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5 쓰레기 클래스도 길드전에 참여할 수 있다! =========================================================================
* * *
판타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쥬죠는 마검사다.
기본적으로는 검사에 가까운 근접전투타입인데 근접전투에 몇 가지 버프와 간단한 전투용 마법을 더함으로써 전투의 효율을 높인 클래스다. 컨트롤이 무척 까다롭고 임기응변 능력이 뛰어나야만하는 클래스이기도 해서, 컨트롤 능력이 떨어지는 유저라면 기피하는 클래스다. 마법과 검술을 적절하게 잘 사용하면 꽤나 괜찮은 캐릭터지만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검술도 어정쩡하고 마법도 어정쩡한 말 그대로 어중이 떠중이가 될 가능성도 매우 높기 때문이다.
쥬죠는 전투능력이 꽤 훌륭한 편이었고, 그는 마검사 길드를 하나 세워서 길드전에 신청을 낸 상태였다. 대형 길드는 아니었지만 그 자신이 생각했을 때는 꽤 실력파 길드였다.
더더군다나 이번에 1차로 상대하게 될 길드는.
" 우린 거저먹기로 밟고 가네요. "
현캐 길드다. 사람들은 현캐를 하지 않는다. 기피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캐릭선정시 고민자체를 안한다. 상인과 픽업아티스트를 제외하면 아무도 현캐를 하려하지 않는다. 전투캐릭터로써의 현캐는 장점을 찾기는 매우 힘들고 단점을 찾기는 매우 쉬운 캐릭터였으니까.
" 다행이지 뭐냐. "
크하하하핫! 웃었다. 운 좋게도 현캐길드다. 중원도 그렇겠지만 판타리아만해도 실력자들이 널리고 널렸다. 길드전에 참여는 하지만 우승에대한 기대는 별로 안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1차전 상대가 현캐길드 호크란다. 이건 거저먹기다.
" 아아! 그 미노타우르스랑 죽자고 싸우던 놈들? "
다들 킥킥킥 웃었다. 그들의 표정엔 비웃음이 가득했다. 그건 비단 당사자들만 그런 건 아니었다.
길드전이 벌어지는 콜로세움은 하나가 아니다. 한 서버에 70개의 콜로세움이 세워졌고 하루 천번의 길드전이 펼쳐진다. 그 말은 즉, 한 서버에서 하루에 2천개의 길드가 예선전을 펼친다는 소리다.
한 서버에서 하루 2천개의 길드가 길드전을 펼치는데, 그 중에서도 주목을 받는 길드가 있기 마련이다. 중원의 9대문파와 5대세가. 그리고 몇몇 유명한 대전길드와 판타리아의 12마탑 길드를 비롯하여 몇몇 대형길드가 그 예다. 그런데 그 길드들과는 다른 의미로 유명해진 길드도 있었다.
바로 현캐 총잡이의 모임인 '호크'였다. 인터넷에서도 호크를 비웃기 바빴다.
- 아 걔네? 미노타우르스도 제대로 못잡는 찌질이들.
- 그래도 길드전신청을 했다는 것 자체로 이미 칭찬받을 일.
- 용기가 가상하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가상한 고인들아.
그건 비단 온라인상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었다.
" 자네들도 유토피아 한다고 그랬지? "
윤석은 일단 못들은 척 하고 주랑이 대답해줬다.
" 네. 열심히 하고 있어요. "
" 오늘 저녁에 웃기지도 않은 길드전이 하나 벌어진다던데 혹시 알아? "
" 웃기지도 않은 길드전이오? "
주랑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하다가 오른주먹으로 왼손바닥을 탁! 쳤다.
" 아! 그 현캐 길드 말씀하시는 거에요? "
" 그래그래. 그 용기가 가상한 애들. 어떻게 현캐로 길드전을 신청했지? "
" 그러게요. 되게 웃긴 사람들인가봐요. "
" 그래도 그 도전정신은 높이 사줄만 해. 내가 다른 건 놓쳐도 그 경기만큼은 꼭 챙겨보려고. "
" 기대 돼요. 그 현캐 길드가 이겼으면 좋겠어요! "
정차장이 검지손가락을 까딱까딱 흔들었다.
" 차라리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뜨라고 기도하지 그래? "
" 그래도 가엾잖아요... 기적이 일어나서 그 사람들이 이겼으면 좋겠어요. 저도 현캐 하는데... 뭐랄까 멋있다고 해야하나..."
