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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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가 바로 입구에요.”
무슨 유적같이 생긴 사원.
한 고고학자가 유적 발굴이란 명목으로 유물을 도굴하려다가 유적 전체를 폭파한 영화 속 장소같이 생겼다.
우리는 더욱 조심하며 디마를 따라 사원 뒤쪽으로 접근했다.
세계 최고의 악당 조직 치곤 입구를 지키는 경비가 한 명도 없었다.
“왜 아무도 없죠?”
난 이어폰을 통해 디마에게 물었다.
디마는 피식 웃으며 주머니에서 작은 나이프를 꺼냈다. 그리고 나이프로 앞에 있는 돌 아래를 휘젓더니, 보란 듯이 내 앞에 나이프를 들어 올렸다.
“오!”
전선에 연결된 작은 몸체, 그리고 유리 렌즈. 바로 초소형 감시 카메라였다.
우리는 그렇게 감시 카메라를 피해서 사원 뒤쪽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지점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다른 곳보다 조금 넓적한 돌 하나가 덩그러니 있었다.
“설마……?”
해치 같은 건가?
아니나 다를까, 디마는 배낭에서 작은 리모컨 같은 것을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돌에 겨누며 버튼을 만지작거렸다.
삐빅. 전자음과 함께 돌이 위로 들려지면서 구멍이 드러났다.
구멍 안으로 사다리 같은 게 보였다.
“그럼 내려갈까요?”
우리는 디마를 따라 사다리를 내려갔다.
“이렇게 줄줄이 내려가다가 놈들한테 들키지 않을까요?”
난 긴장된 목소리로 디마에게 물었다.
“괜찮아요. 여긴 출입구가 아니라 비상 탈출용 통로거든요. 언제 사람들이 비상구에 신경 쓰는 거 봤어요?”
“없죠.”
거참 똑소리 나네.
아래로 내려오자, 지하는 암흑천지에 약간의 기계음만 들렸다. 비상구라 그런지 바로 아래인 이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디마는 배낭에서 스마트폰처럼 생긴 기기를 꺼냈다. 그리고 기기를 조작해 지도 같은 것을 화면에 띄웠다.
“지금 여기 보이는 붉은 점이 바로 저희가 있는 위치예요. 지하 1층이죠. 우리 목표인 보안실은 여기서 지하 3층에 위치해 있어요. 이곳을 장악하고 모든 보안을 해제하면, 군이 공격을 개시할 거예요.”
붉은 점에서부터 나온 붉은 선은 우리가 가야할 길을 따라 지하 3층의 보안실까지 이어졌다.
“이 길로 가는 중에 위험 요소는 단 하나에요. 바로 놈들의 탈의실이죠.”
탈의실?
난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그런 곳을 지나가야 하죠?”
“여기가 그 부근에서 유일하게 감시망이 약한 곳이에요. 악의 조직이지만, 프라이버시는 잘 지켜 주거든요.”
좋은 건가?
의아스러웠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들 움직이죠. 돌발 상황이 생기면 힘써 주세요.”
우리는 어둠에서 나와 환한 통로에 들어섰다. 그리고 벽에 착 달라붙어서 전진했다.
새벽이라 그런지, 아니면 디마가 안내를 잘한 것인지 가는 동안 플레잉 조직원과 마주치지 않았다.
설마하니, 우리가 비상 탈출용 통로로 들어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을 것이다.
지하 3층까지 무사통과.
문제는 3층에 내려와 발생했다.
누군가의 발소리.
맨 앞의 디마가 경고했다.
“숨어요.”
우리는 통로 좌우로 흩어져 나무상자 뒤로 몸을 숨겼다.
“하하하! 내가 그놈 부모를 죽이니까, 표정이 어땠는지 알아?”
“볼만했겠는데? 뭐든 혼자 하는 것보단 여럿이 하는 게 낫지!”
조직원 둘이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혼자서 어떻게 큰일을 해? 모두가 있으니까, 할 수 있지.”
“그럼! 쪽수에서 안 밀려야 자신감이 생기거든. 하하하!”
죽여야 하나?
디마가 무어라 하기 전에 C가 빠르게 앞으로 나섰다. 그를 본 조직원들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주먹에 얻어맞아 정신을 잃었다.
C는 기절한 조직원들의 목을 꺾어 확인 사살했다.
“뭐 하는 거예요?”
난 깜짝 놀라 언성을 높였다.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야.”
C는 팔짱을 끼면서 당당히 말했다.
