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헤드헌터 김상팔-189화 (189/250)

189.

189.

[승자 조루호]

일곱, 여덟, 아홉 번째 시합. 너무나 무난한 시합이었다. 그러나 아주 희미하게 조금씩, 조금씩 루호의 움직임이 둔해지고 있었다.

“젠장……!”

염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열 번째 시합.

[조루호 25 VS 최강지 25]

처음으로 박빙의 배팅이 나왔다.

열 번이나 배팅이 진행되는 동안 아직까지 배팅 탈락자는 나오지 않았다.

“최강지…….”

두 번째 고비. 랭킹 17위의 2군인 실력자였다.

“루호야, 조심해. 최강지는 몸에 난 털을 무기처럼 쓸 수 있어.”

―확실히 위협적이네요.

“속전속결로 끝내. 소모전으로 가면 위험해.”

―넵!

“후후후.”

최강지는 양팔에 작은 방패를 달고 나왔다.

“잘 부탁드립니다.”

루호의 인사에 최강지는 비웃듯 답했다.

“나도. 그런데……괜찮겠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이는데?”

“아직 멀쩡합니다. 이제 고작 다섯 분 남았으니까요.”

비웃음엔 비웃음으로 응수.

“시작!”

최강지는 시작 구호와 동시에 능력발현을 했다. 그러자 그녀의 머리칼이 빳빳하게 서면서 얇고 긴 꼬챙이처럼 발사됐다.

“하하하!”

주, 죽이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나?

최강지는 수백 가닥의 머리카락을 자유자재로 조종했다.

머리카락 꼬챙이는 그녀의 의지대로 분산되면서 필드에 가득 퍼졌다.

“아무리 너라도 이렇게 많은 방향에서 오는 공격은 다 못 피하겠지?”

“그건 그래요. 하지만 능력발현은 저도 할 수 있는데요?”

“뭐?”

학습 능력이 전혀 없군.

난 안쓰러워서 고개를 저었다.

루호는 빠르게 갑옷사슴으로 변신. 최강지가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뿔로 그녀를 날려 버렸다.

“으아아악!”

최강지는 급한 마음에 머리카락들을 루호에게로 쐈지만, 고작 몇 개가 갑옷에 튕겨 날 뿐이었다.

[승자 조루호]

“아, 아니! 최강지도 전혀 상대가 안 된다고?”

구경꾼들은 다들 웅성거리며 혼란스러워했다.

사실 나조차도 루호가 고전할 거라 예상했기에 놀랍긴 마찬가지였다.

열한 번째 시합.

[조루호 40 VS 제갈신 0]

루호에 대한 신뢰는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전체 배팅자 중 10명이 조금 전 시합에서 파산했다.

“역시 도박은 무서워.”

내가 저걸로 수천억을 움직였었다니, 지금 생각하면 참 미친 짓이었다.

―상팔이 형, 이번 상대는 어떻게 싸울까요?

제갈신. 알려진 정보로는 로얄가드맨의 두뇌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내가 알기론 이 녀석도 강자기와 비슷했다.

“강자기라고 생각하고 싸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위풍당당한 루호에 맞서서 제갈신은 평범한 크기의 검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잘 부탁드립니다.”

공손한 제갈신의 인사에 루호도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시합이 시작되고, 제갈신은 검에다가 H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강한 게 전부가 아닙니다.”

제갈신은 검 끝으로 원을 그리듯 천천히 검을 움직였다.

“간다! 제갈검법, 일장!”

마치 무협의 그것처럼 제갈신은 기합을 지르며 H력이 가득 담긴 검을 필드에 꽂았다. 그러자 검에서 필드 속으로 H력이 스르륵 흘러들어 갔다.

“이것으로 내 승리다.”

제갈신은 검을 바닥에 꽂은 채 H력으로 능력발동을 했다. 그리고 단번에 루호와 거리를 좁혔다.

“하앗!”

훗, 느리다! 루호라면 저 정도는 가볍…….

엥?

“윽!”

제갈신의 주먹이 루호의 안면을 강타했다.

루호는 마치 석상처럼 굳어서 계속해서 그의 공격을 맞았다.

“하하하!”

제갈신은 연속으로 주먹을 날려 루호를 때렸다.

겉보기엔 경쾌하고 빨라 보이지만, 무게가 전혀 실려 있지 않은 공격.

아무리 연속으로 맞고 있다고 해도 루호 정도라면 그냥 맞으면서 싸울 수도 있었다.

“왜지?”

난 제갈신이 필드에 꽂아 놓은 검에 집중했다.

“설마 저것 때문에?”

필드 자체에 H력을 흘려서 그것으로 루호를 붙잡고 있는 건가?

완전히 처음 보는 방식의 능력. 이런 건 한 방 먹을 수밖에 없다.

“로얄가드맨!”

계속 만만한 놈들만 나오니까, 만만한 팀인 줄 알았는데……!

역시 빅4 중 하나답다.

