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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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은 그 공격들을 다 일일이 막아 내면서 크게 하품을 했다.
“한심하군. 너희보단 보안실 쪽이 더 흥미롭겠어.”
“뭐라고?”
두 사람은 얼굴을 찡그리며 더욱 강하게 H력을 뿜어냈다. 그리고 더 드세게 잭과 싸웠다.
“후후후.”
잭은 그런 두 사람을 여유롭게 상대했다. 그리고 날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너희 셋은 구제 불능인 모양이야. 물론 그 중에서도 네가 가장 약한 것 같은데?”
“알 게 뭐야!”
난 검기에 집중했다.
“흥! 아까부터 혼자 무슨 수작을 준비하는 거지? 엉!”
잭은 검은 팔 하나를 길게 늘려 날 노렸다.
“젠장!”
검기에 너무 집중한 탓에 잭의 팔을 미처 피할 틈이 없었다.
“하압!”
로커더미가 무너지면서 그 안에서 C가 튀어나왔다. 그는 내 앞까지 단숨에 뛰어와 잭의 팔을 쳐냈다.
“나도 아직 펄펄하다!”
잭은 팔을 원래 길이로 만든 후 얼굴에서 싹 웃음기를 거뒀다.
“쓰레기들! 별로 강하지도 않은 주제에, 아주 끈질기게 구는군.”
잭은 검은 화염을 크게 폭발시켜 I와 T를 팽개쳤다. 그리고 잠시 여유가 생긴 틈을 타 머리부터 발까지 검은 화염으로 덮었다.
“슬슬 끝내 주마!”
잭은 검은 화염으로 뒤덮인 채 마치 슬라임처럼 꿈틀댔다. 그리고 점점 덩치를 불려 가며 탈의실 전체를 집어삼키려 했다.
“받아라!”
세 사람은 검은 슬라임에게 공격을 가했다. 그러나 아무리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도 슬라임은 전혀 상처를 입지 않았다.
“압살시킬 셈인가?”
세 사람은 공격을 하면서 뒤로 물러날 뿐이었다.
출구는 보안실로 이어진 문. 그러나 그곳은 이미 잭의 형체로 가로막혀 있었다.
“하아아압!”
난 슈트를 해제하면서 검기에 모든 H력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가볍게 팔을 휘둘러 검기를 날렸다.
100퍼센트 전력.
검기는 멋지게 날아가 검은 슬라임의 형체를 양쪽으로 갈랐다. 갈라진 틈으로 내 검기에 베인 잭의 모습이 보였다.
“커어어억!”
슬라임의 형체가 뭉개지면서 원래 모습인 검은 화염으로 돌아갔다.
검은 화염은 보통의 불꽃처럼 공기 중으로 휘날리며 점차 사라졌다.
“됐다!”
다른 세 사람은 기뻐하며 환호했고, 난 모든 힘을 소진한 상태로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크으으윽!”
잭은 오른쪽 어깨부터 왼쪽 옆구리까지 베여서 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겨우 숨만 내쉬는 상태였다.
“방심했어. 설마 제일 약해 보이는 녀석이……쿨럭……! 기껏 알약을 먹고 능력을 강화시켰는데……!”
알약?
잭은 피를 토하며 원망스러운 눈으로 날 노려봤다.
“하지만 날 이겼다고 해서,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킹과 퀸은 나보다 훨씬 강하거든. 후후후!”
최약체란 소리냐?
난 씁쓸하게 잭을 쳐다봤다.
“어서 가자고!”
T가 날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우리는 잭을 뒤로 하고, 보안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충격적인 광경을 보게 됐다.
“와…….”
산 넘어 산.
우리보다 먼저 보안실로 갔던 다섯 중 디마를 뺀 넷이 쓰러져 있는 상황이었다.
“마, 마침 다행이네요.”
디마는 우리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사실 우리도 그다지 여유로운 상태는 아니었다.
“넌 여기서 좀 쉬고 있어.”
T는 날 디마에게 맡겼다.
그런 다음 T, C, I는 셋이서 동시에 눈앞의 적에게 덤볐다.
“오늘 마침 내가 이곳 순찰을 도는 차례라 다행이었어.”
눈앞의 적은 피식 웃으며 자신에게 덤벼든 세 사람을 손짓 한 번으로 가볍게 튕겨 냈다.
“크아아악!”
세 사람은 갑작스런 바람에 날려져 벽에 부딪쳤다.
“혹시 저게 퀸인가요?”
내 질문에 디마는 자기 자신을 치료하면서 답했다.
“맞아요. 엄청난 실력자라 다들 손 쓸 틈도 없이 당했어요.”
