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헤드헌터 김상팔-198화 (198/250)

198.

198.

“거대한……지렁이?”

드래건보다도 더 커다란 지렁이. 신화나 게임 속에 나오는 샌드웜처럼 생겼다.

단면이 둥근 것도 그렇고, 입안에 촘촘히 톱니가 난 것도 그렇고, 마디마디 꿀렁대는 것도 그렇고……!

“외부는 그냥 살덩이 같은데?”

내부는 광탄과 광권 정도로 쉽게 무력화되는 것 같은데, 외부는 어떨까?

“한번 해 볼까?”

한손에는 무광탄, 한손에는 광탄을 준비했다.

샌드웜은 눈도 달려 있지 않은 상태에서 날 정확히 응시하고 있었다.

“어디로 감지하는 거야?”

만약 이 괴물에 대한 상세 정보를 지부에 넘길 수만 있다면, 꽤 엄청난 자산이 될 것 같다.

웬 만한 거물급 괴물은 다 외우고 다니는 나조차 처음 보는 괴물이니까 말이다.

“받아라!”

난 광탄을 살짝 비스듬하게 던져 샌드웜의 오른쪽 뒤로 돌아가게 했다. 그러자 샌드웜은 그 궤도를 읽었다는 듯 몸을 움직여 광탄을 피했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 피한 걸 보면 시각은 아니군.”

그럼 청각? 박쥐나 돌고래, 혹은 호규처럼 초음파로 주변 사물을 감지하는 건가?

다음으로 무광탄.

이번엔 야구의 슬라이더처럼 위에서 아래로 꺾어져서 내려오게 던졌다.

그리고 그것이 녀석의 코앞까지 다다랐을 때 급히 만든 광탄을 던져 한 박자 빠르게 폭발시켰다.

“앗!”

샌드웜은 광탄이 무광탄을 터뜨리기 직전, 몸을 뒤로 빼서 폭발 자체를 피했다.

“뭐지?”

저 움직임은……?

“감지할 수 있는 거야? H력 자체를……!”

확인을 위해 시한 무광탄을 준비했다.

“이러면 확실해지겠지!”

샌드웜은 입을 크게 벌리며 나에게 돌진해 왔다.

난 위로 높이 뛰어서 녀석의 주둥이를 피했다. 그러자 녀석은 고개를 들어서 입을 더 크게 벌렸다.

“이걸 노렸어!”

난 시한 무광탄을 녀석의 입안으로 쏙 던졌다.

“앗!”

샌드웜은 시한 무광탄을 삼킨 직후 그대로 나까지 삼키려 했다.

난 양손에 광권을 만들어서 녀석의 주둥이 끝에 매달렸다.

“내가 또 순순히 먹혀 줄 것 같아!”

난 양손의 광권을 동시에 폭발시켰다. 그리고 그 폭발력을 이용해 내 몸을 위로 띄워 올렸다.

난 샌드웜의 주둥이에서 빠져나와 녀석을 내려다봤다.

“슬슬 시간이 됐을 텐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샌드웜의 체내에서 1차 폭발이 일었다.

굵직한 충격에 녀석의 몸이 크게 꺾였다.

“한 번 더!”

이번엔 더 큰 2차 폭발.

샌드웜의 몸이 정확하게 두 동강 나면서 찢어졌다.

“엥?”

난 지면에 착지한 채 놀라운 장면을 보게 됐다.

두 개로 토막 난 샌드웜의 몸뚱이는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각 머리와 꼬리로 칭한다면, 놀랍게도 머리의 몸통 끝은 순식간에 아물어서 꼬리처럼 변했고, 꼬리의 시작은 머리처럼 이빨이 촘촘하게 돋아나며 입이 쩍 벌어졌다.

“무슨 플라나리아냐?”

물리적으로는 죽이지 못하는 건가?

“그렇다면……!”

난 어깨에 멘 산탄총을 집고, 주머니에서 특수탄이 든 탄창을 꺼내 장전했다.

“맛 좀 봐라!”

먼저, 산탄 규격의 큰 유탄이 ‘퐁’소리와 함께 경쾌하게 날아갔다. 그리고 머리 샌드웜의 주둥이에서 큰 폭발을 일으켰다.

머리 샌드웜의 주둥이는 너덜너덜 찢어졌고, 그대로 축 몸뚱이를 늘어놓으며 뻗었다.

“해치웠나?”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마법의 주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꼬리 샌드웜이 쓰러진 머리 샌드웜의 끝을 와락 물었다.

“뭐, 뭐야?”

난 급히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총구 끝에서 화염이 쏟아지면서 샌드웜들에게 날아갔다.

“불타 버려!”

