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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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쩔 테지?”
“크윽…….”
전광판에 비친 루호의 확대된 얼굴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게 보였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죠? 설마 일부러 실력을 숨기고 있던 건가요?”
기기래가 요란법석을 떨면서 내게 물었다.
“뭐라고 말 좀 해 봐요! 상팔 씨는 이런 거 잘 알잖아요?”
나라고 항상 다 아는 건 아니거든요?
이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아주 짐작가지 않는 것도 아니긴 했다.
다만, 확신이 들지 않을 뿐.
“앗!”
다시 일어선 강자기는 아까처럼 루호를 곤봉으로 공격했다.
그러나 조금 전에 보여 준 그 엄청난 속도가 더해지니 아무리 마구잡이식으로 휘둘러도 위력이 달랐다.
루호도 아까보다 훨씬 바쁘게 움직이면서 곤봉을 피했다.
“어떻게 해요, 상팔 씨? 루호 씨가 위험해요!”
기기래는 내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거, 걱정 마세요. 속도가 같아졌어도 여전히 루호가 우위에 있으니까요.”
“정말이요?”
“네. 지금까지 한 대도 안 맞았잖아요?”
루호는 계속 피하다가 강자기가 곤봉을 크게 휘두른 틈을 파고들었다.
“이런……!”
강자기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자기 자신도 실수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하압!”
루호는 유성추를 던져서 철구로 강자기의 이마를 맞췄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강자기의 이마가 찢기며 피가 튀었다.
“크윽!”
강자기는 이를 악물면서 충격을 버텼다. 그리고 또다시 대량의 H력을 내뿜었다.
“응?”
갑자기 강자기의 움직임이 달랐다. 그는 물 흐르듯 루호의 유성추를 잡았다. 그의 동작은 루호의 그것처럼 빈틈이 전혀 없었다.
“뭐야?”
놀란 것은 루호도 마찬가지.
강자기는 유성추를 뺏어서 멀리 집어던졌다. 그리고 루호와 맨손으로 겨루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마치 홍콩 무술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갖가지 동작을 취하면서 공격을 주고받았다.
“우와! 역시 로얄은 달라!”
전광판에 비친 두 사람의 동작 하나하나에 VIP룸은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다들 돈에는 상관없이 정말 시합 그 자체에 빠져들고 있었다.
“미친놈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둘의 움직임에 경외를 넘어선 두려움마저 느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난 유심히 강자기를 살펴봤다. 그의 움직임은 이제 루호와 아주 흡사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아직 기회는 있어.”
문제는 내가 깨달은 점을 루호도 깨닫고 있냐는 것.
루호는 계속된 능력발동에 어느덧 제한 시간을 맞이했다.
“크윽……!”
여느 때처럼 루호의 움직임이 조금씩 둔해졌다.
제한 시간을 신경 쓰느라 H력을 끊어서 썼기 때문이다.
“응?”
강자기는 루호의 이상을 빠르게 눈치챘다.
“뭐하는 거지? 그런 식으론 날 쓰러뜨릴 수 없어.”
마치 훈계하듯 말하는 강자기의 말. 그는 딱히 루호를 이기려는 게 아니라 그저 관찰하듯 싸웠다.
“뭐하는 거야, 조루호! 똑바로 싸워라!”
강자기의 외침에 루호는 몇 발자국 물러나 숨을 골랐다.
“호흡이 틀어졌군. ‘조루’ 증상이 온 거냐?”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루호의 약점. 강자기의 지적을 받은 루호의 미간에 처음으로 주름이 졌다.
“맞췄나 보군?”
“후웁.”
루호는 숨을 들이마시며 몸에 힘을 풀었다.
“뭐야? 첫 시합부터 한계가 온 거야? 이러면 도박이 안 되잖아!”
“조루호! 그딴 저질 체력으로 잘도 로얄이 됐구나! 때려 쳐!”
“지기만 해 봐! 가만두지 않을 거야! 이 망할 조루 새끼야!”
룸 안엔 루호를 향한 야유가 넘쳐났다.
“으아아앗!”
루호는 H력을 최대로 내뿜으며 능력발현을 했다.
거대한 아지랑이가 소용돌이치면서 필드를 휘감았다.
“젠장!”
강자기는 필드 끝까지 물러나 겨우 루호의 아지랑이에서 벗어났다.
