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헤드헌터 김상팔-192화 (192/250)

192.

192.

“합격률이 너무 지나치게 낮다는 분석입니다. 사상자가 많아서 인력충당이 필요한 시점이니, 조금 기준을 낮춰야 할 것 같습니다.”

김용이 보여 준 자료에도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었다.

[찬성 : 164]

[반대 : 25]

“그럼 다음은 신진부 씨께서 안건을 제안하시겠습니다.”

신진부는 김용과 교대해 단상에 올랐다.

“전 사냥업계의 발전을 위해 지부가 보유하고 있는 사냥 구역, 괴물 등등 사냥에 관련된 정보 관람 권한을 좀 더 낮춰 줄 것을 요구합니다.”

오오, 이것도 좋다!

즉시 투표에 들어갔다.

[찬성 : 164]

[반대 : 25]

“엥?”

뭐지? 두 번째 안건 때랑 투표 비율이 똑같은 것 같은데?

“그럼 마지막으로 헌한발의…….”

“잠시만요!”

난 손을 번쩍 들며 박장의 말을 끊었다.

“죄송한데, 조금 생각할 시간을 가져도 될까요? 아주 잠깐이면 되거든요.”

난 직감적으로 시간을 벌려 했다.

“혹시 안건을 내실 다른 로얄 계십니까?”

난 애처로운 눈빛으로 남주나와 마다랑을 쳐다봤다.

“젠장!”

남주나는 한숨을 푹 쉬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저요!”

“그럼 남주나 씨께서 먼저 안건을 내시죠. 김상팔 씨는 그 다음입니다.”

“가, 감사합니다!”

살았다!

남주나와 마다랑이 함께 단상에 오르는 동안 난 우리 팀원들에게만 들리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이 투표, 조작되고 있는 것 같아요.”

아니면 적어도 내가 모르는 암묵적 거래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내 말에 유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빅4를 살펴봤는데, 조금 이상한 걸 봤어요.”

“그걸 일일이 다 봤어?”

변해라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역시 유정 씨의 시력은 끝내주시네요!”

노건은 유정을 보며 감탄했다.

평소 사격 실력이 좋고, 눈썰미가 있는 유정의 말은 충분히 신뢰할 수 있다.

“말씀하세요.”

“첫 번째 투표에서 어금니 찬성, 슈퍼타이거 찬성, 공포특급 반대, 로얄가드맨 반대. 그런데 로얄가드맨의 휘하 연맹 팀 중 찬성에 투표한 팀들이 있었어요.”

분열?

로얄가드맨의 휘하 연맹 팀에 소속된 랭킹 헌터는 5명. 그들 중 과연 누가 반대인 걸까?

어금니와 슈퍼타이거를 합치면 55표. 나머지 53표는?

어금니야 원래 지부파고, 슈퍼타이거의 경우엔 세 번째 안건으로 표를 거래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들처럼 지부와 거래를 하거나, 지부 눈치를 보고 있을 팀을 추측하자면 충분히 짐작이 간다.

먼저 폭발대제. 그들은 빅4 바로 아래라고 평가받고 있었지만, 우리 팀한테 깨진 뒤로는 위상이 좀 미묘해졌다.

그렇기에 다소 굴욕적이라 해도 지부의 말을 마냥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더욱이 지금 하상구의 표정을 보면 우리한테 졌을 때보다 굴욕이 가득했다.

다음, 오이해.

그는 변호사다. 끝.

“나머지 24표는?”

반대표인 81표 중 절대 지부와 거래할 리 없는 우리와 공포특급의 표는 42표.

찬성으로 추측되는 게 84표.

반대로 추측되는 게 42표.

남는 63표는 로얄가드맨과 그 휘하 23표와 기타 40표.

“로얄가드맨을 뺀 연맹의 표가 5표니까, 그럼 소규모 팀 소속의 기타 랭킹 헌터 중 지부파가 20명 이상이란 거네?”

오늘따라 머리가 핑핑 잘 돌아간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최대한 낮췄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단상으로 쏠린 틈을 타 로얄가드맨의 연맹 팀 중 하나인 하이퍼맨의 노구가 앉은 테이블로 갔다.

“안녕하세요?”

“김상팔?”

노구는 뒤에서 다가온 날 보며 깜짝 놀랐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저기……. 혹시 첫 번째 투표 때 어디에 투표하셨어요?”

“엥? 민주주의 투표에서 비밀 보장의 원칙을 어기겠단 거야?”

아이고, 여기서 그런 이야기를 하시면…….

갑자기 자신감이 사라졌다.

“하하하! 농담이야. 난 당연히 반대였지.”

