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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을 길들일 수만 있다면……!”
주저앉았던 괴물은 갑자기 사납게 날뛰기 시작했다. 당연히 녀석의 등에 타고 있던 원정대와 구더기 인간들도 녀석이 날뛸 때마다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으아아악!”
“떨어진다!”
“누가 좀 잡아 줘!”
몇몇은 아예 괴물 아래로 떨어지고, 몇몇은 구더기 인간들에 의해 떠밀리기까지 했다.
“하아아앗!”
나와 변해라는 H력을 통해 괴물의 등과 연결된 덕에 무사할 수 있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H력을 주입했다.
사방이 완전히 난장판이 되고, 흙먼지가 날렸다. 나와 변해라를 보호하던 조원들도 충격에 날아가 뿔뿔이 흩어졌다.
와중에 우리는 오직 괴물을 길들이는 것에 집중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그때 내 앞으로 구더기 인간 하나가 꿈틀대며 걸어왔다. 녀석은 주먹으로 내 얼굴을 때렸다.
“큭!”
아프다.
위력으로 봐선 많이 쳐 줘야 5급이겠지만, 거구가 된 나에게는 평범한 주먹과 다를 바 없었다.
물론 평범한 주먹도 일단 맞으면 아프다.
“팀장님!”
호규가 소리탄을 날려 구더기 인간을 날려 버렸다. 그러나 곧 새로운 개체들이 나타나 그와 대적했다.
“흐아아아!”
호규는 여러 개의 소리탄을 한꺼번에 터뜨려 강력한 초음파로 내 주변을 확 쓸어버렸다.
그러나 구더기 인간들은 쓸려 나가도, 또 금방 괴물의 등 속에서 가죽을 뚫고 튀어나왔다.
“끝이 없네.”
새로 나타난 구더기 인간의 수는 처음보다 훨씬 줄어 있었다.
괴물이 날뛰는 강도도 완만하게 줄어들다가 완전히 정지. 녀석은 제자리에 주저앉아 가만히 있었다.
괴물이 주저앉자, 싸움의 공간은 녀석의 등에서 주변 지형까지로 넓어졌다.
헌터들과 구더기 인간들은 넓게 퍼져서 흡사 전쟁과도 같이 싸웠다.
불꽃과 광탄, 총탄과 폭발.
갖가지 무기와 능력이 날아다녔다. 그리고 그에 따라 구더기 인간의 살점과 녹색 피가 휘날렸다.
“크으으윽!”
주변의 치료술사들도 흩어지고, H력을 보내 주던 변해라도 사라졌다.
H력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도 아직 10급 괴물의 조련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덩치가 커서 그런가?
내 능력발현이 풀리면서 덩치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당연히 그에 따라 H력과 조련 기술도 초라하게 줄어들었다.
“변해라 어디 있어?”
난 힘껏 변해라를 불렀다. 그러나 사방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통에 내 목소리 따윈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묻혔다.
“젠장!”
조련은 실패.
“그렇다면 역발상이다!”
난 반대로 괴물의 H력을 빨아들이기로 했다. H력의 흐름을 전환하는 순간, 엄청난 양의 힘이 내 몸으로 빨려 들어왔다.
“하아아앗!”
능력발현!
다시 거구가 되었다.
난 거구가 됨과 동시에 한손은 계속 괴물의 등에 댄 채 흡수를, 다른 손으로는 광탄을 준비했다.
“받아라!”
연발 광탄.
절대 바닥날 일이 없는 광탄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난 광탄을 끊어 쏘는 방식으로 헌터들을 피해 구더기 인간들을 맞혔다.
최고 수준의 양질로 빚어낸 광탄은 그 한 방, 한 방이 여태까지와는 수준을 달리했다.
광탄에 맞은 구더기 인간들은 한 방으로 몸이 절반 이상 파괴되었다.
―다들 엎드려! 상팔이가 광탄을 쏜다! 맞으면 죽을 수도 있어!
무전기에서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 나름대로 조준을 하면서 쏘고 있지만, 한 방에 구더기 인간들이 터져 나가는 것을 보니 다들 겁을 먹은 모양이다.
헌터들은 재빨리 몸을 바닥에 엎드렸다. 중간 중간 구더기 인간들에게 짓밟히는 이들이 있었지만, 곧 내가 날린 광탄에 터져 나갔다.
톡톡톡.
구더기 인간들이 터져 나갈 때마다 경쾌한 소리가 났다.
