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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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의심병 환자 같지만, 지금까지 겪은 일 때문이라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싫은데요.”
이젠 굳이 지부한테 잘 보이려고 열심히 할 필요가 없는뎁쇼?
워라밸 모르세요?
노오력이 부족하시네.
“세 분보단 상팔 씨가 중립적으로 해 주실 것 같아서요.”
“흐음.”
중립.
그건 확실했다.
세 사람은 그들이 소속된 각각의 팀들이 빅3 중 하나인 이상 필연적으로 팀의 이익을 계산하며 행동할 가능성이 있었다.
지금 이 원정대에 소속된 헌터들은 정예. 한국 사냥 업계의 미래였다.
“알겠습니다.”
좀 찝찝하지만, 대장 역할을 승락. 이서현은 빠르게 원정대 편성을 모두에게 발표했다.
1조. 주아란, 우태훈 외 8명.
2조. 조루호, 김두 외 8명.
3조. 신진부, 최마군 외 8명.
4조. 강자기, 갈리 외 8명.
5조. 남주나, 조기홍 외 8명.
6조. 마다랑, 남궁만 외 8명.
7조. 이준, 김목록 외 8명.
8조. 한유리, 추보영 외 8명.
9조. 오이해, 제갈신 외 8명.
10위. 김상팔 외 8명.
1차 원정에 비해 상당히 분배가 잘된 구성이었다.
무전기는 각 조장을 비롯해 원정대 전원 지급.
이서현과 직원들은 정문에서 우릴 배웅했다.
“여러분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겠습니다!”
마치 수능 시험장 들어가는 길목에서 엿 나눠 주는 사람 같았다.
우리는 두려움과 두근거림을 안고 10급 사냥 구역으로 들어갔다.
“마이크 테스트. 다들 잘 들리시죠?”
내 호출에 각 조장들이 대답을 했다.
무전 상태는 매우 양호.
우리는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민머리용 외 엉뚱한 괴물을 만나기라도 하면…….
쿵쿵.
앗! 생각만 했는데?
옆에 선 돌산 뒤로 엄청난 진동이 전해져 왔다.
떨림은 점점 커지고, 뭔가가 다가오는 소리도 들렸다.
“변해라!”
난 우리 조원인 변해라를 보며 외쳤다. 그러자 그녀는 호규와 함께 원반가오리인 도로시를 타고 돌산 위로 날아갔다.
―큰일 났어! 괴물이야!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 무전기를 통해 전해졌다. 그리고 뒤이어 거대한 폭발과 함께 돌산이 와르르 무너졌다.
돌산의 잔해와 함께 엄청난 규모의 먼지구름이 원정대를 덮쳤다.
“변해라! 괜찮아?”
―모, 모두 도망쳐. 일단 우리가 유인해 볼게!
펑.
두 번째 폭발. 후폭풍으로 인해 먼지구름이 확 날아갔다. 그리고 문제의 10급 괴물의 모습이 보였다.
“저, 저건 뭐야?”
거대한 거북이.
두 발로 선 녀석의 입에서 허연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도로시는 괴물의 목 뒤로 날아가 원반의 테두리로 휙 녀석의 뒷목을 벴다.
그러자 괴물은 도로시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입을 쩍 벌렸다.
“앗!”
괴물의 입에서 커다란 화염구가 발사. 도로시는 아슬아슬하게 그것을 피했다.
“도망쳐!”
난 육성으로 모두에게 소리쳤다. 원정대는 맨 앞의 1조를 따라 질서정연하게 달렸다.
도로시는 위태롭게 비행을 하면서 최대한 괴물의 시선을 붙잡아 주었다.
“우리는 멀리 떨어졌어. 너희도 도망쳐!”
난 무전기로 변해라에게 외쳤다. 그러나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서, 설마……!”
난 몇 번이나 거듭 변해라를 불렀다. 그러자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돌아왔다.
―시끄러워!
“무사한 거야?”
―도로시가 당해서 추락했어. 우린 지금 녀석의 눈을 피해서 기어가고 있어. 조금만 기다려.
도로시의 격추.
변해라와 호규는 전신이 흙투성이가 되어 겨우 원정대로 돌아왔다.
괴물은 우리가 자신과 멀리 떨어지자, 더 이상 공격해 오지 않았다.
