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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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악!”
반대로 내가 잡혀서 밀릴 판이었다.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힘이 심상치 않았다.
난 겨우겨우 무전기를 잡고 외쳤다.
“그냥 나랑 함께 쏴 버려!”
―하지만……!
무전기 너머에서 손평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난 더욱 크게 외쳤다.
“그냥 쏴!”
우리 위로 수많은 광탄이 날아왔다.
기회는 단 한 번.
난 힘껏 민머리용의 H력을 빨아들였다.
“하아아압!”
“흑흑흑!”
연달아 떨어지면서 폭발하는 광탄. 천하의 민머리용도 H력이 줄어들기 시작하니, 그제야 피해를 입기 시작했다.
“흑흑!”
광탄이 폭발할 때마다 우리 둘의 육체는 상처를 입었다. 우리는 함께 망가졌다.
“으아아악!”
폭발이 겹치고 겹치면서 하나의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우리는 거기에 짓눌려 바닥에 처박혔고, 강한 압력이 전신을 두들겼다.
“크으으윽!”
아무리 공격을 당해도 H력 흡수는 유지. 의식이 흐려지는 와중에도 녀석의 힘을 조금이라도 최소화시키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하아아앗!”
H력을 흡수함과 동시에 방출. 내 몸에서 뿜어져 나온 엄청난 양의 H력이 우리 둘을 감쌌다.
“흑흑.”
어찌된 일인지, 민머리용은 다시 힘을 회복한 듯 몸을 일으켰다. 난 녀석에게 찰싹 달라붙은 채로 함께 일어서게 됐다.
“젠장.”
주변에 H력의 농도가 높아진 탓일까?
녀석은 내가 빨아들인 만큼, 주변의 H력을 흡수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지금 상태가 이어져 봤자, 끝이 없다.
난 한손으로 흡수를 지속, 다른 손으로 광포를 준비했다. 그리고 광포를 민머리용의 복부에 대고 발사했다.
“하아아앗!”
광포는 녀석의 몸 가운데를 지나 뒤로 힘껏 뻗어 갔다.
처음엔 광포가 녀석의 몸을 관통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냥 통과.
관통이라기에는 녀석의 반응이 너무 태평했다.
역시 녀석은 H력을 통과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10급 괴물이어서 그런 건가?
크리스티나도 그렇고, 10급 괴물들은 정말 ‘괴물’이다.
―김상팔, 신호하면 떨어져. 우태훈이 광기옥을 쏠 거야. 그것도 아주, 아주 센…….
무전기에서 강자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것을 끝으로 무전기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폭발했다.
“젠장! 신호가 언젠데?”
망할 무전기.
사방에선 광탄이 날아들어서 터지고, 가까이선 엄청난 양의 H력이 들끓는다.
시야는 앞만 겨우 보일 뿐.
도저히 광기옥의 타이밍을 알 방법이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감각이라도 연결해 놓는 건데…….”
결국 난 거대한 폭발에 휘말렸다. 광기옥. 마치 작은 태양이 폭발한 것처럼 엄청난 힘이 우리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활활 타오르는 열기와 압력이 느껴졌다.
“이런 미친……!”
전신이 활활 타는 와중에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됐다.
민머리용.
녀석은 형체가 뭉개지더니, 새로운 형태로 변하려고 했다.
“하아아앗!”
난 빨아들인 녀석의 H력을 방출하지 않고, 안에 담아 뒀다. 그리고 빠르게 능력발동을 하면서 광포를 준비했다.
참고로 지금 광기옥이 터지고 있는 중이다.
민머리용은 긴 뱀처럼 변하면서 나에게 덤벼들었다. 쫙 벌어진 녀석의 입 안에는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는 것이 들어 있었다.
“흑흑흑!”
서글픈 울음소리.
난 그 얼굴을 향해 광포를 발사했다.
“하아아앗!”
광기옥 속에서 뻗어 나간 광포는 민머리용의 입 안으로 들어가 녀석의 일자 몸을 통과해 꼬리 끝까지 나아갔다. 그리고 녀석을 완전히 꿰뚫었다.
“흑흑……흑…….”
“하아아앗!”
전력 발사.
광포의 줄기가 굵어지면서 민머리용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민머리용의 울음소리는 더 커졌고, 광포 속에서 몸부림치는 게 보였다.
“흑흑, 흑!”
“응?”
