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플레이어-34화 (34/244)

00034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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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과의 짧은 대화 끝에 수희는 이 오빠가 장난을 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진지하게 묻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수희는 괜스레 윤석을 한 번 흘겨보고선 그것도 모르냐는 듯 어깨를 쭉 펴고 턱을 위로 쳐들어 윤석을 아래로 내려다보며 - 턱을 좀 많이 들어올렸다 - 우쭐대고 말했다.

" 아. 그걸 말하는 거였어? 당연히 안 되지 멍충이 오빠야! 맨날 뭐만 하면 고수라고 거짓부렁치면서 완전 바보네. "

그리고선 풉, 웃었다. 동생의 잘난체하는 모습에 윤석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가 이내 실익을 계산하고서 차분한 척 물었다.

" ... 넌 뭐 알아? "

" 당근이지! 상인클래스가 괜히 있는 거 아니잖아. "

" 나도 알아. "

'나도 알아' 그 말에 수희는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그러면서 윤석이 정말로 몰라서 물어본건지 아니면 또 뭔가 꼬투리를 잡아 약을 올리려고 모른척을 한 건지 파악하기 위해 눈치를 열심히 살폈다. 그랬다가 이내 결론을 내렸다.

역시 허세였다.

' 오빠는 진짜 몰랐어! '

" 바보 멍충이 해삼 멍게 말미잘. 어떻게 그렇게 간단한 것도 몰라? NPC랑 거래틀라면 당연히 상인을 해야지. "

NPC와의 일반 거래는 일반 유저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를테면 물약을 사거나 잡템을 팔거나하는 등, 시스템상 '정해져 있는 거래'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원래 '매뉴얼'에 없는 새로운 거래를 따내는 건 '상인 클래스'의 몫이다.

사실 윤석은 젓가락으로 들고있는 떡볶이를 떨어뜨릴 뻔 했다.

' 뭐에 눈이 멀면 뭐 밖에 안 보인다더니. '

헛웃음을 쳤다.

그 간단한 걸 놓치고 있었다. 돈을 벌겠다, 커다란 사업이다, 좋은 아이템이다에 눈이 멀어 기본적인 것을 놓치고 있었다. 유토피아는 제 2의 현실이라고 불리지만 현실은 아니다. 오히려 유토피아는 현실일 수가 없다.

운영자들이 유저들이 사용하기 편하도록 맞춰놓는다. 정해놓은 틀 안에서,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편리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유토피아고 그래서 인기가 많은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유토피아는 현실이 아니어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NPC를 상대로 사업을 벌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적절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사업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적절한 자격이란 바로 '상인 클래스'를 의미한다. 전투능력도 없는데, 사람들이 괜히 상인을 선택하는 게 아니다.

' 아... 상인... 상인을 통해서 거래를 해야한다는 걸 잊고 있었어. '

그런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 바보 멍충이 해삼 멍게 말미잘. 어떻게 그렇게 간단한 것도 몰라? NPC랑 거래틀라면 당연히 상인을 해야지."

수희 덕분에 문제가 해결 됐다. 그래서 고맙다. 와이투리스의 계곡에서의 일도 고맙다. 자신의 명성이 깎이는 걸 마다않고 윤석을 도와준거니까.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 계산 네가 하고 싶어? "

바보 멍청이, 하고 실컷 윤석을 놀리던 수희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이내 배시시 웃었다. 조금 비굴해졌다. 무엇을 얻어 먹을 때에, 그러니까 돈이 필요할때에만 나타나는 아주 예쁜 미소를 얼굴에 피워올렸다.

그리고 돈 없을 때만 내는, 윤석의 말을 빌리자면 콧구녕이 막힌듯 듣기 매우 거북한 소리를 냈다.

" 아잉 오빠양. 왜 구랭~. 난 그지에용. "

그렇게 말하는 수희의 입가에는 고추장이 조금 묻어 있었다. 옆에 서서 무표정한 얼굴로 떡볶이를 집어먹던 두 남자가 이 쪽을 쳐다봤다. 남보기 창피해진 윤석은  떡볶이와 어묵값을 얼른 지불하고 나와버렸다.

