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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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블루는 잔뜩 충혈된 눈으로 거칠게 말했다.
“멀쩡하진 않습니다. 아끼던 옷이 다 망가졌거든요!”
미스터 블루는 팬티 한 장만 걸친 상태. 그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졌다.
“각오하십시오.”
이번엔 미스터 블루의 몸이 작게 응축되더니, 빼빼 마르며 근육과 살이 뼈에 착 달라붙은 형상으로 변했다.
거기에 피부색도 그의 별명처럼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갑니다.”
미스터 블루의 모습이 또 사라졌다. 루호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돌려 그의 모습을 찾았다.
“어딜 보는 거죠?”
뒤통수에서 들려온 목소리.
루호는 다시 앞으로 쳐다봤다. 그러나 어디에도 미스터 블루의 모습은 없었다.
“전 여기 있습니다.”
다시 뒤통수에서 들려온 목소리.
루호는 계속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목소리만 들릴 뿐 미스터 블루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너무 느려서 제 움직임을 따라오실 수 없나보군요.”
루호의 뒷목에 소름이 돋았다. 난 정신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루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미스터 블루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이유. 그것은 그가 말한 대로 속도의 차이에 있었다.
무슨 괴담에 나오는 귀신처럼 미스터 블루는 루호의 뒤통수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쉽게 말하면 루호가 서쪽을 보는 순간 거기에 맞춰 동쪽으로 돌아가고, 루호가 남쪽을 보는 순간 거기에 맞춰 북쪽으로 가는 것이었다.
고개를 돌리는 속도를 넘어 반사 신경 이상의 민첩함이었다.
“당신이 고개 돌리길 포기하면, 그때 목을 꺾어 드리겠습니다.”
미스터 블루는 완전히 루호를 갖고 놀고 있었다.
루호는 식은땀을 흘리며 계속 몸을 움직였다.
자신이 미스터 블루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도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는 동안은 그가 쉽사리 공격해 오지 못하리란 생각에서였다.
허나 시간이 지날수록 루호의 체력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안 그래도 체질 때문에 오래 H력을 쓸 수 없을 텐데, 처음 탱크들과의 싸움부터 지금까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상태였다.
루호의 움직임은 점점 둔해졌다.
“이제 항복하시는 겁니까? 실망이군요.”
“아, 아직……!”
루호는 전신이 저려 오는 것을 느끼며 잔디 위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루호의 앞에 미스터 블루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별수 없나 보군요. 고생하셨습니다.”
미스터 블루는 천천히 루호의 목을 잡았다. 루호가 떨쳐 내려고 그의 손을 잡았지만, 마치 쇠고랑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크으으윽…….”
루호의 의식이 점점 흐려졌다.
“제갈검법, 일장!”
미스터 블루와 루호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리고 두 사람의 옆에 선 제갈신은 막 땅에 꽂은 검에서 손을 떼며 다가갔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야.”
제갈신은 미스터 블루의 손을 어렵지 않게 펴서 루호를 구해 냈다.
“괜찮아?”
루호는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엎드렸다.
“이젠 제법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강하네요.”
“알겠지만, 내 기술은 효력이 그리 길지 않아.”
제갈신의 말처럼 미스터 블루의 몸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갈신은 다급하게 물었다.
“다음 기술을 쓰려면 잠시 동안 저 녀석의 움직임을 멈추게 해야 돼. 할 수 있겠어?”
“네, 제가 해 볼게요.”
루호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몸을 일으켰다. 때마침 미스터 블루도 다시 움직였다.
제갈신은 서둘러 지면에서 검을 뽑았다.
“잘 부탁해!”
“저도요.”
두 사람은 H력을 뿜으며 미스터 블루를 노려봤다.
“당신의 능력에 대해선 들어 본 적이 있지만, 당하는 건 처음이군요.”
미스터 블루는 어금니를 씹으며 얼굴을 구겼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제갈신을 가리켰다.
“당신부터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루호는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제가 그렇게 놔두지…….”
루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미스터 블루의 모습이 사라졌다.
루호는 본능적으로 제갈신을 응시했다. 그러나 고개를 돌리는 틈에 이미 그의 몸은 이미 미스터 블루의 손에 꿰뚫어져 있었다.
“크아아악!”
제갈신은 피를 토하며, 팔을 움직였다.
