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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플레이어-6화 (6/244)

00006  히든 클래스는 과연  =========================================================================

* * *

이주랑이 말했다.

" 자꾸 놀리지 말아주세요 선배님. 전봇대가 거기 있던 게 나빠요. "

고기는 지글지글 타오르고, 삼겹살 기름이 한 방울 정도 튀었는지 앗! 따가! 라면서 손등을 비비고선 열심히 고기를 굽던 주랑은 뾰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주위는 굉장히 시끄러웠다. 거의 대부분 남자들. 삼겹살 추가요! 여기 일인분 추가요! 된장찌개요! 하고 남정네들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오고 그 시끄러운 목소리를 삼겹살 굽는 냄새와 연기가 뒤덮었다. 시끄러운 소음과 고기 냄새, 고기굽는 연기가 어지러이 범벅되어 퇴근 후 남자들이 득실득실한 삼겹살집을 풍경을 진득하게 표현해내고 있었다.

" 아니.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

" 그럼 전봇대가 거기 있던게 나빴다고 얘기해 주세요. "

" 고기 탄다. 빨리 빨리 뒤집어. "

이주랑은 집게로 황급히 고기를 뒤집으면서 너무해요, 하고 볼멘소리를 냈다. 그러면서도 또 배시시 웃었다. 도대체 안 웃을 때가 언제냐 넌, 속으로 생각하며 이주랑을 보고 있는데 이주랑이 말했다.

" 선배님. 여자친구 사귄 적 없죠? "

" 뭐? "

" 대뜸 삼겹살집이라니 너무 무성의하잖아요. "

" 술 먹자며? 술 먹으려면 삼겹살 소주지. "

" 그러니까 연애경험이 없는거죠? "

윤석은 한 번 피식 웃었다.

" 그래. "

확실히 저 말이 맞다. 6년동안 사귄 적이 없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귈 생각을 하지 않았다. 6년 전의 그 날 이후로는, 여자에 대한 관심을 끊었었고 아무리 예쁜 여자가 옆에 있어도 나무나 돌을 보듯 했었다.

주랑은 윤석의 표정을 한번 훔쳐봤다.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말했다.

" 다 익었어요. 드세요. "

이주랑은 예의 그 생글생글한 미소를 지우지 않고 말했다.

" 그래서 더 안심이에요. "

" 뭐가? "

" 선배님. 게임 많이 해보셨다 그랬죠? "

" 내가 그랬냐? "

" 과장님이랑 나는 무슨 게임 했다, 나는 무슨 게임 했었다, 막 그런 얘기 했었잖아요. 군대 얘기랑... "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윤과장하고는 나름대로 이런저런 얘기도 많이 주고 받는 편이었고 윤과장과 하는 사적 얘기의 대부분은 여자얘기, 게임 얘기, 축구 얘기, 군대 얘기였으니까.

" 그래서? "

" 제가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와서요... 아는 남자가 없어서요... 그래서요... 저 그게... "

이주랑은 여전히 생글생글 웃으면서도 민망한지 볼을 긁적거렸다.

" 고기 탄다. 빨리빨리 구워라. "

" 아아? 네! 네. "

이주랑은 또다시 황급히 고기를 뒤집기 시작했다. 이주랑의 고민을 들어보자니, 이주랑은 주위에 남자가 하나도 없어서 게임에 관한 조언을 해줄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거다. 유토피아라는 게임을 시작했는데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단다. 유토피아를 시작한 계기가 현실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을 해볼 수 있어서 라는데, 어이없게도 한번 해보고 싶은 게 바로 본드걸이었단다.

" 너 그런 거 좋아하냐? "

" 멋지잖아요. 본드걸. "

" 하기사... "

여자들은 강한 여자에게 막연한 동경심을 갖는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것 같기도 했다.

자리를 옮겼다.

사실 게임에 관한 조언을 구하는 건 주랑의 핑계였던 듯 싶었다.

지하로 내려왔다. 톤이 매우 어두운 조명이 너무 어둡지 않게, 그러나 밝지도 않게 그림자처럼 바 안을 덮었고 그림자처럼 덮은 그 조명 사이사이로, 노랗고 날카로운 촛불이 빛을 더하고 있었다.

투명한 유리로 된 테이블 속에 들은 장미모양의 촛불들이 테이블을 밝게 빛내주고 있어서, 위에서 바라보면 검은 도화지 위에 노란색 점들을 찍어놓은 듯 했다. 뉴에이지음악의 대표주자로 잘 알려진이루마의 Kiss the rain이 감미롭게 울려퍼지는 바 안에서, 이주랑은 레드와인 베네치아 로망스를 홀짝 홀짝 마시기 시작했다.