재생하는 적을 처리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세포 단위로 박멸하는 것! 즉, 불태우는 것이다.

화염탄은 화려하게 날아가 샌드웜들에게 불을 붙였다.

그 사이 꼬리 샌드웜은 머리 샌드웜을 불이 붙은 상태에서 와작와작 집어삼켰다.

“엥?”

꼬리 샌드웜이 머리 샌드웜을 완전히 먹어 치우자, 녀석의 몸에서 H력을 발동할 때와 흡사하게 아지랑이가 뿜어져 나왔다.

“에잇!”

난 특수탄을 연속으로 발사했다.

폭발과 화염이 연달아 샌드웜을 덮치며 풀풀 연기를 뿜어냈다.

“아, 아니?”

샌드웜은 어느새 본래의 크기로 자라나 있었다.

“하나로 합체한 건가?”

망할 자식!

샌드웜은 날 바라보며 몸을 일직선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몸을 짧게 응축시키며, 힘을 모았다.

그것을 본 난 직감적으로 몸을 던져 녀석의 정면에서 피했다.

“앗!”

내가 옆으로 피하자마자 샌드웜의 용수철처럼 튕겨져 돌진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돌진해 온 녀석은 아슬아슬하게 내 배낭을 스치며 옆으로 지나갔다.

“내 배낭!”

비싸게 주고 샀던 명품 배낭은 살짝 스친 충격에 의해 갈가리 찢어졌다.

“이 지렁이 새끼!”

난 땅에 떨어진 배낭의 내용물 중 리볼버를 집었다.

“젠장.”

어깨에 남은 배낭끈을 풀어 버린 후 가볍게 어깨를 돌렸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탄창 하나를 꺼내서 산탄총에 교체했다.

“이건 좀 매울 거다!”

내가 먼저 돌진.

샌드웜의 벌어진 입을 향해 특수탄을 모두 발사했다.

이번에 쏜 특수탄은 바로 최루탄! 그것도 아주, 아주 매운 녀석이다.

최루탄을 먹은 샌드웜은 고통스러운지 몸을 꼬기 시작했다.

녀석이 해롱거리는 사이, 난 산탄총을 내려놓고 양팔에 H력을 모았다.

물리적으로 공격해서 토막을 내면 숫자가 늘어나는 대신 힘 자체는 약해지는 것 같다.

그 증거로 두 마리로 나눠진 후 내 유탄에 무력화된 모습을 보여 줬다.

“그렇다면 이게 답이다!”

난 팔에 모인 H력을 날카롭게 압축해 칼날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칼날을 빠르게 날려 보냈다.

나란히 서서 날아간 두 개의 칼날은 샌드웜을 세로로 갈라서 세 줄로 만들었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토막이 난 샌드웜은 몸을 꿈틀거리며 각각 새로운 개체로 재생했다.

“여기서 바로……!”

요점은 세 마리를 한 번에 제압하는 것. 아까처럼 다시 합체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양손에 무광권, 그리고 무광탄. 최대한 빨리 압축했다.

샌드웜 세 마리는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날 집어삼키려 했다.

“이크!”

난 다리를 바쁘게 움직이며 이리저리 공격을 피했다. 녀석들은 마치 한 몸인 것처럼 서로 번갈아 가며 규칙적으로 공격해 왔다.

“하앗!”

난 일부러 샌드웜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녀석들 머리가 서로 엉키도록 몸을 움직였다.

“줄 세 개를 묶는 건 생각보다 복잡하네.”

샌드웜들은 한 덩이가 되어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자 놈들은 아까처럼 서로 잡아먹어서 하나로 합치려고 했다.

“그건 안 되지!”

난 완성된 무광탄과 무광권을 가지고 녀석들에게 돌진했다. 그리고 녀석들의 중앙부를 조준한 채 조금 거리를 두고 내 손과 양팔을 동시에 터뜨렸다.

“하하하!”

두 개의 무광탄, 두 개의 무광권.

네 번의 폭발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샌드웜들에게 충격을 줬다.

순수하게 압력만 가해진 위력. 샌드웜들은 비명을 지르듯 입을 쩍 벌린 채 축 늘어졌다.

“생각보다 싱거운데?”

지금의 내 실력이 이 정도구나, 새삼 깨달았다.

로얄인 공포특급이 혼자서 7급의 제노스네이크를 잡는 것을 생각하면, 나도 그에 근접한 수준이라 판단됐다.

“실력은 되는데, 될 수가 없단 말이지…….”

망할 지부. 확 망해 버려라!

난 투덜대면서 캠코더의 영상만을 챙긴 채 그대로 샌드웜을 뒤로 했다.

물리력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면 굳이 무리해서 싸울 필요가 없었다.

“수련은 이제 됐어.”

