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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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럼 연락처를…….”
난 그들과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준비가 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난 둘에게 최대한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두 사람은 바 안으로 들어갔다.
적지형하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려는 걸까?
조심스레 술집 문에 귀를 댔다.
괜한 짓을 했다가 아까운 전력을 잃고 싶지 않았다.
“다음은 그 녀석들인가?”
난 직접 가는 대신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정확히 세 번.
서로 다른 셋과 통화를 한 후 휴대전화를 넣고 택시를 잡아탔다.
도착한 곳은 태한의 집.
이곳이 바로 내가 아지트로 쓰고 있는 장소였다.
내가 원래 살던 집은 사망 소식과 함께 폐쇄되었다.
물론, 태한은 내 정체에 대해서 알고 있다.
저택의 정문 앞엔 아까 내가 전화로 부른 사람들이 먼저 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박, 김미수, 아미니, 아미리.
불타는 고구마 넷.
“흥!”
나존귀.
“오랜만이네요.”
손평화.
이렇게 여섯과 함께 난 저택 정문을 열었다. 그리고 저택 본관 옆 별관 건물로 들어갔다.
“다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제 소개를 드리자면…….”
그때 정문의 벨이 울리며 주아란, 적지형, 마바일, 하상룡이 들어왔다.
생각보다 빠르게 멤버가 모였다.
나까지 해서 13명.
멤버는 모두 모였다.
남은 일은 이들의 전투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것뿐이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난 그들 앞에서 순순히 인형 옷을 벗었다.
“헉!”
“대박!”
“아니?”
다들 갖가지 소리를 내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상팔 씨!”
손평화가 와락 달려들어 날 끌어안았다.
나도 얼떨결에 그녀를 감쌌지만, 지금 우리에게 한가롭게 포옹할 여유 따윈 없었다.
“김상팔!”
적지형은 H력을 뿜어내며 적의를 드러냈다. 그러나 자세만 취할 뿐 함부로 덤벼들진 못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귀신이야? 아님 정말 본인?”
마바일과 하상룡도 깜짝 놀라 날 경계했다.
난 품 안에 있는 손평화를 떨어뜨리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설명해 드릴 테니까, 다들 침착하세요. 전 정말로 김상팔 본인이 맞아요.”
“더 빠르게!”
내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아란이 대뜸 날아 차기로 공격해 왔다.
피할 틈은 없었다.
난 슈트를 착용해 아란의 발차기를 받아 냈다. 분명 가벼운 발차기일 텐데, 묵직한 위력이 몸소 느껴졌다.
“이, 이건 틀림없이……!”
내게 다리가 잡힌 아란의 두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그녀의 분위기를 본 다른 사람들은 내가 진짜라는 것을 수긍하며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팀장님!”
“이제 믿겠죠?”
난 아란의 다리를 놔줬다.
유정과 노건도 서로 손을 맞잡고 기뻐했다.
“우리가 왜 널 도와줘야 하지? 네가 진짜 김상팔이라면 더욱 협조할 수 없겠는데?”
적지형은 두 눈을 번뜩였다.
“그래?”
난 적지형에게 걸어가 그의 멱살을 잡았다.
“뭐, 뭐 하는 거야?”
적지형은 몸을 뒤로 빼면서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난 그가 그럴수록 더욱 세게 그를 붙잡았다.
“뭐 하는 거지? 왜 가만히 있는 거야? 적, 지, 형!”
내가 다그치자 적지형의 얼굴에 비실비실 땀이 맺혔다. 녀석은 잔뜩 얼굴을 찡그리며 고함을 쳤다.
“젠장! 너, 너 따위가……!”
적지형은 벌벌 떨면서 말도 더듬기 시작했다.
“이거 놔! 난 가겠어. 이딴……더 이상……!”
“흐음.”
마바일과 하상룡은 팔짱만 낀 채 적지형과 날 구경만 했다.
“적지형, 싸울 수나 있어?”
내 말에 적지형은 화들짝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적지형은 나에게 겁을 먹은 게 아니었다. 지난 몇 달간 유흥만 하면서 몸이 망가진 결과였다.
아까처럼 술에 취한 상태라면 조금 진정이 될 테지만, 반대로 술에서 깨면 가볍게 잡힌 멱살조차 떨쳐 내지 못하는 것이다.
“적지형, 천하의 쓰레기가 다 된 거야? 예전에 나와 싸울 땐 훨씬 더 강했었잖아?”
“닥쳐!”
