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
221.
너무 많은 능력 사용으로 H력이 소모된 것은 두 사람 모두 마찬가지.
둘은 필드 양끝에 서서 서로를 노려봤다.
“난 질 수 없어. 우리 형제들을 위해서……! 이제야 겨우 제대로 된 팀에 자리를 잡았어!”
이팔은 양손 한가득 10개의 부메랑을 만들었다. 그의 얼굴엔 패배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다.
실패를 아는 자의 얼굴이었다.
김미수는 이팔의 기세에 지지 않고 양손에 능력을 발현하며 맞받아쳤다.
“질 수 없는 건, 이쪽도 마찬가지예요! 적어도 우린 의리라는 건 알거든요?”
“의……리?”
이팔은 입술을 씹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도 예전에 나쁜 짓 많이 했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지금은 떳떳하게 일하고 있거든요. 아저씨는 어때요?”
“아저……씨?”
그 말에 다 죽어 가던 이팔의 투지가 부활했다. 그는 이를 갈면서 기합을 질렀다.
“으아아아!”
부메랑 10개가 넓게 퍼지며 공중을 날아갔다. 그리고 필드 가운데를 지나 유도탄처럼 김미수를 향해 모여들었다.
“하아아앗!”
김미수는 양손을 휘둘러 한 번에 부메랑 일곱을 재로 만들었다.
그러나 부메랑 세 개가 각각 김미수의 오른쪽 어깨, 양쪽 허벅지에 꽂혔다.
“크윽!”
김미수는 제자리에 주저앉아 신음했다.
이팔은 그녀 앞까지 걸어왔다. 물론 그녀의 팔이 닿지 않을 거리까지만!
“지금이라도 기권하는 게 어때? 그러다가 과다 출혈로 죽는 수가 있어.”
제한 시간 중 남은 건 10분.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뭐라고?”
김미수는 이팔을 향해 재빨리 손을 뻗었다.
“흐악!”
이팔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뒤로 뺐다. 물론 김미수의 손은 그에게 닿지 않았다.
“받아라!”
대신 김미수는 손에서 광탄을 만들어 쐈다.
쟤가 광탄을 쏠 줄 알았나?
“으악!”
빠르게 만든 것이라 위력은 별로지만, 기습 공격이 이팔의 안면에 적중.
이팔은 1차적으로 그녀의 손을 피했단 안도감, 2차적으로 그 안도감을 깨면서 들어온 공격에 실제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을 받으며 쓰러졌다.
필드에 서 있는 사람은 김미수뿐이었다.
“시합 종료!”
이겼지만, 불타는 고구마 4명은 전멸. 이번 시합에 참가한 여덟 명 전원, 들것에 실려서 필드를 나갔다.
그래도 상대가 상대인 점을 감안하면 이긴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대단한 녀석들이야!”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다.
점수는 2대1
한 번만 더 이기면, 끝난다.
이서현도 우리의 선전이 당혹스러웠는지 말을 더듬었다.
“허, 헌한발의 약세입니다! 과, 과연 이대로 무너질까요? 혀, 현한발의 강세에 모든 관중이 놀라고 있습니다!”
우리가 강세고, 헌한발이 약세?
한참 잘못 알고 하는 소리다.
오히려 전력이 반 토막 난 우리가 약세고, 위기다.
“그럼 최후가 될지도 모르는 네 번째 시합, 룰렛을 돌리겠습니다. 하나, 둘, 셋!”
룰렛이 돌아가고, 지금까지 시끌시끌하던 객석에서도 입을 다물고 조용히 전광판을 지켜봤다.
[3대3 합동 사냥]
“합동 사냥?”
뭐지? 사냥은 사냥인데, 합동 사냥은 또 뭐야?
우리와 마찬가지로 관객들도 룰렛에 쓰인 결과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다행히 이서현이 목소리를 높여 설명을 시작했다.
“각 팀 세 명씩 여섯 명의 선수가 필드에 함께 섭니다. 그리고 유리 돔 안으로 괴물들을 풀어놓습니다. 괴물들과 싸우며 최대한 오래 버티는 팀이 승리합니다.”
배틀로얄과 사냥을 합친 건가?
난 즉시 유정과 노건을 쳐다봤다.
배틀로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협동성. 그 부분에선 유정과 노건은 현재 팀원 중에서 최고였다.
만약 마바일이 무사했더라면, 그와 적지형을 내보냈겠지만…….
난 손평화, 유정, 노건을 내보냈다.
헌한발에서 나온 사람은 최일봉 외 새로운 두 사람.
이서현은 우리 쪽 셋을 빠르게 소개했다.
