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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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최대한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놀랍게도 최향자가 찡긋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래, 그동안 반가웠다.”
조금은 어색하게.
또 조금은 아쉽게.
우리는 악수를 나눴다.
―시작!
악수를 나누던 도중, 갑자기 내려진 시작 구호.
최향자는 대뜸 매고 있던 대검을 한손으로 휘둘러 날 내려쳤다.
“썅!”
난 뒤로 멀리 뛰어서 그녀의 공격을 피했다. 그러나 완벽하게 피하기도 전에 대검 끝이 내 어깨를 찍었다.
“크윽!”
능력발동을 하지 않았다면, 어깨가 으스러졌을 것이다.
“쳇.”
최향자는 아쉽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내게 틈을 주지 않을 생각으로 돌진해 왔다.
“하앗!”
난 능력발현으로 거구화를 했다. 그런 다음 양 손바닥으로 최향자가 휘두른 대검의 날을 잡았다.
“크으으윽!”
짧은 힘겨루기.
최향자의 강한 힘이 느껴졌다.
난 손바닥 바로 아래로 H력을 모아서 작은 광탄을 만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폭발시켜 대검의 날을 부러뜨렸다.
“하아아압!”
대검이 부러지자마자, 내지른 주먹.
나와 최향자는 서로의 주먹에 얼굴을 맞은 채 서 있었다. 하지만 대검이 부러진 상황에서 결과는 이미 나와 있었다.
“이젠 나로선 상대조차 안 되는군.”
최향자는 후련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스르르 눈을 감으며 쓰러졌다.
난 얼른 그녀를 부축했다.
[승자, 김상팔]
“다음은 적지형인가.”
[김상팔 VS 적지형]
네 번째 시합.
랭킹전의 의미가 상당히 퇴색되고 있다. 원래 랭킹전은 서로 랭킹을 노리며 엎치락뒤치락해야 하는데, 이건 완전히 그냥 나만 주구장창 노리고 있다.
“김상팔!”
적지형은 내가 필드에 서자마자 주먹을 날렸다. 물론 H력이 실리지 않은 보통의 지르기. 난 그의 주먹을 한손으로 잡으며 웃었다.
“진정해. 아직 시합은 시작하지 않았어.”
배은망덕한 녀석.
우리는 썩소를 지으며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 가슴을 편 채 서로를 노려보며 시작 신호만을 기다렸다.
―시작!
적지형은 전신을 모래로 바꿔서 스르륵 사라졌다. 녀석이 변한 모래는 옅게 퍼져서 필드 전체에 깔렸다.
“오호?”
예전보다 제어 능력이 확실하게 좋아진 것 같다. 현한발이 해체한 이후로도 계속 훈련한 건가?
물론 표면적이 넓어진 만큼 공격할 곳도 넓어진 셈이지만, 공격당하는 모래가 적을수록 그가 느끼는 통증도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다.
“하아아앗!”
광탄 난사.
난 마구잡이로 광탄을 쐈다. 그러자 놀랍게도 광범위하게 깔린 모래들이 일일이 움직여 광탄을 피하려는 게 보였다.
“오오!”
모래들은 광탄을 피하며 한 알, 한 알이 독자적인 탄환처럼 나에게 돌진해 왔다.
“응?”
스윽.
모래 한 줌이 강하게 옷을 스쳤다. 아무리 세게 날아와도 모래는 모래. 그러나 무수한 숫자의 모래가 쓸고 지나가자, 옷이 순식간에 해져서 맨살이 노출됐다.
“와!”
미친……!
난 강제로 상의 탈의가 되었다.
황급히 위로 점프. 아래에서 몰려오는 모래들을 내려다봤다.
거대한 모래 폭풍. 그러나 예전의 것과 달리 폭풍은 상당히 지능적이었다.
모래 폭풍은 내가 쏜 광탄들을 먹는 것처럼 중심으로 쏙쏙 집어넣어 필드 바닥으로 내보냈다.
“그렇다면……!”
난 한손으로 광탄 연사를 계속하면서, 다른 손으로는 검기를 준비했다.
“크으으윽!”
모래 폭풍이 날 집어삼켰다.
놀랍게도 폭풍 한가운데서도 광탄을 쐈지만, 폭풍은 광탄을 강한 바람으로 빨아들여 궤도를 꺾은 다음 폭풍 바깥으로 뱉어 냈다.
“으아아아!”
하의까지 강제 탈의.
난 본의 아니게 전라가 되었다.
“19금 띄워, 당장!”
내 외침이 무색하게 카메라는 더욱 열렬히 지금의 내 모습을 담으려 움직였다.
