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
222.
노건은 이천두의 팔을 꺾은 채 그대로 그의 몸을 짓눌렀다. 그러자 그는 순순히 무릎을 꿇으며 최대한 고통을 최소화시키려 했다.
“팔 놓고 마무리하세요!”
“우아아아!”
노건은 이천두의 손을 놓고는 그대로 양손에 깍지를 껴서 내리쳤다.
노건의 완력이 실린 그것은 둔기로 내려치는 것과 동급.
무차별적으로 내리치는 깍지에 이천두는 뼈가 깎이는 소리를 내면서 쓰러졌다.
그러나 너무 이천두에게 신경을 쓴 탓에 방패멧돼지가 노건에게 충돌. 방심하고 있던 그는 어깨 위의 유정을 떨어뜨렸다.
“지금이다!”
최일봉이 뒤에서 다가와 유정의 등에 검을 찔러 넣었다. H검은 그대로 유정의 등을 관통해 가슴으로 뚫고 나왔다.
“커억!”
유정은 입에서 피를 토했고, H검이 뽑히자 가슴과 등에서도 엄청난 양의 피를 뿜어냈다.
“커어어억!”
유정이 피투성이로 쓰러지고, 노건은 그것을 보고 눈이 뒤집혀졌다.
“쿠오오오!”
노건은 최일봉을 향해 마구잡이로 주먹을 날렸다.
손평화는 유정에게 달려와 그녀를 들어 올렸다.
“이대로는……!”
사망.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만큼의 중상이었다.
손평화는 유정을 유리 돔 가장자리로 옮기기 위해 움직였다.
거기라면 밖에서 대기 중인 직원들이 시합 중에도 바깥으로 빼내 치료해 줄 수 있었다.
“어딜 가시나?”
최일봉이 노건을 맡는 사이, 허장이 손평화에게 다가왔다.
“받아라!”
허장은 목을 길게 빼서 입을 크게 벌렸다. 그리고 유정을 옮기고 있는 손평화의 옆구리를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끄아아악!”
손평화의 옆구리가 찢기며 피가 흘렀다.
“큭큭큭!”
허장은 입에 물린 손평화의 살점을 뱉으며 혀를 날름거렸다.
“듣기론 공포특급은 하나하나가 강자라고 하던데? 역시 랭킹이 낮으면 별수 없군.”
손평화는 옆구리가 뜯긴 와중에도 유리 돔 끝을 향해 움직였다.
허장은 그런 그녀를 비웃었다.
“끝까지 부상자를 옮기겠다고? 상관없어. 그러면 그럴수록 네가 흘리는 출혈량도 더 많아질 뿐이다! 큭큭큭!”
손평화는 방패멧돼지가 달려드는 것까지 피하면서 끝내 유리 돔에 다다랐다.
그녀가 유정을 내려놓자, 유리 돔의 일부가 열리면서 직원들이 유정을 밖으로 빼냈다.
“후우, 후우…….”
손평화는 옆구리를 감싸며 잠시 유리 돔에 기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방패멧돼지가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아아압!”
손평화는 전기를 방출해 자신에게 달려든 방패멧돼지를 감전시켰다.
그 사이, 최일봉을 노리던 노건은 그를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제법인데? 광전사라고 해서 그냥 바보인 줄 알았더니…….”
“으아아아!”
노건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의 주먹이 최일봉에게 닿기 전 방패멧돼지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하하하! 아무래도 행운은 내 편인 것 같군.”
최일봉은 단칼에 방패멧돼지의 목을 벴다.
튼튼한 안면과 달리 방패 같은 머리와 몸통을 연결하는 목은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부분이었다.
머리가 잘리면서 방패멧돼지의 목에서 피가 솟구쳐 노건의 얼굴에 쏟아졌다.
“크아아악!”
노건의 시야가 흐려진 사이, 최일봉은 그의 뒤로 돌아가 H검으로 그의 무릎 뒤를 그었다.
“하하하!”
노건의 신체가 베이진 않았지만, 관절의 구조에 의해 무릎이 앞으로 구부러지며 신체 균형이 전방으로 쏠렸다.
“하아아앗!”
허장이 돌진.
노건이 쓰러지는 지점에 정확히 자신의 등껍질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노건의 안면과 충돌!
“크으으윽!”
노건은 고개를 저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최일봉과 허장은 그때를 놓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노건이 아니라 손평화를 노렸다.
“그 대단하신 손평화도 이젠 끝이야!”
