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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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테러, 사상자 3명]
[헌한발 팀장, 사망 추정]
[다음 1위는 누구?]
[김상팔, 시체도 못 찾아…….]
[해외여행 한국 관광객 비상]
난 죽었다.
세상엔 그런 걸로 되어 있다.
조용히 지내던 와중에 갑작스런 지부의 호출.
이서현은 나에게 본부로 가서 그들과 무슨 상의를 하라고 했다.
왜 일개 헌터인 내가 그런 일을 하냐고 묻자, 그녀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영국행 비행 티켓만 내밀 뿐이었다.
갑작스런 영국행.
갑작스런 공항 테러.
고작 나 하나 죽이려고 너무 많은 피해자가 생겼다.
난 디마의 도움으로 조용히 한국에 올 수 있었다. 이럴 땐 그런 친구가 있는 게 다행이었다.
지금 난 태한의 저택에 머물고 있는 중이다.
설마 새로 지부장이 된 이서현도 전임자들처럼 부패한 걸까?
결국 그녀도 별수 없는 걸까?
그 의문을 풀 새도 없이 상황은 빠르게 흘러갔다.
“디마한테 고마워해야 하나?”
난 옷을 챙겨 입은 후 거리로 나왔다. 종일 전광판과 TV뉴스에 내 얼굴이 나왔지만, 날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일단, 아란 양한테 가 볼까?”
어느 팀이든 리더가 중요하다.
난 택시를 불러서 올라탔다. 백미러로 내 모습을 본 택시 기사는 흠칫 놀라며 물었다.
“놀이동산으로 갈까요?”
“아니요.”
난 아란의 집 주소를 말했다.
“근데 옷이 왜 그러세요? 어디 알바 가세요?”
“사정이 있어서요.”
택시가 출발하고, 라디오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이서현 한국 지부장은 오늘 정오 기자회견에서 공식적으로 김상팔 씨의 사망을 알렸습니다. 협회 본부와 영국 경찰의 공동 수사 결과, 테러는 플레잉의 영국 조직에서 행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현재 범인 체포를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택시 기사는 혀를 차면서 혼잣말을 가장한 대화를 시도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헌터가 저렇게 허무하게 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죽은 사람만 불쌍하죠.”
“그러게요.”
안 죽었습니다요.
택시기사는 내가 맞장구를 쳐주자 신이 나서 계속 말했다.
“그나저나 빈 1등 자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듣기론 김용이 다시 복귀한다고 하던데요?”
“네?”
김용이 거기서 왜 나와?
무슨 국회의원도 아니고, 그런 대역 죄인을 잠깐 잠수 탔다가 복귀시키는 거야?
“그, 그럴 리가요. 그 사람은…….”
나쁜 새끼예요.
“에이, 저번에 재판하는 거 보니까 그 사람도 그저 속은 거라고 하던데요? 자숙하면서 기부도 많이 하고, 자원봉사도 했던데,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닌가 봐요.”
“아오!”
마음 같아선 손바닥으로 이마라도 시원하게 한 대 탁 치고 싶은데, 지금 입고 있는 옷의 구조상 그게 불가능했다.
“왜 그러세요, 손님?”
“아, 아닙니다.”
난 미간을 찌푸리며 창밖으로 머리를 돌렸다.
―네! 지금 막 속보가 들어왔습니다. 앞으로 한국 헌터 랭킹의 1위는 새로이 헌한발 팀장으로 취임 예정인 김용 씨가 맡는다고 합니다.
엥?
난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잘못 들었나?
이서현이 김용을 다시 받아 줬다고?
거기다가 헌한발 팀장?
이런 시발.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정리할까?”
어차피 고인이 됐으니, 확실하게 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택시는 아란의 집 앞에 멈춰 섰다.
난 택시에서 내려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딩동. 다급하게 버튼을 누르자 문이 살짝 열리며 아란의 얼굴이 쏙 나왔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난 최대한 김대팔의 말투를 흉내 내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지금 난 공룡 인형 옷을 입은 상태.
아란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김대팔……씨였죠?”
“그렇답니다!”
소, 속은 거야?
다행이긴 한데, 못 알아보는 건 또 못 알아보는 대로 서운하네.
“무슨 일로 오셨죠?”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그래요?”
아란은 아예 밖으로 나와 대문을 닫았다.
“그냥 여기서 말씀하세요.”
“좋습니다. 헤헤.”