“현한발의 선수는 한때 공포특급의 일원으로 랭킹 25위에 빛나는 손평화! 그리고 전 헌한발 멤버로서 랭킹 81위의 노건, 83위의 유정 선수입니다!”
이번엔 헌한발 차례.
“조금 전 시합 보셨죠? 랭킹 24위의 최일봉! 그리고 랭킹 23위의 이천두! 마지막으로 랭킹 20위의 허장 선수입니다!”
죄다 2군급.
의아스러운 건 이 중요한 시점에 루호가 없단 점이다. 그만큼 자신 있단 걸까?
“그럼 사냥할 괴물을 정하겠습니다!”
이서현이 전광판을 가리키자, 그곳의 룰렛엔 갖가지 괴물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하나, 둘, 셋!”
[폭탄문어]
5급 괴물의 정점 중 하나인 폭탄문어. 실제론 거의 6급에 준한다고 알려진 녀석이다.
덩치는 10미터 정도.
전신은 새까만 색이다.
“잘도 저런 괴물을 준비했네.”
강철 우리가 아닌 강철 밀폐 용기가 필드 위로 올라왔다.
이서현과 직원들은 유리 돔 밖으로 대피하고, 강철 밀폐 용기의 뚜껑이 스르륵 열렸다.
“시작!”
시작 신호와 동시에 폭탄문어가 꾸물꾸물 밀폐 용기 바깥으로 나왔다.
겉보기엔 거대 문어. 그러나 녀석에겐 치명적인 무기가 있다.
“일단 녀석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지켜보죠.”
유정의 제안에 노건과 손평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노건이 신체를 거대화시키고, 두 사람은 그의 어깨에 매달렸다.
“노건 씨, 일단 폭탄문어에 너무 접근하지 말아 주세요. 거리를 유지하면서 녀석이 어떻게 싸우는지 알아야겠…….”
보통 거대한 괴물을 눈앞에 두면, 일단은 괴물을 쓰러뜨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지금 헌한발에서 나온 세 사람은 그러한 발상을 역전시키는 행동을 했다.
“받아라!”
헌한발 세 사람이 노건에게 달려들었다.
노건은 폭탄문어 대신 상대 팀원들의 공격을 피해야 했다.
“그렇게 나온다면……!”
유정과 손평화는 노건의 어깨에 매달린 채 광탄을 쏴 댔다.
“하하하!”
최일봉은 H검을 만들며 광탄을 베고, 이천두는 근육을 빵처럼 부풀려 광탄을 그냥 버티며, 허장은 몸이 거북이처럼 변해 등껍질로 광탄을 막았다.
“헌터는 광탄 쏘는 모습만 봐도 실력을 알 수 있지. 아까 그 녀석들보단 훨씬 괜찮군.”
이천두는 어깨를 풀면서 여유 있게 칭찬을 날렸다.
“하지만 이젠 끝이야. 우리 헌한발의 영광을 위해 죽어라!”
이천두는 직접 노건에게 달려들어 힘 싸움을 걸었다. 그의 손과 노건의 손이 맞잡아지고, 두 사람은 제자리에 서서 상대를 눌렀다.
“흐아아앗!”
두 사람의 힘 싸움을 시작으로 폭탄문어도 본격적으로 선수들을 공격했다.
녀석은 여덟 개의 다리를 움직여 난타를 하듯 선수들을 내리쳤다.
“피, 피해!”
허장은 머리, 팔, 다리를 등껍질 속으로 속 집어넣고, 최일봉은 아예 도망쳤다.
폭탄문어의 다리 끝이 필드에 닿자, 그 부분에서 크고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하아아앗!”
유정과 손평화는 계속 이천두의 얼굴에 광탄을 쏴서 그의 집중력을 흩트렸다.
“이 망할 것들!”
이천두가 힘에서 노건에게 밀리려는 찰나, 폭탄문어의 다리가 두 사람 사이를 갈랐다.
“젠장!”
폭발과 함께 두 사람이 멀어지고, 그제야 양 팀은 폭탄문어를 의식했다.
녀석은 선수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다리를 휘둘렀다. 덕분에 필드는 계속해서 폭발하며 산산조각이 났다.
“상관없어. 이번엔 장외 같은 건 없으니까……!”
양 팀은 필드에서 내려와 그 주변을 둘러싼 잔디밭 위에 섰다.
“같은 5급인데도 차원이 달라!”
최일봉은 H검을 쥔 채 높이 뛰어올랐다.
그를 노리고 폭탄문어가 다리를 휘둘렀지만, 오히려 그의 검에 싹둑 다리가 잘려 나갔다.
“놈들을 처리하기 전에 너부터 정리해 주마!”
