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0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어 =========================================================================
* * *
건배!
주랑과 민혁, 그리고 윤석은 시구텐에 모였다. 오늘은 가볍게 맥주나 마시자고 모였다.
캬- 맥주를 들이킨 민혁은 맥주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약간 불만인듯, 그러나 장난스럽게 얘기했다.
" 남자 둘이서 오붓하게 먹으려고 했는데. "
" 바늘 가는데 실 가는 거예요. "
" 어련하시겠냐? "
2차전도 통과했다. 7차까지만 버티고 나면 S급 악세서리. 5차까지만 가도 B급 악세서리가 생긴다.
민혁이 다시 잔을 들어올렸다.
" 우리 사업을 위하여 건배! "
민혁과 윤석은 둘 다 회사를 그만뒀다. 유토피아를 또다른 직장으로 봤기에 그럴 수 있었다.
지금은 길드전 이벤트기간이다. 길드전에서의 보상도 물론 엄청나게 탐이나기는 하지만 윤석과 민혁은 그것보다 더 이후의 것을 바라보고 있다.
길드전 이벤트를 통해 총잡이에 대해 널리 알리는 일종의 홍보. 그게 가장 중요했다. 총잡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건오퍼는 분명 히든클래스이지만, 총잡이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한다. 그러니까 총잡이가 많아야 윤석이 건 오퍼로써의 권리를 주장하기 쉽게 된다.
" 확실히... 현캐 애들이 좀 늘긴 했다더라. "
" 엉. 숫자가 많이 늘긴 했대. 근데 아마 며칠 못 가서 접을걸. 완전 쓰레기 클래스니까. "
" 그니까 인마. 네가 빨리 방법을 찾아야지. "
민혁의 타박에 윤석이 피식 웃었다. 윤석은 민혁을 안다.
" 인마. 난 널 알아. "
" 뭐 인마. "
" 널 안다고 인마. "
" 뭘 알아 인마. "
" 널 안다고 인마. "
" 그니까 뭘 아냐고 인마. "
윤석은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마신 뒤 소매로 입가를 스윽- 닦았다.
" 네가 아무 생각없이 멀쩡히 다니던 회사 때려치고 나랑 웰컴 투더 백수클럽한 건 믿는 구석이 있어서잖냐. "
" 믿긴 뭘 믿어? 설마 널? "
민혁이 키득키득 웃었다.
" 믿을 놈 세상에 다 죽었냐? 믿을 놈이 없어서 쓰레기 중에서도 쓰레기 건오퍼 김윤석을 믿어? "
" 그러지 마라. 듣는 쓰레기 기분 나쁘다 최악의 쓰레기 스나이퍼. "
두 사람은 맥주잔을 부딪쳤다.
그 모습을 먼발치서 훔쳐보던 아르바이트생 김우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두 살 위인 김가영에게 말했다.
" 누나. 나한테도 희망이 있어. "
" 뭐가 또? 또 저 손님 애인 얘기하는거야? "
" 나는 희망찬 아르바이트생이라고. "
김가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번에 한 번 왔었고, 지금도 테이블에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여자손님을 본 김우현은 별로 정상인 상태는 아니었다.
우현이 목소리를 낮추고 김가영에게 귓속말 했다.
" 백수래 백수. "
어깨를 으쓱했다. 가슴을 쭉 폈다.
" 백수보단 아르바이트생이 낫지 않겠어? 게다가... "
" 게다가? "
" 난 영계니까! "
" 퍽이나! "
사실 얼굴 나이는 비슷했다. 동의하지 않는 듯한 김가영의 태도에 우현이 힘주어 말했다.
" 나는 희망찬 영계야. "
* * *
다음 길드전까지 1주일. 현실시간으로 1주일이면 게임시간으로는 21일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시간에.
- 쉿!
윤석이 황급히 몸을 숨겼다. 이 곳은 판타리아다. 주랑과 함께 사냥 중이었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판타리아에서 판캐와 마주치면 안 된다. 총잡이들이 없는 와중에 판캐와 마주치면 무조건 사망이다.
와이투리스는 판캐에게 정말 인기가 없는 몬스터다. 와이투리스를 힘들여 잡을 시간에 다른 몬스터 잡는게 훨씬 낫다.그렇다고는해도 와이투리스를 잡으러 오는 유저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 [email protected]$^*&$*^^#$%@!#& "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유 무역지대와 길드전 콜로세움등과 같이 특별한 장소, 혹은 해석마법같은 특이 케이스가 아니면 타 대륙 캐릭터의 말은 이상하게 들린다.
- 누굴까요?
- 모르지. 일단 숨어.
" %# !!!"
여자의 목소리다. 복장을 보아하니 마법사같았다. 전체적으로 빨간색을 띄는 로브를 걸쳤는데 깨부근이 노랗게 염색이 되어 있었다. 등에는 에메랄드빛 구슬이 박힌 지팡이가 하나 새겨져 있었다. 복장을 보아하니 꽤나 고위 마법사 같았다..
" %^&$%^&* [email protected]$ !!! "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다만 여자는 고개를 두리번 거리면서 무언가를 찾는 듯 계속해서 크게 외쳐댔다.
- 뭔가를 찾고 있는 것 같아요.
- 제발 그냥 어디로 좀 가버렸으면 좋겠는데.
" @#$ !!! "
여자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땅바닥에 무언가를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 선배님! 뭔가를 쓰고 있어요.