“도로시가 없으니, 여기서 한 마리 데려가야겠어!”
변해라는 물을 마시며 방방 날뛰었다. 호규는 그런 그녀를 말리며 진땀을 뺐다.
“해라야, 그건 좀……!”
“왜? 난 피닉스도 길들였던 몸이라고!”
“그건 피닉스가 네 장단에 맞춰 준 것뿐이잖아.”
호규가 꽤 날카로운 말을 한다.
“두고 보라고!”
변해라는 호규에게서 고개를 돌려 날 쳐다봤다.
“상팔아, 잠깐 귀 좀…….”
“뭔데?”
불길한데…….
변해라는 내 귀에 대고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난 어느 정도 그녀의 말에 수긍할 수 있었다.
“불가능한 건 아닌데…….”
내가 불쾌한데?
들어주기 싫지만, 원정의 성공을 위해 하는 수 없이 그녀를 돕기로 했다.
원정대는 다시 전열을 정비해서 전진.
다행히 그 후로는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았다.
밤에는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해야 했다. 우리가 가는 경로에 지하 대피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99명의 헌터들이 쓸 거대한 텐트 야영지가 세워졌고, 각 조별로 돌아가면서 보초를 서기로 했다.
우리 조는 날 포함해 변해라, 호규, 하상룡, 아미니, 아미리, 손평화, 이육, 장마리 이렇게 9명.
우리 조의 보초는 맨 마지막. 남녀로 나뉘어 대형 텐트 안에 몸을 눕혔다.
“팀장님, 팀장님.”
막 자려고 하는데, 호규가 내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왜요?”
난 뒤돌아 누운 채로 대답했다.
“1차 원정에선 엄청나게 많은 헌터들이 죽었다고 하던데, 정말일까요?”
“아마도요.”
공식적으론 1차 원정에서의 사상자는 미비한 것으로 발표되었다. 그것은 정부, 지부, 언론이 하나로 엮인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걱정 마세요. 우리는 그런 일 없을 거예요.”
“그렇겠죠? 전 저보다 해라가 더 걱정이에요. 걘 좀……나대는 구석이 있잖아요?”
엥?
난 폭소가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근데 아까 해라랑 단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신 거예요?”
“아, 그거요?”
호규한텐 말해도 되겠지.
“새로운 괴물을 길들이겠다고 그런 거예요. 제가 해라의 H력을 흡수한 다음에, 해라가 절 길들여서 서로 정신을 연결하고, 저한테 H력을 공급하면, 둘이 힘을 합쳐 능력을 증폭시켜서 10급 괴물을 길들이려는 거예요.”
“10급 괴물을 길들인다고요? 그런 게 가능한가요?”
전례가 없는 일이긴 하지.
테이밍 관련 능력 자체가 희귀할 뿐더러, 사실 효율 자체가 대단히 나쁘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정상급 헌터들은 그 능력으로 자신을 직접 강화시키는 기술이 많았다.
변해라와 그녀의 아버지가 엄청난 특이 사례인 것이다.
“피닉스의 사례로 볼 때 확률상 50퍼센트는 되지 않을까요?”
50퍼센트.
너무 높게 불렀나?
호규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아무래도 잠든 모양이었다.
나도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마지막 보초로 일어날 때까지 최대한 수면을 취해야 했다.
***
다음날.
원정대는 간단한 아침 식사 후 다시 민머리용을 향해 나아갔다.
난 주변을 살피면서 동시에 변해라가 길들일 만한 괴물을 생각했다.
“저번처럼 10급 괴물끼리 싸우고 있으면 좋겠는데…….”
괴물의 상태가 약화될수록 길들이기 수월하다. 그리고 10급 괴물에게 치명타를 준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괴물끼리 싸우고 있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길들이려는 시도를 하지 않을 것이다.
“고고고!”
응?
“고고고!”
이상한 소리.
바닥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으아아악!
―괴물인가?
무전기도 난리법석.
지면이 떨리면서 점점 진동이 강해졌다. 아무래도 지하에서 뭔가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피해!”
난 무전기에 대고 외쳤다. 그 순간, 땅속에서 거대한 원반 같은 것이 올라왔다.
어찌나 큰지 원정대 전원이 원반 위에 탄 상태로 함께 솟구쳤다.
“뭐, 뭐야?”
