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헤드헌터 김상팔-213화 (213/250)

213.

213.

“뭐, 여기까지 왔으면 말해 줘도 되겠지.”

어쩌면 우리의 마지막 사냥이 될지도 모르니……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상대할 괴물은 바로 ‘무지개히드라’야.”

무지개히드라. 왠지 가운데 띄어쓰기를 해야 할 것 같은 이 괴물은 이름처럼 일곱 빛깔의 머리를 지녔다.

나도 아는 것은 이름뿐, 그밖에 자세한 정보는 알지 못한다. 이서현에게 의뢰를 받을 때에도 현장에서 정보를 받으란 소리뿐이었다.

“무지개히드라?”

다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더러는 무지개란 이름에 호기심을, 더러는 10급이란 위용에 살짝 긴장하기도 했다.

“뭐, 내일이 되면 알지 않겠어요? 다들 푹 쉬도록 하세요. 내일은 정말 험난한 하루가 될 거예요.”

난 조금이라도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침대에 누웠다.

유일한 약점이라면 치료술사의 부재인데, 이건 아란이 최마군의 능력을 흡수하면서 다소 해결되었다.

“그럼 다들 잘 자요.”

난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새벽이 되어 우리를 깨우는 기상나팔 소리에 눈을 떴다.

“으아아악!”

내부에 설치된 스피커로 기상 나팔소리가 방송되고 있었다. 그러자 지옥과도 같던 군대에서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났다.

몸이 직각으로 움직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재빨리 침구류를 정리, 옷을 다 갖춰 입은 후 침대 앞에 차렷 자세로 섰다.

“엥?”

다른 사람들은 날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나만 군대 다녀왔어?”

난 너스레를 떨면서 몸을 풀었다.

30분 뒤, 여유로운 기상이 끝나고 다함께 작전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에 도착하자 군인들이 우리에게 귀마개처럼 생긴 이어폰을 나눠 줬다.

외관은 평범하게 생긴 무선 이어폰.

그것을 귀에 뀌자, 놀랍게도 그들이 쓰는 언어가 한국어로 통역되어 들렸다.

“오오!”

신문물! 문명의 이기! 웰컴 투 퓨처!

“작전 목표는 무지개히드라를 제거하는 겁니다. 여러분은 녀석의 본거지로 들어가 녀석을 밖으로 유인해 오시면 됩니다.”

“미끼가 되는 건가요?”

아란이 손을 들면서 질문했다. 그러자 톰은 무거운 음성으로 단호히 말했다.

“질문은 나중에 합니다!”

“죄, 죄송합니다.”

톰은 헛기침을 하면서 계속 설명을 이어 갔다.

“녀석의 본거지는 늪지대라 군대가 들어가기 힘듭니다. 그러니 여러분께서 정해진 지점으로 녀석을 이끌어 주셔야 합니다.”

톰이 손짓을 하자, 군인들이 우리에게 문서를 나눠 줬다.

“오오!”

문서는 무려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었다. 다만 어딘가 문법이 안 맞고, 중간에 문장이 끊기는 부분이 있었다.

“나눠 받으신 문서에서 그림과 지도를 중점을 봐주십시오. 거기가 바로 작전 지역입니다.”

10급 사냥 구역 한가운데.

들어가는 것도, 나오는 것도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염려 놓으십시오. 저희 부대엔 대괴물 요격 탱크와 자주포, 그리고 숨통을 끊기 위한 미사일도 구비하고 있습니다.”

미사일?

그 말에 나조차 겁이 났다.

“이어폰은 여러분끼리는 물론이고 저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언제든 편하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톰이 준 문서에는 무지개히드라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도 있었다.

“에엥?”

생긴 게 왜 이래?

무슨 방사능에 오염된 돌연변이 같이 엄청 징그럽게 생겼다.

난 ‘히드라’라고 하기에 당연히 일곱 개의 긴 목과 머리를 가진 괴물일 줄 알았는데…….

이건 뭐 거의 역대급이다.

다음으로 장비 지급.

모두 군용 장비였다.

“와!”

돌격소총, 기관총 같은 총기를 포함해 RPG와 유탄발사기 등등 각종 폭발물도 있었다.

한국이라면 절대 쓸 수 없는 강력한 화기.

우리는 각자가 원하는 무기를 골랐다. 난 평소처럼 산탄총을 집었다.

다만 한국에서 쓰던 것과 달리 방아쇠만 당기면 무려 자동사격이 되는 엄청난 물건이었다.

“자동 산탄총이 있을 줄이야!”