두 사람은 광탄을 만들어서 부상당한 손평화의 상처로 날렸다.
“꺄아아악!”
손평화는 폭발에 휘날려 유리 돔과 충돌했고,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이제 하나 남았어!”
두 사람은 의기양양하게 노건을 바라봤다.
노건은 아직 시야가 회복되지 않았는지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허장!”
“알았어!”
허장은 재빨리 달려가 노건의 다리를 와작 물었다.
“크아아악!”
노건은 고통스럽게 허장에게 물린 다리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의 뒤에서 최일봉이 접근해 검으로 노건의 목을 벴다.
“좋았어!”
노건의 살갗이 살짝 베이며 피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아직 그를 쓰러뜨리기에는 얕았다.
“우오오오!”
노건은 우선 자신의 다리를 문 허장에게 주먹을 내리쳤다.
“케엑!”
허장은 최대한 머리를 등껍질에 넣고 버티려 했지만, 노건의 주먹을 맞을 때마다 목이 축 늘어졌다.
“이, 이런 괴물 자식!”
최일봉은 허장이 당하기 전, 노건의 목을 집중 공격했다.
수십 번의 참격에 노건의 목에 난 상처는 점점 깊어졌고, 결국 허장의 등껍질이 부서짐과 동시에 그의 목에서도 대량 출혈이 터졌다.
“하하하!”
최일봉은 허장 위로 쓰러지는 노건을 보며 환호를 질렀다.
그렇게 네 번째 시합은 헌한발의 차지가 되었다.
점수는 2대2
“결국 또 이렇게 되는구나.”
난 한숨을 푹 쉬었다.
“팀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 한 번만 이기면 돼요.”
아란이 내 인형 옷 머리 위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지금 팀장은 제가 아니라 아란 양이에요. 명심하세요.”
난 씁쓸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니까 마지막은 팀장의 손으로 마무리 지어 주세요.”
아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간절한 심정으로 TV 화면을 바라봤다. 마지막 다섯 번째 룰렛이 전광판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베스트는 3대3, 베스트는 3대3, 베스트는 3대3……!”
[5대5 승부]
5대5? 거기다 승부!
즉, 5판 3선승제.
현재 우리 팀에서 남은 사람은 나, 적지형, 주아란, 하상룡, 그리고 나존귀!
연전제 같은 최악의 경우가 나오지 않아서 다행이긴 한데, 좀 불안하다.
모두 같은 생각인지,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러나 이제 막바지, 다른 방법이 없었다.
“저희만 믿으세요!”
아란이 자신 있게 외치며 주먹을 들어 보였다. 그 모습이 날 안심시키는 것인지, 아니면 위협하는 것인지 헷갈렸다.
“이제 이 나존귀 님께서 활약하실 순간이 왔다! 하하하!”
나존귀는 뭐가 좋다고, 크게 웃으며 의기양양하게 필드로 나갔다.
난 마지막으로 대기실을 나서려 했다. 그때 누군가 안쪽 문을 열고 들어와 날 불렀다.
“상팔 씨?”
부드러운 목소리.
듣는 순간, 움찔거리며 몸이 굳었다.
“당신은……?”
난 방문자를 등진 채 순순히 인형 옷의 머리를 벗었다. 그리고 맨 얼굴을 돌려 그를 맞이했다.
***
헌한발 선수는 최일봉, 이천두, 허장, 그리고 루호와 김용!
이제야 겨우 루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예상하지 못한 건 김용이 직접 나온 점이다.
이서현은 양 팀 사이에 서서 힘차게 외쳤다.
“헌한발, 현한발 각각 다섯! 총 열 명의 선수가 1대1 승부를 벌입니다! 5판 3선승제! 그야말로 최후의 최후에 걸맞은 대결입니다!”
김용과 주아란은 서로를 노려봤다. 두 사람은 각 팀의 팀장이자 서로의 랭킹을 건 만큼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냈다.
우리와 헌한발은 필드에서 내려가고, 이서현은 전광판을 가리켰다.
“그럼 각 팀은 첫 번째로 내보낼 선수를 정해 주십시오.”
‘누굴 내보내죠?’
아란이 머릿속으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모두가 보고 있는 만큼, 난 능력을 통해 팀원들과 정신을 공유한 상태였다.
‘하상룡이요.’
첫 싸움은 기선 제압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다소 경험이 적더라도 패기 넘치는 사람이 딱이다.
전광판에 두 개의 이름이 떴다.
