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
237.
박치기의 충격으로 우태훈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그의 눈동자가 위로 돌아간 걸 봐선 한 방에 기절한 게 분명했다.
“흐흐흐.”
킹은 기절한 우태훈은 옆으로 휙 던지고는 내게 손을 까딱였다.
“와라, 김상팔.”
난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는 앞으로 나서려 했다. 그러나 그때 내 옆으로 다섯 사람이 튀어나왔다.
“아니! 우리가 상대해 주마.”
아란, 루호, 남주나. 나까지 합해서 최후의 4인이었다.
남주나는 손을 뻗으며 다른 사람들을 뒤로 물러서게 했다.
“내가 혼자 쓰러뜨리겠어. 이건 내 개인적인 복수전이거든!”
남주나의 말에 쓰러져 있던 마다랑, 김두, 갈리, 최마군이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서 말했다.
“우리 아직 안 죽었어.”
남주나는 그들이 뭐라고 하든 홀로 앞으로 나서서 H력을 끌어냈다. 그리고 전신을 붉게 물들이며 능력발현을 했다.
“간다!”
블러드 포스. 전신의 신체 능력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기술이다.
남주나는 붉은 섬광이 되어 빠르게 뻗어 나갔다. 그리고 킹에게 닿기 직전에 옆으로 방향을 틀어 그의 뒤로 돌아가 발차기를 날렸다.
“하앗!”
묵직한 발차기가 적중하면서 킹이 옆으로 날아갔다. 그의 몸은 폐허가 된 발전소를 구르며 잔해와 솟아난 지면을 박살 냈다.
“하아아앗!”
붉은 섬광은 날아가는 푸른 적을 쫓아 계속해서 움직였다. 심지어 날아가는 속도보다 쫓아가는 속도가 더 빨라 순식간에 따라잡았다.
마치 혼자 스쿼시를 하듯, 붉은 섬광은 푸른 물체를 이리저리 튕기며 거의 일방적으로 가지고 놀았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남주나의 속도가 느려졌다. 폭발적인 만큼 그녀의 능력은 오래 지속할 수 없는 부류였던 모양이다.
“하앗!”
하늘 높이 뜬 상태에서 남주나는 킹을 지상으로 힘껏 때렸다.
킹은 지면으로 낙하해 커다란 구덩이를 만들었지만, 금세 툭툭 털고 일어나 씩 웃었다.
“이제 힘이 다 떨어지셨나?”
“크윽!”
남주나는 아래로 떨어지며 킹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그러나 이번엔 킹도 그녀에게 대응할 수 있었다.
“하하하!”
킹은 펄쩍 뛰어올라 떨어지는 남주나와 충돌했다. 붉은빛과 푸른빛은 공중에서 만나 서로 뒤엉키면서 번쩍였다.
그러나 여태까지와는 달리 푸른빛이 점점 커지면서 붉은빛을 집어삼킬 기세로 폭발적으로 커졌고, 둘이 함께 지상으로 떨어지면서는 완전히 역전되고 말았다.
“하하하!”
킹의 주먹은 남주나의 몸을 사정없이 두들기며 피를 흘리게 했다.
“이제 끝인가? 움직임에 비해서 맷집은 별로인데?”
남주나는 킹의 조롱에 입술을 질끈 씹으며 얼굴을 찌푸렸다.
“아직이야!”
남주나의 몸에서 불꽃처럼 빛이 뿜어졌다. 그러나 잠깐 번쩍일 뿐, 금방 수그러들며 약해졌다.
“죽어라!”
킹은 빠르게 앞으로 튀어 나가며 남주나를 향해 곧게 편 손을 뻗었다. 그러나 손이 닿기 직전, 그녀의 뒤에서 아란이 튀어나와 발로 녀석의 손을 걷어찼다.
“뭐, 뭐 하는 거야?”
남주나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아란에게 소리쳤다. 아란은 자세를 취하며 그녀의 앞에 섰다.
“이미 한계세요. 여기서부턴 저희가 맡을게요.”
아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의 옆에 루호와 내가 섰다.
“시간을 벌어 주세요.”
“어!”
루호는 능력발현으로 전신에 사슴갑옷을 만들어 입고, 난 육체를 거구화시켰다. 우리가 킹에게 덤벼드는 동안 아란은 뒤에서 다리에 힘을 모았다.
“더, 더, 더…….”