" 그거... 생각보다는 독해. 한번에 훅 가니까 천천히 먹어. "

" 달달해서 맛있어요. "

" 천천히 마시라니까? "

" 취하고 싶어서 그래요. "

" 너 뻗으면 여기 버리고 간다. "

집에 데려다 준다거나 하는 아름다움따윈 내게서 기대하지 마라, 라고 말하는 듯한 그의 태도에 주랑은 또 생긋 웃었다.

" 저 진짜 버리실거에요? "

" 뭐? "

" 안 버리실거죠? 그쵸? "

" 너 취하면 버리고 갈거야. "

이주랑은 오른손으로 와인잔을 들고 왼손으로 턱을 받친 채 공허한 눈으로 와인잔을 쳐다봤다.

" 보면 느껴져요. 선배님."

" 뭐가? "

" 분명히 어떤 큰 일을 겪으셨을거에요. "

" 취했냐 너? 왜 이래? "

" 그래서 오늘 하루만... 의지해보고 싶어서요. "

" ....... "

" 오늘은 왠지... 갑자기 너무 외로워졌어요. 그럴 때 있잖아요. 갑자기 너무 외로워지는 날. 근데 그 때 선배님이 보였어요. 예전부터 묻고 싶던 말도 있... "

한손으로 와인잔을 들고, 한손으로 턱을 받치고서 무언가에 홀린듯 말하던 이주랑은 아앗, 내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턱을 받쳤던 손으로 자신의 입을 탁탁 때렸다.

" 죄송해요 선배님. 너무 혼자 중얼거렸죠..."

" ....... "

Kiss the rain이 끝나고 아련하고 슬픈 느낌의 'A letter'가 다시 감미롭게 바 안을 거닐었다. 그 음악에 취한건지, 술기운에 취한건지 그녀는 눈을 감고서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였다. 그리고 말했다.

" 선배님. 옆에 앉아도 되나요? "

시끄러워. 토 하려면 화장실가서 해. 라고 퉁명스레 말하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뉴에이지와 어우러진 그녀의 목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슬퍼보여서 였을까. 그도 아니면 고개를 기울인 주랑의 모습이 평소의 씩씩한 모습과는 조금 달라서 였을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한번 정도는 옆에 앉혀두고 한번 정도는 안아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6년만에,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이주랑은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걸어와 윤석의 옆에 앉아서 아까 그랬던 것 처럼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였다. 그녀의 머리가 윤석의 어깨에 닿았다.

" 어깨 좀 빌려주세요. "

무슨 샴푸를 쓰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향기가 좋았다. 달콤한 꿀 향기와 상큼한 라벤더향이 버무려져 상큼하면서 달달한 향기가 윤석의 코를 찔렀고, 윤석은 그 향기가 주랑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 번 해봤다.

" 너... 무슨 일 있는 거지? "

" 아... 기분 좋다. "

" 무슨 일 있냐니까? "

" 말했잖아요... 그냥 오늘... 오늘 갑자기 너무 서글퍼졌어요. 갑자기 너무 외로워져서요. "

윤석도 와인을 들이켰다. 평소 와인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아주 가끔가다가 연례행사 격으로 한 번씩 와서 마시곤 했었다. 와인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고. 그런데 오늘따라 와인이 맛있었다. 달달한 향이 조금 첨가된 'Black Tower Rose wine'. 상큼하고 과일향이 나는 부드러운 액체가 둥그렇게 뭉쳐서 목구멍을 비비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고 뱃 속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 선배님. "

" 왜? "

" 세상에서 제일 가슴 아픈 게 뭐에요? "

" 되도 않는 걸로 고참한테 욕 먹는 거. "

" 정말 그게 세상에서 제일 가슴 아픈 거에요? "

" ....... "

주랑이 고개를 들어 윤석과 눈을 마주쳤다. 그녀와 눈을 마주친 윤석은 괜스레 마음이 착잡해졌다. 아니라고 말해줘. 주랑이 그렇게 말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제일 가슴 아픈 거? "

젠장. 이런 추상적인 질문은 쥐약인데. 윤석은 머리가 아파왔다. 그러면서도 그 질문을 피하고 싶지는 않았다. 잔잔한 뉴에이지와 어우러진 그녀의 모습은 분명 아름다웠지만 손을 대면 깨어져버릴 물방울 같이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 네. 제일 가슴 아픈 거요. "

