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헤드헌터 김상팔-231화 (231/250)

231.

231.

난 자세를 낮추며 정면에서 덮쳐 온 압력에 저항했다. 그러나 차원이 다른 힘에 밀려서 그대로 쭉 뒤로 날아갔다.

“으아아악!”

데굴데굴 구르던 내 몸은 여러 손길 덕에 겨우 멈출 수 있었다.

“K! 괜찮아?”

A를 비롯해 다른 능력자들이 내 몸에 H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대충 디마에게 들었어. 넌 다른 사람의 H력을 빨아들이면 더 강해진다면서? 그렇다면, 우리의 힘을 너에게 몰아줄게.”

엄청난 양의 H력이 몸으로 흘러들어왔다.

“이봐! 뭐 하는 거야?”

킹은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하더니, 다시 몸을 분열해 스르르 사라졌다.

기척으로 봐선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어딜……!”

C와 J가 내 앞으로 달려가 보이지 않는 적에 맞서 싸웠다. 두 사람은 수백은 될 킹에게 맞서서 시간을 벌어 줬다.

“크아아악!”

두 사람은 고통스럽게 소리치며 버텼다. C의 사지는 이리저리 꺾이고, J의 검은 두 동강이 나서 휘리릭 날아갔다.

그 사이 다른 다섯 명에게서 H력을 넘겨받은 내 몸에는 또 한 번의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으으으윽!”

슈트를 착용한 상태에서 전신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난 능력을 해제하려고 했지만, 어쩐 일인지 슈트는 사라지지 않았다.

덕분에 전신이 슈트에 꽉 끼어서 무슨 풍선처럼 슈트가 빵빵하게 부풀었다.

금방이라도 슈트의 내부 압력에 의해 몸이 터져서 곤죽이 될 것 같았다.

“뭐, 뭐야?”

얼굴까지 헬멧에 착 밀착되고, 시야가 바이저에 눌려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 죽는 건가?

아니었다.

슈트 속 내 몸은 슈트 안면에 찰싹 달라붙어 빠르게 융합되었다.

마치 처음부터 슈트와 한 조직이었던 것처럼 피부와 근육이 뒤섞이면서 육체가 성장하는 감각이었다.

내 육체를 흡수한 채 슈트는 거구의 형체로 변해 갔다. 슈트의 표면에는 지금까지와 달리 근육의 미세한 형상이 나타나면서 여러 굴곡과 주름이 생겼다.

“엥?”

바이저 부분도 두 개로 나뉘면서 눈처럼 변했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플라스틱을 서로 문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오!”

원래라면 바이저 외 헬멧에 없어야 할 입이 쩍 벌어지면서 입안으로 직접 신선한 공기가 들어왔다.

난 주먹을 꽉 쥐면서 힘이 넘치는 것을 만끽했다. 갑자기 평범한 신체에서 최고 수준의 보디빌더가 된 기분이었다.

“이길 수 있어!”

난 확신과 함께 앞으로 나섰다.

C와 J는 완전히 뻗어서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간다!”

난 달려가면서 양팔을 넓게 벌렸다. 그리고 그냥 몸으로 전방에 있는 기척들을 쓸어 담으며 힘으로 밀어붙였다.

“이, 이럴 수가!”

당황한 킹의 목소리에 확신했다.

이길 수 있다!

난 킹의 기척들을 닥치는 대로 공격했다.

우선 개체 둘을 양손으로 각각 잡아서 둔기처럼 휘두르면서 주변의 개체들을 싹 쓸어버렸다.

그런 다음 아예 대여섯을 양손으로 붙잡고 멀리 집어던졌다.

날아간 개체들은 근처 수풀과 나무를 깨끗하게 밀면서 사라졌다.

“하아아앗!”

“크윽!”

남은 개체들은 하나로 합쳐졌다. 당연히 다시 킹의 모습이 육안으로 볼 수 있도록 똑똑히 나타났다.

“역시 센이 사람 보는 눈이 있나 보군. 아니면 그저 우연의 산물? 모르겠군.”

킹은 입을 쩍 벌리며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주변을 집어삼킬 기세로 공기를 빨아들였다.

“그렇다면, 나도 전력으로 가 주마.”

킹은 입을 꾹 다물고는 H력을 내뿜어 전신을 감쌌다.

“으아아악!”

킹은 고통스럽게 고함을 치면서 점점 위로 떠올랐다. 그의 몸은 H력으로 감싸져 고치처럼 변했다.

꼭 아까 본 실험관 같았다.

“무,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거지?”

고치는 빠르게 커졌다.

