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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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을 들은 적지형은 입술을 씹으며 말없이 날 노려봤다.
그러나 결국 녀석은 내 멱살을 놓고 조용히 구석으로 걸어갔다.
“그럼 이번엔…….”
난 불타는 고구마 넷을 가리켰다.
“너희가 나가도록 해.”
“예? 저, 저희가 말입니까?”
오박은 어깨를 들썩이며 깜짝 놀라 했다. 난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격려의 말을 건넸다.
“당연하지. 긴장하지 말고 훈련한 대로만 해. 그럼 이길 수 있을 거야. 상대와 직접 싸우는 게 아니고, 사냥만 하는 거니까 할 수 있어. 보조더라도 사냥 참가 경험은 꽤 되잖아?”
난 불타는 고구마 다음으로 적지형을 가리켰다. 내가 자신을 지목하자, 녀석은 씩 웃으며 눈을 번뜩였다.
“좋았어!”
적지형, 오박, 김미수, 아미니, 아미리. 이상 다섯이 스피커의 부름에 따라 대기실을 나섰다.
한편 헌한발 쪽에서 나온 인물들은 상당히 낯이 익었다.
“저 사람들은……!”
각 팀의 다섯 선수가 서고, 이서현은 또 전광판을 가리켰다. 그러자 전광판의 룰렛에 대결 방식 대신 숫자가 쓰여 졌다.
“준비된 괴물은 1급부터 5급까지! 각 팀은 룰렛을 돌려서 괴물의 숫자와 사냥 제한 시간을 뽑게 됩니다. 사냥 제한 시간 안에 사냥을 끝내면 성공! 실패하는 팀이 패배하게 됩니다.”
양 팀 모두 규칙을 이해했단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헌한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하나, 둘, 셋!”
괴물 등급과 시간이 적힌 룰렛이 빠르게 돌아갔다.
이 승부는 결국 운 싸움.
높은 등급과 적은 시간이 나오는 팀이 불리하고, 낮은 등급과 많은 시간이 나오면 유리해진다.
[5급]
[30분]
룰렛이 멈추자마자 필드 한쪽이 갈라지면서 지하에서 괴물이 든 강철 우리가 위로 올라왔다.
“네, 지금 막 5급 괴물인 ‘강강캥거루’가 나왔습니다!”
키가 3m인 거대 캥거루.
녀석의 손은 권투글러브를 낀 것처럼 둥글둥글한 형태였다.
“그럼 헌한발 다섯 선수만 필드에 남고 나머지는 필드 바깥으로 나와 주십시오.”
이서현을 따라 우리 팀 다섯은 쪼르르 필드를 나왔다.
필드 위로 거대한 유리 돔이 씌워지고, 강철 우리가 열리며 괴물이 바깥으로 나왔다.
“시작!”
헌한발의 멤버는 어금니였던 호맹우와 토마스 박, 이씨 형제들 중 이육, 이삼, 그리고 호규였다.
다섯 중 리더는 호맹우인 것 같았다. 그는 사냥이 시작되자마자 이육과 이삼에게 외쳤다.
“어서 강강캥거루를 잡아! 녀석이 움직이게 하면 안 돼!”
강강캥거루는 가볍게 스텝을 뛰면서 천천히 옆으로 움직였다.
이육은 날개, 이삼은 꼬리를 만들며 강강캥거루에게 덤벼들었지만 두 사람이 도착하기 전 이미 녀석의 움직임에 속도가 붙었다.
강강캥거루는 빠르게 헌한발의 주변을 맴돌았다. 이름의 유래대로 강강술래를 도는 것이었다.
음속에 가까운 속도. 강강캥거루의 모습이 점점 흐려지면서 헌한발을 감싼 하나의 거대한 원이 되었다.
“망할 녀석들! 너희가 꾸물대서 강강캥거루가 강강술래를 시작했잖아!”
호맹우는 버럭 소리치며 자신들의 주변을 도는 강강캥거루를 가리켰다.
일반적으로 강강술래는 여러 명이 손에 손을 맞잡고 원을 도는 것이지만, 강강캥거루의 강강술래는 가히 살인적이다.
녀석은 음속으로 주변을 돌면서 신축이 자유로운 팔로 전방위 펀치를 날린다.
“크아아악!”
다섯에게 사방에서 펀치가 날아왔다. 강강캥거루의 주먹은 정확하게 다섯을 때리며 길어졌다가, 줄었다가를 반복했다.
“으아아악!”
맷집이 약한 호규가 제일 먼저 혼절. 나머지는 몸을 웅크린 채 버티고만 있었다.
