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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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은 자기 위에 올라탄 우리를 무시하고는 다시 한 번 양팔을 들어서 크리스티나를 노렸다.
―아무래도 녀석의 목적은 크리스티나를 공격해서 원정대의 추적 속도를 늦추려는 것 같아!
“하아아앗!”
머리 위 헌터들은 각자의 능력으로 괴물의 머리를 공격했다. 나도 그들과 함께 검기를 날려서 괴물의 머리를 갈랐다.
괴물의 머리는 반으로 쪼개지면서 휘청거렸다. 더불어 크리스티나를 노리던 팔도 힘없이 축 늘어져서 빗나갔다.
“좋았어!”
헌터들은 다시 크리스티나로 돌아왔다.
―김상팔, 엄청나게 강해졌는데?
―아니, 상대가 약한 거야.
―아무래도 10급은 아닌 것 같군.
―구더기 인간처럼 파생된 존재야.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검기에 머리가 잘린 괴물은 작게 울면서 양손을 들어 잘린 머리를 다시 딱 맞췄다. 그러자 잘린 단면이 스르륵 결합하며 상처가 사라졌다.
“재생?”
“가가가!”
괴물은 왼팔을 휘둘러 크리스티나의 옆을 때렸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크리스티나가 비틀거렸다.
“으아아악!”
원정대도 균형을 잃고 크리스티나 위를 굴렀다.
난 몸을 일으켜서 손에 무광탄을 모았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무전기를 쥐어서 신진부에게 물었다.
“어떻게 대응하죠?”
―재생하는 타입이면 태워 버리거나, 전기로 지지는 게 좋지.
“그럼 일단 불로 태워 보죠.”
난 모든 대원들에게 무전을 날렸다.
“기름이나, 식용유 가지신 분?”
여기저기서 대답이 돌아왔다.
“그걸 괴물한테 부어 버리세요!”
몇몇 헌터들이 괴물에게로 뛰어들어 녀석의 머리 위에서 기름을 부었다.
좔좔좔 흐르는 기름으로 인해 흰색의 괴물은 누리끼리한 색깔로 물들었다.
“다들 광탄, 무광탄 준비!”
괴물은 헌터들이 자기 위에서 무엇을 하든,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녀석은 그저 집요하게 크리스티나만을 노렸다.
“준비!”
크리스티나 위로 괴물의 손이 내려왔다. 그것이 닿기 직전 난 무전기로 힘차게 외쳤다.
“발사!”
우리가 던진 광탄과 무광탄이 괴물의 손을 향해 일제히 날아갔다. 그리고 동시에 폭발하며 강한 위력으로 괴물의 손을 쳐냈다.
“가가가!”
괴물은 다른 손을 휘둘러 크리스티나의 옆을 또 노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원정대가 쏜 광탄과 무광탄에 손이 튕겨져 나갔다.
결국 괴물은 옆으로 휠 비틀거리다가 쓰러졌다.
“불 붙여!”
내 외침에 하상룡은 양손에서 불을 뿜어냈다. 그가 쏜 불길은 활활 타오르며 날아가 괴물에게 닿았다. 그리고 거대한 불길이 일면서 괴물을 집어삼켰다.
“가가가!”
괴물은 고통스럽게 발버둥 쳤다. 불에 탄 부분은 쉽게 재생하지 못하면서 녀석의 몸체는 전체적으로 까맣게 타 갔다.
“가가……가…….”
불길이 꺼지고, 괴물은 완전히 움직임을 멈췄다.
몇몇 조원들이 괴물을 해체해 봤지만, 딱히 건질 만한 건 없었다.
“민머리용이 시간을 끌기 위해 만들어 낸 분신인 것 같아.”
강자기의 짧은 소견.
다들 거기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진부는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이런 괴물이 더는 없을 거란 법은 없어. 대비를 해야 해.”
“어떻게?”
내 질문에 강자기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네 광포를 풀 파워로 쓰는 거야. 지금 원정대가 가진 공격 중에 10급 괴물한테 치명타를 줄 수 있는 유일한 공격이니까.”
“좋아. 다 좋다고. 하지만 그렇게 광포를 남발하다가 막상 민머리용을 따라잡았을 때, 광포를 쓸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할 건데?”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야지. 서두르지 않으면 영영 놓칠 수도 있어.”
일단 따라잡고 보자는 건가?
난 어쩔 수 없이 그의 말에 동의했다. 우리는 다시 크리스티나 위에 타서 전진을 계속했다.
난 크리스티나 등 맨 앞에 서서 광포를 준비했다. 내 등 뒤로는 언제나 치료 및 H력 공급을 위해 치료술사들이 대기했다.