“어때? 내 공격이……!”

제갈신은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그러나 루호는 맞으면서도 활짝 웃었다.

“이런 공격이라면 하루 종일 맞아 드릴 수도 있습니다. 이런 걸 버티는 데 능력발동을 할 필요도 없겠군요.”

“흥! 여유 부리긴…….”

사실 말한 것과 달리 형편없는 공격이라도 계속 맞으면 위험했다.

루호는 결국 갑옷사슴으로 변했다.

“후후후. 그렇게 나올 줄 알았지!”

제갈신은 루호가 변신을 시작하자마자 후다닥 도망쳐 필드에 꽂아 놨던 검을 뽑았다.

“더 이상 널 붙잡아 두지 못하겠지? 하지만……!”

루호가 변신하는 동안 제갈신은 검에 또 H력을 불어넣었다.

“제갈검법, 이장!”

제갈신은 루호가 변신을 끝내고 아지랑이의 소용돌이를 막 걷는 그 순간을 노려 점프했다.

그리고 아직 아지랑이 때문에 갑옷사슴의 시야가 가려진 틈을 타 갑옷사슴의 등 위로 올라탔다.

“하하하!”

제갈신은 H력이 가득 담긴 검을 갑옷사슴의 등에 내려놨다. 그러자 거대한 몸집을 지닌 갑옷사슴이 털썩 주저앉았다.

“뭐야!”

룸 안은 또 혼란과 충격. 다들 웅성거리며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어떠냐?”

제갈신은 검을 놓은 채 갑옷사슴 위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팔짱을 끼며 여유롭게 말했다.

“내 검이 네 위에 있는 동안, 넌 움직일 수도 없고 변신을 풀 수도 없다! 듣자하니, H력을 3분밖에 못 쓴다며?”

“세상에……!”

맞춤 전략!

이런 건 정말 처음이다.

갑옷사슴은 점점 몸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는지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그 소리에 기기래도 울먹였다.

“상팔 씨, 어떻게 해요? 루호 씨가……힘들어 보여요.”

“그건…….”

나도 상대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하하하!”

3분이 지나자, 제갈신은 쾌재를 불렀다.

“3분 끝! 이겼다!”

제갈신은 갑옷사슴 위로 올라가 검을 집었다. 그러자 지금까지 한 번도 진 적 없던 갑옷사슴이 옆으로 털썩 쓰러지면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하하하!”

제갈신은 쓰러진 루호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루호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뭐, 뭐야?”

루호는 벌떡 일어서더니 몸을 털었다.

“당신은 정말 최곱니다. 적어도 강자기만큼이나 위협적이었어요.”

“뭐, 뭐라고!”

제갈신은 잠시 당황했지만, 곧 냉정을 되찾고는 검에 다시 H력을 불어넣었다.

“제갈검법, 삼장!”

“그 제갈검법이란 거요.”

루호는 여유를 부리면서 물었다.

“일장, 이장. 모두 3분씩밖에 안 쓰셨던데……혹시 제갈신 씨도 능력 지속 시간이 3분이신가요?”

“뭐, 뭐라고!”

제갈신은 입술을 씹으며 검을 겨눴다.

“까불지 마라. 아주 실낱 같은 체력 덕에 다시 일어선 걸 누가 모를 줄 알고?”

솔직히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받아라!”

제갈신은 검을 천장을 향해 던졌다. 그러자 놀랍게도 천장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정확히 루호가 있는 자리로 파편이 떨어졌다.

“하하하!”

루호는 제자리에 서서 피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위에서 떨어지는 파편에 깔렸다.

“저, 저길 봐!”

누군가가 파편더미 앞을 가리켰다. 그곳엔 분명히 파편에 맞았던 루호가 서 있었다.

“제갈검법은 다 끝났습니까?”

“크, 크윽……!”

제갈신은 이를 갈면서 루호를 노려봤다. 그리고 그러다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내가 졌다.”

[승자 조루호]

“조루호, 한 가지만 알려 줘. 제한 시간이 늘어난 거야?”

루호는 제갈신의 질문에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요. 아예 없어졌는데요? 사실 3분이 될 때마다 힘든 척 연기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하! 핫!”

제갈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허탈하게 웃었다.

“완패군.”

난 무전기를 통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루호에게 물었다.

“정말 제한 시간이 없어졌어?”

―그럴 리가요.

엥? 그럼 거짓말?

이런 것마저 이용하다니, 이젠 루호의 수완이 나보다 한 수 위인 것 같다.

열두 번째 시합.

상대는 바로 검은 과부들의 최향자였다.

“최향자라…….”

배팅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몇몇 인물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최향자는 제법 강해. 랭킹에 든 후로 꾸준히 오르고 있지.”

“하지만 그래 봐야 77위잖아? 그보다 높은 상대도 다 졌다고!”

“그렇긴 해. 게다가 이젠 제한 시간마저 없어졌으니, 조루호는 무적이야!”