그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다.
“자아, 어서 보여 봐라. 너의 전력을 보고 싶어!”
아지랑이의 소용돌이가 사라지고, 그 자리엔 반투명한 흰색 갑옷을 걸친 거대한 흰 사슴이 서 있었다.
“아름다워!”
강자기는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
“그렇다면 나도 보여 주마!”
강자기도 루호와 똑같이 폭발적으로 H력을 내뿜으며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그리고 잠시 후…….
“말도 안 돼!”
룸 안은 충격에 빠졌다.
“똑같잖아?”
다들 입을 쩍 벌리며 소란을 떨었다.
필드 위에 선 두 마리의 갑옷사슴.
누가 보면 루호가 분신술이라도 쓴 줄 알겠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강자기의 능력은 바로 ‘카피’, 복사다!
일반적인 수준의 헌터라면, 처음 써 보는 능력을 원래 주인의 수준으로 사용할 수 없다.
그건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자질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허나, 만약 그게 천재인 강자기라면……?
그 답을 룸 안의 모두가 눈으로 직접 보고 있었다.
“이럴 수가!”
두 갑옷사슴은 전력으로 충돌! 거대한 충격파가 퍼지며 VIP룸의 유리를 흔들었다.
“우오오오!”
두 갑옷사슴의 뿔이 맞닿은 채 거대한 신체에서 뿜어지는 힘이 필드를 짓눌렀다.
양쪽 모두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대결.
필드 바닥에 금이 가면서 붕괴되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 되었다.
“앗!”
바닥에 간 금은 필드 전체로 커지더니, 기어코 필드가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로 인해 두 사슴의 동작이 흐트러졌다.
“지금이야!”
내 외침처럼 루호는 즉시 능력을 해제하며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갑옷을 만들었던 H력의 물질화를 응용해 오른손에 거대한 건틀릿을 만들었다.
“하아아앗!”
건틀릿 끝에는 사슴뿔처럼 생긴 무기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루호는 오른팔을 쭉 뻗으며 강자기가 변한 갑옷사슴의 머리로 뛰었다.
거대한 뿔 사이를 날아 루호는 사슴의 이마에 도달했다. 그리고 작게 압축시킨 뿔로 사슴의 머리를 감싸고 있는 투구를 찔렀다.
“와!”
룸 안에서 또 함성이 터져 나왔다.
루호가 내지른 뿔주먹은 단 한 방에 갑옷사슴의 투구를 박살 내면서 본체의 머리에까지 타격을 주었다.
“이게 수련의 성과!”
기초 훈련 이후로는 따로 수련을 했기에 이건 나도 처음 봤다.
[승자 조루호]
변신이 풀리면서 강자기는 박살 난 바닥 틈으로 떨어졌다.
루호는 그런 그를 쫓아가서 무너지지 않은 바닥에 착지했다.
“멋지다!”
“이걸로 조루호의 실력에는 이견이 없겠어.”
다들 감탄과 수긍을 연달아 내뱉었다.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최대 고비를 멋지게 넘겼어요.”
기기래도 폴짝폴짝 뛰면서 좋아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엔 일러요.”
내 말을 들은 기기래는 찬물을 뒤집어 쓴 듯 차갑게 정색했다.
“그건 알고 있어요. 루호 씨의 체질 말이죠?”
난 속삭이듯 말했다.
“네. 방금 시합으로 루호는 완전히 밑바닥을 드러냈어요. 앞으로는 이겨도 최소한의 힘만을 써야 해요.”
안 그러면 끝까지 버티질 못한다.
“잠시 필드를 재정비하겠습니다.”
박장의 발표에 VIP룸의 유리창이 천장에서 내려온 덮개 같은 것에 닫혔다.
“기다리는 동안 간식을 드시죠.”
직원들은 사람 숫자만큼 간이 의자를 가져왔다.
평소라면 안락의자라도 가져왔겠지만, 오늘은 그러기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조루호 40 VS 장만사 10]
정비는 정비, 배팅은 배팅.
아까와 달리 루호의 압도적인 스코어였다.
1시간 뒤, 시합이 재개됐다.
필드에 선 장만사는 거대한 전투망치를 들고 있었다.
“지난번 2위 쟁탈전 땐 맨손이었지만, 이젠 달라!”