우리는 손에 든 무기의 묵직함을 즐기며 군인들을 따라 막사를 나섰다. 그리고 밖에서 대기 중인 수송용 장갑차에 몸을 실었다.

여러 장갑차에 나눠 탄 후, 우리는 사냥 구역을 향해 나아갔다.

운전을 하던 군인은 씩 웃으며 라디오로 괴상한 가요를 틀었다.

“언틸 더 다잉 데이즈!”

헤비메탈이 고막을 손상시킬 정도로 큰 음량으로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이런 미친……!”

우리뿐만 아니라 보조석에 탄 군인도 손으로 귀를 틀어막으며 운전석을 향해 무어라 소리쳤다.

“아임 크레이지!”

운전석의 군인은 씩 웃었다.

우리는 그렇게 고막을 공격당하며 사냥 구역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작전 지점이라고 알려 줬던 곳에서 내렸다.

“유인 지점은 여기서 100미터 떨어진 곳입니다. 잘 유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작전대로 유인이 되고 나면, 사냥 구역 출입구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톰의 목소리를 끝으로 장갑차는 먼지구름과 함께 사라졌다.

늪지대의 습한 바닥은 액체와 고체의 중간 상태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 거품에서 올라온 냄새는 부패된 생물의 그것이었다.

“으엑!”

아란은 혀를 내밀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들어갈게요.”

우리는 늪지대에 발을 디뎠다.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물컹한 질감과는 다르게 의외로 푹 빠지거나 하진 않았다.

점성은 거의 없고, 쿠션감 정도만 있어서 마치 고무 위를 걷는 것 같았다.

“무지개히드라의 서식지치고는 꽤 조용한데?”

우리는 3개로 조를 나눴다.

각각의 조에게는 역할이 있다.

1조는 무지개히드라 색출 및 감시.

멤버는 호규, 변해라, 유정, 노건.

2조는 1조의 지원 및 대대적 공격.

멤버는 나, 주아란, 이육, 이삼, 이오, 이사, 이이, 이십.

3조는 늪지대 밖에서 상황 대비.

멤버는 조루호, 이팔, 이구, 이칠.

난 모두와 감각을 연결했다. 이곳은 한국과 달리 길이랄 게 없어서 자칫 흩어지면 큰일이었다.

“그럼 출발하죠.”

1조가 먼저 늪지대로 들어갔다.

유정은 주변을 살피며 맨 앞에 서서 조원들을 이끌었다.

그녀가 고른 무기는 평소에 잘 쓰던 저격용 라이플이 아니라 유탄 발사기가 옵션으로 달린 돌격소총이었다.

유정은 총에 달린 끈을 어깨에 건 후 한손에 정글도를 들었다. 그리고 거칠게 칼을 휘둘러 늪 위로 솟은 수풀을 잘랐다.

1조가 들어가고 우리 조도 거리를 두고 그 뒤를 따랐다.

앞선 사람들이 다듬어 준 덕에 한결 수월하게 나아갈 수 있었다.

물론 우리가 너무 빠르게 전진해서 1조를 따라잡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중간, 중간 속도를 조절했다.

얼마나 갔을까?

새벽에 출발한 우리의 머리 위로 해가 높이 떠 있었다.

유정은 예리한 시선을 이용해 계속 수풀 사이의 먼 거리를 주시했다.

“멈추세요.”

유정의 말에 1조의 움직임이 멈췄다.

유정은 수풀을 자르더니, 그 아래 지면을 확인했다.

“이건……!”

지면이 울긋불긋 빛나고 있었다.

유정은 침을 삼키며 손바닥으로 땅을 짚었다.

“이 아래…….”

유정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조원들에게 말했다.

“아래에 뭔가 있어요.”

“서, 설마……!”

다들 경악했다.

그때 지면이 폭발하면서 안에서 뭔가가 튀어나왔다.

“으아아악!”

1조 전원이 폭발에 휘말렸고, 특히 유정은 정통으로 날아갔다.

“유정 씨!”

노건은 폭발의 충격으로 나뒹굴다가 유정이 날아가는 것을 보고 얼른 변신을 했다.

“으아아아!”

거구가 된 그는 단번에 뛰어올라 공중으로 뜬 유정을 낚아챘다.

“우리는?”

호규와 변해라는 그대로 땅바닥을 굴렀다.

“으으으윽!”

두 사람은 흙투성이가 된 채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와!”

1조를 포함해 그들을 통해 보고 있는 나도 감탄을 내질렀다.

‘저건 무지개히드라가 아니잖아요?’