[조루호 30 VS 최향자 0]

최향자. 솔직히 서로 너무 잘 알아서 딱히 해 줄 말이 없다.

“향자 누님은 알아서 해.”

―네.

최향자는 항상 가지고 다니는 대검을 갖고 필드로 들어왔다.

“정정당당히 싸워.”

“당연하죠.”

루호는 예우였는지 강자기에게 썼던 H력 갑옷을 만들어 입었다. 그리고 오른팔 건틀릿의 사슴뿔에 H력을 집중시켰다.

최향자의 능력은 완력강화. 그녀도 대검을 든 채 H력을 위협적으로 뿜어냈다.

두 사람은 가까이 붙은 채 각자의 무기를 들고 상대를 겨눴다. 그리고 일격에 승부를 낼 요량으로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흡사 황야의 무법자에서나 나올 결투 장면.

양쪽 모두 일격 필살을 노렸다.

잠시 긴장된 시간이 흐르고…….

“하앗!”

동시에 울려 퍼진 기합 소리.

[승자 조루호]

“멋진 솜씨였어.”

최향자는 당당히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대검은 루호의 사슴뿔에 박살 나서 손잡이만 남아 있었다.

수준 차이가 너무 압도적이라 최향자로서는 서로 일격을 주고받은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었다.

열세 번째 시합.

처음으로 랭킹 외 도전자다.

[조루호 30 VS 김광녀 0]

“김, 광, 녀.”

작명 센스가 딱……내가 아는 어느 악의 조직 같다. 그런데 딱히 거기라고 하기 애매한 점이 있다.

“뉴 월드를 위해!”

김광녀는 박장처럼 뉴 월드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광신도라서 ‘광녀’인 건가?”

김광녀는 양손에 단검을 들고 있었다.

“조루호! 널 쓰러뜨리고 우리 뉴 월드의 자애를 온 세상에 알리겠어!”

“그러니까 자애로움을 알리기 위해 절 폭행하시겠단 말씀이시죠?”

“그래! 이교도는 맞아도 되거든!”

“이교도란 말은 다른 종교의 신도란 뜻인데, 전 종교가 없는데요?”

“무교잖아!”

무교가 이교도야? 나도 몰랐네.

―형, 어떻게 할까요?

“듣보잡이잖아. 그냥 적당히 처리해. 괜히 심한 부상이라도 입혔다간 뉴 월드 쪽에서 그것 갖고 시비 걸지도 몰라.”

―그렇긴 하네요. 알겠어요.

뉴 월드. 정말 짜증나는 집단이다.

김광녀는 시작과 동시에 루호에게 달려들었다.

“하하하! 죽어라!”

두 개의 단검이 매섭게 루호의 목을 노렸다.

“오오!”

예상치 못하게 빠른 김광녀의 모습에 룸 안에서 감탄사가 터졌다.

루호도 살짝 놀랐는지 유성추를 휘두르는 것 대신 바쁘게 몸을 움직여 공격을 피했다.

“죽어, 죽어, 죽어……!”

단검들이 다양한 각도로 휘둘러지며 매섭게 움직였다.

결국 루호는 아예 뒤로 크게 뛰어서 멀찍이 거리를 벌렸다. 그러나 김광녀는 그것조차 빠르게 따라잡았다.

“어딜 도망가?”

“하앗!”

루호는 유성추를 바닥으로 튕겨서 철구를 위로 솟구치게 했다.

고무공처럼 튕긴 철구는 빠르게 김광녀의 아래턱을 후려쳤다.

“끄아아악!”

김광녀는 고개를 치켜들며 뒤로 벌러덩 쓰러졌다.

루호는 유성추를 빙글빙글 돌리며 중얼거렸다.

“공격은 날카로운데, 수비는 형편없군요.”

“하앗!”

김광녀는 벌떡 몸을 일으키며 기습적으로 루호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뻔한 움직임. 루호의 눈에는 훤히 보이는 것이었다.

“플래시!”

반전이 일어났다.

김광녀는 힘껏 외치며 갑자기 전신에서 밝은 빛을 내뿜었다.

마치 강력한 섬광탄이 폭발한 듯 그것을 보고 있던 모두가 눈을 감았다.

바로 앞에서 보고 있던 루호는 말할 것도 없었다.

“으아아악!”

“하하하!”

루호의 비명 소리와 김광녀의 웃음소리. 모두의 귀에 두 사람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루호야!”

난 H력으로 안구를 강화시켜서 억지로 눈을 떴다. 그리고 능력발동 특유의 강한 재생력을 토대로 빠르게 시력을 회복시켰다.

“앗!”

시야가 회복되고 나서 필드 위 두 사람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출혈?”

루호의 복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루호는 뒷걸음질 치면서 겨우 서 있었다.

“히히히!”

김광녀는 크게 웃으면서 제자리에서 루호를 쳐다봤다. 그녀의 단검은 깨끗했지만, 그녀의 입가엔 핏자국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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