 공유한다.
그 중에서도 상인들의 조합을 '유니온'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그들은 NPC와의 거래, 혹은 유저와의 거래를 통해 이익을 쌓아 일정액을 유니온 유지비로 사용하면서 얼스 내에서 조직력과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중이다.
'유니온'은 '길드'와 거의 유사한 시스템이다. 일정수의 인원이 일정한 목표 -예를 들어 친목도모, 파티플레이 등 - 를 가지고 한가지 단체에 속해 유토피아를 플레이하는 거다. 그러나 길드와 유니온에는 한가지 커다란 차이점이 있었다. 괜히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게 아니다.
유니온은 대륙을 가리지 않는다. 상인들은 '돈'이 되면 움직이는 집단이다. 게임 내 설정상 판타리아, 중원, 얼스는 모두 동일한 화폐인 '코드'를 사용하고 있으며 판캐의 상인들, 얼스의 상인들, 중원의 상인들은 비밀리에 서로 연락하고 교류하며 이득을 챙기고 있다.
사회의 고위 NPC들도 그 사실을 알고는 있으나 굳이 유니온을 들쑤셔서 밀거래를 막고 있지는 않다. 적대국이라 할지라도 자국에 필요한 물품은 분명 있었으니까.
어쨌든 상인들은 '유니온'이라는 조합을 만들어 좀 더 수월하고 쉽게 장사(혹은 사업)를 꾸려나갔는데, 그 중에서도 유명한 유니온이 몇 개 있었다.
1004 유니온, 비상 유니온, 삼국지 유니온, 다수정예회 유니온 등.
'훌륭한섹시팬티'는 다수정예회의 조합장으로 활동중이며 상인들 중에서도 꽤나 큰 명성과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유저였다. 그는 현실에서도 사업을 몇 번 벌였던 적이 있었고 그 경험을 발판삼아 상인을 플레이해서 승승장구해나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요즘 문제가 좀 생겼다.
다수정예회같은 경우는 1004나 비상등 다른 거대 유니온에 비하면 그 세력이 미비한 편이었다. 아예 미비했으면 모를까, 이제 다른 유니온을 약간씩 위협할 정도로 성장하게되자 '다수정예회'에 견제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1004같은 경우는 얼스의 고위 NPC와 친분이 두터웠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NPC에게 바치는 한 달 상납금이 무려 100억에 이른다고한다.
얼스는 다른 2국(판타리아와 중원)과 휴전상태. 즉, 다른말로 하자면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다. 그래서 다른 NPC들보다도 군의 상급서열 NPC의 힘이 가장 컸다. 1004가 주로 취급하는 물품이 바로 군수품이다. 무기부터 시작해서 각종 군수품들. 이를테면 라면, 건빵, 군복, 전투화 등. 을 그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매우 저렴한 가격에 납품함으로써 군과 친분을 텄다.
어쨌든 1004길드는 상당히 영향력이 있는 유니온이었고 이제 막 치고 올라오는 다수정예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다수정예회의 조합장인 '훌륭한섹시팬티'는 그것 때문에 한참을 고심하던 참이었다. 뭘 하려고만하면 견제가 들어온다. 어떻게하면 좋을까 고심하던 차에 누군가로부터 연락이 왔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 군수품이라... '
1004 유니온이 바로 군수품을 중점적으로 거래하여 군과의 친분을 쌓은 거대 유니온이다.
' 획기적인 아이템이 있다면 만나봐서 손해볼 건 없겠지. '
사기고 아니고는 일단 만나서 판단해보면 된다. 게다가 이 곳은 현실도 아니다.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보다 훨씬 쉽고, 막말로 악의 무리와 만나게 되어 난투극 혹은 총싸움을 벌여도 별로 상관없다. 죽어봤자 7일이 지나면 다시 접속이 가능하다.
' 일단은... 만나보자. '
저쪽에서 획기적이라고 말했다. 더군다나 그 획기적인 아이템이 '군수품'이다. 전쟁중인 나라에 군수품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 잘 되었으면 좋겠는데... '
닉네임 '안졸리냐졸려'. 여지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닉네임이다. 네임드 유저는 아닌 모양이다.
그러던 차, 딸에게 귓말이 왔다.
- 아빠!
- 오냐.
또 돈 빌려달라고 할 게 뻔했다. 딸이 게임 내에서 먼저 연락하는 경우는 돈 달라고 할 때 밖에는 없었으니까. 사실 딸에게는 장사하는 재주는 별로 없었다. 딸에게 쏟아부은 기초자본금이 무려 1억인데 아마 딸에겐 자산이 5천만원도 남지 않았을거라 본다.
- 안졸리냐졸려한테 혹시 귓말 왔어?
- 그건 왜?
- 그 사람 내 친구 오빠거든! 나랑 거래하기로 했는데! 아빠 아디 알려주면 거래한다 그래서 알려줬는데! 토꼈어! 완전 속았어!
딸의 귓말 덕분에 한 가닥 남아있던 의심마저 걷혀버렸다. 사실 약간 의심은 했다.
왜 획기적인 아이템을 가지고서 1004유니온의 조합장에게 연락을 하지 않은건지, 그리고 어떻게 자신의 아이디를 알 수 있었는지.
훌륭한섹시팬티가 말했다.
- 민서야. 앞으로 장사는 그만두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게 어떻겠니?
넌 소질이 없어. 말해주고 싶었다. 장사란, 적당한 거짓말과 심리전이 필요한데 딸은 너무 솔직했고 궁금한 게 있으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현실보다 장사하기가 훨씬 수월한 유토피아에서, 초기자본금 1억을 불과 한 달만에 5천만원으로 깎아버린 맛있는섹시팬티가 억울한 듯 말했다.
- 왜! 나 완전 장사체질이란 말이야! 다른 사람들이 그걸 모를 뿐이지! 완전 억울해!
훌륭한섹시팬티가 진지하게 물었다.
- 진심으로... 억울하니?
답장은 한참 있다가 왔다.
- 아, 아마...도? 어, 억울한 상태일...걸?
맛있는섹시팬티도 자신의 감정에 대해 확신은 못했다.
============================ 작품 후기 ============================
어리숙한_맛있는_섹시팬티.avi
절대 야한 제목 아닙니다. 단순히 닉네임일 뿐 입니다.
언제나 늘 강조하는거지만 전 순수한 작가입니다.
바루킹 : 후니상 여서보니 반갑소. [2013.01.15 02:07]
그나저나 반년전에 연재했던 외전 '어설픈 후니'를 아직도 기억하는 분이 많으신듯... 후니의 내용이 뭐더라...극악 하ㄷ...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