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플레이어-18화 (18/244)

00018  길드전 시작!  =========================================================================

* * *

포병 둘이 동시에 외쳤다.

- 오케이 완료!!!

- 플레임 나간다!!!

그와 동시에 72mm 대구경 포탄이 날아들었다. 한 방 광역 데미지로는 거의 최고라고 불리는 뇌격계 마법사만큼이나 강한 공격이다. 일반탄도 아니고, 배틀 필드내에서 건오퍼가 제공한 탄을 사용했다.

그런데.

- 포를 어따 쏘는거야!

- 아놔. 피도 별로 없는데 따로 따로 썼어야지!

- 아...좆 됐다.

분명히 플레임은 강력했다. 동시에 쏘아진 두 개의 탄은 운석이 떨어진 것만 같은 크리에이터를 만들어냈다. 흙먼지가 자욱이 피어올랐고 사람들은 그 쓰레기라는 총잡이도 저런 데미지를 낼 수 있구나, 라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그러나 새겨진 크리에이터는 단 하나.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1.3개쯤 됐다. 포인트가 엉켜서 같은 곳을 포격했다.

- 오! 포병의 강력한 공격이 다시금 쏟아졌습니다! 이야! 포병! 딜레이가 느려서 그렇지 저만하면 굉장히 좋은 클래스인데요! 구덩이가 생기고 흙먼지가 피어오릅니다.

- 그렇군요! 살아남은 5명의 마검사중 무려 2명이 한꺼번에 다이! 이제 남은 마검사는 길드장 주죠를 포함하여 3명! 모두의 예상을 깨고 현캐 길드 호크의 승리가 거의 확실시 되었습니다!

[ 배틀필드가 해제되었습니다. ]

배틀필드가 해제됐다. 아직 피가 1/4가량 남은 마검사가 둘이나 남았다.

윤석이 순간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다 이겨놨는데 이젠 끝이란 생각이 든다.

꼭 1등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50위권 내까지는 B급악세서리를 받을 수 있다. 그 정도만 타내도 오백만원이다. 눈 앞에서 오백만원이 휭- 날아가버리는 기분이다.

- 이런? 호크! 공격을 멈추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2명의 마검사들 움직이지 않습니다! 기권하려는 것일까요?

기권하려는 게 아니라 아직 마비탄의 효과가 풀리지 않아서 그렇다.

총성이 멎었다.

- 야! 윤석아! 시간 끌어! 제발! 몇 초만!

민혁의 길드채팅이 들려왔다.

' 씨바... 그래. 한다 내가. 내가 이래봬도 한 허세했었다! '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었다. 나는 허세 지존이다. 허세 지존이다. 내가 씨팔 군대에서 멧돼지랑 일대일로 맞짱떴었다. 혹한기때 내가 알몸으로 계곡입수해서 6시간을 잠수했던 몸이다. 300미터 절벽을 보호장구도 없이, 목숨 잃을 각오하고 올라탔다 등. 술자리에서 말도 안 되는 허세를 부려댔던 것을 떠올리며 씨익 웃었다.

- 남은 총알 일단 몇 방만 갈겨! 허세라도 부리게!

탕! 탕! 탕! 아까와는 다르게 소총수들이 끊어서 총알을 발사했다. 그리고 윤석이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 사격 중지! "

허세를 부리기로 했다. 허장성세도 일종의 병법이다.

- 오! 다시금 총성이 들리는가 싶더니 소총수 한 명이 오른손을 들어올렸습니다! 총소리가 다시 멈추었네요! 호크! 승자의 여유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미 Ray는 역전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윤석이 말했다. 당연히 닉네임은 숨겼다. 창민인 척 했다.

" 안녕하세요? 오늘의 임시 길드장 니똥굵다입니다. 현캐 길드가 상대라고 거저먹었다고 완전히 무시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

그 말은 사실이다. 비단 Ray 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랬다. 모두가 현캐길드따위라고 비웃었었다.

' 씨발... 도대체 언제까지 시간을 끌라는 거야? '

쥬죠는 쥬죠 나름대로 머리를 굴렸다. 이 놈들이 왜 끝을 내지 않는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찔리기도 찔렸다. 어제까지만해도 현캐길드따위 상대가 되겠냐고 우리는 진짜 행운을 타고났다고 그렇게 말을 하고 다녔다. 그걸 어디서 주워들은 모양이다.

쥬죠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윤석은 더더욱 당황했다.

- 야! 언제까지 시간 끌라고!

- 거의 다 됐어! 조금만 기다려!

아오. 씨팔. 그 조금이 도대체 얼마만큼 조금이냐! 윤석은 속으로 절규하며 겉으로는 씨익 웃었다. 그리고서 머리를 짜냈다. 사회생활에 치여서 공부와 책을 멀리한지 너무 오래되어 말을 꺼내는데 스스로도 뭐라고 꺼내는지 잘 모르겠다.

" 사자는 토끼 한 마리를 잡을 때에도 최선을 다한다고 합니다. "

아놔. 내가 도대체 무슨 개소리를 하는거냐.

" 우리는 분명 약합니다. "

데미지는 정말 극악이다. 총알 수천발을 쏟아내도 마검사의 H/P가 깎이는 속도가 광역힐로 끌어올리는 속도보다 느렸다. 어지간한 부자아니면 총잡이는 절대로 해선 안되는 클래스였다. 포병도 마찬가지다. 분명 한 방, 한 방은 강했지만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한다. 움직임은 굼뜨고 포를 들면 회피동작도 못 한다. 장전도 오래 걸린다.