“쓰레기 같은 자식들!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녀석을 잡아! 실패하면 너희는 전부 모가지야!”
호맹우의 협박에 이육과 이삼은 기어서 전진했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몸을 강강캥거루의 회전 경로에 들이밀었다.
“크악!”
두 사람은 고속으로 이동하는 강강캥거루에게 치여서 옆으로 휙 날아갔다.
덕분에 강강캥거루의 스텝이 흐트러지며 녀석도 옆으로 넘어졌다.
“지금이다!”
호맹우는 코끼리로 변신. 육중한 몸집으로 쓰러진 강강캥거루를 깔아뭉갰다.
“하하하! 어떠냐?”
강강캥거루는 밑에 깔린 채로 양팔을 양옆으로 길게 뺐다. 그리고 팔을 늘려서 위로 올렸다.
아무리 코끼리의 몸이 튼튼해도 급소는 있다.
예를 들면 감각기관이 집중된 머리, 혹은 사타구니. 그런 곳을 5급 괴물이 집중 공격하는데 버틸 수 있는 생물은 단 한 마리도 없다.
코끼리의 머리로 주먹 난타가 쏟아졌다.
“쿠오오오!”
결국 버티다 못한 코끼리가 몸을 일으켜 공격을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호맹우가 행동하기 직전, 그의 위로 거대한 광탄이 떨어졌다.
“하하하!”
토마스. 그의 광탄이 코끼리와 강강캥거루를 동시에 날려 버렸다.
그것으로 사냥 종료.
[남은 시간 : 5분]
“네! 제한시간 5분을 남겨 놓고, 사냥이 모두 끝났습니다! 속도를 위해 안전을 포기하는 과감성! 선수들의 안전이 걱정됩니다.”
이서현은 서둘러 손짓을 했다. 그녀의 지시에 직원들이 우르르 나와 부상자들을 옮겼다.
멀쩡히 자기 발로 퇴장한 사람은 토마스 박뿐이었다.
“그럼 다음은 현한발 차례!”
룰렛이 돌아가고, 우리는 모두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했다.
[5급]
크윽! 하필 또 5급이야?
“시간은……?”
시간이 쓰인 룰렛이 천천히 멈췄다.
[10분]
“10분?”
5급을?
저 녀석들이?
대기실에 있는 모두 아연실색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졌어요. 벌써 2패라고요!”
노건이 무릎을 꿇으며 절규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어깨에 유정이 손을 올렸다.
“지금은 필드에 있는 동료들을 믿는 수밖에 없어요.”
필드에 선 다섯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너희는 나서지 마. 나 혼자서도 충분해!”
이 와중에 적지형은 혼자 호언장담. 불타는 고구마는 그런 그를 보며 오히려 앞으로 나섰다.
“저희도 이젠 강해졌다고요! 헤헤헤!”
오박이 자신만만하게 적지형에게 맞받아쳤다. 그러나 이내 적지형이 더 큰 목소리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우쭐대지 마! 이 조무래기야!”
“히익!”
조무래기의 자신감은 여기까지.
오박은 적지형에게 겁을 먹고, 어깨를 움츠리며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한편, 강철 우리와 함께 위로 올라온 괴물은 ‘톱니사마귀’. 전신에 톱니처럼 날카로운 갈기가 달린 거대 사마귀형 괴물이다.
이서현과 직원들이 퇴장하고, 유리 돔으로 필드가 폐쇄. 그녀는 유리 돔 바깥에서 힘차게 외쳤다.
“시작!”
강철 우리가 열리고, 톱니사마귀가 안에서 나와 온몸을 털듯이 흔들었다.
그러자 녀석의 몸에 달린 톱니들이 떨어져 나가 필드 이곳저곳에 뿌려졌다.
“피해!”
팀원들은 수많은 톱니를 피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적지형은 몸을 모래로 바꾸며, 홀로 유유자적 구경했다.
“히히히! 이, 이 정도로는 우릴 맞출 수 없어!”
오박은 벌벌 떨며 피한 것과는 다르게 말투만은 자신감이 넘쳤다.
그러나 톱니사마귀가 톱니를 뿌린 것은 공격을 위함이 아니었다.
톱니들은 가까이 떨어진 것들끼리 하나로 뭉치더니 빠르게 부풀었다.
그리고 중형견 크기의 작은 톱니사마귀 개체로 성장했다.
숫자는 10마리.
오리지널까지 합해서 모두 11마리의 톱니사마귀가 팀원들을 향해 낫처럼 생긴 앞발을 들었다.
“풋!”
적지형은 사람으로 돌아와 팔짱을 꼈다. 그리고 유리 돔 맨 끝에 기대어 섰다.