저주와 같은 절규.
녀석의 몸에서 엄청난 빛과 함께 폭발이 일었다. 그 폭발은 광기옥을 반대로 집어삼키며 점점 강해졌다.
살육을 원하는 괴물의 집념.
만약 이런 놈이 장벽을 부수고 나왔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넌 내가 반드시 죽인다!”
난 폭발의 중심을 향해 몸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전신이 타는 와중에 손을 뻗어 뭔가를 확 잡았다.
두근두근.
심장과도 같은 고동이 느껴졌다.
괴물의 심장?
“그런 건 없어!”
난 그것을 힘껏 잡아서 터뜨렸다. 그리고 끝내 폭발에 휘말려 정신을 잃었다.
***
죽은 건가?
난 두둥실, 어딘가를 떠다니고 있었다.
어둠 속.
누군가의 기억일까?
아님, 그냥 꿈?
‘끌끌끌!’
익숙한 목소리.
난 고개를 돌려 한돈 아저씨를 쳐다봤다.
짜리몽땅한 체형.
살이 붙은 얼굴.
난쟁이 똥자루란 표현이 정말 딱 맞아떨어지는 외형이었다.
‘본래 모습이 아니네요?’
난 일부러 비꼬듯 말했다.
‘너한텐 이 모습이 더 익숙할 것 아니냐?’
‘저도 죽은 건가요?’
‘아닐걸?’
우린 서로를 마주한 채 이야기를 계속했다.
‘앞날 창창한 녀석이 왜 그렇게 힘이 빠졌어?’
‘그냥요. 이젠 제가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
아저씨는 중지를 쭉 펴더니, 그걸로 날 가리켰다.
‘헌터가 된 동기가 뭐였지? 말해 봐.’
‘H8처럼 되고 싶어서였죠. 겸사겸사 돈도 벌고요.’
아저씨는 크게 웃으며 자신을 가리켰다.
‘네가 동경하던 H8의 민낯을 본 지금은 어때? 우리처럼 되고 싶냐?’
‘아니요.’
다른 건 몰라도 외모만큼은 아저씨를 닮지 않을 거예요.
난 진심으로 다짐했다.
‘누군가의 발자취를 따라갈 필요는 없어. 너 자신만의 발자취를 남기는 거야!’
‘알아요, 자기가 나아갈 길은 스스로 정하란 말씀이시잖아요. 그런데 아저씨는 영혼이신 거예요? 아님,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던 모습이 발현된 건가요?’
진짜 궁금한데…….
내 질문에 아저씨는 양손에 중지를 폈다.
‘어린놈의 자식이……! 간만에 똥폼 좀 잡아 보려고 했더니…….’
‘똥은 빼시죠.’
‘남 일에 신경 끄시지! 중요한 건 네가 왜 강해질 수 있었냐는 거야. 넌 정말 네가 우연히 날 만난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하냐?’
‘그럼 아니에요?’
아저씨는 씩 웃으면서 중지를 흔들었다.
‘내가 주는 마지막 빅 엿이다. 나 간다. 잘 먹고 잘 살아라. 끌끌끌!’
‘엥? 아저씨, 잠깐…….’
“으으으윽.”
아프다. 그리고 눈이 부시다.
눈을 뜨고 있는데도 앞은 안 보이고, 귀에선 자꾸 웅얼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신음만 나오고, 극심한 고통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쿵쿵.
뭔가 육중한 소리가 들린다.
크리스티나의 발걸음?
통증하고는 별개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으로 봐선 치료술로 몸이 회복되는 중인 것 같다.
“아아아아…….”
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떴을 땐 다른 장소에 있었다.
병실?
한쪽 눈만 떠졌다. 그것도 아주 힘겹게.
전신에 붕대와 깁스.
옆에는 심박 수를 재는 기계가 있다.
의학 드라마에서나 듣던 소리에 귀가 거슬렸다.
돌아온 건가?
난 몸을 움직이려다가 손가락 바로 아래 있는 무슨 버튼 같은 것을 눌렀다. 그러자 곧장 문을 열고 간호사가 들어왔다.
“정신을 차렸습니다!”
잠시 후 의사와 간호사가 한 무더기 들어와 내 상태를 확인했다.
“살아 있군, 역시 헌터는 괴물들이야. 평범한 사람이라면 죽었을 텐데…….”
