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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229화 (229/250)

229.

229.

“최고예요!”

난 엄지를 치켜세우며 A에게 말했다.

A는 고개를 끄덕이며 영어로 무어라 떠들었다.

“아……!”

A가 일으킨 폭발의 여파로 이어폰을 잃은 우리는 몸짓으로 대화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A의 손짓에 의하면, 기절한 사람들은 한동안 깨어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A가 일으킨 폭발은 사람에게 충격을 줘 기절도 시키지만, 일종의 EMP처럼 전자 기기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든 자동문을 일일이 손으로 열면서 지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거기서 대기 중이던 지원 부대를 만나 킹을 생포할 수 있었다.

“상팔 씨!”

기지로 귀환하자, 붕대를 멘 디마가 병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우리를 환영해 줬다.

“이제 나머지 잔당들을 일망타진하면 돼요!”

병사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잡아 온 킹을 감금실로 옮겼다.

킹은 안대를 쓴 채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순순히 병사들을 따랐다.

그날 밤. 기지에서는 승리를 축하하며, 조촐한 환영 파티가 열렸다.

“하하하! 우리가 이겼다고!”

우리는 새로운 이어폰을 낀 후 서로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A가 그렇게까지 대단할 줄은 몰랐어. 그런 강력한 능력을 지녔다니, 부러운데?”

C가 A를 치켜세우며 잔을 들었다. 그러자 A가 고개를 저으며 C의 잔에 자신의 것을 부딪쳤다.

“충분히 시간을 들였기에 그만 한 위력이 나온 거야. 솔직히 이렇게까지 강력하게 써 본 건 오늘이 처음이야. 하하하!”

“흥, 아쉽군! 내 능력으로 한 번 붙어 보려고 했는데…….”

R은 자신의 근육을 뽐내며 잔을 홀짝였다.

“그건 그렇고, 자네도 꽤 제법이었어. 외모를 보아하니, 한국 출신이겠지?”

T가 내 등을 두드리며 물었다.

규칙상 서로 개인적인 질문은 금지. 난 어깨를 으쓱이며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좋아, 좋아. 사소한 건 넘어가자는 거지? 하하하!”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은 없지만, 다들 즐겁게 떠들며 술을 마셨다.

분명 조금 전까지 생사의 전투를 하며 상당한 부상을 입었을 터인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주 말짱했다.

“마시자!”

연거푸 술잔을 원 샷.

어찌나 잘 마시는지 내가 한 잔 마실 동안 다른 사람들은 예닐곱 잔을 마셨다.

“하하하!”

술에 취해 하나둘 쓰러지고, 남은 사람은 나뿐이었다.

“후우.”

난 물로 입안을 헹구며, 막사를 나왔다. 그리고 점점 지고 있는 달을 올려다봤다.

잭과 퀸은 사망.

킹은 구금됐다.

“왜 이겼는데, 이긴 것 같지가 않을까?”

찝찝하다.

킹은 정말 무력화된 걸까?

난 그런 의구심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그가 갇혀 있는 구금실로 향했다.

“수고하십니다. 킹…….”

구금실 막사로 들어선 순간 사고가 정지했다.

분명 킹이 있어야 할 구금실 문이 활짝 열려 있고, 그 앞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은 목이 잘려 있었다.

킹은 어디 있지?

“이런 젠……!”

갑자기 등골이 오싹했다.

난 능력발현으로 슈트를 착용했다. 그러자 그 직후 뒷목 쪽에 뭔가가 날아와 세게 부딪치며 내 몸을 앞으로 밀었다.

“커억!”

목이 뒤로 꺾이며 숨이 턱 막혔다. 만약 슈트가 없었다면…….

“오호?”

킹의 목소리.

난 뒤로 돌면서 자세를 고쳤다. 그리고 내 앞에 선 킹을 두렵게 쳐다봤다.

“자네는 감이 좋군. 하지만 그런 것치곤 그다지 강한 건 아닌 모양인데?”

킹은 히죽 웃으며 양 손바닥을 보였다.

“난 무기 같은 건 쓰지 않아. 그런 것 없이도 목 따는 데 전혀 지장이 없거든.”

킹은 양손을 빠르게 흔들었다. 그러자 두 손이 수십 개로 늘어난 것 같은 잔상이 생겼다.

“내 손의 실체를 볼 수 없다면, 날 이길 수 없어.”

“으아아아!”

다른 사람들은 술에 취해서 싸울 수 없는 상황. 난 홀로 H력을 뿜어내며 전력을 끌어올렸다.