구더기 인간들은 빠르게 전멸. 그 사이, 떨어졌던 치료술사와 변해라가 바닥을 기어서 내 곁으로 돌아왔다.
“조련을 이어서 다시 하자!”
난 변해라에게 손을 내밀어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일어선 그녀는 내 등에 손을 대고는 H력을 흘려보냈다.
치료술사들이 다시 한 번 내 체력과 H력을 회복시켜 주기 시작.
난 흡수를 중단하고 다시 H력을 불어넣었다.
“지, 지친다.”
강대한 H력은 그 흐름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힘이 든다.
난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상당히 지쳐 있었다.
“단번에 가자!”
능력 증폭.
변해라는 날 통해서 빠르게 괴물을 조련했다. H력을 통해 괴물의 정신이 나와 그녀에게로 전해졌다.
“좋아! 놈도 많이 약해졌어.”
“고고고!”
괴물이 비명을 질렀다.
“필요한 인원만 남고, 나머지는 괴물 등에서 내려요!”
난 무전기로 다른 헌터들에게 명령했다. 다행히 더는 구더기 인간이 나타나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흐르고, 괴물의 울음소리가 멈췄다.
“성공이야!”
변해라는 내 몸에서 손을 떼며 펄쩍펄쩍 뛰었다.
난 아직 10급 괴물을 길들였단 사실이 잘 실감 나지 않았다.
“정말 길들인 건가?”
“이 아이 이름은 ‘크리스티나’야!”
변해라는 또 기괴한 이름을 지었다.
그렇게 크리스티나가 된 10급 괴물은 우리의 이동 요새가 되었다.
크리스티나의 외형은 탁자와 같이 평평한 몸통에 사족보행을 위한 다리 4개.
놀랍게도 눈이나 귀 같은 감각기관이 없었다.
우리는 녀석을 타고 느긋하게 민머리용을 찾아 전진했다. 덕분에 원정 속도는 훨씬 빨라졌다.
***
원정 시작 닷새째.
목적지인 민머리용의 서식지에 도착했다. 다들 무기와 장비를 점검하고, 복장을 제대로 갖췄다.
나도 비싸게 사 온 방화복을 착용한 후 핸드캐논을 들었다.
크리스티나가 밤이고, 낮이고 쉬지 않고 움직여 준 덕에 원정대는 전력을 보존하며 빠르게 올 수 있었다.
난 각 조장들을 불러서 회의를 했다. 그리고 지도에 표시된 돌산을 가리켰다.
“민머리용의 서식지이긴 하지만, 10급 괴물의 행동 범위는 굉장히 넓은 편이에요. 일단 여기랑, 여기, 그리고 여기로 조를 나눠서 대기하기로 해요. 어디서든 녀석을 보게 되면 무전기로 알려 주고요.”
원정대는 세 곳의 돌산과 크리스티나, 이렇게 네 팀으로 나뉘었다.
우리 조는 당연히 크리스티나 위에 남아 각 조의 연락을 기다렸다.
“후후후! 내 덕분에 의외로 손쉽게 끝나겠는 걸?”
변해라는 팔짱을 끼며 낄낄 웃었다. 그녀의 자신감은 근래 들어 가장 정점에 있었다.
“다음 로얄 자리는 내 꺼야! 상팔아, 나한테 넘기고 은퇴하는 게 어때? 후후후!”
로얄은 조금 이르더라도 2군이라면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다만 10급 괴물을 길들인 것까진 좋지만, 너무 거대한 크기와 위력 탓에 크리스티나를 계속 소유하는 건 여러모로 그녀에게 좋지 않았다.
정부나 지부에서 무기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었고, 다음으로는 크리스티나에게 공급할 H력의 양이 어마어마하단 게 문제였다.
세바스찬의 사례가 있듯이 길들인 괴물일지라도 H력의 공급이 중단되면, 다시 원래의 사악한 본성으로 돌아간다.
지금 변해라가 크리스티나에게 주입하고 있는 H력은 내가 괴물에게서 흡수해 그녀에게 공급한 것이었다.
즉, H력이 나, 변해라, 크리스티나 세 개체 사이를 순환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인지라 이 상태가 너무 오래되면 정신력이나, 체력적인 소모도 무시할 수 없다.
그날은 해가 질 때까지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결국 흩어졌던 원정대는 다시 크리스티나 위로 모였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조장들끼리 모여 다시 회의를 했다.
“녀석이 어디 있는 걸까요?”