퀸은 비쩍 마른 체형에 큰 키를 지닌 여성. 딱 봐도 몸을 써서 싸우는 타입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녀는 보안 컴퓨터 앞에 서서 우리를 가로막고 있었다.
디마는 자신을 응급처치하고, 날 치료했다. 물론 나의 경우엔 상처 치료보단 체력 회복에 가까웠다.
새삼스레 그가 치료술을 할 수 있단 사실이 놀라웠다.
“제가 여러분의 안내원으로 온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치료술 때문이죠. 죄송하지만, 치료가 끝나면 쓰러진 다른 분들을 제 쪽으로 옮겨 주세요. 지금 싸우고 계신 세 분만으로는 절대 못 이겨요.”
“크아아악!”
세 사람은 벌떡 일어서서 다시 퀸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퀸은 이번에도 가볍게 손을 휘둘러 강력한 바람을 일으켰다.
일반적인 바람보단 칼날 바람에 가까운 공격. 바람에 닿자마자 세 사람의 전신에 마구잡이로 상처가 생겼다.
“흥. 공간이 좁아서 제 위력이 안 나오는 걸 다행으로 알아.”
퀸은 콧방귀를 뀌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손짓 하나하나에 기세 좋게 덤빈 세 사람은 전신에 자상을 입고 대량 출혈에 비틀거렸다.
난 디마의 부탁대로 치료가 끝나자마자 쓰러진 다른 사람들을 그에게 옮겨 줬다.
“으아아악!”
한편, 세 사람은 바닥에 쓰러진 채 퀸이 일으킨 바람에 짓눌리고 있었다.
퀸이 손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풍압이 점점 거세져서 세 사람을 뭉갰다.
“우리 좀 도와줘!”
T가 간절한 목소리로 외쳤다.
난 광탄을 만든 후 팔을 비틀면서 힘껏 던졌다. 그러자 광탄은 변화구처럼 나선을 그리며 퀸의 뒤로 날아갔다.
“응?”
퀸은 거의 본능적으로 내가 던진 기습 광탄을 눈치채고는 손가락 하나를 까딱여 바람을 일으켰다.
그녀가 일으킨 바람은 내가 힘껏 던진 광탄의 궤도를 가볍게 휘었다.
“쳇!”
광탄은 멋지게 빗나가 보안 컴퓨터에 떨어졌다.
“앗!”
퀸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그리고 혀를 내두르며 날 가리켰다.
“네가 김상팔이지? 킹한테 들었어. 듣자하니, 너 때문에 한국 조직이 박살 났다면서?”
“나 때문이라기보다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건데?
난 어깨를 으쓱였다.
“각오해라!”
퀸은 두 손을 뻗어 날 노렸다. 그러자 그녀의 손끝에서부터 무시무시한 강풍이 불어와 내 주위를 감쌌다.
“넌 그냥 죽을 수 없지! 아주 갈기갈기 찢어서 형체도 안 남게 해 주마!”
강풍은 소용돌이가 되면서 날 휘감으려 했다.
왠지 적지형하고 싸울 때가 떠오르는데?
난 즉시 슈트를 생성했다. 그러나 적지형의 모래폭풍과는 달리 퀸의 강풍은 내 슈트를 서서히 찢기 시작했다.
“와!”
차원이 다르다.
내 슈트가 찢길 정도라면, 다른 사람들은 버틸 수조차 없을 것이다.
“역시!”
난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힘겹게 다리를 움직였다.
“크으으윽!”
비록 슈트가 몸을 지켜 주고 있다고 해도 풍압에 의한 위력 자체는 슈트를 통과해 몸에 직접적으로 충격을 주고 있었다.
“하아아압!”
난 양팔에 무광권을 만들며 꿋꿋이 걸어갔다. 그러나 아무리 다리를 움직여도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지금이다!”
내가 공격당하는 틈을 타 다른 사람들이 퀸을 공격했다.
J는 길고 곧은 H검을 생성.
D는 하반신을 말의 그것으로 변환.
R은 몸이 번쩍번쩍 빛났다.
세 사람은 쓰러진 C, T, I를 대신해 퀸에게 덤벼들었다. 덕분에 날 공격하던 소용돌이가 그들에게로 방향을 바꿨다.
“받아라!”
J는 퀸에게 가까이 접근. 그녀에게 검을 내리쳤다. 그러나 그의 검은 그녀의 팔에 막혀 튕겨 나갔다.
“뭐야?”
J는 눈살을 찌푸리며 퀸의 팔을 자세히 쳐다봤다. 그녀의 팔에는 마치 갑옷처럼 바람이 둘러져 있었다.
“후후후.”