“후후후.”

킹은 또 모습을 감췄다. 그것은 공격의 신호. 난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최대한 정신을 집중했다.

“와.”

주변에 족히 수십 명. 그것도 전부 뛰어다니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내가 단순히 빠른 거라고 생각하나?”

사방에서 동시에 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말처럼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이래서야 다른 녀석들과 다를 게 없잖아?”

입체 음향으로 목소리를 들으니까, 좀 소름이 끼친다.

난 양손에 광권과 광탄을 만들어내서 그대로 폭발시켰다. 덕분에 막사 안 유리는 죄다 깨지고, 커다란 폭음이 쩌렁쩌렁 울렸다.

“크윽!”

킹의 신음 소리와 함께 그의 기척이 사라졌다. 그리고 기지 전체에 알람이 울리며 병사들이 우르르 구금실 막사 주변을 에워쌌다.

“으아아악!”

수많은 비명 소리. 막사 밖 병사들의 비명이 바이러스처럼 전염되어 갔다.

난 서둘러 막사를 나갔다.

“뭐야?”

어두운 새벽. 조명에 의해 밝혀진 바닥에는 온통 피바다였다.

병사들은 겁에 질린 채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며 벌벌 떨고 있었다.

킹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제길……!”

어디로 도망쳤지?

난 필사적으로 냉정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바닥을 살피며 발자국을 찾았다.

“있다!”

막사 근처에서 점점 기지 바깥으로 움직이는 발자국.

피가 발바닥에 눌려 응어리가 지면서 똑똑히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난 이어폰으로 디마를 부르며 흔적을 쫓아 기지를 나섰다. 기지 바깥으로 발바닥 모양의 핏자국이 이어져 있었다.

―무슨 소란이죠? 바깥에 아주 난리가 났네요?

디마의 답신.

난 간략하게 상황을 요약했다.

―그렇군요. 그럼 상팔 씨는 추적을 계속해 주세요. 병사들을 편성해서 금방 뒤따라갈게요.

발자국이 이어진 곳은 놀랍게도 몇 시간 전까지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플레잉의 비밀 기지였다.

난 서둘러 디마에게 연락했다.

“아무래도 킹은 비밀 기지로 도망친 것 같아요.”

―예? 확 트인 정글이 아니라 고립된 비밀 기지로 갔다고요?

“저희가 모르는 탈출 통로라도 있는 걸까요?”

―그럴지도 모르죠. 일단 그쪽에 남겨 두고 온 병사들이 있으니, 그들과 연락해 놓겠습니다.

난 트럭을 타고 온 길을 뛰어가 비밀 기지에 다다랐다. 아무리 H력으로 강화시켜도 차 타고 온 길을 다리로 뛰고 오는 건 체력적으로 버거웠다.

“헥, 헥! 죽겠다.”

비밀 기지 입구에 서서 몇 번 크게 몰아쉬며 짧은 휴식을 취했다.

―상팔 씨 말씀대로 킹은 비밀 기지 내부에 있는 모양이에요. 일단 병사들을 시켜서 감시하고 있어요. 현재 위치는…….

디마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이상하다는 듯 작은 목소리로 무어라 중얼거렸다.

“위치가 어딘데요?”

―위치가 지하 4층의 창고예요.

“예?”

뭔가 이상하다. 왜 스스로 고립된 지형에 들어갔을까?

난 뭔가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얼른 비밀 기지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 4층 창고.

활짝 열린 문 옆에 바짝 몸을 붙이고는 창고 내부를 살폈다.

“아무도 없는데요?”

―그럴 리가요? 병사들 보고에 따르면, 그 안으로 들어간 게 맞아요. 일단 저희도 거의 다 왔으니까, 상팔 씨는 대기…….

“크윽?”

갑자기 이어폰이 노이즈를 내며 귀에서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달팽이관을 후벼 파는 것 같은 찌릿한 통증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발!”

난 신경질적으로 귀를 털었다. 그러자 귓속에 남아 있던 이어폰의 잔해가 귀지처럼 쏟아졌다.

“이리 오게.”

흠칫.

창고 안에서 킹의 음성이 들려왔다.

“겁먹지 말고 오게나. 재미있는 걸 보여 주지.”

엄청나게 수상한데?

“만약 들어오지 않는다면 맹세컨대, 앞으로 수십 구의 시체를 더 보게 될 거야. 하지만 들어오면……순순히 투항해 주지, 어떤가?”

