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5 히든 클래스는 과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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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이 상당히 빨라졌다. 이 '건 오퍼'라는 직업을 성장 시키는 과정이 흡사 공장에서 일하는 것 처럼 기계적으로 계속해서 반복해야만 한다는 것이고, 그 과정이 매우 재미가 없다는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건 오퍼'가 아예 대책 없는 클래스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배틀필드를 영영 못 펼칠 줄 알았다. 그런데 레벨 10이 넘어가자 패시브스킬이 마나의 절대치를 2만까지 올려주었다. 그 어떤 캐릭터도 마나의 절대량을 갑자기 2만씩 올려주지는 않는다.
유토피아의 중앙 시스템이 계산상 ' 꼭 필요한 경우 ' 에 그에 합당한 스킬이나 상황을 만든다는 것을 기본으로하여 생각해보면 이 건오퍼라는 것이 생각만큼 쓰레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레벨 10까지 이 쓰레기 클래스를 견딜 수 있는지 없는지 시험하는 일종의 난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하기야... 절대치라도 올려놔야 배틀필드인지 나발인지 펼치기라도하지. '
한번 펼쳐는 봤다.
펼치고 나자 아주 옛날 봤던 만화영화. 그랑죠에 나왔던 것 처럼 어떠한 마법진 같은 것이 바닥에 새겨지고 그 마법진이 푸른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이건 뭔가 있다 생각한 윤석이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눈에 힘을 주고 배틀필드를 살펴봤다.
[ 노멀탄 잔량- 9999발. 설정 Y/N ]
[ 마비탄 잔량- 5843발. 설정 Y/N ]
[ 마력탄 잔량- 1395발. 설정 Y/N ]
[ 배틀 필드의 효과로 모든 데미지가 1퍼센트 감소합니다. ]
[ 배틀 필드의 효과로 탄환의 데미지가 1퍼센트 증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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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틀 필드 지속시간 - 5초 ]
[ 배틀 필드 지속시간 - 4초 ]
[ 배틀 필드 지속시간 - 3초 ]
탄들의 잔량이 9999발로 표시됐다. 9999발이 넘으면 9999발로 표기되는 듯 했다. 그리고 아무래도 배틀 필드라는 것은 일종의 광역버프진이라고 생각됐다.
시간은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소모 MP가 초당 10이다. 일단 배틀필드를 펼치는데 MP 2만이 들어가고, 그 것을 유지하는데 초당 10씩 들어간다.
[ 배틀 필드 지속시간 - 2초 ]
[ 배틀 필드 지속시간 - 1초 ]
[ M/P가 부족합니다. 배틀 필드가 해제 되었습니다. ]
거기서 끝이었다. 역시 쓰레기였다.
" 뭐야 씨발 이게... "
별 것도 없었다. 광역 버프인 것 같기는 한데, 기본적으로 건 오퍼는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총이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총은 총잡이 전용이다. 건오퍼는 총잡이가 아니다. 그래서 쓸 수 있는 총이 초보 총잡이가 전직하기전에 쓰는 가장 기본적인 자동소총밖에 없다. 노멀탄이 9천발이고 9만발이고 9억발이라고 해도, 제대로 쓸 수가 없으니 말짱 황이다. 그리고 엠피를 뭐이리 많이 잡아 먹는지. 현재 M/P의 절대량이 22000이 넘는데도 불구하고 10초도 못 넘겼다.( 배틀필드를 펼칠 당시 풀엠이 아니었고 풀엠이었다면 대략 3분가량 펼칠 수 있다. )
하여튼 그 짧은 시간 사이에라도 총잡이를 하나 데려다가 한번 시험해보고 싶은데 총잡이를 찾기가 어디 쉽나. 일단 현캐를 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있다 하더라도 죄다 상인이나 과학자, 혹은 픽업 아티스트가 대부분이다. 산 넘어 산이고, 강 넘어 강이다.
그래도 한번 하면 한다.
총잡이는 동시 접속자 5억이 넘는 유토피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극악 난이도, 최약을 자랑하는 쓰레기 캐릭터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처럼 중원과 판타리아만 넣기 미안해서 현대를 넣고, 총잡이를 만든 것이 아니라면 분명 뭔가 있기는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뭔가에 매달려봤지만 소용 없었고, 윤석도 포기하려던 찰나 건오퍼라는 직업을 받았다.
' 여기엔 분명 뭔가 있다고! '
다시 레벨업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 * *
4년간 막내였던 대리 김윤석이 신입사원을 불렀다.
" 주랑아. "
" 네 선배님? "
" 그 말 끝에마다 선배님 선배님. 그거 좀 빼면 안되냐? "
" 네 선배님. "
" 빼라니까? "
" 죄송해요 선배님. 습관이 되어 버려서... "
자신의 머리를 살짝 때리고선 배시시 웃는 모습이 그리 밉지 않아 윤석이 킁, 코를 한번 매만지고는 앞서 걸었다.
" 같이 가요 선배님. "
식사시간이다. 다들 약속이 있는 바람에 이주랑과 단 둘이 식사를 하게 된 김윤석은 내가 선배랍시고 이 여자에게 밥을 한 번쯤 사줘야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는 중이다.
" 밥은 제가 살게요 선배님. "
" 뭐? "
" 대신 있다 술 사주세요 선배님. "
" 너 요즘 한가하냐? "
" 그게... 상담 드리고 싶은 게 조금 있어서요. "
" 일 얘기라면 관둬. 회사 밖에서까지 일 얘기 하고 싶지 않으니까. "
아이참 선배님, 저도 밖에서는 일얘기 별로 하고 싶지 않은 평범한 샐러리맨이라구요? 라고 샐쭉한 표정을 지었던 주랑은 이내 방긋 웃었다.