적지형은 다리 힘이 풀렸는지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여기 온 건 왜지? 단순히 나한테 복수하기 위해서야?”
“그, 그래! 너한테, 너희한테 우리가 지지만 않았어도……!”
“하아아앗!”
난 적지형에게 주먹을 질렀다. 그는 내 주먹에 그저 눈을 감으며 고개만 돌렸다.
“히익!”
난 적지형의 코앞에서 주먹을 멈췄다. 그리고 적지형이 눈을 뜰 때까지 기다렸다.
“크으으윽!”
적지형은 굴욕적인 얼굴로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이 내 앞에서 정말 쫄았단 사실에 분노했다.
“네가……감히……크윽……!”
“틀렸어!”
난 버럭 소리치면서 적지형을 깜짝 놀라게 했다.
“적지형, 네가 여기 온 건 단순히 나한테 복수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적지형은 무조건 내 말에 부정하겠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넌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해. 그게 너의 전부였지. 그래서 교만했고, 그래서 진 거야.”
적지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네가 여기 온 건 나와 우리 팀하고는 상관없어. 넌 예전의 당당하고 자부심 넘치던 그 모습을 되찾고 싶은 거야. 그게 진짜 이유라고! 안 그래?”
내 말에 마바일과 하상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야.”
난 적지형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난 여기서 태한에게 수련을 받고 강해졌어. 너보다 한참 형편없던 내가 이만큼이나 강해졌다면, 넌 그보다 더 강해질 수 있어.”
적지형은 멍한 얼굴로 날 바라봤다.
“뭘 어쩌란 거야?”
“헌한발만 박살 내면, 언제든 싸워 줄게. 네가 원하는 만큼…….”
“죽여 버리겠어. 반드시……!”
적지형은 이를 갈면서 맹세하듯 자신의 어깨 위에 얹힌 내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스스로 내 손을 끌어당기며 몸을 일으켰다.
“뭐부터 하면 되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난 적지형에게서 시야를 돌려 불타는 고구마를 쳐다봤다.
“지금부터 지옥 훈련 시작이야. 훈련이 끝날 때까진 밖으로 나갈 수 없어.”
마지막으로 나존귀에게 물었다.
“하겠어요?”
“당연하지! 오히려 이런 기회를 기다려 왔어!”
날 포함해 13명.
우리는 그날 바로 훈련을 시작했다. 목표는 헌한발 타도! 갖가지 출신의 멤버들은 모두 내 지시에 따랐다.
원래 헌한발이었던 아란, 노건, 유정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태한에게 직접 훈련 받을 거란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다.
난 그들이 아쉬워하는 만큼 더욱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H력 방출 30분간 유지!”
기초 체력부터 H력의 운용. 거기에 각자 능력에 따른 개인 맞춤.
훈련을 받는 그들도,
훈련을 시키는 나도,
쉽지 않은 나날이었다.
아란, 노건, 유정, 손평화, 마바일은 예상처럼 순조롭게 훈련에 잘 따라왔다.
불타는 고구마 넷은 보조 헌터를 하면서 다져진 체력 덕에 의외로 잘 버텼고, 나존귀는 훈련에 벅차하면서도 어떻게든 따라잡으려 노력했다.
문제는 역시나 적지형.
녀석의 몸은 생각 이상으로 심하게 망가져 있었다.
기초 체력에선 나존귀 수준으로 최하위였고, 그마저도 인내심이 부족해 나존귀보다 더 훈련을 소화하지 못했다.
“어서 움직여! 쉴 틈 없어!”
“닥쳐! 지금 하고 있잖아!”
실력은 줄어도 성격은 그대로.
참 가르치기 까다로운 놈이다.
“성질 그만 부리고, 떠들 기운 있으면 몸을 움직여!”
“으아아악!”
땀범벅인 적지형은 자기 성격을 못 이기고, 나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훗!”
지금 적지형의 주먹은 솜방망이 수준. 난 가볍게 녀석의 손을 잡고 옆으로 휙 던졌다.
“크윽!”
적지형은 꼴사납게 쓰러졌다.
“일어나. 아직 훈련 반도 안 끝났어. 또 혼자 밤새도록 할래? 이 약골아!”
“닥쳐!”
적지형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눈을 번뜩이며 훈련을 계속했다.
나와 적지형은 매일매일 늦게까지 남아 그날의 훈련을 끝냈다.
두 달 후.
모든 훈련이 끝났다.
마지막으로 팀 창설을 위해 팀 리더와 팀 이름, 그리고 멤버 등록만 남겨 둔 상태였다.