난 고치에 광탄을 쐈지만, 역시나 별 소용은 없었다.

“그렇다면, 주먹으로!”

펄쩍 뛰어서 고치로 날아들었다. 그리고 주먹으로 냅다 후려쳤다.

역시!

고치는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지면에 추락했다.

“와!”

아래에서 올려다 볼 때보다, 위에서 내려다볼 때 고치의 크기가 실감이 났다.

족히 10m.

거대하단 표현이 딱 알맞은 크기였다.

“쳇!”

난 지면에 착지하자마자, 곧장 다시 고치에 덤벼들었다. 그리고 힘껏 주먹을 질러 고치를 때렸다.

“하앗!”

‘뻥’소리와 함께 고치가 폭발하면서 쭈글쭈글 형체가 가라앉았다.

“터졌나?”

난 고치 주변을 빙빙 돌면서 상태를 살폈다. 내가 주먹을 지른 부분 반대편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내용물은……?”

“사, 상팔 씨!”

디마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날 불렀다. 그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하늘을 가리켰다.

“응?”

난 디마의 손을 따라 내 위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와!”

달밤의 악마.

밤하늘에 뜬 보름달 바로 아래, 날개를 단 인간의 형상이 있었다.

달빛을 정면으로 받았음에도 새까만 전신은 칠흑 같은 어둠에 녹아서 잘 보이지 않았다.

악마는 등에 달린 네 장의 날개를 살짝 움직이며 우아하게 착지했다.

“어떤가?”

킹의 목소리.

악마가 된 킹은 거대한 신체로 우리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서 인사를 했다.

“자기소개를 하지. 이제 내 이름은 킹이 아니야.”

킹이 고개를 들자, 그의 몸이 서서히 줄어 2m 정도가 됐다.

“지금부터는 날 ‘엠퍼러’라고 불러주게.”

황제가 된 왕.

엠퍼러는 양손에 주먹을 꽉 쥐며 전신에 힘을 줬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그의 전신처럼 검은색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H력과 다른데?”

난 그 불길한 기운에 지지 않기 위해 전신에서 H력을 뿜어냈다.

내 아지랑이와 엠퍼러의 아우라가 중간에서 만나자, 놀랍게도 서로 마찰을 일으키며 불꽃이 튀었다.

“서로 최선을 다해 보자고.”

“그래.”

난 전력으로 엠퍼러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상체를 비틀어 어깨로 그의 복부를 찔렀다.

“하아아앗!”

할 수 있다!

엠퍼러는 내 어깨에 찍혀 뒤로 쭉 밀려났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경악보단 감탄이었다.

“후후후. 잘하고 있어!”

우리는 한 덩이가 되어 그대로 나무가 우거진 정글로 들어갔다.

나무가 부러지고, 수풀이 뽑히며, 바위가 박살 나면서 우리가 지나간 길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하아아앗!”

내 돌진이 멈춘 것은 엠퍼러의 등이 높은 절벽 아래 부딪치며, 절벽 아래가 깊게 파이고 나서였다.

“후후후!”

엠퍼러는 우리의 이동이 멈추자, 양손으로 날 힘껏 밀었다.

“크으으윽!”

우리는 서로를 밀어내려 힘을 줬다. 우리의 발아래와 엠퍼러가 등은 댄 절벽이 넓고 깊게 패이며 지형이 깎여 나갔다.

“으아아아!”

난 어깨를 떼면서 엠퍼러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리고 주먹으로 마구 그의 육체를 두들겼다.

“아다다닷!”

“하하하!”

엠퍼러는 처음 몇 대를 맞다가, 호탕하게 웃으며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 주먹을 부딪치며 육체의 강도로 승부했다.

육체가 곧 최강의 무기이자 방패. 막는 것 따위는 사치, 방어 동작이라고 해 봐야 주먹으로 상대방의 주먹을 쳐내는 것뿐이었다.

주먹과 주먹이 서로의 육체를 파괴하기 위해 움직였다.

고통보단 고동, 공포보단 투지가 솟구쳤다.

“하앗!”

엠퍼러의 육중한 주먹이 내 얼굴에 직선으로 꽂혔지만, 난 뒷목에 힘을 주며 꿋꿋이 버텼다.

그러면서 오히려 녀석의 주먹 하나가 나에게 꽂힌 틈을 타 녀석의 옆구리를 힘껏 때렸다.

“쿠오오오!”

엠퍼러의 입에서 처음으로 신음 소리가 나왔다.

난 거기서 계속 공격을 이어 갔다. 옆구리 다음엔 갈비뼈, 그 다음엔 겨드랑이. 주먹은 계속해서 급소를 노렸다.