[최일봉] VS [하상룡]
최일봉은 연속으로 싸운 탓에 체력이 남아 있지 않을 텐데?
첫 승부는 버리는 건가?
김용은 탐욕스러운 사람이지, 바보가 아니다.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이 필드에 오르고, 유리 돔이 씌워졌다.
“시작!”
“잘 부탁해.”
최일봉은 H검을 만들며 능글맞게 인사했다.
“나도!”
하상룡은 H력을 뿜어냄과 동시에 전신에 불을 붙였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높이 뻗어 올라가 유리 천장에 닿았다.
“넌 정말 바보구나.”
최일봉은 하상룡의 불길을 감상하면서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워!”
하상룡의 불길이 사납게 날뛰며 최일봉을 덮쳤다.
“하아아앗!”
최일봉이 검을 휘두르자, 불길이 반으로 갈라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곧 더 거세게 일면서 그를 노렸다.
“멋지군!”
최일봉은 검을 휘둘러 최대한 불길을 늦추며 뒷걸음질 쳤다.
“쥐새끼처럼 도망치려고? 유리 벽 안에 갇힌 주제에……?”
하상룡은 낄낄거리며 최일봉을 쫓았다. 두 사람의 힘은 누가 봐도 그가 압도적이었다.
최일봉은 필드 가장자리까지 몰렸다. 그리고 그가 더 이상 도망치지 못하게 되자, 하상룡은 불길을 그의 코앞에서 멈췄다.
“이제 어쩔래?”
하상룡은 여유가 넘쳤다. 그는 직접 최일봉의 앞으로 걸어갔다.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지.”
최일봉은 항복하듯 H검을 스스로 해제하고는 천천히 하상룡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그의 귀에 무어라 속삭였다.
당연히 하상룡과 정신이 연결된 나에게는 그 말이 똑똑히 들렸다.
“우리가 너희 형을 인질로 잡고 있거든. 최근에 연락된 적 있어?”
하상룡은 겁에 질렸다. 그러나 겉으로는 아닌 척 최일봉에게 물었다.
“있는데? 너희 같은 약골이 감히 로얄을 인질로 잡았다고?”
“로얄도 로얄 나름이지. 술만 처먹고, 싸움질이나 하면서 폐인 된 녀석이 무슨 로얄이야?”
하상룡의 투지와 함께 그의 몸에서 불길이 사그라졌다.
“우리 형, 어디 있어?”
“새로 짓고 있는 헌한발 빌딩 공사장에 있지. 너 하는 거 봐서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 중이야.”
하상룡은 완전히 불꽃을 거두고, 능력을 해제했다.
최일봉은 맨주먹으로 힘껏 그의 복부를 후려쳤다.
“보는 눈이 있으니까, 최대한 버텨. 그럴 듯하게, 알았지?”
일방적 폭행의 시작.
하상룡은 최일봉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 내며, 그의 요구대로 묵묵히 서 있었다.
“너무 심하지 않아?”
“그만둬! 그냥 기권해라!”
“뭐 하는 거야? 하상룡!”
관객들은 아우성을 치면서 객석에서 일어났다. 한 번에 수만 명이 들썩이니, 지부 직원들도 우르르 몰려나와 관중을 진정시키려 애를 먹었다.
“진정해 주십시오! 아직 승부가 나지 않았습니다.”
객석에서 뭐라고 하든, 최일봉은 하상룡을 알차게 구타했다.
하상룡의 육체가 아무리 강인해도 그저 맞기만 해선 오래 버틸 수 없었다.
“하악, 학…….”
하상룡은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겨우 서 있었다.
“그럼 이제 끝을 내자고?”
최일봉은 H검을 만들어 높이 들어 올렸다. 그리고 대각선으로 하상룡의 정면 상체를 벴다.
“크아아악!”
하상룡은 앞으로 고꾸라지며 원통하게 패배했다. 그는 직원들에게 의해 들것에 실려 필드를 나갔다.
이서현은 다소 착잡한 표정으로 애써 밝은 척했다. 누가 봐도 수상한 대결이었지만, 심증만으로 무어라 할 만큼 가볍게 처리할 일이 아니었다.
“양 팀, 두 번째 선수를 내보내 주십시오!”
시간을 끌기 위해 우리 쪽에선 내가 나가기로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저쪽에서 나온 사람은 ‘김용’이었다!
김용은 필드에 서자마자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내가 직접 나올 거라고 상상이나 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