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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플레이어-20화 (20/244)

00020  사표를 내다.  =========================================================================

* * *

포탈을 관리하는 NPC인 헬렌이 언제나 그렇듯,

" 위험할 수 있습니다. 아니. 분명히 위험합니다. 판타리아로 넘어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한번 생각해주세요. "

하고 정해진 멘트를 던졌다. 판타리아. 중원. 얼스는 본래 하나의 대륙이었단다. 까마득한 옛날 세 대륙으로 나눠지게 되고 서로간의 원활한 이동과 소통을 위해 이 텔레포트 포탈을 만들었단다. 고대문명이 이룩한 이 위대한 유산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작동이 된다는 설정인데, 지금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 선배님. "

주랑이 윤석의 옆구리를 살짝 꼬집었다. 샐쭉한 표정으로 윤석을 한 번 흘겨봤다. 헬렌은 NPC다. NPC가 무조건 예뻐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유토피아 내의 NPC는 대부분 미남이고 미녀다. 헬렌은 몸에 쫙 달라붙는 가죽재질의 재킷을 입었는데 가슴이 깊게 패여 그 풍만한 가슴과 어두운 가슴골이 적나라하게 보였고 가죽 미니스커트 아래로 쭉쭉뻗은 각선미는 레이싱걸이나 모델 저리가라였다. 관능적이고 요염함을 물씬 머금은 그녀가 -비록 정해진 멘트지만-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거의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말하는 모습은 '픽업 아티스트'로의 전직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할 만큼 예쁘고 색정적이었다.

" 그렇게 헤벌레해서 보면 미워요. "

" 그런 적 없어. "

" 야동을 보는 건 상관 없는데, 적어도 제 옆에서 보지는 말아주세요. "

NPC는 어차피 NPC다. 가끔 현실과 혼동하여 유토피아 내의 NPC를 사랑하게 됐다며 NPC와 결혼하는 경우도 종종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컴퓨터 프로그램과 사랑에 빠지지는 않았다.

다만 NPC와 섹스를 하는 것에 대해 도덕적인 문제가 불거져나왔다. 이건 사람마다 견해가 달랐는데, 하나는 실제 사람과 섹스를 하는 것과 똑같다는 의견이고 또 하나는 야동을 보는 것과 다름없다는게 하나의 의견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사람마다 달랐지만 주랑은 후자였다.

" 그럼 몰래 보는 건 괜찮아? "

" 제, 제가 옆에 있잖아요. "

주랑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그 말인즉슨, 내가 옆에 있으니 야동 같은 건 안 봐도 되지 않겠느냐. 라는 뜻인데 윤석에게는 무척 반가운 말이었다. 그도 남자여서 예쁜 여자를 보면 한 번씩 눈이 가기는 가지만 눈이 가는 것과 마음이 가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 그럼 당분간 야동은 안 봐도 되겠네. "

'네가 있으니까' 당분간 야동은 안 봐도 된다. 라는 말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주랑은,

" 그, 그래도 가끔은 괜찮아요. 겨우 야동같은 걸로 바가지 긁고 싶지는 않아요. "

하고 말한 뒤 얼굴이 붉어진 채 고개를 숙이고서 종종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모습이 무척 귀여웠는지 윤석은 뒤에서 쿡쿡 웃고는 따라걸어갔다.

포탈통과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터널같이 생긴 통로를 5분정도 걸으면 된다.

포탈을 통과해서 도착한 곳은 판타리아 내에 위치한 '판스.' 얼스의 비밀 거점 쯤 되겠다. 게임의 설정상, 판타리아 내에 얼스의 비밀 거점이 몇 개 있고 판타리아인이 이 곳들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상태다. 물론 중원도 마찬가지다. 반대로 얼스 어딘가에도 판타리아와 중원의 비밀거점이 있다. 어쨌든 비밀 거점인 판스는 비밀거점답게 매우 작았다. 물약상점과 포탈게이트, 그리고 병사 몇이 있을 뿐이었다.

얼스에서 판타리아로 넘어오는 현캐는 거의 없었다. 워낙에 전투클래스가 발달하지 못한 현캐이다보니, 배짱 좋게 판타리아로 넘어갈 사람이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괜히 넘어갔다가는 개죽음당하기 쉽상이니까.

윤석이 말했다.

