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플레이어-12화 (12/244)

00012  쓰레기 클래스도 길드전에 참여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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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졸리냐졸려'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어차피 유토피아의 세계에서 닉네임이란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귓말을 보낼 때를 제외하면 닉네임을 쓸 데가 없으니까. 닉네임이 머리위에 떠서 표시되는 것도 아니어서 사람들은 진짜 닉네임보다는 가명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 야. 안졸리냐졸려. "

" 현실에서까지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아줘라. 킹왕짱무대뽀새꺄. "

" 너 술 많이 약해졌다? 예전엔 두 병을 마셔도 욕안하더니 이젠 둘이서 한 병 비웠는데도 욕이 술술 나오네? "

" 시끄럽고 짠이나 하자. "

" 어후 지겨운 새끼. 언제까지 사내놈 둘이서 짠거리고 있을거냐? 너 애인 생겼다며. 소개 안시켜주냐? "

민혁과 윤석은 중학교때부터 친구다. 그리고 둘이서 곧잘 술을 마신다. 예전에는 보통 윤석이 하소연하는 역할, 민혁이 들어주는 역할이었는데 요즘은 조금 바뀌었다. 둘 다 하소연을 안한다.

직장상사 욕하면서 하소연하는 대신 유토피아얘기를 한다. 과거라면 별로 흔치 않은 광경이다. 예전 같았으면 멀쩡한 회사를 다니고 있는 두 남자가 만나 술을 마시면서 게임얘기나 하고 있다면서 손가락질 받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요즘은 그렇지가 않다. 요즘은 어딜가나 유토피아얘기다. 유토피아는 단순히 게임을 넘어서서 하나의 문화이자 또다른 세계가 되어버렸으니까.

" 너 이미 봤잖아. "

" 내가? 언제? "

" 멍청한 새끼. 봐놓고선도 안봤다고 지랄이야? "

" 아니 이 진짜 멍청한 새꺄. 네가 보여줬어야 보지. 보여주지도 않고서 왜 나한테 욕질이냐? "

윤석이 술잔을 입에 털어넣었다. 크으- 쓰다 써. 하고 가쓰오부시가 잔뜩 들어간 오뎅탕을 한 숟갈 떠먹었다.

" 안 그래도 여기로 오기로 했어. "

" 오. 진짜냐? "

" 그래. 네 형수다. 깍듯하게 대해라. "

" 재롱떨지마라. 왜 형수냐? 제수씨지. 너 국어 모르냐? "

" 형수지 임마. 너야말로 국어 공부좀 하지? "

두 사람이 자주오는 퓨전포차. 일본음식을 모티브로한 안주거리와 사케, 그리고 소주등을 파는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술집이다. 다만 골목길에 위치하고 있어서 찾는 손님들이 그리 많지 않아 조용한 편이다.

둥그렇고 누르스름한 전등 수십개가 마치 풍선을 거꾸로 매단 것 처럼 천장에 매달려 주위를 밝히고 있었고, 기름에 무언가를 볶기라도 하는 건지 객장에서도 훤히 보이는 주방 안에선 불꽃이 사람 머리높이까지 피어오르며 기름튀는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 곳. 시구텐에서 4달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22살 청년 김우현은 오늘도 무료했다. 언제나처럼 손님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고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꼭 오는 남자 둘과 손님 몇 명만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벨이 울렸다.

" 예 손님. "

" 여기 메뉴판 하나만 갖다주세요. "

" ....... "

" 저기요? "

김우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답하지 못했다.

" 아... "

" 저기... 메뉴판 좀 주시겠어요? "

" 아? 아 예. 아 예. 죄송합니다. "

순간 넋을 잃고 말았다. 메뉴판을 가져다 주고서 주방쪽으로 돌아온 우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보다 2살 위의 정직원인 김가영은 검지손가락으로 김우현의 이마를 톡 쳤다.

" 너 왜 그래? 표정 엄청 이상해. "

" 누나. "

김우현이 돌연 진지한 표정을 짓자 가영은 고개를 갸우뚱 했다. 지난 몇달간 이렇게 진지한 우현을 본 적이 없었다. 얘가 갑자기 왜 이러나 싶다.

" 갑자기 왜 그래? "

" 누나. 나 아무래도 사랑에 빠진 것 같아. "

" 뭐? "

" I'm falling in love... 아... "

김가영이 피식 웃더니 우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 어떡하냐... 저 여자 맞지? "

" 아... "

정장차림의 손님이었다. 여자인 가영이 봐도 정말 예뻤다. 그 예쁜 손님은 단골손님 옆에 앉았고 단골손님은 그 예쁜손님의 어깨에 손을 얹은채 반쯤 포옹한 상태로 자리에 앉아있는 상태다.