“저 정도면 내가 나설 필요도 없겠군. 너희가 알아서 해. 작은 녀석들은 끽해야 1급에서 2급 수준이고, 큰 녀석도 숫자를 늘리느라 힘을 소모했어. 지금은 도저히 5급이라 쳐줄 수도 없겠는데?”
나도 비슷한 분석이긴 한데, 저 녀석은 건방지게 이런 상황에서 허세를 부리는 거야?
난 TV 화면을 보면서 혀를 찼다. 아무리 훈련을 시켜도 저 잘난 척만은 고칠 수가 없었다.
“가자!”
불타는 고구마 넷이 H력을 뿜어내며 톱니사마귀들에게 덤벼들었다.
“하아아앗!”
오박은 능력발현으로 양팔을 거대화시켰다. 오직 팔만 커지지만, 그 강도는 강철급. 녀석은 양팔을 활짝 벌리며 장벽을 만들었다.
톱니사마귀들은 눈앞에 생긴 인간 벽을 향해 앞다리를 휘둘렀다. 그러나 녀석들의 앞다리는 오박의 팔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우리도 가자!”
쌍둥이, 아미니와 아미리는 한손을 맞잡은 채 오박의 팔 위로 뛰어올랐다.
“하아아앗!”
두 사람의 H력은 손을 잡지 않은 바깥쪽 손으로 몰렸다.
“썬더 쇼크!”
“파이어 임팩트!”
두 사람 손에서 각각 화염과 전격이 뿜어져 나왔다.
손을 잡고 있을 때만 쓸 수 있는 능력. 그러나 위력은 발군이었다.
톱니사마귀들은 불에 타고, 전기에 감전되면서 눈 깜짝할 새에 재가 되었다.
“역시 대단해!”
아란이 손뼉을 치면서 감탄했다. 그녀를 따라 대기실의 다른 멤버들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잔챙이들이 처리되고, 남은 것은 본체 한 마리. 녀석도 심한 화상으로 껍질이 새까맣게 탄 상태였다.
남은 시간은 1분.
“마무리다!”
쌍둥이 다음으로 김미수가 오박의 팔 위에 섰다.
“하아아앗!”
김미수는 전신에서 뿜어내던 H력을 주먹으로 모았다. 그리고 펄쩍 뛰어올라 톱니사마귀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받아라!”
김미수는 톱니사마귀에게 주먹을 질렀다.
톱니사마귀를 그녀의 주먹을 향해 날카로운 앞다리를 휘둘렀다. 그러나 그녀의 손과 앞다리가 닿자, 번쩍하는 빛과 함께 톱니사마귀의 앞다리가 통째로 부스러졌다.
김미수의 능력은 붕괴. 손에 닿는 면적에 한해서 완전히 가루로 만드는 것이다.
김미수의 주먹은 톱니사마귀의 앞다리를 가루로 만들고, 곧이어 괴물의 머리에 닿았다.
당연히 톱니사마귀의 머리도 가루가 됐다.
제한 시간 1분을 남기고 종료.
새로운 강자의 등장에 관객은 환호했다.
“대박! 엄청나다!”
“랭킹 헌터도 아닌데 엄청나잖아?”
“불타는 고구마란 이름은 처음 들었는데?”
이로서 양 팀 모두 첫 번째 시도에서 성공.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우리 팀은 다섯 명 모두 무사하지만, 헌한발은 토마스를 빼고 전원 부상.
두 번째 괴물 룰렛. 여기가 승부의 중요한 지점이다.
헌한발의 다섯 선수가 몸에 깁스를 한 채 다시 필드 위에 섰다.
두 번째 룰렛이 돌아가다가 멈췄다.
[5급]
또 5급.
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시간은?
[60분]
넉넉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시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예상대로 두 번째 시도에서 헌한발은 중도 포기.
이제 우리 팀이 성공하면 승리였다.
“그럼 현한발의 두 번째 도전!”
룰렛이 돌아가고, 두 번째 시합을 결정지을 결과가 나왔다.
[5급]
“네 번 연속 5급?”
[10분]
“또 10분?”
룰렛 고장 난 거 아니야? 이거 확률로 계산하면……!
올라온 괴물은 강강캥거루.
녀석을 보자마자, 적지형이 두 눈을 번뜩였다.
“저건 내가 해치우겠어. 다들 나서지 마.”
불타는 고구마는 순순히 적지형의 지시에 따라 완전히 뒤로 물러섰다.
“시작!”
적지형은 시작 구호와 동시에 자신의 전신을 모래로 바꿨다. 그리고 필드 전체에 얇게 모래를 깔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