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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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어? 그런 방이 있으면 내가 들어가겠다!”
“손님, 맞을래요? 그래서 지금, 계약 안 하시겠단 겁니까!”
“어딜 어린놈의 자식이……! 부동산이 애들 장난인 줄 알아?”
부동산 사장님들, 인성 보소?
발바닥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돌아다녔지만, 끝내 마음에 드는 집은 구할 수 없었다.
“내가 너무 욕심을 부렸나?”
그때 태한에게서 연락이 왔다.
―집 구하는 건 어때?
“그럭저럭. 나 집 구하는 건 어떻게 알았어? 내가 너한테 이야기했나?”
―조금 전에 루호랑 통화하면서 알게 됐어. 괜찮으면 내가 중개사 한 명 소개시켜 줄게.
통화가 끝나자마자 문자로 주소 하나가 왔다. 난 그 주소를 검색해서 중개사를 찾아갔다.
나충열 공인중개사 사무소.
마지막으로 간 이곳에서는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좁아도 되니까 싸고, 깨끗하고, 조용한 집으로 알아봐 주세요.”
“정말 좁아도 됩니까?”
엥?
사장인 나충열의 눈이 번뜩였다. 난 그 기세에 눌려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요! 그럼 가시죠!”
놀랍게도 우리가 간 곳은 네오서울에서 가장 집값이 비싼 곳! 한 평에 무려 몇 억이나 하는 네오강남구였다!
“여긴……나존귀네 집 옆이잖아?”
하필 왜 여기냐?
우리는 나존귀가 살고 있는 대저택 옆에 있는 다른 대저택의 뒷문으로 갔다.
“뒷문?”
뒷문에도 최신식 비밀번호 보안장치와 카드 키, 그리고 CCTV가 달린 것으로 이 저택의 수준을 알 수 있었다.
“좁아도 된다고 하셨죠?”
나충열은 질문을 하며 뒷문을 열었다. 그러자 왜 우리가 이곳으로 왔는지가 드러났다.
“이, 이게 뭐예요?”
거대한 저택의 정원 꼬투리에 지어진 작은 조립식 건물. 마치 거대한 개집 같았다.
“집주인께서 자주 저택을 비우시거든요. 그래서 집 지키는 사람 겸 거주자가 필요하시다고 합니다.”
진짜 집 지키는 개야?
“저택 관리는 다 고용인들이 하니까, 그냥 여기서 살기만 하시면 됩니다.”
“어, 얼만데요?”
“공짜입니다.”
“예?”
“신분이 좀 확실하고, 사회적으로 검증된 분을 구해 달라고 하셨거든요. 일단 2년 계약하시고, 1년 단위로 연장하시면 됩니다.”
나충열은 눈웃음 지으며 말했다.
“태한 씨가 소개시켜 준 데다가, 로얄이 소속된 팀의 팀장이시고, 본인도 현역 랭킹 헌터라면, 이보다 더 믿음직한 분은 없을 것 같군요.”
“절대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난 나충열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럼 집 안을 보실까요?”
“와!”
개집이 사람 집보다 좋은데? 무려 2층집. 조립식에다가 창문이 하나도 없단 점만 빼면 기본적인 가구에 내부 마감도 전부 대리석으로 되어 있어서 최고다.
근데 이게 좁은 거라고?
아무리 기준이라는 게 상대적이라지만, 이건 너무 돈지랄의 기준이 아닌가 싶다.
“환기 걱정은 염려 붙들어 놓으세요. 내부에 완벽한 온도 조절 장치와 환기 배관 시스템이 있어서 항상 쾌적한 상태를 유지하거든요.”
이런 미친……!
난 왜 이런 집을 이제야 만난 거지? 역시 가진 자가 더 가지는 더러운 세상이다.
“그럼 계약하시죠?”
“넵! 물론이죠!”
난 당장 이 집으로 이사를 왔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나존귀와 이웃사촌이 됐다.
“안녕하세요.”
난 시장에서 시루떡을 사 와 나존귀의 집 앞에서 전화를 걸었다.
―김상팔? 네가 우리 옆집에 이사를 왔다고?
“헤헤, 그렇습니다. 지금 나존귀 님께 인사드리려고 댁 문 앞에 있습니다.”
나존귀는 저택에서 나와 날 마주했다.
“널 무시하는 건 아닌데……지금 농담하는 거지?”