“이렇게 하는 게 뒤탈이 없어서 좋거든.”
“지시 없이 함부로 행동하는 건 삼가 주세요.”
디마는 미간을 찌푸리며 C를 노려봤다. 그가 화를 낸 것은 처음 봤다.
“명심하지.”
그의 말에 C는 콧방귀를 뀌면서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일단 시체를 나무 상자 뒤에 숨겼다. 그리고 계속 잠입을 이어 갔다.
보안실로 바로 이어진 탈의실.
디마는 탈의실 문을 열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문이 열리면서 안쪽에서 조직원들이 나왔다.
이 시간에? 탈의실에서? 왜?
다들 망연자실한 채 조직원들과 눈이 마주쳤다.
조직원들은 다들 만취 상태.
우릴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엥? 너무 마셨나? 왜 그림자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지?”
조직원들은 눈을 비비며 눈을 쳐다봤다.
숫자는 대략 십여 명.
디마는 우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후.”
C는 재빨리 튀어 나가 조직원들을 공격했다. 그의 손짓발짓에 그들은 우르르 쓰러졌다.
“켁!”
“컥!”
“킥!”
전원 사망.
C는 시체들을 통로 가장자리로 치우며 흐뭇하게 웃었다.
“안에는 아무도 없어. 이 녀석들, 밤새 이 안에서 술을 마신 모양인데?”
디마는 조직원들의 몸을 뒤져서 ID 카드와 무기들을 꺼냈다.
“아무래도 이분들은 오늘 밤 경비였던 것 같네요.”
프라이버시를 이용한 비밀 술 파티. 우리로선 다행이었다.
우리는 안심하며 탈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때 비상등이 켜지며 알람이 울렸다.
“뭐야?”
다들 당황하며 주변을 살폈다. 그러자 탈의실 라커가 열리며 그 안에서 건장한 남성이 나왔다.
“침입자구나!”
남성은 자신의 근육을 자랑하며 소리쳤다.
“쥐새끼들 주제에 감히 우리 본부에 침입해? 아주 묵사발을 내 주마!”
디마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설마 남성의 으름장을 듣고 겁에 질린 건가?
난 그를 붙들며 물었다.
“왜 그래요?”
“저 사람은 잭이에요.”
잭?
설마 진짜로 킹, 퀸, 잭이 있는 거야?
잭은 주머니에서 리모컨을 꺼내더니 버튼 하나를 눌렀다.
삐빅. 기계음과 함께 우리가 들어온 출입구에 차단 벽이 내려왔다. 남은 문은 보안실로 통한 것뿐이었다.
“하하하! 어디 한 번 날 뚫고 가 보지 그래?”
디마는 심호흡을 하더니, 다시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야겠네요. 여러분!”
디마의 호령에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저와 A, R, D, J는 보안실로 가겠습니다. 나머지 여러분이 잭을 붙들어 주세요.”
날 포함해 C, I, T 넷이 다 함께 잭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따라 다른 다섯은 달렸다.
“어딜 도망가!”
잭은 H력을 뿜어내면서 양손에서 광탄을 발사했다. 좁은 공간에서 날아드는 광탄을 피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으아아아!”
그때 T가 자신의 덩치를 키우며 냅다 잭을 덮쳤다. 잭은 그의 힘에 밀려 뒤로 날아갔고, 그 틈을 타 디마와 다른 넷이 보안실로 들어갔다.
“멍청한 녀석들!”
잭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자신을 누르던 T의 얼굴에 주먹을 갈겼다.
“크악!”
T는 엄청난 위력의 펀치를 맞고 출입구 쪽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차단 벽에 움푹 박혔다.
“괜찮아요?”
T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펀치 한 방에 실신한 상태였다.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잭은 두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의 주먹은 검은 불꽃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우리의 능력은 너희 것과 차원이 다르거든.”
“흥미롭군!”
C는 펄쩍 뛰어서 재빠른 동작으로 잭의 뒤로 돌아갔다. 그런 다음, 손날 치기로 그의 목을 세게 때렸다.
“하하하!”
잭은 C의 손날이 자신의 목에 닿기 전 전신을 검은 화염으로 바꿨다. 그러나 C의 공격은 그 화염을 뚫고 그의 육체를 때렸다.
“뭣이?”
잭의 상체는 손날 치기의 충격을 받아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러나 곧 다시 벌떡 일어서며 뒤에 있는 C를 마주했다.
“내 화염을 두려워하지 않다니, 아주 흥미로워! 능력이 방어 계열인가?”