난 최대한 역겹게, 쓸데없이 사람 좋아 보이게, 가식적으로 웃었다.
“듣자하니, 헌한발을 탈퇴하셨다면서요?”
아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헌한발은 내가 실종됐단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또 분열했다.
지난번 분열의 징조가 이번엔 아예 확실하게 매듭을 지은 것이었다.
팀은 분열한데다가 김용에게 홀라당 넘어갔다.
아무래도 중간에 지부가 껴서 뭔가 공작을 한 모양이다.
당연하게도 탈퇴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
문제는 주아란, 노건, 유정.
딱 세 명뿐이란 점이다.
난 이 부분에선 딱히 팀원들이 내 뒤통수를 쳤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아마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우리 팀’을 지키기 위해 남은 것 같았다.
“근데요? 그쪽도 어금니에서 나왔잖아요? 아, 맞다. 어금니는 강제해산 됐죠?”
아란은 삐딱한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맞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아란 양께서 헌한발을 나오신 이유는 현재 헌한발의 팀장이 김용 씨이기 때문이겠죠?”
“그래서요?”
난 티라노 인형의 입을 꾹 누르며 혹시나 얼굴이 노출될까 조심했다.
“전 김상팔 씨의 친구로서 지금의 상황이 참 안타깝습니다. 그렇기에 아란 양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제 도움이요?”
난 티라노 앞발을 요망하게 꼼틀대면서 말했다.
“헌한발을 깨부수는 겁니다.”
“예?”
아란은 내 말에 깜짝 놀라며 입을 쩍 벌렸다.
“뭐라고요?”
“새로운 팀을 조직해서 헌한발과 랭킹전을 하는 겁니다.”
“랭킹전……?”
“김용은 이번 복귀로 남은 재산의 대부분을 소비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그에게는 1위란 직위와 헌한발의 팀장이란 직책이 전 재산이자, 최후의 보루입니다.”
더구나 김용의 복귀라곤 하나, 실상은 지난번 싸움으로 H력 장기를 다쳤기에 예전처럼 로얄급의 실력을 낼 수 없는 상태.
이 부분은 태한에게 부탁해서 알아본 정보이기에 확실했다.
“그래서 랭킹전으로 무너뜨리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현재 헌한발은 과거 어금니의 세력과 해산된 뉴 월드의 세력까지 붙어서 어금니 이상의 규모가 되었다.
그야말로 비대한 괴물.
그 괴물을 쓰러뜨리기 위해선 아란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아란은 미즈 드래곤과의 싸움으로 재능이 완전히 꽃 펴서 현재는 헌한발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전력이었다.
“헌한발의 멤버였던 아란 양께서 타도의 선봉에 서 주셔야 멤버 영입이 순조로울 겁니다.”
아란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날 째려봤다. 그녀의 매서운 눈빛만으로 지금 날 얼마나 적대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당신도 김용하고 똑같은 생각 아니에요? 우릴 이용해서 당신이 원하는 걸 하려는 거잖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란은 흥분해서 씩씩거렸다.
“거짓말! 김용도, 이서현 지부장도……다 똑같아요! 어른들은 다 더럽다고요!”
아란은 휙 고개를 돌려 대문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난 재빨리 인형 입으로 팔을 뻗어 아란을 잡았다.
“이거 놔요!”
아란은 거칠게 내 손을 뿌리쳤다.
“아란 양. 전 당신과 마찬가지로 김상팔 씨의 친구입니다! 당신은 그 사람의 친구가 아니었나요?”
친구.
그 말이 아란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아란은 한숨을 쉬면서 고개만 돌려서 날 쳐다봤다.
“그래서요?”
난 내 명함을 꺼내 아란에게 쥐여 줬다.
물론 가짜 명함.
김대팔이란 이름과 대포폰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당장 결정하기 힘드시다면, 생각할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생각이 결정되시면, 여기로 연락 주세요.”
난 아란의 반응을 살필 새도 없이 후다닥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바쁘다, 바빠!”
난 또 택시를 잡았다. 그리고 이번엔 시내로 향했다.
시내에 있는 작은 바.
그곳에 한 사내가 있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내는 쳐다보지도 않고 소리를 질렀다.
“뒈지기 싫으면 꺼져! 여긴 내가 전세 냈거든!”
사내 때문인지, 바 안에 다른 손님은 없었다.
난 대뜸 사내의 옆자리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응? 넌 뭐야?”
적지형.
그가 날 쏘아봤다.