“크아아악!”

엠퍼러는 내 공격을 맞으며 양손에 깍지를 꼈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내 뒤로 이동, 둔기와 같은 깍짓손으로 내 머리를 후려쳤다.

“으아아악!”

난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땅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그러자 엠퍼러의 발길이 내 뒤통수를 마구 짓밟았다.

“죽어라!”

쿵쿵. 한 발, 한 발의 위력이 내 머리를 통과해 지면을 떨게 했다.

난 옆으로 구르면서 무시무시한 발바닥을 피했다. 그리고 하반신을 튕겨서 엠퍼러의 다리를 걸었다.

“하아아앗!”

역전! 이번엔 엠퍼러가 땅바닥에 쓰러졌다. 난 재빨리 몸을 일으켜 쓰러진 그를 위에서 덮쳤다.

“받아라!”

난 엠퍼러의 목과 다리를 뒤로 비틀며 강하게 당겼다.

“크아아악!”

엠퍼러는 제대로 관절기에 당한 채 신음했다. 최고 수준의 육체를 지닌 그가 관절기에 약할 거라곤 기술을 건 나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하긴, 애초에 이 인간한테 관절기를 걸려면 상대도 그에 못지않은 신체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엠퍼러는 등에 달린 날개를 펄럭이더니, 나와 함께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엥?”

내 몸은 엠퍼러에 엮여서 하늘 높이 떠올랐다.

“떨어져!”

엠퍼러는 몸을 360도로 회전하며 날 지면으로 떨어뜨렸다. 물론 강화된 나에게 이 정도 추락은 별거 아니었다.

“도망칠 셈이냐!”

난 두 다리로 안전하게 착지한 후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러자 공중에 뜬 엠퍼러가 나에게 손을 뻗은 채 검은 아우라를 모으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아아압!”

나도 엠퍼러를 따라 서둘러 양손에 H력을 모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엠퍼러는 응축된 아우라를 한꺼번에 해방시켰다.

“광포!”

광포. 엠퍼러의 주먹에서 검은 아우라가 일직선의 빛이 되어 내게로 뿜어졌다.

검은빛의 광포를 본 순간 난 경악했다.

단발이 아닌 줄기.

인간의 수준을 초월한 막대한 양의 H력이 없으면 절대 할 수 없는 기술이었다.

검은빛. 뭔가 은은하면서도 밤하늘과는 분명하게 차이를 보이는 색이었다.

마치 우주 같다.

난 수많은 광탄 응용 기술을 익혔기에 검은 광포의 기본 원리를 빠르게 눈치챌 수 있었다.

“광포!”

난 엠퍼러에게 손을 뻗으며 손끝에서 에너지를 쏟아 냈다. 어마어마한 H력을 가공해서 만든 빛줄기는 검은 광포를 향해 똑바로 날아갔다.

“하아아앗!”

두 광포는 허공에서 만나며 사방으로 빛을 뿜어냈다. 흑백. 두 빛줄기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를 밀어내려 애썼다.

“어떻게 나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거지? 난 모든 실험체의 힘을 빨아들였단 말이다!”

엠퍼러는 고통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난 그런 그를 비웃으며 더 힘을 짜냈다.

“알 게 뭐야!”

내 환한 광포가 검은 광포를 밀어내면서 전진했다.

엠퍼러는 절규했다.

“으아아악!”

엠퍼러의 몸이 광포에 잡아먹히며 하늘 높이 쭉 날아갔다. 하늘에는 온통 환한 빛이 번쩍였다.

“하아, 하아, 하아…….”

난 거친 숨을 내쉬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엄청난 양의 H력을 쓴 것에 대한 반발인지 비대할 정도로 거대하던 육체가 잔뜩 쪼그라들어 있었다.

마치 온탕에 있다가 냉탕에 들어온 감각이었다.

“이긴 건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응?”

아마존 정글 하늘 위에 뜬 무한한 숫자의 별들. 그것들 중 가장 크게 빛나는 하나가 점점 커지며 가까워졌다.

“별이 아니구나!”

엠퍼러였다.

그는 내 앞에 있던 절벽에 별똥별처럼 추락했다. 엄청난 굉음이 나면서 절벽이 와르르 무너졌다.

“젠장.”

무너진 잔해 속에서 엠퍼러가 걸어 나왔다. 그는 전신이 엉망진창이 된 채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 이 자식……!”

엠퍼러는 갈가리 찢긴 날개를 접어서 등에 딱 붙였다. 그리고 몸을 웅크리며 기합을 외쳤다.

“하아아압!”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