거기에 강자기가 내 옆에 서서 함께 광포를 준비했다. 그는 빠르게 내 기술의 핵심을 익혔다.
하루 정도 빠르게 전진하자, 이번엔 거대한 물체가 원정대 앞을 가로막았다.
괴물이 아니라 물체라고 한 이유는 그것의 형태가 직사각형의 담뱃갑 같았기 때문이다.
“돌아서 가야겠지?”
내 말에 크리스티나는 빠르게 담뱃갑을 돌아가려 했다. 그러자 담뱃갑 뚜껑이 열리면서 거기서 뭔가 작은 것들이 무수히 기어 나왔다.
“광포를 쏴!”
강자기가 먼저 발사!
난 그를 따라 광포를 쐈다.
거대한 두 줄기의 빛이 담뱃갑을 꿰뚫으며 쓰러뜨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뱃갑에서 쏟아져 나오는 개체들의 행진은 멈추지 않았다.
“젠장!”
개체의 크기는 작은 강아지 정도. 문제는 형태였다.
“바퀴벌레다!”
누군가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
원정대의 절반은 괴물들의 외형에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수십, 수백, 수천……혹은 그 이상.
흰색 대형 바퀴벌레 대군이 크리스티나 위로 올라왔다.
크리스티나의 질주는 계속되면서 담뱃갑으로부터 멀어졌지만, 한 번 달라붙은 바퀴벌레들과의 사투는 피할 수 없었다.
“계속 달려!”
“알고 있어!”
변해라는 큰소리와 함께 구더기 인간들을 불러냈다.
구더기 인간들은 크리스티나의 다리에 매달려 아래에서 올라오는 바퀴벌레들을 몸으로 막았다.
헌터들은 그 사이, 사격을 개시해 바퀴벌레들을 크리스티나에서 떼어 냈다.
―죽일 생각은 하지 마! 떼어 내기만 하면 돼!
나도 핸드캐논에 산탄을 장전해서 계속 발사했다. 산탄에 맞은 바퀴벌레들은 멀리 날아가 떨어졌지만, 그 자리에 금방 새로운 개체가 올라왔다.
“정말 바글바글하게 올라오네!”
핸드캐논의 산탄이 다 떨어지고, 다음으로 장전한 것은 유탄.
크리스티나의 다리에 직격하지 않도록 비스듬히 날렸다. 괜히 바퀴벌레 맞춘다고 유탄을 날렸다간 크리스티나의 다리에 생채기가 날 수 있었다.
“하앗!”
포오오옹.
경쾌한 소리와 함께 날아간 유탄은 바퀴벌레의 등껍질을 두드리며 제법 큰 폭발을 일으켰다.
쿵쿵쿵.
폭발은 계속되었고, 무수한 바퀴벌레가 터지고 불에 타면서 떨어졌다.
“으아아악!”
내가 있던 앞쪽과는 달리 뒤쪽은 바퀴벌레들이 올라오는 데 성공.
헌터들과 구더기 인간, 그리고 바퀴벌레가 뒤엉켜서 육탄전을 벌이고 있었다.
“엄청 징그럽네.”
구더기 인간은 꿈틀거리고.
바퀴벌레는 그냥 역겹다.
원정대도 제대로 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다들 프로이기에 열심히 싸우고 있었지만, 내 눈엔 흠칫거리는 게 티가 났다.
“쳇!”
유탄도 끝. 난 핸드캐논을 내려놨다.
―이쪽 좀 지원해 줘!
다급한 구원 요청.
난 조원들에게 자리를 맡긴 후 홀로 뒤쪽으로 향했다.
“흐아아앗!”
거구화.
난 거대해져서 마구 날뛰었다. 바로 옆에서 노건도 거구화된 채 유정을 태우고 있었다.
“우아아아!”
우리는 함께 날뛰면서 서로 호흡을 맞췄다. 유정은 노건 위에 기관포대를 설치한 채 기관총을 난사하고 있었다.
보통의 사수라면, 이런 난전에서 기관총을 쏘는 건 아군한테도 위험할 것이다. 그러나 유정의 난사는 그녀의 능력과 합쳐져서 명중률 100프로.
빗나갈 일은 없었다.
“으아아아!”
나와 노건은 함께 돌진하면서 바퀴벌레들을 쓸어 냈다.
벌레 다리와 더듬이가 몸을 훑는 감촉에 소름이 돋았지만, 주저할 틈이 없었다.
“크윽!”
사방이 바퀴벌레.
사람이나 구더기 인간보다 바퀴벌레가 더 많다.