“너,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제 이름은 김대팔이라고 합니다.”
난 티라노 앞발을 까딱였다.
“김, 대, 팔?”
적지형은 이름을 듣자마자 H력을 뿜어냈다.
“마지막 기회야. 꺼져.”
난 그 기세에 눌리지 않고, 명함을 꺼내 적지형에게 내밀었다.
“뭐지? 스카우트하러 온 거야?”
적지형은 순순히 명함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을 읽은 척하다가 냅다 한쪽 팔을 뻗어서 내게 모래를 쐈다.
인형 옷 안으로 모래가 침투하면서 빵빵하게 옷이 부풀었다.
“경고했지? 이 티라노 새끼야!”
적지형은 한손으로 명함을 구겼다.
모래들은 스멀스멀 움직여 인형 옷 안에서 직접 내 몸을 조였다.
난 능력발현으로 얼른 슈트를 입었다. 다행히 슈트는 내 몸과 모래를 구분해서 생성되었다.
“응?”
적지형은 모래를 통해 내 몸에 생긴 변화를 느낀 것인지 모래의 움직임을 멈췄다.
“너 뭐야? 김상팔과 비슷한 능력 같은데?”
“제 이름은 김대팔. 김상팔 씨의 지인입니다.”
“김상팔의 지인?”
적지형은 내 이름을 듣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자식의 지인이라고? 아가리를 찢어 주겠어!”
우리 팀에게 진 후 폭발대제는 완전히 한풀 꺾이며 기세가 수그러졌고, 뉴 월드 사태가 벌어지기 직전 팀이 해체하는 수순을 밟고 말았다.
물론 거기엔 플레잉과 뉴 월드 세력의 압박이 크게 작용했다.
그들 입장에선 완벽하게 복종하지도 않는 반항아 무리를 그대로 놔두기 껄끄러웠을 것이다.
그 뒤, 폭발대제 멤버들은 대다수가 페인처럼 살고 있다.
“으아아아!”
적지형은 나에 대한 원한을 담아 나에게 덤볐다.
만약 나인 줄 알게 되면 정말 작정하고 덤비겠지?
“죽어라!”
적지형은 전신을 모래로 바꿔서 날 통째로 감쌌다.
“이거 이제 안 통해!”
난 광탄을 연발로 쏘면서 모래를 날렸다. 그리고 모래를 떨치며 생긴 공간으로 파고들며 광탄을 난사했다.
연속된 광탄에 모래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알아서 물러났다.
“크윽!”
적지형은 술에 절어 지낸 탓에 실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적어도 나와 랭킹전에서 싸울 때의 그였다면, 좀 더 터프하게 버텼을 것이다.
“크으으윽!”
적지형은 모래에서 사람으로 돌아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정말 형편없군요. 몇 달 전만 해도 유력한 2군 후보였던 분이 지금은 그냥 한량이 다 되셨군요?”
“뭐야?”
적지형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꺼져! 김상팔의 졸개와는 상종도 안 해!”
“그 김상팔의 팀을 깨부수고 싶지 않으십니까?”
“뭐……라고?”
“지금의 헌한발은 썩어 버렸습니다. 그런 잘못된 일을 두고만 볼 수는 없거든요. 올바르게 바로 잡기 위해선 헌한발을 타도해야 됩니다.”
난 명함 한 장을 새로 꺼내서 적지형에게 건넸다.
“전 헌한발을 쳐부술 사람들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만약 생각이 있으시다면, 연락해 주십시오.”
적지형은 순순히 내가 준 명함을 받았다. 이번엔 구기지 않고 가만히 들고만 있었다.
“그럼 전 이만…….”
난 또 후다닥 그 자리를 떠났다.
“앗!”
바 밖에서 내가 마주친 것은 팔짱을 낀 채 기다렸다는 듯이 날 쳐다보고 있는 마바일과 하상룡이었다.
“두, 두 사람은……!”
폭발대제의 2인자, 마바일.
로얄인 하상구의 동생, 하상룡.
무뚝뚝한 마바일 대신 하상룡이 능글맞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예?”
바 안에서 나눈 대화가 바깥까지 들렸나?
“우리도 끼워 줘.”
“예에?”
이건 예상 못했다.
“우리도 헌한발 타도에 동참하고 싶거든.”
“설마 거절하진 않겠지?”
마바일도 입을 열면서 내 어깨를 잡았다.
인형 옷 위로 느껴지는 그의 손이 참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