" 야! 같이가! 그렇다고 동생을 버리고 가냐! "

라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 오빠! 내가 잘못 했어! 진짜 내가 나빴어! "

그 말을 듣고서야 윤석은 걷는 속도를 늦추었고 수희가 헐레벌떡 쫓아왔다.

" 네가 빌지 않았으면 진짜로 그냥 가버리려고 했어. "

" 그랬으면 나 아빠한테 죽었어. "

" 아니까 그냥 가려고 했던거지. "

현재시각 11시 20분. 수희의 통금시간은 11시고, 윤석과 떡볶이를 먹는 바람에 20분이나 늦어버렸다.

윤석과 함께 집에 들어가서 오빠랑 떡볶이 먹느라 늦었다고 말하면 괜찮지만, 윤석이 먼저 들어가버리면 답 없다.

" 아빠 내일이면 입원하는데 홧병 돋으면 어떡하려고 그래? "

수희는 볼멘소리를 내며 윤석과 템포를 맞추어 같이 걸었다.

" 아참. 오빠. 내 친구중에 상인하는 애 있는데 소개시켜줄까? "

" 잠깐만. "

전화벨이 울렸다. 열심히 전화통화를 하는 윤석의 표정을 보면서 수희는 괜스레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돌을 툭 찼다.

급작스레 기분이 나빠졌다.

" 나참. 팔불출 나셨구만 나셨어. 아주 전화기에 풍덩 빠져드시겠네. "

조금 잘난체 좀 했다고 버리고 가질 않나, 학생한테 돈으로 협박을 하질 않나. 그런 나쁜 오빠 주제에 주랑언니랑 통화할때는 저런 모습이라니! 괜스레 배알이 뒤틀렸다.

전화를 끊은 윤석이 말했다.

" 수희야. "

" 왜! "

" 나 볼 일 있어서 좀 간다. "

동시에 수희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윤석의 옷소매를 꽉 쥐었다.

" 오빠. 미안해. 잘못했어. 내가 나쁜년이야. 지송지송. 가지마. 나랑 같이 들어가자. 일단 들어간 다음에 나가든 말든 하란 말야. "

" 글쎄다. "

" 시키는 건 다 하겠습니다. 맡겨만 주세요. 세상에서 제일로 멋진 오라버님. "

윤석은 피식 웃었다. 다시 핸드폰을 들어올렸다. 수희가 가만보니 핸드폰을 끊었던 게 아니었다. 윤석이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

" 그래. 잘자. 아냐 아무것도. 잠깐 수희랑 얘기할 게 있어서. 아냐. 잘자. 그래. 응. 나도 사랑해. "

윤석보다 6살 어린 수희는 윤석에게 또 속았다.

* * *

수희는 서울시내의 한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있다. 미술 중에서도 '크로키'에 관심이 많고 크로키를 집중적으로 공부한다.

크로키란 움직이는 동물이나 사람의 형태를 빠르게 그린 그림을 뜻한다. 대강적인 특징을 순식간에 잡아내 빠르게 그려내는 거라 눈썰미도 굉장히 중요하고 포인트를 잡아내는 능력도 중요했다. 물론 그림실력도 중요했고, 그 모든 것을 갖추기 위해선 피나는 연습이 필수였다.

그녀는 오늘도 강의실에서 크로키를 연습을 하다가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 민서야. 너 상인이라고 그랬지? "

" 응. 나 상인하는 덕분에 아르바이트 안해도 될 것 같아. "

유토피아에서 현캐를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 그런데 여기엔 전제조건이 하나 깔린다. 바로 '전투클래스'를 찾기가 어렵다는거다. 비전투클래스에서 찾아보자면 현캐가 그렇게 없는 것도 아니었다.