최일봉을 따라 이천두와 허장도 폭탄문어에게 달려들었다.
“쳇! 번거롭게…….”
이천두는 강력한 완력으로 폭탄문어의 다리 하나를 잡았다. 그리고 그것을 당기며 위로 튕겨서 폭탄문어를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지금이야!”
허장은 이천두에게 돌진. 몸을 등껍질에 넣으며 점프했다.
이천두는 문어 다리를 놓고, 등껍질을 잡은 다음 폭탄문어 옆으로 힘껏 던졌다.
“가즈아!”
허장은 단숨에 날아올라 폭탄문어의 머리 위까지 다다랐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머리만 쭉 빼서 와작 문어의 머리를 씹었다.
“하하하! 이걸로 우리의 승리다!”
아래에 있던 최일봉과 이천두는 양팔을 들면서 승리를 확신했다.
그러나 허장이 문어의 머리를 문 직후, 폭탄문어의 전신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이, 뭐, 병……!”
어마어마한 폭발에 유리 돔 내부가 충격에 휩싸였다. 여섯 명 모두 잔디밭을 나뒹굴었고, 유리 돔은 위로 살짝 들리기까지 했다.
폭발이 그치고 자욱이 낀 먼지구름이 걷힐 때쯤, 잔디밭에 축 늘어진 폭탄문어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 앞에 각 팀 선수 여섯이 상처투성이가 된 채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사냥은 우리 쪽의 승리다.”
최일봉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심판이 말할 때 끝까지 안 들으셨군요?”
유정은 노건의 어깨에서 내려오며, 그의 말에 반박했다.
“뭣이?”
“괴물‘들’이라고 말했죠?”
“괴물……들……!”
폭탄문어가 있던 자리에 거대한 구멍이 생기며 괴물이 지하로 떨어졌다.
그리고 새로운 구멍을 통해 지하에서 강철 우리가 올라왔다.
“젠장! 이러면 역시 상대를 직접 제거하는 편이 낫겠어!”
이번에 나온 괴물은 4급 괴물인 방패멧돼지. 얼굴이 방패처럼 납작한 멧돼지였다.
키는 대략 1.5미터. 당연히 수직적인 길이를 말하는 것이다. 덩치로 따지면 훨씬 길어진다.
거기에 한 마리가 아닌 무리.
족히 20마리는 될 법한 숫자가 우리에서 우르르 쏟아졌다.
“젠장!”
서로 싸울 틈도 없이 양쪽은 빠르게 달려드는 방패멧돼지들을 상대해야 했다.
“꾸히이익!”
방패멧돼지들은 납작한 얼굴을 앞세워 선수들을 덮쳤다.
그 모습은 경주용 차량의 엔진을 단 불도저.
무지막지한 돌진이었다.
“하아아앗!”
최일봉은 홀로 있는 손평화에게 덤벼들었다. 유정과 노건은 붙어 있으니, 그녀를 노리는 편이 더 수월하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난 녀석이 바보라는 것을 확신했다.
“크아아악!”
감전.
최일봉은 검이 손평화에게 닿기도 전에 그녀가 내뿜은 전격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최일봉은 그 한 번의 공격으로 실신. 남은 두 사람은 그것을 보고 경악했다.
“뭐야? 손평화의 랭킹은 우리보다 한참 낮을 텐데?”
한국 헌터들에게 있어 랭킹은 절대적 힘의 척도. 랭킹이 전부인 이들한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젠장! 뭐가 뭔지 모르겠어. 우리가 질 리 없어!”
이천두는 현실을 부정하며, 다시 노건에게 달려들었다.
“노건 씨, 제 말대로 해 주세요.”
노건은 유정의 말에 따라 이천두와 맞섰다. 둘은 주먹과 주먹으로 서로를 때리며 난타전을 벌였다.
평소의 노건이었다면 무차별 난타였겠지만, 이번엔 어깨에 매달린 유정이 빠르게 지시를 내려 주고 있었다.
“왼쪽, 오른쪽, 때리고, 막고, 잡아요!”
노건은 평소와 달리 상당히 복잡하게 움직이며 이천두의 오른팔을 잡아서 꺾었다.
“이, 이 자식!”
이천두는 노건의 손아귀에서 팔을 빼려고 했지만, 둘의 힘은 박빙. 쉽사리 뺄 수 없었다.
“으아아아!”
이천두는 왼쪽 주먹으로 노건을 때리며 어떻게든 타격을 주려 했다.
“오른팔을 더 꺾어요!”
이천두의 오른팔은 완전히 어깨 뒤로 돌아가며 ‘우드득’소리를 냈다.
“크아아악!”
이천두는 비명을 지르며 저항 대신 경련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