그리고 빈손으로 자신의 신체를 꿰뚫은 미스터 블루의 팔을 꽉 움켜쥔 채 다른 팔을 움직여 검을 미스터 블루의 머리 위에 얹었다.
“제갈검법, 이장!”
미스터 블루는 경악하면서 굳어 버렸다.
“쿨럭!”
제갈신은 기침과 함께 피를 뱉었다. 그의 입과 복부에선 쉴 새 없이 피가 쏟아졌다.
“제갈신 씨!”
루호가 서둘러 제갈신의 몸에서 미스터 블루의 손을 빼내려 했다.
“내 걱정은 하지 마! 지금은 녀석을 쓰러뜨리는 게 먼저야.”
제갈신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3분도 안 남았어.”
루호는 제갈신의 눈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루호는 양 주먹을 모아 거기에 H력을 집중시켰다.
“하아아앗!”
끝내기 위한 한 방.
충분한 양의 H력을 시간 안에 모을지가 관건이었다.
루호는 단숨에 자신의 모든 힘을 주먹에 담았다. 태한에게서 제대로 된 수련을 받은 녀석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로얄급의 전력이 담긴 주먹은 그 방대한 힘을 견디며 피부가 실룩실룩 움직였다.
‘상팔 형.’
응?
‘왜?’
‘상팔 형의 기술을 알려 주세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죠?’
설마 루호가 나한테 기술을 물어 올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빠르고, 강력한, 한 방.
세 요소를 충족하는 기술이라면, 역시 광권일 것이다.
난 광권에 대해 설명했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놀랍게도 루호는 사용법에 대해 듣는 것만으로 그 기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루호의 눈을 통해 내가 직접 확인한 것이니 확실하다.
루호는 오른손 위에 광권을 만들었다. 그리고 원래의 광권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광권의 규모를 크게 만들었다.
점점 커진 광권은 그 크기가 웬만한 사람 몸통만 해졌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대광권?
“간다!”
루호는 대광권을 미스터 블루에게 내질렀다. 그리고 그를 밀면서 제갈신의 배에서 그의 손을 뺐다.
“하아아앗!”
루호의 기합과 함께 대광권이 빛을 냈다.
단순 폭발이 아닌 거대한 광선이 미스터 블루를 통째로 삼키며 나아갔다.
“크으으윽!”
미스터 블루는 머리에 얹힌 검이 치워졌지만, 방대한 H력의 힘에 눌려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는 광선에 실려 청와대 담장을 뚫고 북악산으로 향했다.
광선은 산을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무려 산을 수평으로 뚫고 들어갔다.
북악산은 산사태와 지진이 동시에 일어나며 산 전체가 뒤흔들렸다.
광선이 멎고, 루호는 힘겹게 제갈신을 부축했다.
그때쯤 로얄가드맨이 우르르 청와대로 들어와 대통령을 부축하고, 본관 창고에 갇혀 있던 다른 사람들을 구출해 냈다.
“저기 있다!”
로얄가드맨은 완전히 박살 난 관저 근처로 와 두 사람을 발견했다. 그리고 서둘러 두 사람에게 응급조치를 했다.
청와대 쪽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결판이 났다. 그러나 그에 비해 국회의사당 쪽은 완전히 정반대였다.
***
국회의사당 앞 운동장.
헌터들은 이곳에 포위된 상태였다.
탱크, 조직원, 신도들은 상당히 체계적으로 움직이며 금방이라도 헌터들을 전멸시킬 기세였다.
“타타타! 이제 그만 죽어라!”
미스터 타이거는 탱크 위에 서서 크게 웃었다. 그 옆에 미스터 터틀은 확성기로 헌터들에게 말했다.
“항복해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우리가 원하는 건 너희를 죽이는 게 아니다. 센의 명령에 따라 항복하는 자는 구속했다가 우리가 철수할 때 풀어 주겠다!”
양팔에 부상을 입은 최향자는 장마리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서 있었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미스터 터틀에게 소리쳤다.
“범죄자 새끼들 말에 순순히 따를 줄 알고?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어!”
미스터 타이거와 미스터 터틀 말고도 그들 주변엔 다이아몬드급 조직원들이 많이 있었다.
왜 유독 이곳에 병력이 집중해 있는 걸까?
그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여기에 미스터 버드와 미스터 판타스틱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만 제압한다면, 네오서울 전체에 깔려 있는 탱크들을 제거할 수 있었다.