“그,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역시 노구는 우리랑 생각이 같을 줄 알았다. 그의 대답으로 내 가설은 거의 확실해졌다.

“로얄가드맨의 연맹이 분열된 모양이네요?”

난 슬쩍 노구에게 속삭였다. 그러자 노구가 씁쓸하게 대답했다.

“그럴지도 몰라. 요즘에 다른 연맹 팀이 지부와 접촉했단 소문이 있거든.”

역시!

난 단상을 쳐다봤다.

남주나는 얼굴이 빨개진 채 시간을 끌기 위해 개소리를 열변하는 중이었다.

“화, 환경보호를 위해 괴, 괴물을 더 죽여야 합니다! 괴, 괴물이 내뿜는 트림과 방귀가 오, 오존층을 파괴합니다!”

내가 엄청나게 나쁜 짓을 시킨 것 같다. 죄송해요, 남주나 님.

아직 시간이 있는 것 같아서 서둘러 오이해에게 갔다. 그는 홀로 앉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후후후, 거래를 하러 왔습니까?”

역시 눈치가 빠르다.

“오이해 씨, 혹시…….”

“지부와 거래를 했냐고요? 예, 했습니다.”

오이해는 내 말을 끊으며, 순순히 실토했다.

“후후후.”

오이해는 단상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검지와 엄지를 붙여 동그라미를 만들어서 내게 내밀었다.

“얼마 주실 겁니까?”

여윽시, 변호사야!

난 단호히 말했다.

“지부에서 받은 금액의 두 배를 드리죠! 저희 안건에서 찬성으로 투표해 주세요.”

“오호?”

오이해는 히죽거리며 속삭였다.

“200억.”

헉! 망할 지부 새끼들, 100억이나 제시했었어?

이미 엎질러진 물. 난 각오를 다졌다.

“좋아요. 드릴게요.”

“좋습니다. 아시겠지만, 전 변호사입니다. 구두로라도 약속된 돈은 반드시 받아 냅니다. 후후후.”

“알겠습니다.”

난 살금살금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때 내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응?”

지부 직원들이 분주히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설마 나처럼……?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내가 의심하고 있던 기타에 해당하는 랭킹 헌터들이었다.

“설마……!”

40명을 다 섭외하려는 건가?

무서운 수준이다.

“그, 그러므로 저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괴물을 닥치는 대로 사냥해야 합니다!”

남주나는 헉헉 숨을 내쉬며 연사가 웅변을 끝맺듯 외쳤다.

“남주나 씨, 그건 안건보단 그저 의견에 가까운데요?”

한참 남주나를 보고 있던 박장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 그래요? 그, 그러면……!”

완전히 패닉 상태가 된 남주나는 해롱거리면서 또 횡설수설하려 했다. 그러자 마다랑이 그녀 앞에 나서며 대신 말했다.

“저희 팀장님 말씀은……랭킹 헌터에 한해서 사냥 할당제를 하자는 겁니다.”

“사냥 할당제?”

얻어걸린 의견이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제안이었다.

남주나의 소리를 반쯤 농담으로 듣고 있던 다른 헌터들도 마다랑의 안건에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그냥 개소리 아니었어?”

“사냥 할당제라……. 공포특급치곤 꽤나 건설적인데?”

“남주나의 의견인가? 다시 봤어!”

여기저기서 감탄 섞인 반응들이 쏟아졌다.

어쨌든 남주나의 안건은 투표에 붙여졌다.

[찬성 : 30]

[반대 : 159]

“뭐야! 왜 내 안건에 찬성이 30표밖에 없어?”

남주나는 펄쩍 뛰면서 화를 냈다.

근데 저거……공포특급도 찬성에 투표 안 한 것 같은데? 딱 보니까 어금니만 찬성했잖아!

다음으로 내 차례. 정확히는 루호의 대리 자격으로 안건을 내는 것이었다.

난 단상에 올라와 박장으로부터 마이크를 받았다.

“이 자료를 봐주십시오.”

난 자료가 담긴 USB를 직원에게 건넸다. 그는 그것을 프로젝터에 연결해 스크린에 띄웠다.

“아, 아니! 저, 저것은?”

랭킹 헌터와 직원들은 다들 깜짝 놀랐다.

스크린에 띄워진 자료는 바로 나와 기기래가 함께 조사한 사냥 구역에서의 습격 현황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랭킹 헌터 중 습격을 당해서 아예 이 일을 그만둔 사람도 있다고 하던데…….”

“하지만 언론이나 지부에선 잠잠했잖아? 어떻게 된 거지?

“그냥 괴담 같은 거 아니었어? 난 여태 그런 줄 알았는데?”