“아니요. 정말로 전 댁 옆집에서 살게 됐습니다. 반쯤 관리인 자격으로요.”
“아! 그런 거야?”
나존귀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내미는 시루떡을 받았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그, 그래.”
난 들어가는 나존귀를 향해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녀석은 내가 깍듯이 행동할 때마다 예전과 달리 상당히 불편해했다.
물론 난 그걸 즐기고 있었다.
“집도 생겼겠다. 본격적으로 조사를 시작해 볼까?”
한동안 헌한발은 휴업. 정보 수집을 위해 아는 헌터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전화를 끊고 소파에 누워서 기지개를 폈다. 그런 다음 지갑에 꽂아 넣은 명함 중 하나를 꺼냈다.
“얘한텐 전화하기 싫은데…….”
난 한숨을 쉬면서 디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팔 씨, 요전에 랭킹 모임에서는 아주 잘해 주셨어요.
디마는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웬 일로 먼저 전화를 다 하셨나요?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내 이야기를 들은 디마는 흔쾌히 부탁을 들어줬다.
―제 나름대로 조사를 해서 알려 드릴게요.
“사실은 다 알고 있었던 거 아니에요? 그래서 절 시켜서 랭킹 모임 때 이 문제를 공론화시킨 거죠?”
―후후후.
디마는 뚝 전화를 끊었다.
“이런 싸가지 없는 자식.”
예전에 디마의 정체에 대해 기기래에게 부탁한 적이 있었는데, 그녀의 말에 따르면 단순한 외교관이 아니라 스파이에 가까운 신분이라고 했다.
“진짜 문제는 러시아인도 아니라는 거지…….”
난 휴대전화에 저장시켜 놓은 디마의 자료를 띄웠다.
표면적으로는 러시아 대사관 소속이지만, 국적이 무려 스물두 개. 심지어 다국적을 허용하지 않는 국가의 국적까지 갖고 있다.
“법 위에 있는 건가.”
디마와는 너무 가깝지도, 그렇다고 너무 멀지도 않게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이제 정말 다 끝났다!”
남은 일은 기다리는 것뿐.
난 오랜만에 홀로 단잠에 빠졌다. 루호네에서 지낼 때와 달리 아주 오랫동안 깊게 잤다.
***
“하아.”
입김을 부니까, 허옇게 수증기가 보였다.
“좀 있으면 크리스마스구나.”
쌀쌀한 날씨를 맞아 두꺼운 점퍼를 사러 시내를 돌아다녔다.
“그나저나 앞으로 어떻게 한다?”
며칠 동안 조사를 한 결과, 한국에 입국한 능력자는 단 한 명. 성별, 나이, 국적 불명이지만 이름은 알아냈다.
“얀센?”
얀센이란 H8 중 하나인 센의 또 다른 이름. 물론 일반적으로도 쓰이는 이름이기도 하다.
설마 그 ‘센’은 아니겠지?
뉴 월드가 내세우는 예카트리나란 성녀가 센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던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 예카트리나의 실력도 미지수고…….”
성녀라서 그런지 정보가 거의 없다. 심지어 기기래가 겨우겨우 예카트리나로 추정되는 여성의 사진을 몇 장 구해 왔는데, 사진마다 얼굴이 다 달랐다!
“하아.”
랭킹 헌터 습격 사건은 다시 벌어지지 않았지만, 지부의 랭킹 헌터 중 무려 40명이나 뉴 월드 쪽 사람으로 채워진 상태.
뉴 월드의 본래 목적은 달성한 셈일지 모른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지부가 잠식당하는 것을 눈뜨고 봐야만 한다는 점이다.
“하는 수 없지. 일단 천천……!”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는 공공장소라고 부를 만한 대로변의 번화가.
그런 곳에 서 있는데, 갑자기 바닥이 부풀어 오르며 폭발했다.
“으아아악!”
그 순간 길 위에 나 혼자뿐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한 방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엥?’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그로부터……며칠 후?
모르겠다.
그냥 언제부터인가 의식이 있었다. 정확히는 능력발현에 의한 정신 연결. 그것도 우리 팀 전원과 동시다발적으로 연결된 것이었다.
‘뭐지?’
날 보는 팀원들의 시선. 난 침대에 누운 채 입에 산소 호흡기까지 끼고 있었다.
‘뭐야? 중환자 신세야?’
근데 왜 아무도 내 목소리를 못 듣지?