스나이퍼도 쓰레기다. 일격 필살을 노릴수는 있으나 역시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한다. 한 번 빗나가면 돌이킬 수가 없다. 대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면 조준조차 못하는데다가 인간형, 혹은 치명적인 급소가 존재하는 몬스터가 아니면 한 방에 죽이는 것도 힘들다. 이래저래 총잡이는 쓰레기다.

" 약하지만 우린... 최선을 다했습니다. 미노타우르스를 잡을 때 처럼. "

- 오케이! 완료!

민혁의 말이 들려옴과 동시에 스나이퍼 둘이 조준을 끝냈다. 스나이퍼는 배틀필드에서 총알을 설정한 뒤 배틀필드를 이탈해서 은신한 상태로 총을 쏜다. 총을 장전하고나서부터 저격총에 완전히 장착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 동안 이동을 하는거다.

- 그냥 빨리 조져! 나도 내가 무슨 말 하는 지 모르겠으니까. 씨팔 빨리!!!

- 발사!

윤석은 속으로 빌었다.

' 제발 제대로 들어가라. '

스나이퍼는 일격필살을 노린다. 인간, 혹은 인간형 몬스터, 그리고 특정급소가 있는 몬스터들에게 특히 유효하다. 그러나 무조건 그 일격필살이 먹히는 건 아니다. 이제 믿을 거라곤 스나이퍼 둘 밖에 없다. 그  외에엔 저 마검사들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 한 명! 또다시 한 마검사가 풀썩 쓰러졌습니다! 어디선가 스나이퍼의 저격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대단하군요 현캐! 여지껏의 울분을 풀어내는 것 같습니다!

이젠 마검사가 한 명 남았다. 길드장 쥬죠 뿐이다. 그리고 이젠 총알이 없다. 배틀필드를 펼치려면 아직 5분도 넘게 있어야 한다. 그리고 M/P도 없다. 길드전에선 H/P포션도 M/P포션도 사용이 불가하다.

까딱 잘못했다간 마검사 한 명에게 모조리 몰살당할 수도 있다. 총잡이란 그런 쓰레기 클래스다. 거리를 허용하면 끝장이다.

윤석은 최대한 침착을 가장한 채 말했다.

" 계속... 하시렵니까? 쥬죠 길드장님. "

" 그냥 끝내시죠. "

나도 그러고 싶다 이 쥬죠새끼야! 끝내려면 옛날에 끝냈어!

" 저흴 그렇게 대놓고 욕하시고 무시하셨으니 저희도 복수란걸 하고 싶어서요. 그냥 기권하시죠? 현캐길드의 임시길드장 니똥굵다가 선처하겠습니다. "

너 하나만 치욕적으로 살려줄테니까 그냥 기권해라. 잔뜩 비웃음을 담았다.

' 씨발... 내가 이런 정차장같은 미소를 짓다니. '

그럴 수 밖에 없다. 지금은 허세라도 부려야 한다.

" 저희 그렇게 공개적으로 무시하셨을 때 솔직히 얼마나 화났는지 아세요? 똑같은 게임 똑같은 시간에 같이 웃으면서 즐기자고 하는 유토피아인데 내가 잘났고 너는 못났다 무시하고 손가락질하시면..."

* * *

TV로 생중계를 지켜보던 정은미는 귤을 하나 까먹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 흠... 저 사람들 도대체 뭐라고 그러는 걸까? "

정은미가 깐 귤을, 정은현이 빼앗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서 말했다.

" 죽으면 경험치 깎이니까 그냥 기권이라도 해라, 뭐 그런 거겠지. "

" 내 귤! 왜 뺏어먹어! "

" 먹고 싶으니까. "

" 먹을라면 네가 까먹어! "

" 싫은데. 하녀두고 내가 왜 직접 귤을 까먹냐? "

정차장은 솔직히 많이 놀랐다. 그는 마검사캐릭터와 PVP를 해본 적이 있다. 그 때 어찌어찌 이기기는 했으나 마검사는 상당히 까다로운 클래스였다. 각종 보조마법과 버프를 통해 모자라는 공격력을 테크닉으로 채워넣는 그런 클래스였는데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 현캐가... 제법인데? '

결국 마지막 남은 한 명의 마검사는 기권을 선언했고 '현캐의 반란'은 성공했다.

' 하지만 1차전이라 그렇고... 다음부턴 사람들이 거리를 허용하지 않을거야. '

현캐의 반란은 1차로 끝날 거다. 다음부턴 유저들이 거리를 최대한 주지 않으려고 할테고 Ray와는 달리 여러모로 준비를 해서 나올게 분명하니까.

" 그래도 현캐주제에 제법이네. "

빼앗긴 귤이 못내 억울했는지, 계속해서 정은현와 실랑이를 벌이던 정은미는

" 그치? 진짜 대단한 거 같아. "

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정은현이 한마디 덧붙였다.

" 그래봤자 현캐지만. 방심만 안하면 솔직히 밥이지. "

결국 쥬죠는 기권을 선언했다. 마지막으로 쥬죠와 호크 중 한 명이 악수를 나누는 것을 보면서 정은현은 귤을 까먹었다.

이상하게도, 악수를 나누고 있는 호크의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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