“으아아아!”
우리는 양쪽에서 킹을 에워싼 채 주먹과 다리를 휘둘렀다.
“하하하!”
킹은 우리 둘을 상대로 어떤 공격은 피하고, 어떤 공격은 그냥 맞으면서 우선 날 공격했다.
“하앗!”
난 H력을 뿜어내며 육체의 내구도를 올렸다. 그리고 직접 킹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 냈다.
“크윽!”
킹은 순간적으로 몸을 낮춰 내 복부를 힘껏 걷어찼다.
몸이 단단한 것과 공격을 버텨 내는 것은 별개. 난 킹의 발에 걷어 차여 뒤로 쭉 날아갔다.
“젠장.”
내가 날아가자, 루호는 즉각 H력을 뿜어내서 갑옷사슴으로 변했다. 그리고 거대한 발을 높이 들어 킹을 밟았다.
굳이 힘을 실지 않아도 거대한 덩치에서 오는 위력에 킹은 밀리고 말았다.
쿵. 킹은 사슴의 발굽에 그대로 찌그러지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T는 발을 들어서 몇 번이고 킹을 짓밟았다.
쿵쿵쿵. 킹은 지면 속으로 파고들다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며 양손으로 사슴의 발굽을 떠받쳤다.
“하아아앗!”
사슴의 육중한 발이 위로 붕 뜨면서 몸통 전체가 위로 일어섰다.
“하앗!”
킹은 펄쩍 뛰어서 사슴의 머리를 주먹으로 때렸다. 그러자 사슴이 옆으로 벌러덩 넘어지면서 스르르 변신이 풀렸다.
“지금이다!”
난 킹이 루호를 쓰러뜨리면서 생긴 빈틈을 파고들었다. 그가 아직 양팔을 위로 올리고 있는 무방비 자세일 때 뒤에서 킹을 공격했다.
“크아아악!”
난 거구의 방어력을 무기로 오로지 공격에만 집중했다.
킹은 내 무식한 전법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압!”
난 곁눈질로 아란을 살피며 외쳤다.
“준비되면 언제든 공격하세요!”
“네, 팀장님!”
“하아아압!”
난 H력을 뿜어내며 완전히 킹을 끝장내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내 공격을 받던 킹의 움직임은 점차 빨라지고 있었다.
“하아아앗!”
난 H력을 뿜어내면서 모든 힘을 짜냈다.
“하하하!”
나와 킹은 서로 상대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 내며 공격에 모든 것을 걸었다. 방어 없이 순수한 공격만 주고받는 치킨게임이 시작됐다.
“크으으윽!”
킹의 주먹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쉬지 않고 내 몸을 두드렸다.
점점 속도가 빨라지더니, 나중엔 고무탄을 기관총으로 갈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반면에 그는 점차 내 공격에 적응해 공격을 완벽하게 피하기 시작했다.
“하하하! 난 무한히 진화한다!”
킹은 날 압도하며 내 안면에 주먹을 꽂았다. 난 시야가 일그러지는 와중에도 어금니를 씹으며 필사적으로 버텼다.
“크윽!”
“하하하!”
킹은 내가 공격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는 마구잡이로 펀치를 날리며 날 두들겨 팼다.
“크아아악!”
“하하하!”
난 지금까지 킹을 때린 것보다 더 심하게 그에게 얻어터졌다. 거구화로 한층 성장했지만, 킹은 그 이상 강해져 있었다.
“팀장님, 다 됐어요!”
한줄기 빛과 같은 외침. 난 처맞는 와중에 활짝 웃으며 기꺼이 옆으로 몸을 날렸다.
“녀석이 더 이상 강해지지 않도록 멈추게 해야 돼요!”
내 말을 들은 것인지, 아란은 힘껏 외쳤다.
“차갑게!”
아란은 최강의 냉기를 지닌 다리로 내 옆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가 킹의 가슴에 발 도장을 찍었다.
“커어어……억!”
킹은 순식간에 얼어붙어 그 자리에 멈춰 서고, 그와 아란의 주변 전체에 서리가 끼면서 하얗게 변했다.
“좋았어!”
난 느긋하게 얼어붙은 킹의 옆으로 갔다. 그리고 아란과 함께 꽁꽁 언 그의 모습을 관찰했다.
“잘했어요, 아란 양.”
“최대한으로 얼렸는데……앗!”