" 안전지대서 나가면 진짜 조심해야 돼. "

까딱 잘 못 걸리면 둘 다 개죽음이다. 현재 둘의 능력으론 저렙 판캐도 못 이긴다. 거리가 있다면 한 명정도는 상대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스나이퍼는 일격필살이니까. 그러나 두 명 이상을 맞닥뜨리면 끝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곳을 찾아온 이유는 주랑의 부탁 때문이었다.

판타리아에는 와이투리스라는 레벨 60대의 비행몬스터가 있다. 비행몬스터인 까닭에 사냥하기가 무척 까다롭고, 잡으려고 수고하는 노력에 비해 경험치나 보상이 그리 크지 않아 판캐들이 별로 선호하지 않는 몬스터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와이투리스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배와 꼬리 사이에 있는 붉은색 보석이다. 이 보석은 와이투리스의 배꼽이라 불리는 생명석이고, 그 보석이 깨지면 와이투리스는 즉사다.

그래서 굳이 이 곳으로 찾아왔다. 현재 주랑의 레벨 43. 레벨 60대의 와이투리스를 잡으면 레벨이 상당히 빨리 오를 것이라 생각된다.

" 10일 내로 레벨 50이 목표에요. "

" 그래. 스나이핑 모드 배워야지. "

주랑은 같은 스나이퍼인 민혁에 비해 명중률이 상당히 떨어진다. 민혁같은 경우는 그 명중률이 90퍼센트가 넘는다. 바로 레벨 50때에 얻게되는 스나이핑모드 덕분이다. 스나이핑모드가 되면 움직일 수 없다. 숨도 쉴 수 없다. 마나소모도 크고 쿨타임도 길다. 그러나 명중률이 95퍼센트로 설정된다. 스나이핑모드에서 발사한 총알은 무조건 급소를 향한다. 인간형, 혹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 몬스터를 사냥할 때 무척 유용한 스킬이라고 할 수 있었다.

" 솔직히 10일이면...충분히 가능하다고 보는데 그 동안 판캐만 안 마주치면 돼. "

"  그러니까요. 그게 제일 걱정이에요. "

" 그래도... 와이투리스의 절벽은 판캐들은 잘 안 가니까 괜찮을거야. "

와이투리스는 분명 커다란 약점이 있는 몬스터지만 판타리아의 궁수들은 굳이 애써서 와이투리스를 잡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판타리아는 얼스와 달리 파티시스템이 잘 적용된 곳이고 궁수는 환영받는 캐릭터였다. 직접 전투클래스보다는 전투 보조클래스에 가까운 궁수와 힐러는 전투클래스보다 그 수가 굉장히 적었다. 그러나 파티내에 포함되어 있으면 사냥이 훨씬 더 쉬워지는 클래스였고 모든 파티에서 굉장히 환영받았다.

따라서 궁수들은 와이투리스를 잡을 힘과 노력으로 파티를 이루어 다른 몬스터를 잡는 게 이득이었다.

10일 후면 2차전이 열린다. 다음은 근접전투클래스가 주를 이루고 있는 판타리아의 '헤라클레스'길드다. 헤라클레스는 무식하다고 정평이 나 있는 길드다. 무식한 힘과 근력. 뛰어난 방어력을 바탕으로 우직하게 밀고 들어가는 길드다.

무식하긴 무식한데, 총잡이들에겐 매우 힘든 상대가 될 수도 잇다. 총잡이들은 보통 레벨이 낮다. 건오퍼인 윤석은 레벨 68. 나머지 총잡이들은 보통 40~60대다. 보통 다른 길드의 길드원들이 평균레벨 70~80선을 맞춰서 나온다는 것을 생각하면 턱없이 낮은 레벨이다. 빠른 연사와 포병의 데미지, 그리고 인간에게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스나이퍼. 그리고 건오퍼의 능력을 믿고서 당당하게 길드전 신청을 했지만 역시 기본적인 레벨이 뒤떨어지다보니 데미지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어쨌든 중요한 건, 이번 공략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스나이퍼를 강하게 육성시키는 거고, 가능하다면.

' 가능하다면... 새로운 총알도 하나쯤 만들어졌으면 좋겠는데... '

일단 다음 길드전은 마비탄과 포이즈너를 위주로 사용할 생각이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 배틀필드가 풀리기 전에 헤라클레스를 몰살시킬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길드전의 벽은 생각보다 너무 높았다.

윤석이 주랑의 손을 잡았다.