“그럼!”
C는 잭에게 오른쪽 주먹을 내질렀다. 그러자 잭은 그의 주먹을 잡으며 힘으로 그를 눌렀다.
“빠르지만, 위력이 없어. 기껏해야 잡것들 수준인데?”
“뭐라고?”
C는 왼손을 뻗어 옆에 있는 로커를 잡았다. 그리고 철로 된 로커를 잡아 뜯어서 그것으로 잭의 머리를 내려쳤다.
“감히, 나한테, 힘을, 따져?”
로커 조각이 잭의 몸에 닿을 때마다 점점 뭉개졌다. 그러나 잭은 그러거나 말거나 양손으로 C의 머리를 잡고 힘껏 짓눌렀다.
“크아아악!”
C는 고통스러워 몸부림을 쳤지만, 힘에서 잭을 당해 낼 수 없었다. 더구나 잭은 그 상태에서 전신을 검은 불꽃으로 바꿔서 화상까지 입히고 있었다.
“가서 C를 돕자!”
보다 못한 I가 뛰어가고, 나도 그를 따라 합세했다.
“하압!”
I는 능력발현으로 팔을 네 개로 늘렸다. 그리고 네 개의 팔을 모두 써서 C의 머리에서 잭의 손을 떼어 냈다.
“오오! 넌 힘이 좀 다른데?”
잭은 아직도 여유만만.
그는 자신의 손을 잡은 I의 팔을 흥미롭게 관찰했다.
“팔이 늘어나면 그에 따라서 힘도 늘어나는 건가?”
잭의 화염이 살아 있는 뱀처럼 그의 팔을 휘감았다. 그러자 그의 팔이 불끈거리며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크윽?”
I의 팔들이 힘에서 밀리며 뒤로 당겨졌다.
“하하하!”
잭은 힘으로 자신의 손을 빼내서 주먹을 I의 얼굴에 꽂았다.
“커억!”
I는 주먹에 맞아 로커로 날아갔다. 그리고 로커들을 쓰러뜨리며 나뒹굴었다.
“하아아압!”
C는 H력을 뿜어내며 다시 한 번 힘차게 잭에게 덤볐다. 그리고 위로 뛰어서 형광등을 손으로 붙잡은 다음, 발로 힘껏 잭을 걷어찼다.
“켁!”
잭의 머리가 휙 돌아가면서 벽에 부딪쳤다.
C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대로 잭의 위로 뛰어내려서 그의 얼굴을 연속으로 때렸다.
“큭큭큭!”
잭은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활짝 웃었다.
“제법 아픈데?”
펑. 잭의 전신이 폭발했다. 그리고 C가 검은 화염에 휩싸인 채 로커 더미 위에 떨어졌다.
“퉷!”
그 사이, 정신을 차린 T와 I가 피가 섞인 침을 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우리 셋은 서로 다른 방향에 서서 잭을 포위했다.
“셋이 한꺼번에 덤비려고? 아주 좋아!”
잭은 박수를 치며 어깨를 풀었다. 그리고 화염을 조금 누그러뜨리며 무장처럼 전신에 둘렀다.
“와라!”
“하아아앗!”
나도 슈트 장착.
우리는 세 방향에서 달려들었다.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난타전을 벌이려 했다.
“엥?”
잭의 몸에서 검은 화염이 쭉 뻗어 나와 검은색 팔의 형상들로 변했다. 그렇게 팔이 여섯 개가 된 잭은 두 개씩 사용해 우리에게 대적했다.
“젠장!”
지금 나와 함께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로얄급의 실력자. 그런 사람들도 쩔쩔매는데, 내 실력으로는 잭에게 대응하기 힘들었다.
“젠장!”
난 즉시 뒤로 물러서서 광탄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른 두 사람을 보조해 주는 역할을 맡았다.
다행히 내가 빠져도 다른 두 사람이 불리할 일은 없었다. I가 팔을 네 개로 늘려 준 덕분이었다.
“으아아아!”
I는 정신없이 팔들을 움직이며 잭의 검은 팔들에 맞섰다. 그러자 잭은 화염을 더 뿜어내 팔의 개수를 늘렸다.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난 한손으로 광탄 지원사격을 하며, 다른 팔에 검기를 모았다.
“하하하!”
잭은 십여 개로 늘어난 팔로 I와 T를 사정없이 팼다.
두 사람은 거의 수비를 포기한 채, 그냥 맞아 가면서 공격을 이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