얼음이 된 킹의 눈이 움직이며 우릴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난 얼른 양손에 깍지를 껴서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철퇴처럼 손깍지를 휘둘러 킹의 머리를 쳐냈다.
툭. 킹의 머리가 목에서 떨어져 데굴데굴 굴렀다. 아란과 난 킹의 육체를 잘게 쪼개면서 파괴했다.
“후우.”
우리는 심호흡을 하면서 부서진 킹의 조각들이 녹는 것을 지켜봤다. 혹여나 녹자마자 부활할 것을 대비해 우리는 각자 H력을 모았다.
“크어어어…….”
천천히 조각들이 녹으면서 킹은 아주 서서히 죽음을 맞이했다.
킹의 육체는 작은 유리 조각처럼 반짝반짝 빛나다가 부르르 떨면서 더 작게 분열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존재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조각 하나하나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지켜보며, 우리가 그것을 확신하는 데에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어휴.”
난 능력을 해제하며 안심하고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저희는…….”
응?
아란이 내 등 뒤에서 속삭이듯 물었다.
“저희는 사냥을 한 걸까요, 아님 살인을 한 걸까요?”
“그건…….”
난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분명 협회에선 그를 괴물이라 선언했지만, 마지막에 다다른 킹은 분명 인격을 갖고 있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난 뒤로 벌러덩 드러누우며 눈을 감았다.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고, 생각할 힘도 없었다.
***
며칠 후 협회 본부는 공식적으로 플레잉의 붕괴를 선언했다. 아직 잔당이 남긴 했지만, 예전처럼 조직적인 활동은 불가능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난 병원에 입원한 순간부터 사방에서 취재 요청을 해 오는 사람들 때문에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입원해 있어야 했다.
내 특이 체질에 대해선 지부의 배려로 비밀에 부쳐졌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방문이 열리며, 디마가 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손에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상팔 씨, 축하해요.”
웬 축하?
난 디마가 주는 꽃다발을 받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게 뭐죠?”
“협회 본부에서 보내온 선물이죠. 또한 이것과 함께 수고비가 계좌에 입금됐을 거예요.”
“그래요?”
난 별 기대 없이 휴대전화로 계좌를 확인했다.
흥, 많이 줘봐야 몇 억…….
[입금 : 500,0000,0000원]
“오백……!”
“상팔 씨와 제가 발견한 알약의 가치가 아주 높게 책정된 모양이에요.”
알약?
“설마 협회에서 그걸 연구하려는 거예요? 그게 어떤 부작용을 낳는지 잊었어요?”
디마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협회에선 잘만 연구하면 앞으로 능력자들에게 유용한 물건이 나올 거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협회도 생체 실험한대요?”
난 다소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그러자 디마는 능글맞게 웃으며 문으로 향했다.
“그럴 리가요. 그럴 땐 ‘지원자’라는 게 있잖아요?”
디마는 불쾌한 대답을 남긴 채 병실을 나섰다. 역시 녀석은 속을 알 수가 없어서 짜증난다.
“후우, 함께해서 힘들었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난 중얼거리며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상체만 세운 채 TV를 틀었다.
―네! 저는 지금 한국지부의 이서현 지부장님과 함께 있습니다. 지부장님 안녕하세요?
TV에선 이서현과 캐스터가 나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네, 안녕하세요.
―이번에 지부에서 특별한 발표를 하신다고요?
―네. 지금이 바로 적기라고 생각해서요.
이서현은 자신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지금 이 방송을 보고 계신 헌터 여러분! 지금이야말로 한반도 최강의 괴물인 ‘민머리용’을 사냥할 때입니다!
“민머리용!”
한반도에서만 서식하는 드래곤이자, 10급의 괴물.
딱 두 마리가 발견됐고, 작년에 지부에서 대대적으로 한 마리를 사냥하면서 지금은 단 한 마리만 남게 되었다.
물론 그 대가로 지부의 2군은 완전히 작살이 났다.
―전 작년보다 올해 전력이 더 강하다고 확신합니다. 이미 로얄과 2군, 그리고 몇몇 분들껜 연락이 갔을 겁니다.
따르릉. 내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자 표시는 한국지부였다.
“후우, 정말 쉴 새가 없네.”
난 허탈하게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물론 통화 내용은 예상한 그것이었다.
결국 난 전화를 받은 직후 퇴원 절차를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