" 가자. "

* * *

휘잉- 써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깎아지르는 듯한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높게 솟아 마주보고 있고, 이따금씩 돌맹이들이 절벽위로부터 떨어져 내려왔다. 절벽 사이엔 공중 비행 몬스터인 와이투리스가 이 절벽과 저 절벽 사이를 노니며 활공하고 있었다.

" 세상에... 엄청 높아요 선배님. "

주랑은 고개를 완전히 꺾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절벽사이 우거진 수풀림속에 몸을 숨긴 주랑은 나뭇잎 사이사이로 이따금씩 보였다가 사라지는 와이투리스를 쳐다봤다.

- 쉿. 귓 말로 채팅해. 운 나쁘게 판캐한테 걸리면 끝이야.

한 번 죽으면 7일동안 접속이 제한 된다. 까딱 잘못하면 다음 길드전에 참여조차 못할수도 있다. 그러니까 절대로 죽으면 안 된다. 건오퍼가 없는 총잡이는 다른 캐릭터들과 싸우면 시체나 매한가지다.

- 와아. 그런데 진짜 엄청 높네요. 저건... 맞추기 엄청 힘들겠어요. 원래 와이투리스 크기가 얼마만해요?

- 코끼리만하다던데.

실제 크기는 코끼리만큼 크다. 전체적으로 도마뱀과 같은 형상에 얇은 비늘막으로 이루어진 날개를 가지고 천천히 활공하는 비행몬스터. 그러나 지금은 커다란 독수리를 보는 느낌밖에 안 든다.

- 그냥 커다란 새 같은 느낌이네요.

- 맞출 수 있을거야.

- 해볼게요.

윤석이 배틀필드를 펼쳤다. 스나이퍼는 배틀필드에서 총알을 설정하고 나서도 그 총알이 총에 장착되는데 시간이 3분가량 걸린다. 그러니까 공격한번 하려면 최소 3분이 걸리고, 조준하는데 시간이 또 걸린다. 그 어느 클래스를 찾아봐도 딜레이가 3분이상 걸리는 클래스는 없다. 고위 마법중에 있기는 있으나, 마법사들은 그 마법 외에도 다양한 공격마법을 구사할 수 있다. 그러나 스나이퍼는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이 오로지 저격 뿐이다.

스나이퍼가 괜히 쓰레기 클래스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한 번에 설정 가능한 총알은 겨우 4발.

- 악! 너무 멀어요 선배님! 안 맞았어요!

급소를 맞추기는 커녕 날개를 맞춰서 화만 돋구었다. 누가 자신을 공격했는지 찾기라도 하겠다는 듯 움직임도 빨라졌고 절벽을 오르락내리락거렸다. 약골인 건오퍼와 스나이퍼는 몸을 숨겼다. 정면으로 맞부딪치면 무조건 사망이다.

- 좀... 서글프긴 하네요. 또 이대로 기다려야하잖아요.

- 이렇게 어마어마한 페널티가 있다는 건... 그걸 감수할 만큼 커다란 메리트가 있다는 거야. 그건 확실해.

분명 그렇게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 페널티가 너무 극악하긴하다. 그래도.

' 분명... 이 건 오퍼의 능력은 배틀필드에서 끝나지 않을거야. '

분명 배틀필드는 특수한 능력이고 총잡이들을 수십 수백배나 강하게 만들어준다. 그러나 총잡이란 클래스의 무지막지한 페널티에 비하면 너무 약소하다. 오죽하면 동시접속자 5억이 넘는 유토피아에서도 총잡이를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따는 것 만큼이나 힘들까. 추산하기로 총잡이의 숫자는 전 세계적으로도 천명도 안 된다. 전체 이용자 20억 중 천명이다. 비율로 따지면 2백만분의 1이다. 0.0000005퍼센트로 0이나 다름없다.

귓말이 또 들려왔다.

- 아이참! 도무지 맞을 생각을 안해요! 너무하네 증말!

윤석도 귓말을 던졌다.

- 다음번에도 못 맞추면 외박!

윤석은 주랑이 못 맞추길 빌었고, 주랑은 맞춰야 좋은건지 못 맞춰야 좋은건지 스스로도 헷갈리는 상황에 봉착하고야 말았다.

주랑이 와이투리스를 조준했다.

생명석이 있는 배쪽이 아니라, 얼굴쪽을 조준했다가 아예 하늘을 조준했다. 와이투리스와는 별로 상관 없는 방향이었다.

- 쏘, 쏠거에요. 반드시 맞추고 말 거에요.

============================ 작품 후기 ============================

후기: 명중여부와 외박과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설명해주실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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