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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249화 (249/250)

249.

249.

“하앗!”

난 봉을 돌려서 감겨 있던 철구를 다시 루호에게로 날렸다.

루호에게 날아간 철구는 그의 머리에 정통으로 맞았다. 그러나 둔탁한 소리는커녕, 폭신한 털가죽에 부딪쳐 툭 아래로 떨어졌다.

“젠장.”

거대한 사슴.

루호는 순식간에 자신의 몸을 바꾼 상태였다. 사슴이 뿜어낸 콧김이 강하게 불어와 내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후웁.”

나도 능력발현으로 슈트를 착용. 봉을 든 채 사슴의 위를 향해 펄쩍 뛰어올랐다.

“하아아앗!”

철봉으로 사슴의 등을 공격. 그러나 철봉 끝은 사슴 털가죽을 뚫지 못하고 휘어졌다.

“받아라!”

난 아랑곳 않고 사슴을 내려쳤다. 철봉은 계속 구부러지면서 둥근 원처럼 변했다.

“엄청 튼튼하네.”

철봉은 여기까지.

난 사슴 위에서 시한 무광탄을 준비했다. 내가 H력을 준비하는 것을 감지한 사슴은 미친 듯이 날뛰며 날 떨어뜨리려 했다.

“가만히 있어.”

난 H력을 손에 모으는 와중에 발을 한 번 크게 굴러서 사슴의 등을 두드렸다. 그러자 사슴은 H력을 구체화시켜 전신에 갑옷을 둘렀다.

“쳇.”

난 혀를 차면서 갑옷의 틈을 찾았다. 그리고 거기에 완성된 시한무광탄을 끼워 넣었다.

“좋았어.”

사슴의 등에서 탈출.

바닥에 착지한 동시에 사슴의 등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그리고 거기에 한 번 더 폭발이 이어졌다.

첫 번째 폭발엔 갑옷 사이의 틈이 더 벌어지고, 두 번째 폭발엔 갑옷이 완전히 박살 났다.

“다음은…….”

난 무광권에 무광탄을 만들며 사슴을 살폈다.

사슴은 등에서 일어난 폭발에 크게 분노하면서 날 짓밟기 위해 날뛰었다.

“어이쿠!”

난 H력을 모으는 데 집중하면서 다리를 움직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거대한 사슴의 발이 날 노리며 위에서 내려왔다.

“조금만 더…….”

난 사슴을 피해 필드 가장자리로 달려갔다.

사슴은 가만히 서서 날 쫓지 않고 있다가 내가 멈추자, 머리를 낮추며 달릴 준비를 했다.

“설마?”

돌진.

사슴의 위협적인 뿔이 날 노리며 빠르게 다가왔다.

“간다!”

난 다가오는 뿔에 정면으로 맞섰다.

손을 앞으로 내밀며 준비. 그리고 뿔이 손에 닿는 순간 무광탄과 무광권을 동시에 터뜨렸다.

펑.

폭발이 일면서 내 몸은 높이 날아가 유리 벽에 부딪쳤다가 떨어졌다.

사슴 역시 폭발에 균형을 잃고 머리가 뒤틀리며 옆으로 쓰러졌다.

“으으으윽!”

슈트로 몸이 보호되고 있어도, 여기저기 날아다닌 탓에 현기증으로 머리가 아찔했다.

“하아아앗!”

난 몸을 일으켜서 이번엔 광탄을 난사했다. 사슴이 정신을 차릴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과녁이 큰 만큼 딱히 조준을 할 필요도 없었다. 방향만 맞으면 대충 날려도 착착 명중했다.

사슴은 광탄을 맞으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아직 충격에서 회복하지 못했는지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했다.

“겨우 이 정도로 쓰러질 거야?”

난 더욱 거세게 광탄을 쐈다.

사슴은 스르륵 덩치가 줄어들더니, 사람의 형상으로 돌아왔다.

루호는 원래 모습에서 번쩍 빛을 내더니, 근처까지 날아온 광탄들을 모두 날려 버렸다.

“쳇.”

난 광탄을 멈추고 빛이 사라지길 기다렸다.

번쩍번쩍 빛나는 흰색 사슴갑옷. H력을 물질화한 최상의 방어구였다.

루호는 오른팔에 달린 사슴뿔로 날 가리켰다. 그리고 눈 깜짝할 새에 내 옆까지 다가와 팔을 휘둘렀다.

“읏차!”