“고고고!”
거대한 원반을 형태의 등을 지닌 괴물. 마치 학교 운동장에 다리가 네 개 달려서 기어 다니는 것 같다.
“고고고!”
괴물은 우리를 태운 채 울부짖었다. 그리고 녀석의 등 속에서 사람 크기의 뭔가가 가죽을 뚫고 나왔다.
“뭐야?”
구더기?
구더기 인간.
흔히 아는 꿈틀대는 벌레에 팔다리가 달려 있었다. 원정대 중 대부분이 그 징그러운 움직임에 기겁했다.
“기생하는 건가?”
10급 괴물에 기생하는 괴물이라면, 그보단 약할 것이다.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한 것인지, 적극적으로 무기를 들고 싸우려 했다.
“다들 정지! 함부로 건들지 마세요.”
난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다. 만약 녀석들이 피닉스나 유니콘처럼 무조건적으로 적대적이지 않다면, 굳이 싸울 필요는 없었다.
더구나, 숫자.
구더기 인간의 숫자는 원정대를 포위하고도 남을 정도로 많았다. 녀석들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와 금세 괴물의 등을 가득 채웠다.
“아직까진 공격해 오지 않고 있어.”
꿈틀꿈틀.
머리로 보이는 부분부터 발끝까지 꿈틀꿈틀. 벌레를 싫어하는 사람은 게거품을 물고 기절할 것이다.
“고고고!”
“상팔아!”
변해라가 다가와 내 귀를 잡아당겼다.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다.
“이 녀석을 길들이자고?”
“난폭한 녀석은 아닌 것 같으니까, 의외로 잘 될 것 같아.”
“좋아.”
작전대로!
변해라는 내 등에 H력을 주입했다.
난 그 기운을 받으며 능력을 발현했다.
“하아아앗!”
거구로 변신.
내 몸은 거대해지는 만큼 능력 자체도 강화되었다.
당연히 내 몸에 깃든 변해라의 H력과 능력도 강화!
난 괴물의 등에 손을 대고 힘껏 H력을 녀석에게 불어넣었다.
“하아아앗!”
변해라에게서 내게로.
다시 내게서 괴물에게로.
H력은 증폭되면서 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하아아압!”
H력을 주입하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괴물이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난 H력을 통해 녀석이 저항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효과가 있었다!
당장 무전기로 치료술사들을 불러 모았다.
“변해라를 치유해요! 빨리!”
원정대의 모든 치료술사가 변해라 하나를 지원.
이제 남은 건 그녀의 재능이 통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앗!”
구더기 인간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우리가 괴물을 건드렸기 때문일까?
원정대와 구더기 인간들 간에 전투가 벌어졌다. 녀석들은 단순한 육탄전으로 가장 가까운 헌터들을 공격했다.
“대장을 지키는 건 저희한테 맡기세요!”
호규를 중심으로 우리 조가 나와 변해라를 둘러쌌다.
호규는 소리탄을 다수 생성.
하상룡은 양팔에서 불꽃을 뿜어내며 원거리 견제.
아미니, 아미리는 불꽃과 번개를 뿜어내 우리 주변에 방어벽을 형성.
평화 씨는 로봇을 탄 채 내 옆에서 가만히 대기.
이육은 날개를 활짝 펼치며 날아올라 상황 주시.
장마리는 쌍둥이가 만든 전기불꽃 장벽 밖에서 홀로 바쁘게 달리며 구더기 인간들을 유인했다.
딱히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각자 자신이 할 일을 순조롭게 하고 있었다.
물론 여기엔 구더기 인간들이 10급 괴물에 기생하는 것치곤 약한 덕도 있었다.
“고고고!”
괴물은 비틀거리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충격으로 등에 올라탄 원정대와 구더기 인간 전원이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크으으윽!”
난 무릎을 꿇으며 겨우 자세를 유지했다.
전력의 3배.
혹은 그 이상.
이렇게 많은 양의 H력을 다루는 것은 처음이었다.
치료술사들 덕에 H력은 바닥날 겨를이 없었다. 힘이 무한히 솟았다.
구더기 인간들과 원정대는 몸을 일으키며 전투를 계속했다.
사방에서 울리는 비명 소리와 기합 소리.
서로를 부르는 다급한 목소리가 끊임없이 교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