난 수군대는 사람들보다 정색한 박장의 표정에 더 눈이 갔다. 그의 달라진 눈빛을 본 순간 확신이 생겼다.

“이건 그동안 벌어진 랭킹 헌터 습격 사건에 대한 자료입니다.”

이거 얻느라고 최근 갑자기 헌터를 그만두거나, 부상을 입은 랭킹 헌터들 신상을 죄다 털었다.

헌터란 일도 결국 몸을 쓰는 것이기에 가급적이면 자신의 약한 부분을 보여 주길 꺼린다.

그렇기에 은폐 공작이 아주 수월했을 것이다.

“전 지금 이 자리에서 정식으로 이 일에 대해 외부 기관을 통한 수사 의뢰를 제안합니다.”

경찰, 혹은 헌터 본부. 그러한 외부 기관이 나서게 되면 지부에서도 마냥 숨길 수만은 없게 된다.

박장은 헛기침을 하더니, 단상으로 올라와 내게서 마이크를 뺏으려 했다.

“이, 이리 주십시오! 이런 비상식적인 안건은 허락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내가 박장에게 힘으로 지는 일은 없었다.

난 마이크를 꽉 움켜쥔 채로 목청을 질렀다.

“왜죠? 다들 원하는 것을 제안했는데, 어떤 근거로 안 된다는 겁니까?”

“이, 이리 내놔! 그건 뉴 월드의 이름으로 허락할 수 없어!”

‘뉴 월드의 이름으로’라고?

그 말에 난 뭔가를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래서 더욱 큰소리로 소리쳤다.

“여러분! 헌터가 사냥 구역에서 괴물이 아닌 사람에게 공격을 당했습니다! 이는 사냥 구역이 무법지대라는 점을 악용해서 벌인 악질 범죄입니다!”

“하, 하지만……!”

박장은 계속 날 말리려 했다.

그때 김용이 일어서면서 박장에게 말했다.

“일단 투표를 해 보시죠. 랭킹 모임에서의 안건은 언제나 랭킹 헌터의 투표로 결정되어 왔습니다.”

박장과 김용은 잠시 동안 시선 교환을 했다.

“후우.”

박장은 긴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제가 잠시 무례한 언행을 했군요.”

박장은 단상을 내려가면서 박수를 크게 한 번 쳤다.

“그럼 투표를 개시하죠!”

난 마이크에 대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지부의 이익 추구에는 반드시 지부에 소속된 헌터의 이익 추구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듯, 지부의 주인은 헌터들입니다!”

난 노골적으로 슈퍼타이거의 테이블을 바라봤다.

신진부와 강자기는 내 말에 움찔거리면서 서로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자, 잠깐!”

박장은 안절부절하면서 슈퍼타이거의 테이블에 소리쳤다.

“시, 신진부 팀장님. 설마 잊으신 건 아니겠죠? 저희와……!”

박장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스스로 아차 싶었는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뭡니까? 저희와 지부가 무슨 거래라도 했단 겁니까?”

신진부는 안경을 벗으며 박장에게 물었다.

박장은 대답 대신 빠른 속도로 고개를 저었다.

“저희는 이번 투표에서 늘 하던 대로 할 겁니다.”

“앗!”

신진부의 대답에 나도, 박장도 놀랐다.

“그, 그러시군요. 하긴……그러시겠죠.”

박장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내게서 마이크를 돌려받았다.

“그럼 투표해 주십시오!”

다들 엄숙한 표정으로 투표용지에 동그라미를 쳤다.

유정은 빠르게 빅4의 표 기입을 훔쳐봤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온 나에게 그것을 알려 줬다.

“예상대로 어금니는 반대. 공포특급은 찬성. 로얄가드맨은 본 팀만 찬성. 그리고 슈퍼타이거는…….”

“슈퍼타이거는요?”

유정은 고개를 저었다.

“보지 못했어요. 지부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철저하게 가리고 기입했어요.”

“그렇군요.”

지금까지의 분석대로라면…….

반대에 어금니 30표, 폭발대제 19표, 기타 40표. 다 더해서 89표.

찬성에 우리 팀 17표, 공포특급 25표, 로얄가드맨 본 팀 19표. 다 더해서 61표.

중간에 낀 표가 오이해 10표, 슈퍼타이거 25표, 로얄가드맨 연맹 4표. 다 더해서 39표.

이 39표가 승부의 핵심이었다.

내 예측대로라면 오이해는 당연히 찬성, 로얄가드맨 연맹은 반대.

이렇게 되면 최종적으로 수치는 찬성이 71표, 반대가 93표.

반대가 우세하지만, 슈퍼타이거가 지닌 25표면 충분히 뒤집을 수 있었다.

“제발……!”

투표가 완료되고 나서 개표가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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