그나마 색깔이 흰색이라 참 다행이다. 색깔마저 보통의 그것이었다면, 정말 비위가 상해서 싸우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아아앗!”
우리는 크리스티나의 등 끝까지 벌레들을 몰았다. 그리고 거기서 단숨에 대량의 벌레들을 밀었다.
우수수.
크리스티나의 등에서부터 땅바닥까지 벌레가 비처럼 떨어졌다.
“죽어, 죽어, 죽어!”
주아란은 실성한 사람처럼 날뛰며 바퀴벌레와 구더기 인간을 발로 걷어찼다.
옆에 있던 주아라가 계속 구더기 인간을 차지 말라고 소리쳤지만, 그녀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한 시간 정도의 전투 후 바퀴벌레 무리는 모두 크리스티나의 등에서 사라졌다.
“지친다.”
난 능력을 해제하며 주저앉았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들 땀으로 전신이 젖어 있었다.
“거인 다음엔 바퀴벌레라…….”
다음엔 뭘까?
크리스티나는 계속 전진했다.
날이 지고, 녀석을 조종하는 변해라에게 휴식이 필요했다. 나와 강자기가 그녀의 능력을 카피함으로써 교대하기로 했다.
“후우.”
구체가 굴러간 흔적은 땅끝까지 이어진 듯 계속됐다. 크리스티나는 쉬지 않고 걸어서 구체를 쫓았다.
다음날.
“크리스티나는 쉬지 않아도 되는 건가?”
난 교대하러 온 강자기에게 물었다. 그는 손에 든 커피를 내밀며 말했다.
“괴물은 생물 같지만, 생물로 정의하기엔 의문이 많아. 아무리 연구를 해도 신체 구조조차 제대로 파악이 안 되고 있지.”
난 커피를 받아서 한 모금 마셨다. 달콤한 믹스커피가 목구멍을 넘어가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카페인 파워!”
난 강자기와 교대.
내 텐트로 가서 눈을 붙였다. 그러나 잠이 막 들자마자 소란스러운 소음이 거슬려 반 강제로 눈이 떠졌다.
“제기랄, 도대체 무슨……?”
텐트로 고개를 내민 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피를 흘리는 자.
신체가 절단된 자.
죽어 있는 자.
헌터들은 완전히 패닉에 빠진 상태였다.
“쿠우우우!”
거대한 날개를 펼친 익룡.
녀석이 날개를 한 번 펄럭일 때마다 구더기 인간과 헌터들이 날아갔다.
“쿠우우우!”
익룡은 미끄러지듯 크리스티나 위에 착지했다. 녀석의 새하얀 색깔로 보아 앞서 나왔던 녀석들과 동류인 것으로 추측됐다.
“이젠 아예 피할 수도 없게 만드는 거냐?”
익룡은 몸을 낮춰서 부리처럼 생긴 주둥이로 헌터들을 노렸다.
“하아아앗!”
루호는 거대사슴으로 변신.
사슴뿔로 익룡의 부리를 걸어서 힘 싸움에 들어갔다.
두 괴물의 덩치는 호각.
충분히 이길 만한 싸움이었다.
익룡의 날갯짓이 멈추자, 사슴을 중심으로 헌터들이 전열을 짜서 다 함께 익룡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쿠우우우!”
익룡은 날개를 펄럭여서 바람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헌터들이 갈고리를 던져서 녀석의 날개에 걸었다.
수십 개의 갈고리가 익룡의 양 날개에 걸렸고, 무전기를 통해 강자기가 외쳤다.
―당겨!
갈고리에 연결된 줄이 팽팽해지고, 익룡은 크리스티나의 등에 납작 엎드렸다.
익룡의 앞은 사슴, 양옆은 갈고리.
완전히 움직임이 봉쇄된 틈을 타 헌터들은 우르르 몰려가서 익룡을 공격했다.
“죽어, 죽어, 죽어……!”
“쿠우우우!”
익룡의 양 날개가 헌터들의 날붙이에 절단됐다.
녀석은 날개가 잘리자,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공중을 향해 울부짖었다.
“카우우웅!”
익룡의 입 안에서 광포와 흡사한 빛줄기가 뿜어져 나와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하늘 위에서 빛줄기가 구체 형태로 뭉쳐진 다음, 그것들이 자잘한 크기의 빛덩이로 나뉘어 운석처럼 떨어졌다.
“으아아악!”
직격.
크리스티나 위에 무차별적으로 폭격이 가해졌다. 그 공격을 쓴 익룡 자신도 폭격에 휩쓸려 몸이 폭발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