“젠장!”
난 팔을 크게 휘둘러 미완성 검기를 날렸다. 모래 폭풍의 강한 바람도 검기의 궤도는 완전히 휘게 하지 못했다.
결국 검기가 폭풍의 일부를 베면서 날아갔다.
“크으으윽!”
모래 폭풍이 일시 정지.
난 바닥에 착지해서 즉시 슈트를 착용했다. 흰색 스판 재질이 빠르게 내 몸을 덮었고, 적지형도 모래 폭풍에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내 앞에 섰다.
“그 형태와 결판을 내고 싶었다!”
적지형은 전신을 모래로 바꾸더니, 다른 형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예전이라면 당연히 모래 거인이나, 신체 일부를 모래로 바꾼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완전히 달랐다.
“호랑이? 상어?”
모래 호랑이.
등에 상어 지느러미가 달린 호랑이 형태의 괴물이었다.
“각오해라!”
모래 호랑이로 변한 적지형은 원래 괴물이 그러하듯 땅속으로 쏙 들어갔다. 그리고 상어 지느러미만 내놓은 채 빠르게 필드를 돌아다녔다.
“쳇!”
난 양손에 무광탄을 만들어서 그 중 하나를 던졌다.
무광탄 하나가 지면과 충돌하면서 폭발. 필드가 파이며 그 아래 있던 모래 호랑이가 보였다.
“잡았다!”
나머지 하나를 투척!
무광탄의 폭발에 상어 지느러미가 터져 나갔다. 그리고 모래 호랑이가 괴성을 지르며 필드 위로 올라왔다.
“좋았어!”
난 양손으로 몸을 지지한 채 두 다리로 힘껏 모래 호랑이를 걷어찼다. 그리고 녀석을 최대한 높이 띄운 다음 양손으로 광탄을 난사했다.
모래 호랑이는 바스라지면서 원래의 모래 상태로 되돌아갔다.
“와라!”
다음으로 양손에 광권 준비.
광권은 점점 모여서 무광권으로 변했다.
그 사이, 모래는 스르륵 뭉쳐서 다른 괴물의 형상으로 변했다.
“헉!”
작고 가느다란 모습.
1급 괴물인 ‘실실뱀’이었다.
길이는 1미터 내외.
두께는 손톱 마디 정도.
실실뱀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
“크기는 작지만, 그만큼 압축되어 있지. 각오해라!”
실실뱀은 박살 난 필드의 남은 부분을 미끄러지듯 기어서 다가왔다.
난 한 발을 들어 실실뱀을 밟으려 했다. 그러나 녀석은 재빠르게 내 다리를 타고 올라오더니, 바로 눈앞에서 펑하고 터졌다.
“응?”
모래가 내 몸 표면에 찰싹 달라붙어서 팔을 제외한 전신을 꽉 압박했다.
“크으으윽!”
팔을 쓸 수 없다면, 좀 치명적인데…….
난 시험 삼아 양팔의 무광권을 폭발시켰다. 혹시나 폭발의 압력으로 모래가 떨어지길 바랐다.
“역시나.”
모래는 여전히 몸을 죄고 있었다. 더구나 힘이 점점 강해져서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졌다.
“하하하!”
몸 전체에서 적지형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녀석의 기분 나쁜 소리가 입체 사운드로 들려오니까, 기분이 아주 많이 나빠졌다.
“그렇다면……!”
H력 흡수를 시도.
그러나 무수한 숫자의 모래 알갱이에서 일일이 H력을 흡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알갱이 하나하나에서 그럭저럭 빨아들일 수 있었지만, 그건 정말 개미 오줌보다 더 적었다.
“상당히 까다로운데…….”
하지만 방법은 있다.
“후웁!”
난 H력을 폭발적으로 내뿜으며 거구화를 했다. 능력으로 인해 몸집이 커지면서 순간, 모래들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지금이다!”
난 위로 펄쩍 뛰어오르며 모래로부터 떨어졌다. 그리고 한손엔 검기, 다른 한손엔 무광탄을 만들었다.
“하압!”
먼저 검기를 날렸다. 부메랑처럼 궤도가 휜 검기는 모래를 한쪽 면으로 밀어붙이며 한데 모았다.
“전부는 아니지만…….”
그 다음엔 무광탄.
흩어져 있을 땐 아무리 던져도 그냥 바람에 날아가겠지만, 뭉쳐 있으면……!
“크으으윽!”
모래가 신음을 내면서 필드 위로 쏟아졌다. 난 양손을 모아 광포를 준비했다.
“와라.”
H력의 강도는 옅게.
모래 따위를 상대하는데 굳이 강력할 필요는 없다.