" 맨날 남자끼리와서 별 볼일 없는 줄 알았는데... 저런 여자친구 사귀려면 꽤나 돈 많은가봐. "

" 누나. "

" 응? "

" 누나도 꽤 이쁜  편이니까 저 손님 한번 꼬셔보는 게 어때? 누나랑 좀 친하잖아. "

" 으이구. 가서 주문이나 받아 이 녀석아. "

" 된장... "

김우현은 살면서 저렇게 예쁜 여자는 처음 본다. 이건 단순히 예쁘다. 라기보다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단아하고 깔끔한 차림새와 어우러진, 고귀한 기품이 절로 새어나오는 천상미인. 김우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별 볼일 없다고 생각했던 남자들이었는데 새삼스레 달라보인다.

윤석이 말했다.

" 인사해. 네 형수님이다. "

민혁이 벌떡 일어서서 손을 내밀었다.

" 안녕하세요 제수씨. 처음 뵙겠습니다. 강민혁이라고 합니다. 이녀석과는 중학교때부터 악연이죠. "

" 아오 짜식이. 형수님이라니까. "

윤석이 투덜거리고, 주랑도 일어서서 민혁과 악수를 나눴다.

" 안녕하세요 도련님? "

" 예? "

민혁은 한방 얻어맞았다는 듯 입을 쩍 벌렸다가 이내 푸, 푸하하하! 웃었다.

" 가재는 게 편인겁니까? "

주랑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서 배시시 웃었다.

" 그런데 어쩌죠? 민혁씨랑 저는 초면이 아닌데... "

" 저는 주랑씨처럼 아름다운 여성분을 본 적이 없는데요. "

" 킹왕짱무대뽀... 라는 닉네임을 사용하시죠? "

민혁은 두 눈을 꿈뻑거렸다.

" 설마... "

" 그 설마 맞아요. 반가워요. 세인트.A.아리에나 에요. "

민혁은 거대한 망치로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호크의 길드원 중 한 명이다. 여자라는 것만 알고 그 외엔 몰랐다. 가상현실게임이지만 실제 얼굴이 보이는 건 아니다. 눈, 코, 입, 머리카락, 키, 몸무게등을 조금씩 수정을 할 수 있었는데 그 정도만 바뀌어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탈바꿈되곤 했으니까.

그래서 유토피아에는 미남미녀가 넘쳐났다. 세인트.A.아리에나 역시 그런 미녀들 중 한 명일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몸무게만 조정해도 대부분의 여자들이 엄청나게 예뻐지곤 했으니까. 세인트.A.아리에나. 호크 길드원들은 줄여서 아리에나라고 부르곤 했었는데 그 때마다 '킹왕짱무대뽀'는 생각했었다.

' 분명 안경 돼지 오타쿠 같은 여자일거다. '

그렇지 않고서야 어디 중세시대 귀족영애의 이름같은 저런 닉네임을 사용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황녀나 귀족영애가 등장하는 판타지로맨스 소설에나 심취해있을 그런 여자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건 충격이다. 충격을 넘어 컬쳐쇼크다.

" 야야. 네 형수님이다. 침 흘리지마라. "

그 말에 민혁이 정신을 번뜩 차렸다. 소주를 글라스에 콸콸 쏟아붓기 시작했다.

" 너 왜 그래? "

윤석의 말에 대답은 않고 민혁은 소주를 벌컥벌컥 물처럼 들이키더니.

" 네가 인생의 위너다. 역시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맞기는 맞는가보다. 안 그러냐? 불쌍한 김대리. "

윤석이 피식 웃었다.

" 너도 6년간 솔로로 지내봐라. 혹시 아냐? 인내의 고통은 길지만 열매는 달다."

민혁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진지하게 말했다.

" 닥쳐라. "

* * *

윤석과 민혁. 그리고 주랑은 작전회의에 들어갔다.

게임에 무슨 거창하게 작전회의라고까지 하느냐하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유토피아는 세 개의 세력으로 나누어져있다. 판타리아. 중원. 얼스. 현재는 NPC들이 워낙에 강해서 유저들의 힘은 미비한 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유저들의 힘이 더욱더 커질 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다.

그런 상태에서 판타리아의 거대 길드, 중원의 거대 문파들은 벌써부터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면서 상대의 진영을 어떻게 공략할까하는 작전회의를 짜고 있다. 혹자의 말에 따르자면 그 만남은 단순히 친목이 아니라, 정말로 작전을 짜는 비장함이 느껴졌다나.

어쨌든 유토피아는 현대인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고 윤석은 그 유토피아의, 최약체 전투클래스 총잡이로 이루어진 길드의 길드장이다.

민혁이 말했다.