솔직히 우리가 처음 팀을 나눌 때 미스터 버드와 미스터 판타스틱의 위치에 대해 상당히 고심했다.
다만 이때 아무도 그 둘이 국회의사당에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당장 구조적으로 볼 때 국회의사당은 중요한 뭔가를 두기엔 너무 개방적이었기 때문이다.
난 당연히 네오한국은행이나, 한국지부에 있을 줄 알았다.
어찌 보면 국회의사당으로 간 팀의 전력이 상대적으로 다른 팀보다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항복하지 않겠다면, 몰살이다.”
미스터 터틀은 확성기를 땅에 집어던져서 부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적들의 총공격이 시작됐다.
“포기하지 마! 피해를 입은 건 적들도 마찬가지야!”
나존귀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누구보다 열성적이었다.
“포위됐지만, 적들의 핵심도 우리에게 노출됐어! 녀석들이 있는 방향을 집중 공격하면 돼.”
최향자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치료술사들이 그녀의 팔을 치료하자, 그녀는 다시 대검을 들었다.
“다른 곳도 줄줄이 승리하고 있어! 우리도 이기는 거야! 전승하자!”
최향자는 대검을 위로 뻗으며 외쳤다.
“와아아아!”
헌터들은 마지막 투지를 불태웠다.
누군가가 쏜 광탄을 시작으로 싸움이 재개됐다.
“하앗!”
최향자는 대검을 내리쳐서 단숨에 탱크를 두 동강 냈다.
그런 그녀에 맞서 미스터 타이거가 나섰다.
“김상팔과 조루호는 어디 있지?”
미스터 타이거는 호랑이발톱을 만들어 최향자의 대검과 부딪쳤다. 불꽃이 튀면서 두 사람의 눈동자가 이글거렸다.
“너 따위는 나 혼자서도 충분해!”
최향자는 미스터 타이거와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얼음 장벽을 만들어! 포탄의 집중포화를 막아!”
헌터들이 미스터 버드를 향해 돌진 중인 사이, 오시오와 빙신연맹은 후방에서 얼음으로 방벽을 만들어 냈다.
다만, 맨땅에 얼음을 만들어 내는 것이기에 방벽은 만들자마자 금세 사라졌다.
“우리가 돕자!”
하이퍼맨과 대한기사단은 방패를 들고 방벽 앞에 서서 시간을 벌었다.
“으아아악!”
포탄의 공격에 방패가 깨지고, 헌터들이 하늘로 솟구쳤다.
“겁먹지 마! 조금만 버티면 된다!”
노구와 이성구는 목이 터져라 외쳤다.
두 팀의 희생 덕분에 겨우 얼음 방벽이 완성됐다.
“돌격!”
후방에 방벽이 생김으로써 헌터들은 전력을 집중할 수 있었다.
“어림없지!”
미스터 점프와 미스터 블레이드는 방벽을 부수기 위해 빠르게 헌터들을 가로질렀다. 그러나 곧 그들 앞에 오랜 악연이 나타났다.
“어딜 가려고?”
세손가락.
주아라, 공미, 문일은 잔뜩 H력을 뿜어내며 둘에게 말을 건넸다.
“공미!”
미스터 블레이드는 몸을 움츠리며 황급히 미스터 점프에게 말했다.
“여긴 네가 맡도록 해. 난 잠깐 다른 곳에 갈게!”
“엥?”
미스터 점프는 황당한 얼굴로 도망치는 미스터 블레이드를 쳐다봤다. 그리고 한숨을 쉬면서 허공에 대고 박수를 쳤다.
“미스터 볼!”
나타난 것은 바로 김구남.
예전에 루호와 싸웠던 2위 랭킹전 참가자였다.
“세손가락은 내가 맡을 테니, 넌 방벽을 부숴!”
“오케이!”
미스터 볼은 H력을 뿜어내며 전신을 공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회전해 방벽으로 향했다.
“엄청 빠르잖아?”
문일은 안경을 고쳐 쓰면서 뒤를 돌아봤다.
“빈틈이다!”
미스터 점프는 펄쩍 뛰어올라 무려 공중에서 한 번 더 점프했다.
“공중을 밟은 거야?”
주아라와 공미는 미스터 점프의 2단 점프를 보고 입을 쩍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