퀸은 팔을 J에게 뻗었다. 그러자 그녀의 팔에 둘러진 바람이 길게 뻗어서 J를 노렸다.
J는 검을 휘둘러 바람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기체를 검으로 막는 것은 무리였다.
검을 통과한 바람은 칼날처럼 J의 몸을 후벼 팠다.
“크아아악!”
J는 몸을 뒤로 젖혀서 최대한 바람을 피하려 했다. 그러나 바람은 빠르게 그를 감쌌고, 그의 신체를 마구잡이로 벴다.
“그만둬!”
반인 반마의 켄타우로스.
D는 퀸을 향해 힘차게 질주했다. 그리고 그녀가 J에게 집중한 사이, 하반신의 말 다리로 그녀를 치려고 했다.
“쳇!”
퀸은 즉시 바람을 거둬서 자신의 주변에 둘렀다. 그리고 바람의 세기를 키워 D의 돌진을 정면으로 막았다.
“하아아앗!”
D는 바람에 막혀 제자리에 멈춰 섰다.
“지금이야, R!"
R은 D의 신호를 받아 정반대 방향에서 퀸에게 달려들었다.
퀸은 양손으로 힘껏 허공을 휘저었다. 그러자 D를 가로막은 바람이 아예 그를 감싸서 들어 올렸다.
“젠장!”
바람은 D를 통째로 들어서 R을 향해 던졌다.
“으아아악!”
D의 하반신이 R을 깔아뭉개는 순간, R의 몸이 환하게 빛나더니 D를 튕겨 냈다.
“크아아악!”
D는 변신이 풀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으아아아!”
R은 기합과 함께 자신의 몸을 퀸에게 부딪쳤다. 그의 전력을 다한 태클에 퀸은 처음으로 바닥에 쓰러졌다.
“이런 버러지 같은 녀석들!”
퀸은 화를 내면서 넘어진 그대로, 손을 휘저었다.
R은 고작 한 번의 충돌 후,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는 소용돌이에서도 잘 버텼다.
“하아아압!”
다른 사람들이 시간을 벌어 준 덕에 무광권 완성!
난 퀸에게 돌진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열심히 만든 무광권을 터뜨릴 수 있었다.
“크아아악!”
퀸은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다. 그리고 보안 컴퓨터와 충돌해 기계를 손상시켰다.
“좋았어!”
난 쾌재를 불렀다.
그녀가 컴퓨터 위로 떨어진 것이 기회. 우리는 전원 광탄을 만들어 컴퓨터와 퀸에게 발사했다.
퀸이야 이 정도로 조금 생채기 나는 정도겠지만, 컴퓨터는 달랐다.
쏟아진 광탄 폭격에 보안 컴퓨터는 완전히 망가졌다.
디마는 컴퓨터가 불타는 것을 보고는 이어폰으로 기지에 무전을 날렸다.
“작전 성공! 작전 성공! 적의 보안은 무력화됐습니다.”
디마는 무전 후 서둘러 부상자들을 치료했다.
“이 자식들이……!”
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디마를 향해 검지를 뻗어서 가리켰다.
“으악!”
그녀의 손가락에서 총알 같은 무언가가 나와 디마의 심장을 뚫었다.
디마는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다 죽어 버려!”
퀸은 열 손가락을 세워서 우리를 가리켰다. 그러자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기관총처럼 탄환 같은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이고!”
즉시 슈트 생성.
슈트로 탄환 같은 것이 쏟아지는 게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능력을 써서 퀸의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A는 R의 뒤로 피신.
R은 몸을 빛내면서 그냥 탄환을 받아 냈다.
C는 I의 뒤로 피신.
I는 네 개의 팔을 교차해서 겨우겨우 버티고 있었다.
D는 말 다리로 열심히 달리면서 회피.
J는 검을 빠르게 휘둘러 탄환을 쳐내고 있었다.
T는 덩치를 불려서 맷집으로 버티기.
난 디마의 앞에 서서 그를 보호했다.
“감사합니다. 쿨럭!”
디마는 입에서 피를 토했다.
난 간절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버텨 주세요! 곧 지원이 올 거예요.”
“하하…….”
난 정면으로 날아오는 탄환을 쳐다봤다.
형체가 없는 총알.
바람을 다루는 퀸의 능력으로 보건대, 공기를 압축한 게 아닌가 싶다.
“다 죽어라!”
퀸은 이성을 상실했는지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러나 그것도 곧 멈추고 말았다.
갑자기 지하 기지 전체가 흔들리면서 사방에 붉은 알람이 울렸다.
처음에 계획했던 대대적인 공습이 시작된 것이었다.
―비상! 비상! 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