“리더는 아란 양이 하는 게 좋겠어요.”
“예? 제가요?”
헌한발 타도라는 타이틀을 내건 이상, 그에 걸맞은 명분을 세우려면 원래 헌한발 멤버인 사람이 리더가 되는 게 나았다.
그렇다면 후보는 아란, 유정, 노건 이 셋뿐이었다. 그리고 그 셋 중 가장 강한 사람은 바로 아란이었다.
적지형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딱히 리더 결정에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빨리 자신들의 새로운 힘을 시험하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다.
“그럼 우선 팀 이름은…….”
항상 이걸 정할 때가 문제다.
아란이 손을 번쩍 들면서 말했다.
“현한발 어때요?”
“현……한발?”
‘현’한발 대 ‘헌’한발.
신구 대결.
제법 그럴싸한 이름이다.
“이번엔 줄임말도 아니니까, 누가 물어보면 마음 편히 ‘모른다, 이 자식아!’라고 할 수 있겠네.”
난 적극 아란의 의견에 찬성했다.
역시 그녀를 리더로 세우길 잘한 것 같다.
“그런데……한 가지 걸리는 게 있는데요.”
난 씁쓸한 심정으로 손평화에게 물었다.
“평화 씨, 괜찮으시겠어요? 현한발에 들어오려면……공포특급에서…….”
나와야 한다.
내 염려와 달리 손평화는 활짝 웃었다.
“네!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벌써 주나 언니랑 다 이야기했어요. 언니랑 오빠들도 이해해 줄 거예요.”
“고마워요.”
“고맙긴요!”
손평화는 내 손을 잡으며 얼굴을 붉혔다.
그날 오후 아란, 유정, 노건이 지부 건물로 가서 등록을 마쳤다.
헌한발 VS 현한발.
매스컴은 최대한 자극적인 제목을 만들어 우리의 내분을 극적으로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헌한발, 사랑과 전쟁!]
[배은망덕한 녀석들!]
[김용 VS 배신자들, 승자는?]
[정의는 언제나 승리한다!]
[김상팔의 빈자리, 왕자의 난?]
우리가 랭킹전으로 도전하겠단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기자들은 알아서 추측성 보도를 쏟아 냈다.
어떤 의미론 언론이야말로 참 알기 쉬운 속성을 띠고 있다.
며칠 후 이서현에게서 직접 아란에게 연락이 왔다.
용건은 당연히 랭킹전.
물론 난 통화를 하지 않고, 스피커폰을 통해 들으며, 메모장으로 아란에게 통화를 지시했다.
이서현은 완전히 우리 편도, 그렇다고 김용 편도 아니었다.
뭐랄까.
신중한 것일 수도 있고, 기회주의적일 수도 있고, 아님 그저 보신적인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녀에게 이 이상의 무언가를 바랄 수 없는 상황이다.
“판은 깔렸고…….”
난 랭킹전에서 입을 인형 옷을 좀 더 활동하기 편하게 수선했다. 그리고 그러면서 통화 내용을 되뇌었다.
“팀전이라…….”
본래 랭킹전은 랭킹을 방어하는 당사자와 랭킹을 노리는 자들의 일대일 승부.
그러나 이번 랭킹전은 김용의 제안으로 인해 팀전이 되었다.
“뭐, 김용이 예전처럼 강력한 힘을 못 쓰니 당연한 거겠지.”
차라리 바라던 바다.
서로 총력전을 하게 된다면, 더욱 확실하게 헌한발을 박살 낼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팀전의 특성상 개개인의 장단점을 보안하면서 싸우면 훨씬 수월하게 대응할 수 있다.
“그런데 팀전이면, 어떤 식으로 대결하는 거지? 저번처럼 연전제는 아니라고 했는데…….”
그럼 배틀로얄 방식?
김용은 가급적 직접 전투에 나서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자신이 노출되지 않는 방식을 선호할 게 분명하다.
우리는 이서현의 연락을 기다리며 더욱 훈련 강도를 높였다.
“팔굽혀펴기! 쓰러질 때까지!”
마지막 훈련엔 태한까지 참여해 우리의 전력을 점검해 줬다.
“모두들 기본으로 이십만은 채울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그러지 않으면 결정적인 순간, 체력 부족으로 고생하거든.”
지옥에서 온 개자식 교관.
날 포함한 전원, 태한을 그렇게 욕했다. 그러나 불평과는 별개로 실력 향상, 그것 하나는 끝내주는 녀석이었다.
기다리던 랭킹전 연락이 온 것은 그로부터 2주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