난 뒷걸음질 치면서 공격을 피했다. 그러나 루호의 오른팔에 달린 뿔에 옆구리가 스치면서 후두둑 슈트가 뜯겨 나갔다.

“역시 이걸로는 대응이 안 되는구나.”

이해한 즉시 거구화.

루호는 날 향해 달려들었다. 난 거구화로 강화된 감각을 통해 그의 움직임에 대응할 수 있었다.

“하압!”

루호의 공격은 오른팔의 뿔만 조심하면 특별할 게 없었다. 루호가 공격하는 부위는 주로 팔. 덕분에 피하기는 어려워도 막기는 수월했다.

“무슨 생각이지?”

난 계속해서 공격을 막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팔에서 뜨거운 통증이 느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 설마?”

거구화로 싸울 때의 약점. 그것은 너무 신체 능력에 매달린단 점이다.

“하앗!”

루호는 날카롭게 오른팔을 휘둘러 한 번에 내 양팔을 공격했다. 사슴뿔과 양팔이 충돌하면서 기분 나쁜 소리가 났다.

“으아아악!”

양팔이 부러졌다.

“형을 언제나 팔을 사용한 기술이 주된 무기죠. 팔만 못 쓰신다면, 이길 수 있어요!”

루호는 냉혹하게 말하며 날 발로 걷어찼다. 발차기 자체의 위력은 평범했지만, 양팔이 부러진 충격이 너무 컸기에 난 뒤로 벌러덩 넘어갔다.

“크윽.”

이제 양팔은 쓸 수 없다.

난 누운 상태에서 다리를 차서 루호의 다리를 걸었다. 그리고 힘껏 당겨서 녀석도 나와 같이 쓰러뜨렸다.

“받아라!”

난 오른쪽 다리를 높이 들어서 발뒤꿈치로 루호를 내려찍었다. 그러나 루호는 오른팔을 내밀어 내 다리를 사슴뿔로 잡았다.

“어림없어요.”

루호는 내게 손을 뻗어 광탄을 난사했다. 난 내가 했던 그대로 루호에게 당했다.

“크윽!”

이 자식.

난 루호를 잡고 있던 왼쪽 다리를 푼 다음, 녀석을 힘껏 걷어찼다.

루호는 지면을 파고들며 멀어졌고, 덕분에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양손을 못 쓴다면……!”

다리로 쏠까?

아란과 싸울 때 썼던 기술.

그것은 편법에 가까웠다. 애초에 발은 손보다 자유자재로 다루기 힘들 뿐더러, 루호를 쓰러뜨릴 정도로 대규모의 H력을 제대로 운용할 수 있을지 감당도 안됐다.

“그래선 이길 수 없어.”

다른 방법은?

난 맨 처음 싸웠던 호규를 떠올렸다. 그가 사용하던 원격 구체. 소리탄의 진화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그 구체야말로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호규한테 손을 대길 잘했네.”

내가 생각하는 사이, 어느새 몸을 일으킨 루호는 갑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호규, 노건, 최향자, 적지형, 주아란.

H력 보충을 위해 조금씩 그들에게서 H력을 흡수해 두었다.

난 눈을 감고, H력을 배꼽에 모았다. 그리고 그것들이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고, 몽실몽실하게 내 근처를 맴도는 상상을 했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뭔가가 정말 내 주변을 맴도는 게 느껴졌다. 다만, 아직까진 내 몸에서 달라붙어서 돌고 있었다.

이제 천천히 분리.

“앗!”

실패했다.

덩어리는 내 몸에서 떨어지자마자, 비눗방울처럼 펑 터졌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몸에서 분리가 된 그 잠시 동안, 난 덩어리의 존재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진 않아도, H력을 통해 연결된 모양이었다.

“한 번 더!”

루호가 날 기다려 주는 걸까?

아님, 신기해서 구경하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내가 너무 집중해서 짧은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걸까?

난 서둘러 덩어리를 또 만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회전시키면서 점차적으로 몸에서 떼어 냈다.

이번엔 성공!

소량이지만, 뭔가가 내 주변을 날아다니는 게 똑똑히 느껴졌다.

난 눈을 떠서 그것을 확인했다.

“오오!”

구체.

내 손바닥 정도 되는 작은 구체가 주변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루호도 그것을 보고 씩 웃고 있는 중이었다.

“새로운 기술인가요?”

“맞아.”