" 나도 잘 몰라. "

" 네? "

" 근데 내가 경험한 것들 중에선... 내가 좋아했고 나를 좋아했던 누군가가 내 옆을 떠났을 때. 근데 그게 아무리 노력해도 다시 데려올 수 없는 곳이라서 가슴이 뻥 뚫려버린 거 같을 때. 그 때가 제일 아프더라. "

22살 그 때. 너무 어렸던 때라 그 때 했던 게 사랑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직도 가슴 한켠이 아려오는 것이, 그 때 했던 게 어쩌면 사랑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 왜... 떠났는데요 그 사람은? "

" 죽었거든. "

다시 한번, 라벤더향과 꿀향기를 동시에 머금은 기분 좋은 향기가 코에 가까워졌다. 어깨가 조금 무거워졌다.

" 지금도 아프세요? "

" 어. 가끔 생각나고 그래. 근데... "

어깨에 머리를 기댄 주랑의 모습이 가여워서 였는지, 아니면 잔잔하고 부드러운 음악에 취했는지, 달달한 술기운에 취해서였는지, 그도 아니면 어두컴컴하지만 로맨틱한 이 바 안의 분위기에 취해서였는지는 모르겠다.

코에는 그녀에게서 나는 달콤한 향이, 어깨에는 그녀의 작은 머리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이, 그리고 눈에는 그녀의 눈망울에 기어코 맺힌 눈물 한 방울이 보였다.

" 그게 죽을 것 같았거든. 근데 죽지는 않더라. "

윤석은 뒷통수를 긁적거렸다.

" 아오씨. 뭔지는 몰라도 힘 내라고. "

" 선배님. "

" 왜? "

" 저... 집에가면 또 혼자에요. "

" ....... "

" 혼자가 되어버렸어요. "

" 애인이랑 헤어졌냐? "

" 저... 엄마가 없대요. "

그 말에 윤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모르긴 몰라도 아무래도 모친상을 당한 것 같다. 그게 최근인지 아니면 오늘인지, 오래전인지는 모르겠다. 주랑의 말대로 갑자기 외로워 진 건지, 아니면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외로워진건지.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주랑이 울먹거리고 있다는 사실이고 혼자 있기 싫어한다는 거다. 윤석에게 남의 마음을 읽는 재주같은 건 없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절절히 느껴졌다.

" 또 혼자 있기 싫어요. "

뉴에이지 음악은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어 준다. 굴곡도 별로 없고 명상을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곡들이 대부분이다. 천천히, 다친 마음을 어루만지듯 그렇게 부드럽게 연주 된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베토벤의 비창보다도 더욱 열정적으로 월광소나타보다 뜨겁게, 음악이 귓가에 꽂혀들었다.

" 같이... 있어 주시면 안 될까요?

============================ 작품 후기 ============================

뉴에이지란 신비주의적 사상에 기반을 둔 종교적 개념으로, 기존 서양의 기계론적이고 분석적이며 과학적인 사회.문화에서 더이상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이들이 추구한 문화 운동을 뜻한다. 이런 의미에서 뉴에이지란 클래식과 팝의 경계를 초월해 심리치료, 스트레스 해소, 명상에 쓰이는 음악을 일컫는다.

뉴에이지 음악은 1960년대 토니 스코트(Tony Scott), 폴 혼(Paul Haun), 폴 윈터(Paul Winter) 같은 인물들이 동양 철학과 종교 등의 사상을 담아 음악에 의한 정서 치유를 시도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뉴에이지 음악은 '명상이나 참선을 위한 음악' 이라는 점과 '자연주의를 비롯한 동양 사상의 반영' 이라는 특징을 이어왔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뉴에이지' 음악은 종교적 의미보다는 크로스오버 성격이 더 강하며 뉴에이지 음악의 목적보다는 음악적인 요소만을 빌려오는 경우가 많다. 이에따라 뉴에이지 음악의 대중적 인기도 높아져 1986년경 미국 음악계에 일대 붐을 일으킨 바 있으며, 1987년 2월부터는 그래미상에 뉴에이지 뮤직부문이 신설되어 하나의 독립된 음악장르가 되었다.

조지 윈스턴, 데이빗 란츠, 유키 구라모토, 린하이 등의 어쿠스틱한 멜로디를 들려주는 뉴에이지 음악, 야니(Yanni)와 같은 전자음악 뉴에이지 등이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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