" 이래서 여자란... "
그는 쯔쯧 혀를 찼다. 그가 보기에 이주랑은 쓸데없는 감상에 젖어있는 것 같았다. 현캐 중 유일하게 길드전 신청을 냈다는 것 자체에 감동받은 듯 했다. 역시 여자란 어쩔 수 없는 생물이라고, 마누라에게는 절대 하지 못할 그 말을 하려는데, 이주랑이 말했다.
" 차장님! 그럼 저랑 내기해요! 전 현캐편. 차장님은 판캐편! "
" 내기? "
" 네! 진 사람은 무조건 소원들어주기로요. "
" 소원이라... 흠. "
정차장은 이주랑을 한번 흘낏 보더니 이내.
" 좋아! 그 내기 받아들이겠어. 진 사람은 그 어떤 소원이라도 들어주는 게 맞지? "
" 물론이에요. "
이주랑은 밝게 웃으면서 매우 장난스런 태도로 펜과 종이를 들고와 각서 비슷한 것을 작성했고 정차장은 하하하! 뭘 이런 것까지 하고그래, 라면서 이주랑의 장난에 응해주었다. 누가봐도 장난스럽고 쾌활한 분위기여서 정차장은 싸인까지 마쳤다.
아핫, 이것 참. 그냥 내가 이기려는 내기를 하려니까 좀 미안하기까지 한데... 정차장은 기분좋게 웃으면서 뒷통수를 긁적거렸다.
이건 절대로 질 수가 없는 내기다.
" 나 참... 그나저나 난 무슨 소원을 빌어야하지... "
그는 행복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 * *
퇴근길은 언제나 즐겁다. 회사생활에서 낙을 찾지 못할 도 퇴근시간만큼은 즐거웠다. 그런데 지금은 더더욱 즐겁다. 퇴근길에 이주랑과 함께다. 조수석에 앉아 이주랑은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미주알 고주알 털어놓는데 윤석은 그 수다를 듣는 것이 기분 좋았다. 어차피 회사안에서 거의 하루종일 같이 있다시피해서 주랑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런데 주랑의 입을 통해서 들으면 같은 사실이 전혀 다르게 해석되거나해서 무척 재미있었다. 여자의 눈으로 보는 세상과 남자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조금 다른가보다, 하고 주랑의 말을 들으면서 운전을 하다가 문득 기분이 나빠졌다.
" 주랑아. "
그래서 있잖아요, 과장님이 커피좀 갖다 달라고 그랬는데 그게 그렇게 얄미울 수... 주랑은 혼자서 수다를 떨다가 네? 하고 고개를 돌려 윤석을 쳐다봤다.
" 너 그 내기 얘기할 때 좀 별로였어. "
" 뭐가요? "
" 그 때 정차장 눈빛이 아주 마음에 안들었다고. 무슨 응큼한 생각을 하는지 눈에 훤히 보이더라. "
" 응큼한 생각이오? "
둘이서 술이나 한 번 먹자 라던가하는 되먹지도 못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적어도 '애인'의 눈으로 본 정차장은 그랬다.
" 에이~. 아니에요. 선배님이 너무 그렇게 생각하셔서 그렇지 정차장님도 그런 생각은... "
" 남자는 다 똑같아. 머릿속엔 다 똑같은 것만 들었거든. "
그 말에 주랑이 배시시 웃었다.
" 선배님도 그래요? "
" 물론 난 다르지. "
" 선배님도 오빠만 믿어. 다른 사람은 다 늑대야라고 주장하는 과에요? 그런 사람이 제일 위험하다던데... "
윤석이 인상을 찡그렸다.
" 누가 그래? "
" 그냥 누가 그랬어요. "
주랑은 여전히 그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눈을 말똥말똥 뜨고서 윤석을 계속해서 쳐다봤다.
" 인상 찡그리면 주름 생겨요. "
윤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흘렀다. 주랑이 먼저 입을 열었다.
" 선배님. 오늘 바로 들어오실 거에요? "
" 엉. "
정차장 그 새끼가 허튼 생각 못하도록 오늘은 무조건 전력을 다한다. 라는게 그의 생각이다. 아무래도 오늘은 기분이 좀 별로였다. 물론 그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워낙 정차장을 안좋게 봐서 그렇게 보인 것일수도 있으나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하여튼 그가 생각하기에 남자들은 죄다 늑대요, 예쁜 여자와의 섹스를 절대로 마다하지 않을 변태들이었다. 적어도 이주랑과 같은 여자를 애인으로 두고 있는 지금은 그랬다.
어쨌든 오늘은 질 수 없다. 이미 온갖 비웃음과 놀림을 받고 있는 상태다. 겨우 현캐따위가 어디서 감히 길드전질이냐. 라는게 대부분의 평이었다.
드디어 오늘.
호크의 길드전이 시작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