루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뿐만 아니라 모두들 고개를 저으며 뾰족한 의견을 내지 못했다.
그로부터 이틀 넘게 허무한 기다림이 계속됐다.
6일이 지나 7일째.
민머리용은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조금씩 지치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루호가 한 가지 의견을 냈다.
“크리스티나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요?”
앗!
그 말에 다른 조장들은 입을 쩍 벌렸다. 심지어 나조차 크리스티나를 이용할 생각만 했지, 걔 때문에 민머리용이 다가오지 않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럼 크리스티나를 좀 멀리 떨어뜨려 놓도록 해요.”
난 변해라를 불러서 지도에 어느 지점을 가리켰다. 그곳엔 커다란 숲이 있어서 크리스티나를 숨기기 용이했다.
결국 우리 조를 뺀 나머지 조는 여전히 돌산에서 매복.
우리 조는 크리스티나를 타고 숲으로 들어가 숨었다. 크리스티나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땅속으로 파고들어 몸 대부분을 감췄다.
정확히 30분 후.
하늘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흑흑흑, 흑흑흑……!”
민머리용!
하늘에서 새하얀 용이 내려왔다. 울상을 하고 있는 얼굴이 우리를 내려다보면서 가소롭다는 듯 울었다.
“흑흑흑!”
흰색의 브레스.
새하얀 빛이 녀석의 입에서 나와 원정대를 덮쳤다. 그리고 확실하게 녀석이 착지했다.
“해라야!”
“알았어!”
우리도 출동!
크리스티나가 벌떡 일어섰다.
“가즈아!”
변해라는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쿵쿵. 크리스티나의 전진!
민머리용은 크리스티나를 보자, 울상인 얼굴을 더욱 찡그렸다. 그리고 상체를 들어 올리며 날개를 활짝 펴서 자신의 덩치를 크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흑흑흑!”
“고고고!”
두 괴물은 서로 맞서며 잠시 기싸움을 했다. 그러다가 결국 민머리용의 입이 쩍 벌어지며 브레스가 쏟아졌다.
“해라야!”
“크리스티나!”
내가 해라를 부르자, 그녀는 실시간으로 크리스티나를 조종했다.
민머리용의 브레스에 맞서 크리스티나도 입을 쩍 벌리며 뭔가를 토해 냈다.
“흙?”
엄청난 양의 흙과 자갈.
그것은 ‘어스 브레스’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두 브레스는 공중에서 충돌. 생각 외로 서로 팽팽한 힘겨루기를 했다.
“지금이에요! 공격하세요!”
난 무전기에 대고 다른 조에게 외쳤다. 그러자 사방의 돌산에서 각종 총알과 광탄, 능력들이 민머리용에게 쏟아졌다.
주변에서 공격을 받은 민머리용의 브레스는 급격히 약화되었고, 그때를 노려 크리스티나의 브레스가 치고 나아갔다.
“좋았어!”
크리스티나의 브레스가 적중!
민머리용은 뒤로 밀리면서 벌러덩 쓰러졌다.
“흑흑흑!”
민머리용의 울음소리가 더욱 구슬퍼졌다. 그러자 녀석의 몸 전체가 브레스처럼 환한 빛을 뿜어냈다.
“뭐, 뭐야?”
순식간에 일대가 빛으로 감싸이면서 대폭발.
크리스티나와 거기에 탄 우리 조도 폭발에 휩쓸렸다. 강렬한 빛이 전신을 짓누르며 뜨겁게 태우려는 게 느껴졌다.
“으아아악!”
크리스티나는 주저앉았고, 원정대 전원 그 자리에 뻗었다. 단 한 번의 폭발로 전멸 위기에 놓인 것이었다.
“미, 미친……!”
“흑흑흑.”
민머리용은 웃고 있었다.
울상을 유지하며 웃는 기묘한 표정은 흡사 공포 영화에 나올 만큼 소름이 끼쳤다.
“흑흑흑.”
민머리용은 크리스티나를 향해 천천히 기어 왔다.
난 능력발현으로 거구로 변신! 방화복을 피부로 흡수해 열 저항을 높였다.
그런 다음 펄쩍 뛰어서 민머리용을 향해 날아갔다.
“받아라!”
핸드캐논 발사!
커다란 탄환이 힘차게 날아가 민머리용의 얼굴에서 폭발했다.
“흑흑흑!”
방심하고 있던 녀석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뒤로 빼면서 멈칫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