솔깃하지만, 분명 함정이다. 그러나 나는 그 함정에 걸려 들어주기로 했다. 천천히 창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신경을 곤두세웠다.

“후후후.”

사방에서 킹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좀 더 와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에게는 진실을 보여 주고 싶거든.”

진실?

가장 깊은 안쪽 벽 밑으로 무슨 통로 같은 것이 드러나 있었다.

“또 비밀 통로?”

몸을 낮춰 통로로 들어갔다. 그러자 아래로 이어진 계단이 보였다.

숨겨진 지하 5층.

난 발소리를 죽이며 조심조심 아래로 내려갔다.

사방은 온통 어둠. 조명 하나 없어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난 고개를 돌려서 내가 내려온 계단을 쳐다봤다. 4층에서 내려쬐는 조명이 계단 주변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그냥 다시 올라갈까?

그때 천장의 불이 일제히 켜지며 층 전체가 밝아졌다. 그리고 상상을 초월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 이게 뭐야?”

실험관.

바닥에서 천장까지 사방에 족히 수백은 될 커다란 실험관이 쌓여 있었다.

원기둥 형태의 유리 기둥 안은 초록색 액체 같은 것으로 가득 차 출렁였다.

“플레잉의 배후가 누구일지 생각해 본 적 있나?”

플레잉의 배후?

“당신이 아닌 거야?”

난 어디 있는지 모르는 상대를 향해 크게 소리쳐서 물었다.

“플레잉은 일종의 껍데기일 뿐이야. 그냥 되는 대로 붙인 이름이지. 처음엔 친구들끼리의 작은 소모임에 불과했거든.”

“모습을 드러내!”

“처음 시작했던 건 여덟이지만, 지금은 수만 명으로 불어났지. 이젠 센마저 사라지고, 나 혼자 남았지만…….”

여덟? 센?

“설마 당신도……?”

H8? 최초의 능력자들?

“너도 분명 센이 만든 약물의 덕을 봤겠지? 녀석이 그런 걸 어디서 만들었을까?”

실험관들이 번쩍하면서 일제히 내부가 비쳐 보였다. 그 안에는 각각 사람으로 보이는 형상이 들어 있었다.

난 혼란스런 와중에 다리 힘이 풀려서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여긴 센이 만든 약의 기초 데이터를 뽑아낸 곳이야. 녀석은 자신이 사용한 정보가 인체 실험으로 나왔단 사실은 꿈에도 몰랐거든. 진실을 알려 줬다간 협력하지 않았을 테니까…….”

킹은 어느새 내 옆에 서있었다. 기척이고, 뭐고 조금도 눈치챌 틈이 없었다.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설비, 기술, 자원 등등 모두 세계 각국의 정부에서 비밀리에 지원받은 것들이야. 그들 눈에 우리 같은 능력자는 2등 시민이거든. 즉, 소모품이지.”

킹은 실험관들을 가리켰다.

“협회를 만들고, 각국에 지부를 만든 것도 통제와 관리를 위한 것일 뿐, 실제로는 지부에서 한다는 일은 능력자보단 비능력자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어. 안 그런가?”

난 씁쓸한 심정으로 묵묵히 킹의 말을 들었다.

“결국 너희가 무너뜨려야 할 건 우리가 아니야. 능력자를 차별하는 세상이야. 안 그래?”

킹은 뚜벅뚜벅 걸어서 내 앞에 섰다.

“H8로 시작했지만, 결국에는 나 혼자 남았어. 센이 자넬 꽤나 아꼈다고 하던데, 어때? 함께하지 않겠나?”

킹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난 뚫어지게 그의 손끝을 쳐다봤다. 그러자 잡음처럼 머릿속에서부터 어떤 소리가 울렸다.

아저씨의 마지막.

그 유언과 같은 목소리가 떠올랐다.

“하아.”

난 짧게 탄식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킹의 손을 외면한 채 그의 옆에 섰다.

“좀 뻘쭘한데?”

“거절할 줄 몰랐나?”

“그런 셈이지.”

킹은 실험관들이 있는 방향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뿜어진 H력이 실험관들을 휘감았다.

“뭐 하는 거야?”

난 슈트를 착용하면서 킹에게 광탄을 겨눴다.

“수확하는 거야. 자네의 거절로 이젠 이 녀석들을 살려 둘 필요가 없어졌거든.”

킹의 H력은 와인오프너처럼 실험관 속 인체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거기서 H력을 뽑아내 킹에게로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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