“그야말로 신인류의 전형이군. 모든 신체 정보를 수집하도록 하겠습니다.”
“적어도 우리 병원에서 죽지 않았으니, 여론의 뭇매를 맞는 건 피할 수 있겠어.”
다 들리거든?
난 눈을 부릅뜨면서 그들을 노려봤다. 그러자 그들은 태연하게 주제를 전환해 진료를 마무리했다.
“중요한 고비는 넘긴 것 같으니, 차후 경과를 지켜봅시다.”
의사는 간호사에게 조금 작은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지부장님께 연락드려요. 김상팔 씨가 무사히 깨어나셨으니, 지부장님께 문제가 될 일은 없을 거라고요.”
그것으로 끝.
난 일주일 정도 누워서 숨만 쉬었다. 영양적인 부분은 모두 수액으로 해결. 화장실도 호스로 해결했다.
이렇게까지 몸이 박살 난 건 처음이었다.
[원정대, 민머리용 사냥 성공적.]
[원정의 일등 공로는 한국지부.]
[정부 지지율, 청와대 만족]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자마자, 제일 먼저 TV를 켜서 뉴스를 확인했다.
“죽 쒀서 개 준 것 같지만, 뭐 이젠 괜찮겠지.”
애초에 민머리용을 사냥한 이유는 녀석이 장벽을 부수고 나올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위협이 제거됐으니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후우.”
은퇴할 생각을 하니, 좀 시원섭섭했다.
휴대전화도 받고, 다른 사람들과 문자도 할 수 있게 되자, 이번엔 취재 요청이 쇄도했다.
“차단, 차단, 차단. 응?”
안부 문자를 하나하나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그 중 이상한 문자가 하나가 보였다.
[랭킹전]
“응?”
아! 나 20위였지?
환자인 사람한테 랭킹전을 시킨다고?
“너무하네.”
똑똑똑.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젊은 남성.
그는 한 장의 명함을 내밀었다.
헌터 협회 한국지부 지원과 대리, 박혁수.
“박혁수라고 합니다. 김상팔 씨,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서현 지부장님은 잘 계신가요?”
“무, 물론이죠. 지부장님의 지시로 온 겁니다. 지부장님께서 급한 일이 있으셔서 절 대신 보내셨죠.”
“급한 일이요?”
이서현은 분명 변했다. 연락은 언제나 일방적. 표현은 정중해도 그쪽 입장만 챙기는 게 확 느껴졌다.
난 짓궂게 웃으며 물었다.
“이번 랭킹전은 어떻게 된 거죠? 전 아직 부상 중인데요?”
“지부장님께서 결정하신 사안이라 제가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안 봤는데, 역시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건가?
“날짜는요?”
“2달 뒤. 신 한국지부에 있는 투괴장에서 벌어집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본인 보고 오라고 하세요.”
이번 원정의 공로는 지부와 정부가 가로채 갔다. 언론 그 어디에도 원정대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
유일하게 나온 건 예능 프로였다.
“2달이라…….”
의사와 상의해 보니 그때까진 퇴원이 가능할 것 같았다.
일반인이었다면 최소 반년이었겠지만, 치료술사들이 치료를 잘해 준 덕분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2군인데, 그냥 순순히 은퇴해서 자리를 넘겨줄 순 없겠지?”
여차하면 다 이겨 버린 다음에 은퇴할까?
그런 오기가 생겼다.
“남은 두 달, 허투루 보낼 순 없지.”
난 그날부터 조금씩 몸을 움직였다. 물론 의사가 허락하는 선에서지만, 하루라도 빨리 원래의 운동능력을 되찾고 싶었다.
처음엔 물리치료사의 지도 아래.
그 다음엔 전문 트레이너를 초청.
마지막에는 내가 혼자 마음껏 날뛰었다.
***
두 달 뒤.
난 랭킹전을 위해 투괴장의 필드에 서 있었다.
내 상대는 꽤 익숙한 인물들.
랭킹 82위, 호규.
랭킹 81위, 노건.
랭킹 50위, 최향자.
랭킹 49위, 적지형.
랭킹 20위, 김상팔.
랭킹 2위, 조루호.
랭킹 1위, 주아란.
튼튼한 유리 돔.
판판하게 다져진 필드 바닥.
철저하게 분리된 관람석.
랭킹전 관람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난 가볍게 제자리 뛰기를 하면서 심호흡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