난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한 다음, 팀원들에게 내 건강 회복에 대해 문자를 보냈다.

참고로 내가 계속 샌드웜이라 불렀던 괴물의 진짜 이름은 바로 ‘대왕지렁이’였다.

***

일주일 뒤 무장 지대.

우리 팀은 사냥 구역 앞 주차장에서 군인들의 검사를 받으며 집합했다.

“티, 팀장님 정말 몸 괜찮으신 거예요?”

호규가 내 몸을 이리저리 주무르며 물었다.

난 그의 손을 내 몸에서 떼어 내며 웃었다.

“괜찮아요. 해라랑은 화해하셨어요?”

“네? 아! 네, 화해했어요.”

호규의 뒤로 변해라가 고개를 내밀며 낼 째려봤다.

“우리 싸운 건 어떻게 알았어?”

“오빠라고 부르면 알려 줄게.”

“응, 됐어. 상팔아.”

이, 이 자식이……!

난 이를 갈면서 루호에게 걸어갔다.

신임 팀장이 된 루호는 지부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해?”

“형! 몸은 좀 어떠세요?”

“괜찮아.”

직원은 나와 루호를 번갈아 보더니, 손을 뻗어 날 쓱 뒤로 밀었다.

“죄송하지만, 팀장님과 이야기 좀 나누게 자리를 비켜 주시겠습니까?”

제기랄…….

난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섰다. 직원은 날 흘겨보면서 루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

그때 주차장으로 검정색 고급 세단이 여러 대 들어왔다. 그리고 거기서 양복을 차려입은 외국인들이 우르르 내렸다.

“뭐, 뭐야?”

무장 지대에서 사냥하는 거 아니었나?

난 호규를 불러다가 물었다.

“오늘 우리 정확히 무슨 일 하는 거예요?”

“경호요.”

경, 호?

내가 얼굴을 찡그리자 변해라가 호규 대신 설명했다.

“저기 있는 사람 중에 한 명이 헌터 협회 본부에서 온 높으신 분이래. 그 사람이 무장 지대 시찰하러 온 건데, 사냥 구역 돌아다니는 동안 우리가 보호하는 거야.”

“그걸 왜 우리가 해?”

“원래는 빅4 중 하나한테 맡기려고 했는데 다들 이유가 있어서 탈락하고, 그 다음이 우리여서 우리한테 의뢰가 온 거래.”

“그게 말이 되냐?”

“어쩌라고! 나도 그렇게 설명 들었는데……!”

변해라는 퉁명스럽게 말하고 나서, 트레일러로 가서 도로시를 내렸다.

“쳇, 하여간 까칠하기는…….”

뭔가, 냄새가 난다. 지부가 굳이 우리 팀에게 이 임무를 맡겼다면, 이유는 짐짓 세 가지 중 하나.

정말 우리한테 맡길 수밖에 없었든가.

아님, 우리를 엿 먹일 생각으로 함정을 파 놨든가.

그것도 아니면, 이 임무가 너무 부담스러워서 그냥 우리 팀에게 떠넘긴 거든가.

어느 쪽이든 썩 반가운 일은 아니다.

무장 지대.

이곳은 대한민국 최대 등급인 10급 사냥 구역이자, 남한과 북한이 휴전에서 종전으로 나아가게 된 직접적 계기를 준 곳이다.

원칙적으로는 남북 모두 이곳에 들어갈 수 있지만, 북한은 헌터가 될 인적 자원과 관련 장비의 낙후로 인해 거의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잘 부탁해요.”

어눌한 억양의 백인이 루호와 악수를 나눴다.

근데 고작 우리 팀만 갖고 안전하게 경호가 될까?

살짝 불안해졌다. 일단 협회 본부와 지부에서 차출된 인원들도 있으니, 전력에는 큰 문제가 없다지만…….

본부에서 온 손님을 안내하기 위해 이서현이 친히 나왔다.

그녀는 유창하게 영어를 써 가면서 외국인들과 대화를 나눴다.

직감이지만, 상당히 찜찜하다. 역시 함정인 걸까?

이번 의뢰에선 엄연히 루호가 팀장, 당장은 팀원들과 나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특히 팀장 교체에 찬성했던 이들은 날 은연중에 피하는 게 느껴졌다.

변해라는 예외. 걔는 오히려 전보다 더 나에게 날카롭게 굴었다.

난 오히려 그게 나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겨우 완성시켜 놓은 팀워크가 아주 환상적으로 박살 났군.”

난 고개를 저으며 새로 산 배낭을 멨다.

감찰관과 이서현, 그리고 그들을 보호하는 다수의 경호원과 우리 헌한발.

그렇게 수십 명의 인원이 정문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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