혹여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모래일지라도 말이다.
“김상팔!”
모래가 절규하면서 허공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또다시 날 뒤덮을 생각으로 덤벼들었다.
“하아아앗!”
광포를 최대한 넓게 발사.
나팔처럼 퍼져 나가는 광포가 대부분의 모래를 집어삼켰다.
“크아아악!”
모래는 산산이 부서지고, 능력이 해제되면서 적지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알몸.
관객석에선 남녀 할 것 없이 핸드폰 카메라의 플래시를 터뜨렸다.
[승자, 김상팔]
난 거구화를 유지한 채 들것에 실려 나가는 적지형을 따라갔다. 비록 정신을 잃었지만, 그는 매우 편안한 표정이었다.
“너라면 로얄에 닿을 수 있을 거야.”
아마도.
난 대기실로 돌아와 직원이 준 옷을 입었다.
필드 수리 겸 점심시간.
난 난생 처음으로 지부로부터 최고급 도시락을 받았다.
휴대전화로 검색해 보니, 한 개에 무려 3만원.
처음 손에 들었을 땐 돈 지랄이라고 생각했지만, 입에 넣으니 그 생각이 확…….
“애매한데…….”
맛있긴 한데……이게 3만원?
내 입이 저렴한 건가.
잡곡밥, 전복, 떡갈비, 연어, 닭강정, 삼겹살, 젓갈, 튀김, 과일.
꼭 나만의 작은 뷔페 접시 같았다. 맛있게 싹싹 도시락을 비웠다. 공짜라는 생각을 하니, 밥이 더 맛있었다.
“한돈 아저씨가 계셨다면, 뭐라고 하셨을까?”
난 빈 도시락을 내려놓고는 준비운동으로 가볍게 몸을 풀었다.
“다음은 내가 지명할 차례다!”
남은 사람은 나, 루호, 아란.
당연히 내 목표는 한 사람뿐이다.
다시 랭킹전이 재개하고, 난 필드 위에 서서 마이크에 대고 크게 말했다.
“주아란 양에게 도전하겠습니다.”
랭킹 1위, 주아란.
그녀와 싸워서 이겨야만, 그 다음 순서인 루호가 날 지목할 수 있다.
[주아란 VS 김상팔]
아란이 필드에 서고, 우리는 서로 마주 봤다.
“다시 뵈니, 반갑네요.”
아란은 꽤 핼쑥해진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언뜻 보면 갈리처럼 보이기도 하는 창백한 얼굴과 눈 밑의 긴 다크서클.
그녀는 민머리용 사냥이 끝나고, 나 이상으로 언론의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사상 최연소 랭킹 1위란 타이틀.
엄청나게 많은 방송 출연과 인터뷰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 지금의 그녀는 예전보다 기량이 많이 떨어져 있을 것이다.
나로선 잘된 일이다.
“그러게요.”
―시작!
“더, 더, 더……!”
시작부터 필살기?
아란의 몸에서 폭발적으로 H력이 뿜어져 나왔다. 그녀의 눈에서는 왠지 모를 살기가 느껴졌다.
“더! 빠르…….”
“에엑!”
거구화! 그러나 내 몸이 부풀어 오르기 전, 아란의 발바닥이 복부에 닿는 것이 보였다.
와, 이건 좀…….
“케에에엑!”
난 아란의 발에 차여서 뒤로 훅 날아갔다. 그리고 필드 끝까지 날아가 강화유리에 부딪쳐서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젠장.”
끝내주는 한 방이다.
심지어 이제 막 거구화가 끝나서 몸이 단단해졌다.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니까!”
아란은 펄쩍 뛰어서 내 바로 앞에 착지했다. 그러고는 오른발을 머리까지 휙 들어서 그대로 발뒤꿈치로 내 어깨를 내려찍었다.
“크으으윽!”
“무겁게!”
쿵.
어깨에 실린 아란의 발 무게로 인해 내 발아래가 움푹 파였다.
“더 차갑게!”
“커억!”
내 어깨를 시작으로 순식간에 전신이 얼어붙었다. 그러나 거구화로 강화된 덕에 얼어붙은 것은 표면의 극히 일부뿐이었다.
“하아아앗!”
난 얼음을 깨고 아란에게 주먹을 뻗었다. 내 주먹에 얻어맞은 그녀는 필드 반대편까지 날아갔다.
“간다!”
난 펄쩍 뛰어서 날아가는 그녀를 따라잡았다. 그리고 조금 가혹할지라도 그녀를 한손으로 꽉 움켜쥐고서 지면에 착지했다.
“핫! 핫! 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