" 그런 건 아니구요... 에이. 있다가 밥 먹으면서 얘기 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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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점심식사는 가볍게 김치찌개나 부대찌개, 설렁탕, 백반 등으로 해결하곤 했다. 하지만 이주랑은 자기가 쏘는 거니까 자기가 먹고 싶은 곳을 가겠다며 점심메뉴로 파스타를 결정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가 알록달록했다. 벽면은 아기자기한 무늬로 가득 했으며 기본 모티브를 '숲' 혹은 '그린'으로 선택했는 지 전체적으로 초록색 느낌이 강한 인테리어를 채택한 식당이었다.
식당 안은 바글바글했다. 점심부터 파스타를 먹으려는 사람들이 뭐 이리도 많은가 싶어 주위를 한번 둘러보니 대부분 회사 점심시간을 이용해 나온 여사원들이었다.
룸처럼 각 테이블을 약간 분리시켜 놓았는데, 테이블 역시 녹색 식탁보가 깔려 있어 전체적인 인테리어와 조화를 이뤘고 그 위엔 하얀색 냅킨과 포크, 나이프가 깔끔하게 올려져 있었다. 식당 안은 잔잔한 발라드와 발랄한 여사원들의 목소리가 뒤범벅 되어 매우 시끄러웠다.
" 선배님, 뭐 드실 거에요? "
이주랑이 물을 따라 김윤석 앞에 놓아주면서 생글생글 웃었다. 처음에 신입사원이 들어 왔을 때 군기를 잡겠다고 생각하던 4년차 막내 김윤석은 그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고 심드렁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 주랑아. "
" 네? "
" 넌 맨날 그렇게 실실 웃냐? "
" 웃으면 복이 온대요. "
" 그래서. 복이 왔냐? "
" 선배님이랑 둘이 밥 먹잖아요. "
" 그게 복이냐? "
" 그럼 이게 복이죠? "
" 말이나 못하면. "
" 누가 매일매일 웃으라고 그랬거든요. 그럼 기뻐진대요. "
이주랑은 헤헤- 웃다가는 선배님, 여기 런치메뉴가 싸고 맛있거든요 이거 드실래요? 하고 메뉴 하나를 권했고 김윤석은 그러던지, 하고 메뉴 고르는데에 심혈을 기울이는 짓 따윈 하지 않겠다는 듯한 시크한 태도로 대답해주었다.
식사가 끝나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 이주랑이 물었다.
" 저녁에 술 사주실 거죠 선배님? "
" 아 오늘 바쁜데. "
" 여자친구도 없으시면서. "
" 여자친구가 있어야만 바쁘냐? "
" 그런 건 아니지만요. 선배님 바쁘시면 어쩔 수 없구요. 다음... "
" 됐다. 귀한 몸인데 시간 한 번 내주지 뭐. "
" 바쁘시면 안 그러셔도 돼요. "
사실 바쁘지는 않다. 집에 가봐야 하는 거라곤 게임밖에 없으니까. 아무도 모르는 히든 클래스를 얻었고 이를 통해 인생역전을 꿈꾸고는 있지만 아직 확실히 이렇다할 비전을 얻은 건 아니다.
싹싹하고 예의바르고 언제나 생글생글 웃어서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신입사원과의 술자리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 뭐... 가끔은 괜찮겠지. '
그러고보니 지난 6년간 여자와 술자리 한 번 가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한심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는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여자를 피해 왔었으니까.
" 어. 선배님. 웃었어요. "
" 뭐가? "
" 이상하게 선배님 잘 안 웃으시더라구요. 웃으시니까 훨씬 미남이신데요. "
앞으로도 자주자주 웃어주세요! 하고 활짝 웃으면서 말하는 주랑의 모습을 보면서 윤석은,
" 내가 네 친구냐? 맞먹는다 자꾸. "
하고 괜히 마음에도 없는 타박을 놓았고 주랑은,
" 회사 밖에서는 친구하지 뭐. 어때? 친구! "
라고 말하고는 종종걸음으로 도망가듯 앞으로 빠르게 걸어가서 죄송해요 선배님, 그냥 제가 조금 들떴나봐요. 라면서 사과했다.
" 야야. 조심해라. 앞에... 어이쿠야. "
뒷걸음으로 걷던 주랑은 뒤에 있는 전봇대를 미처 보지 못하고 쿵! 소리가 나도록 부딪쳤다. 아얏! 비명을 지르며 전봇대와의 만남을 성공리에 끝마친 주랑은 울상을 지었다.
' 회사 안이랑은 또 다르네. '
회사 안에선 부담이 느껴지는, 지나치게 업무능력이 뛰어난 주랑인데 밖에서 보니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왠지 생각보단 허당이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들어 또다시 피식 웃고 말았다.
" 바보냐? 전봇대랑 키스가 그렇게 하고 싶어? "
그 말에 콧잔등을 매만지면서 주랑은 또다시 배시시 웃었다. 하 참. 뭐 좋다고 또 저렇게 웃어대는 건지. 윤석은 괜스레 인상을 한번 찡그렸다. 회사 안에서도, 밖에서도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는 저 마인드가 부럽기까지 할 지경이다.
김윤석이 다시 피식 웃었다.
" 같이 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