대표적인 예로 상인과 픽업아티스트가 있다. 픽업아티스트는 그렇다치고 -사실 엄청 재미있는 클래스라고 평가된다. 유토피아엔 수십억의 미녀 NPC가 있다. 픽업아티스트를 제대로 키우면 하렘왕국 건설은 일도 아니다- 상인은 그리 재미있는 직업은 아니다. 물건을 싸게사서 비싸게 팔아야 하는 것이 바로 상인이고, NPC 혹은 유저를 상대하면서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이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인에게는 상인만의 메리트가 있었다. 바로 '돈을 번다'라는 것이다. 유토피아의 화폐인 '코드'는 현금과 거의 1:1의 비율로 거래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유토피아는 게임이고, 게임 내인지라 여러가지 사업을 시도해볼 수 있다. 돈을 벌 거리가 널리고 널렸고, 스킬 혹은 계약서를 통해 현실보다 훨씬 더 쉽게 거래가 가능했다.

즉, 재미는 별로 없지만 돈벌이가 쏠쏠한 클래스가 바로 상인인 셈이다.

" 응. 그렇다니까. 한 번 만나볼래? "

" 잘생겼어? "

" 못생긴 거 같진 않아. 그냥 그래. "

" 키는 커? "

" 키? "

외모에 관한 평가는 주관적일 수 있지만 키에 관한 평가는 주관적일 수 없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평가자체는 주관적일 수도 있다마는 객관적으로 몇cm라는 수치가 나오게 된다.

" 그냥 뭐... 평균 이상은 되는 거 같아. "

" 그래? "

" 응. 그리고 오빠가 맛있는 거 사준대. "

" 뭐? "

" 치맥. "

" 콜! "

" 알았어. 오빠한테 연락할게. "

수희는 대학교 친구인 민서를 윤석에게 소개시켜주기로 마음먹었다. 민서 역시 미술을 전공하고 있는데 아르바이트 대신 상인 클래스를 플레이함으로써 학비를 충당하고 있는 친구이기도 했다.

만남 주선은 어렵지 않았다. 치킨과 맥주면 충분했다.

* * *

수희의 오빠를 만나보고나니 그닥 남자로써의 매력을 크게 느끼지는 못했다. 그냥 친구의 오빠정도의 느낌이다. 그렇게 좋은 느낌도 아니고 그렇게 나쁜 느낌도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잘생긴 것 같기도 한데, 그닥 취향은 아니어서 이 맛있는 치킨과 맥주나 뽕빨내고 가자! 라는 마음가짐으로 닭다리를 뜯었다.

그러다가 민서는 눈을 크게 떴다.

" 진짜요? 뭔데요? "

" 일단 그 품목을 말해주기는 힘들어. 비밀계약서로 거래할거거든. 비밀계약... 가능하니? "

" 물론이죠! 전 고수니까요! 일단 오늘은 정말 잘 먹었구요! 유토피아 접속해서 귓 드릴게요. 아이디가 뭐라고 했었죠? "

" 안졸리냐졸려. "

아무리 수희의 친구라고는 해도 '건오퍼'라는 사실을 말해주기는 힘들었다. 희소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윤석의 가치가 커진다. 그러니까 건오퍼에 관한 것은 아직 아무도 모르는 게 좋다. NPC도 아니고 상대가 인간인 바에야 밑천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다행히도 그에 걸맞는 거래 방식이 있었다.

뭔지는 몰라도, 22세의 박민서는 활짝 웃었다.

" 알았어요! 와 잘됐다. 요즘 안 그래도 큰 거래 하나 따내서 포풍렙업 좀 하고 싶었는데... 그래야 저도 퀘스트 하나 클리어하고 좀... 뭐 여튼 어쨌든 하여튼간 엄청 잘 됐네요. 친구 오빠기도 하고. 여튼 어쨌든 하여튼 잘 부탁드릴게요. "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재보지도 않고 거래를 수락하려는 민서를 보며 윤석은 괜스레 조금 찝찝해졌다.

' 일단...은 접속해서 한 번 만나보자. '

민서와 바로 거래를 할 건 아니다. 그렇게 쉽게 결정하기엔 윤석의 어깨에 올려진 짐이 너무 무거웠다. 그래서 신중을 기하기로 하고 일단 게임 내에서 만나기로 했다.

============================ 작품 후기 ============================

" 계산 네가 하고 싶어? "

무한 갑질의 시작은 가족부터?

독자.

" 뒤지고 싶냐;; 이딴걸 지금 갑질이라고;; "

작가.

" 죄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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