구체는 마치 내 몸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내 몸에서 구체로 H력이 전해지는 게 아니라 구체로 H력 자체가 전송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난 구체로 광포를 쏠 준비를 했다. 그리고 시간을 벌기 위해 루호에게로 덤벼들어 직접 몸으로 부딪쳤다.

“하아아앗!”

루호는 나와 부딪치며 뒤로 밀렸다. 그러나 곧 우리의 움직임은 멈췄고, 무식할 정도로 단순한 힘 싸움으로 이어졌다.

“으아아아!”

지금의 내가 루호를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루호는 몸을 낮춘 다음 오른팔의 뿔을 지면에 박았다. 그리고 왼팔로 내 몸을 끌어안아 뒤로 휙 들어 넘겼다.

“억!”

난 허무할 정도로 쉽게 루호의 뒤로 넘어갔다. 그리고 완전히 거꾸로 된 채 머리부터 바닥에 떨어졌다.

“케엑.”

머리가 완전히 박혀서 답답했다. 난 꼼지락거리며 머리를 빼내려 애썼다. 그러나 루호가 워낙 단단히 잡고 있어서 쉽지 않았다.

“으아아악!”

난 크게 소리를 지르며 최대한 루호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는 동안 구체는 착실하게 H력을 응축했다.

“응?”

감각은 구체와 연결된 상태.

난 구체를 통해 내 꼴사나운 모습을 보고 있었다.

조금만 더…….

루호는 날 꽂아 둔 채 뿔이 달린 팔로 계속해서 날 때렸다.

“크윽.”

사슴뿔에 찍히고, 두들겨지면서 내 몸은 점점 한계에 다다랐다. 그리고 통증이 누적될수록 구체를 다루는 것도 어려워졌다.

“그……만……!”

루호는 내 다리를 잡더니, 날 단숨에 뽑아서 집어던졌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내가 바라던 것이었다.

“받아라!”

미완성 광포를 발사.

구체에서 뿜어진 빗줄기가 루호를 집어삼켰다.

“휴우.”

난 공중에서 균형을 잡아 몸을 겨눴다. 그리고 다리로 안전하게 착지.

구체에서 뿜어지는 광포를 구경했다.

“이걸로 이길 수 있을까?”

난 거구화를 해제한 후 제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최대한으로 집중했다.

“크으으윽!”

남은 H력이 빠르게 줄어들면서 광포의 위력도 서서히 약화되었다.

“받아라!”

마지막 근성.

H력을 모두 긁어모아 한꺼번에 방출했다. 광포는 그 어느 때보다 굵게 뻗어 나가 필드의 절반을 집어삼키며 유리 벽에 금까지 가게 했다.

―방호벽 전개!

스피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리면서 유리 돔 위로 금속 재질의 장벽이 둘러졌다.

예상대로 유리 돔은 쨍그랑 소리와 함께 평범한 유리처럼 깨졌고, 붕괴한 파편이 떨어져 필드에 꽂혔다.

“크윽!”

내 몸에도 유리 조각이 떨어진 탓에 집중력이 저하되었다.

덕분에 광포는 거기서 끝. 위력이 줄어든 정도가 아니라 그냥 거기서 공격이 멎었다.

난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전신에 꼼꼼하게 떨어진 유리 조각 덕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로 범벅이 되었다.

“루, 루호는……?”

무사한가?

힘겹게 고개를 들자, 내 앞엔 나처럼 피투성이가 된 루호가 서 있었다.

루호는 전신이 까맣게 탄 채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이제 끝내야겠죠? 형…….”

양팔은 부상.

H력은 바닥.

구체도 소멸하고 없었다.

“미안하지만, 난 순순히 져 줄 생각이 없어.”

난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를 악물면서 몸을 루호에게 부딪쳤다.

“크윽!”

루호도 한계였는지, 우리는 하나로 포개져서 필드 위에 쓰러졌다. 그러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아아악!”

우리는 울부짖으며 몸부림쳤다. 서로가 가진 모든 것. 심지어 생명까지 걸 각오였다.

서로 죽일 생각이 없음에도 죽일 듯이 싸우는 희한한 상황.

난 이를 꽉 깨물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부러진 양팔로 루호를 잡아 휙 던졌다.

“으아아아!”

던져진 루호보다 내가 지른 비명이 더 컸다. 내 양팔은 너덜너덜해져서 겨우 붙어만 있었다.

“팔씨름 때 생각나네.”

차라리 목숨 걸고 10급 괴물과 싸우는 게 나을 것 같다.

루호도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그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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