윤석은 저 여자가 뭘 하거나 상관없다. 그냥 빨리 가버렸으면 좋겟는데 무슨 헛짓거리를 하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 모르겠고, 빨리 가버리기나 했으면 좋겠는데.
건오퍼인 김윤석은 회사도 때려쳤다. 이제 그에게 남은 건 유토피아 뿐이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급했다. 절대로 발각되면 안 된다. 건 오퍼가 이번에 죽어서 1주일간 접속이 제한되면 호크의 길드전은 성립자체가 안 된다.
주랑은 윤석보다는 아무래도 여유가 있었다. 그녀는 건 오퍼도 아니고, 회사를 때려친 것도 아니었으며 윤석처럼 절실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래서 좀 더 여유를 갖고서 여자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봤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나이퍼인 주랑은 윤석에 비해 시력이 월등히 좋다. 주랑은 인상을 조금 찌푸리고 글자 비슷한 무언가를 읽어내려갔다.
- 오...빠.... 여기 있는 거 다... 알아. 앗. 그리고 사라졌어요.
자동복구시스템에 의해 글자가 지워졌다.
" %^@^$^#$^!!! "
여자는 신경질이 난 듯 소리를 질렀다가 이내 다시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주랑이 스나이퍼의 시력을 동원하여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 나... 수희...야. 얼른... 나오라...고.
그러자 윤석이 움찔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주랑의 표정이 매우 나빠졌다. 윤석을 흘겨봤다. 주랑이 다시 글씨를 읽었다.
- 김윤석... 죽...을...래? 빨...리 나오라고. 나... 김수희...라니...까...
거기까지 읽고서 주랑이 고개를 휙 들고서 윤석을 쳐다봤다. 윤석이 움찔하는 것도 그렇고 윤석이 이 곳에서 사냥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도 그렇고. 보통 관계가 아닌 것 같다.
- 오빠. 도대체 수희가 누구에요?
- 쉿. 그냥 가만히 있어.
정말로 수희라면 괜찮다. 수희는 현재 윤석의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고, 따라서 무턱대고 PK를 뜨거나 하지는 않을 거다. 그러나 아니라면 곤란해진다. 윤석은 매우 절실한 상황이다. 확실하지 않으면 함부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무엇보다 저 여자는 너무 예쁘다. 윤석은 수희를 22년간 - 군대를 제외하면 20년 - 봐왔기 때문에 저 여자는 수희가 아닐거라고 단정지었다.
- 오빠. 수희가 누구냐니까요?
- 내 여동생 이름. 김윤석. 김수희.
- 동생이요?
- 응. 친동생이야.
그러자 주랑은 뜨끔 놀라 괜히 미안해하며 따, 딱히 의심을 했다던가 그런 건 아니에요, 하고 귓말을 보냈다.
" %@$^@%^#$# !!! "
여자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모양새를 보아하니 무언가 영창을 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녀의 손이 빛을 뿜음과 동시에 하늘에서 무언가 커다란 운석같은 것이 떨어져내려 방금 전 스나이퍼의 저격에 얻어맞고서 저공비행하던 와이투리스를 한 방에 녹여버렸다.
윤석은 침을 꿀꺽 삼켰다. 장비를 보아하니 꽤나 고레벨의 유저라는 것은 눈치 챘지만 솔로플레이가 가능할 정도의 고레벨 법사였다. 만에 하나라도 수희가 아니라면 무조건 죽는다.
- 일단 로그오프하자.
- 여기서요?
아무데서나 로그오프하면 곤란하다. 로그인을 했을때에 몬스터에게 둘러싸여 사망해버리는 수가 있다.
- 어차피 다른 몬스터들은 없어. 여긴 와이투리스의 계곡이니까.
와이투리스의 계곡은 와이투리스만 있다. 그리고 와이투리스는 절벽과 절벽사이를 활공하는 활공몬스터이고 선공몬스터가 아니었다. 김윤석이 괜히 판타리아의 와이투리스를 사냥감으로 삼은 게 아니었다.
일단은 로그오프를 하기로 했다.
- 아니. 잠깐만...
로그오프를 하려고 했는데, 여자 법사가 먼저 로그아웃을 해버렸다.
- 휴... 갔어요. 다행이에요.
- 그러게...
- 그런데 친동생이면 괜찮은 거 아니에요?
- 아니.
윤석이 절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 내 동생이 저렇게 예쁠 리 없어. 분명히 사기꾼이야.
그런데 밖에서 연락이 왔다.
[ 띠링. 넷아웃을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전달드릴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 이 바보 오빠야! 빨리 나오지 못해? 속터져 진짜! ]
윤석이 말했다.
- 주랑아.
- 네?
- 잠깐 급한 일이 있어서 로그오프좀 할게.
주랑이 생긋 웃었다.
- 역시 동생이 맞았던 모양인가봐요?
- 아니. 뭐 확인할 게 좀 있어서.
- 네, 알았어요.
윤석은 도망치듯 로그오프해버렸다. 그토록 확신했건만 그 확신이 틀려버렸다. 게임캡슐이 열리고 윤석이 몸을 일으켰다.
수희는 목소리를 조금 낮추었다.
" 밥 먹으래. "
거실에 아버지가 있는 듯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수희가 이토록 조심스런 목소리를 낼 리가 없다.
' 일단은 세이프. '
아직까진 입원자리가 없었고, 이제 3일 뒤면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신다. 덕분에 윤석은 집 안에서 수희에게 들볶이지 않았다. 수희는 아버지가 있으면 윤석에게 함부로하지 못하니까.
일단은 밥을 먹으러 거실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