" 일단은 네 능력을 무조건 숨겨야해. 배틀필드가 없으면... 호크라는 길드 자체가 성립이 안되니까. "

" 알아 임마. 그래서 이펙트 다 꺼놓잖아. "

" 그리고 너도 총 하나 드는 게 좋을 것 같다. 각자 위치를 수시로 바꾸면서 네 존재를 숨기는게 가장 중요해. "

총잡이는 배틀필드가 없으면 총알을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 현실의 총알과는 다르다. 현실에서 사람은 총알 한대 맞으면 죽거나 중상을 입는다. 그러나 게임은 아니다. 수십 수백발을 쏟아부어도 안죽는 경우가 생긴다. 게임시스템상 어쩔 수 없다. 일격필살을 노릴 수 있는 건 스나이퍼의 저격 뿐이다. 심지어 포병의 포탄공격에 맞아도 멀쩡한 경우도 많이 생길거다.

호크의 전략은, 속전속결. 그리고 공격 일변도다. 소총수는 데미지는 약하지만 엄청나게 빠른 연사속도를 자랑한다. 그거면 전사들이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마법사들이 캐스팅을 못한다. 거기에 포병이 광역공격과 스턴공격이 먹혀들고 거기에 스나이퍼의 저격이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건오퍼인 윤석이 있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

" 우리는 철저하게 전략싸움으로 가야 돼. 싸움도 최대한 피해야하고 일단 완벽하게 이길 수 있는 상태로 화끈하게 이겨버리는게 중요할거야. 아 그리고 스나이퍼의 존재도 이왕이면 숨기는게 좋겠지. 어차피 총알이란 건 안 보이니까. "

총알은 누가 쏴도 누가 쐈는지 모른다. 그만큼 빠르다. 무캐나 전사쯤 되는 캐릭터의 시력으로 보면 보일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위장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포병의 포야 워낙에 커서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 그니까 너는 무조건 모형총. 아니 그 기본총 있잖아. 그거라도 들고 있어야 한다는거지. 쏘는 척이라도 해야 건오퍼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지 않겠냐? "

주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민혁을 쳐다봤다.

" 민혁씨... 상당히 생각 많이 하셨나봐요. 킹왕짱 무대뽀는 아닌 것 같은데요? "

윤석이 주랑의 허리를 감아 자신쪽으로 끌어당기면서 말했다.

" 그냥 잘나가는 밀리터리 오타쿠야. 일리있는 개소리니까 알아서 가려들어. "

" 일리있는 개소리는 뭐에요? "

윤석이 피식 웃고는 주랑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었다.

" 곧 길드전이 펼쳐지니까, 일리있는 멍멍이가 많이 흥분한 모양이야. "

주랑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윤석의 손을 두 손으로 잡고선 무릎 위로 올려놓고선 깍지손을 꼈다. 물론 그 손은 테이블 아래로 내려가 있어서 민혁의 눈엔 보이지 않았다.

" 우리 꼭 잘해봐요. "

" 그래. 차세대 본드걸. "

" 아이참 선배님도... "

눈으로는 윤석을 흘겨보면서 샐쭉한 표정을 지었지만 손은 더욱 꽉 잡았다.

곧 유토피아내에서 대규모 길드전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 거대 이벤트의 보상은 어마어마했다. 1위는 무려 S등급의 악세서리를 얻게 된다. 현재까지 시중에 나온 최고 등급의 악세서리가 A+이고 S면 그 윗등급이다. 참고로 A+악세서리가 현금으로 4억 2천만원에 거래됐다. 유토피아는 이제 단순히 게임이 아니라, 또 하나의 세상이었고 유토피아에서의 플레이를 위해 몇 억원을 투자하는 재력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윤석이 말했다.

"총잡이들의 반란. 한번 보여주자고. "

" S...S 도요! "

윤석이 피식 웃었다.

" 어떤 S 말하는거야? 내가 생각하는 그거야? "

주랑의 얼굴이 붉어졌다. 옆에서 민혁은 어이없다는 듯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아니요. 그 S가 아니라 S등급의 악세서리요. 라고 말하면 그만인데 그 말도 안 한다. 그렇다고 맞다고도 안하고 있다. 그냥 얼굴을 붉히고 꼼지락 거리고 있었다.

' 아니라고 말하면 되잖아! '

신경질이 난 민혁은 주랑을 못마땅한 눈으로 힐끗 쳐다봤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 모습마저도 엄청나게 예뻤다.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간만에 패배감을 느꼈다. 술 맛이 썼다. 6년간 솔로로 지내면 저런 복이 오나 싶다. 다시 술을 입에 털어넣었다. 아까도 느낀건데 술 맛이 유난히 썼다. 왠지 모르게 오늘의 김윤석의 등 뒤에서 빛이 번쩍거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의 승자는 김윤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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