난 힘껏 소리쳤다.
‘야! 내 목소리 안 들려? 루호야? 호규 씨?’
다들 침울한 표정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 어떻게 하죠?”
호규가 침울한 목소리로 묻자. 옆에 선 변해라가 곧바로 대답했다.
“새 팀장이 필요해!”
‘뭐라고? 변해라, 너! 너 지금 날 배신하겠다는 거야?’
“이건 음모가 분명해!”
이이는 단호히 말했다. 그러자 그의 말을 따라 뒤에 선 이씨 형제들이 한 목소리로 말했다.
“팀장님의 복수를 하자! 피의 복수!”
‘법치주의 국가에서 무슨 피의 복수야!’
다들 머리를 맞대고 뭔가 심각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팀장이 없으면 헌한발은 자동 해산이라고 그랬잖아?”
자동 해산?
난 팀원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루호 씨, 어떻게 하죠?”
유정이 루호에게 물었다. 그러자 모두 루호를 쳐다봤다.
“저는…….”
루호는 무어라 말을 하려다가 말끝을 흐렸다.
“전 루호 씨가 팀장을 맡으셔야 된다고 생각해요!”
루호가 우물쭈물하자 유정이 잽싸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그 소리에 호규가 강하게 반대했다.
“팀장은 김상팔 팀장님뿐이에요! 협회에서 그랬잖아요? 한번 바뀌면 1년간 유지해야 한다고요!”
“그럼 오빠는 헌한발이 해체되어도 좋다는 거야?”
호규의 말을 변해라가 받아쳤다. 그러나 평소와 달리 호규는 쉽게 주눅 들지 않았다.
“해라, 너도 팀장님한테 고맙다고 했잖아!”
호규의 외침에 거의 대부분의 팀원들이 몸을 움찔거렸다.
“냉정하게 생각해야 돼. 이건 감정으로 판단할 일이 아니야. 오빠도 지부에서 하는 말 들었잖아?”
도대체 지부에서 뭐라고 한 거지?
이번엔 아란이 말했다.
“헌한발이 해체되어도 그냥 저희들끼리 다시 새로운 팀을 만들면 되잖아요?”
맞는 말이다.
“그게 그렇지 않아요.”
루호가 표정을 지었다.
“지부의 명령을 어겨서 해체된 거니까, 그 팀에 소속되어 있던 헌터들은 벌로 1년 동안 새로운 팀을 만들 수 없어요.”
“정말이요?”
아란은 울상을 지었다. 그러자 그런 그녀의 등을 유정이 어루만졌다.
“1년 동안 일을 못하게 될지도 몰라! 안 그래도 지금 우린 지부에 찍힌 상태라고!”
이이가 염려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에 따라 이씨 형제들도 제각기 목소리를 냈다.
“1년 동안 경력 단절 되는 거야?”
“하지만 김상팔과의 의리는?”
“이건 의리와는 별개야. 산사람은 살아야지.”
“김상팔 아직 안 죽었어!”
“그래서 어쩌라고? 그냥 루호한테 바지 팀장 하라고 하면 되잖아?”
“김상팔도 충분히 이해해 줄 거야.”
“중요한 건 헌한발을 지키는 거야!”
“김상팔이 있어야 헌한발도 있는 거라고!”
노건은 복잡한 얼굴로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죠?”
다들 그 질문에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호규가 말했다.
“다수결로 할까요?”
난 호규의 말에 절규했다. 다수결이란 가장 민주주의적인 의사 결정 방법이지만, 반드시 정해야 할 규칙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비밀투표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구성원 간에 불화가 생기고, 정치를 하기 시작한다.
“그럼 종이에 찬반을 적도록 해요.”
잘한다, 루호야!
루호는 노트를 잘게 찢어서 한 사람씩 나눠 줬다.
“각자 써 주세요.”
현재 내 병실에 있는 팀원들은 16명. 넓은 1인실이 좁을 정도였다.
다들 자신의 종이를 감추며 투표를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각자 어디에 투표하는지 내 눈에는 다 보였다.
‘이것들 봐라?’
안 보고 싶어도 시선 자체가 공유되는 거라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감을 수도 없다.
“그러니까 우리 지금 새 팀장을 뽑을지, 말지에 대해서 투표하는 거지?”
초조선이 질문하자, 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 쓰셨으면 저한테 주세요.”
루호는 종이를 모아서 하나하나 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