활활 타오르는 깃털과 거대한 몸집, 그리고 밝은 빛을 내는 두 눈.

전설 속의 불사조가 우리 눈앞에 있었다.

“우와!”

뜨거운 열기에도 1조는 넋을 잃고 그 모습을 바라봤다. 얼마나 얼이 빠졌는지 노건은 변신도 스르르 풀렸다.

난 이어폰으로 톰을 불렀다.

“톰, 지금 저희 앞에 불사조가 나타났는데요?”

―불사조? 피닉스 말입니까?

“어떻게 하죠?”

“일단 절대 건드리지 마세요. 피닉스는 무작정 덤비진 않습…….”

“이리 온!”

변해라는 H력을 뿜어내며 피닉스에게 우쭈쭈를 시전했다.

‘뭐, 뭐하는 거야? 당장 그만둬!’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변해라의 H력은 기어이 피닉스의 눈으로 들어갔다.

‘피니이이익스!’

엥?

갑자기 내 머릿속으로 이상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서, 설마?

‘피니, 피니, 피니이익스!’

피닉스가 왜 피닉스로 작명됐는지 의문이 하나 풀렸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멍멍’거려서 ‘멍멍이’로 지은 것이었다.

‘워워, 잠깐만 진정해.’

난 미친 척하고 피닉스에게 말을 걸었다.

‘우린 무지개히드라를 찾으려고 왔어. 도와주지 않을래?’

아니면, 무승부로 하지 않을래?

하나도 벅찬데, 둘은 절망이다.

‘피니, 피닉스! 피니, 피니……!’

괴물한테도 이성이 존재하는 걸까? 아님, 그냥 울음소리인 걸까?

이런 상황은 톰이 준 문서에 나와 있지 않았다.

“피니이이익스!”

피닉스는 크게 울부짖으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녀석은 하늘 위에서 1조 근처를 빙빙 맴돌았다.

―괜찮을까요?

유정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적어도 저희를 공격하진 않을 거예요. 계속 전진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유정은 조원들을 수습한 후 계속 나아갔다. 그런데 하늘 위의 피닉스가 천천히 그들을 따라왔다.

“저거 나중에 뒤통수치는 거 아니야?”

호규는 변해라를 흘겨보면서 중얼거렸다.

“왜 날 그런 눈으로 봐? 저게 다 내가 조련해서 저런 거라고……!”

“10급 괴물을 조련했다고? 해라야, 그건 좀…….”

누구도 믿지 못할 이야기.

변해라는 볼을 실룩거리며 말했다.

“오빠까지 그런 식으로 말할 건 없잖아?”

“미, 미안. 나도 모르게…….”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는 사이, 이번엔 거대한 뱀이 스르륵 수풀 사이에서 튀어나왔다.

“무, 무지개히드라?”

1조 전원 정지. 긴 목의 뱀 머리와 마주했다.

뱀은 혀를 날름거리며 1조를 쳐다봤다.

“으아아아…….”

호규는 완전히 쫄아서 얼음 상태. 그는 변해라를 끌어안은 채 뱀의 시선에서 조금도 눈을 떼지 못했다.

‘팀장님, 어떻게 하죠?’

유정이 물어 왔다. 묻는 것으로 봐선 속으로 그녀도 꽤나 당황한 모양이었다.

‘일단 갑자기 휙 움직이면 녀석을 자극할 수 있으니까, 뒷걸음질을 천천히 하세요. 그리고 다른 머리가 어디 있는지 주의하시고요.’

난 우리조의 이동속도를 올렸다. 그리고 만약을 위해 3조에게도 전진을 지시했다.

“어서 가요!”

난 조원들과 함께 뛰었다.

한편, 1조는 열심히 뒷걸음질 중. 그런데 그들이 물러설수록 뱀 머리도 계속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흑흑……!”

호규와 노건은 훌쩍이면서 다리를 벌벌 떨었다. 그러자 유정과 변해라가 각각 한 사람씩 어깨를 잡고 뒤로 끌었다.

“앗!”

그때 여기저기서 뱀 머리가 튀어나왔다. 모두 3개. 뱀들은 혀를 날름거리며 계속 1조를 따라갔다.

뒷걸음질 치는 1조와 전진하는 2조. 우리는 곧 가운데 지점에서 만나게 됐다.

“티, 팀장님!”

1조는 날 보며 후다닥 움직였다.

“아이고!”

큰 동작하지 말라고!

난 혀를 찼다.

그 순간, 뱀 머리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수풀 위로 높게 섰다.

“와!”

무지개히드라가 그 무시무시한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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