장만사는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 로얄가드맨의 진가는 바로 무기를 들었을 때 발휘된다!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난 무전기로 간단하게 말했다.
“속도는 네가 한 수 위야. 방심하지 말고 압도해 버려.”
―네!
휴식을 취해서인지 루호의 상태는 많이 안정되어 보였다.
“시작!”
시합이 시작되고, 장만사는 거대한 전투망치를 휘둘렀다.
묵직한 망치를 가볍게 휘두르는 그의 모습에서 고수의 풍모가 풍겨졌다.
“하앗!”
장만사는 기세 좋게 H력을 뿜어내며 능력발동으로 신체를 강화시켰다. 그리고 시험 삼아 바닥을 망치를 내려쳤다.
이제 막 새것처럼 수리가 된 바닥에 커다란 망치 자국이 났다.
“간다!”
장만사는 히죽 웃으며 재빠르게 망치를 휘둘렀다. 그러나 아무리 그가 빨리 공격해도 속도에서 루호보다 몇 수는 아래였다.
“이얍! 욥! 합!”
계속되는 연속 공격은 둔기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부드럽고 빨랐다. 그러나 역시나 루호에겐 닿지 않았다.
“흥!”
장만사는 잠시 공격을 멈추더니, 더 크게 기합을 질렀다.
“으아아앗!”
장만사의 H력이 그의 등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엥?”
그것은 팔!
장만사의 등에서 거대한 팔이 자라났다.
장만사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어떠냐? 이 우람한 팔이면 너의 그 사슴 변신도 별수 없을 걸?”
장만사는 거대한 팔로 땅을 짚더니 마치 유인원처럼 팔로 뛰어다녔다.
“하하하!”
다리로 걸을 때보다 훨씬 빠르고 민첩한 움직임.
장만사는 순간적으로 앞으로 튀어 나가 망치로 루호를 후려쳤다.
“아자!”
“크윽!”
망치가 머리에 닿기 직전, 루호는 아슬아슬하게 고개를 뒤로 뺐다. 그러나 워낙 기습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코끝이 망치에 쓸리고 말았다.
“앗!”
모두가 깜짝 놀랐다.
루호의 코.
가볍게 쓸렸지만 망치의 묵직함에 의해 루호는 코피를 쏟았다.
“대단하시군요. 왜 2위 쟁탈전에선 그 능력을 쓰지 않으셨죠?”
루호의 질문을 들으며 떠올려 보니, 로얄가드맨 팀원들은 2위 쟁탈전 때 능력발현을 일체 하지 않았다.
“흥! 당연한 거 아닌가? 자신의 능력을 적에게 노출하면 안 되지!”
맞는 소린가? 2위 쟁탈전이면 꽤 중요한 시합이었을 텐데?
“이런 것도 가능하지!”
장만사는 두 다리를 바닥에 디디고 거대한 팔로 망치를 쥐었다. 그리고 팔의 긴 길이를 이용해 망치를 휘둘렀다.
팔의 크기 때문에 긴 전투망치가 마치 뿅망치처럼 보였다.
“크읏!”
루호는 일부러 장만사의 공격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바쁘게 몸을 움직이며 공격을 피하기 바빴다.
“핫핫핫!”
장만사는 신이 나서 루호를 공격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움직임은 점점 둔해졌다.
“헉, 헉…….”
한풀 꺾인 장만사를 보며 루호는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다 끝나셨나요?”
“이, 이 자식……!”
장만사는 숨을 헐떡이면서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 갔다. 그러나 누가 봐도 그가 루호를 이길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하압!”
루호는 주먹을 쥔 채로 장만사의 품으로 돌진했다.
장만사는 당황해서 마구잡이로 네 팔을 휘둘렀지만, 무엇 하나 루호를 막을 수 없었다.
“꾸에에엑!”
결국 장만사의 코앞까지 간 루호는 주먹을 그의 명치에 꽂았다.
[승자 조루호]
세 번째 시합.
[조루호 50 VS 김목록 0]
여기서부터 루호의 폭주가 시작됐다.
머리에 뿔을 만드는 능력을 지닌 김목록.
그의 최후는 루호에 의해 거꾸로 바닥에 메다 꽂힌 것이었다.
[승자 조루호]
네 번째 시합.
[조루호 50 VS 남돌진 0]
이름만 ‘돌진’인 남돌진의 주특기는 석궁.
그는 거리를 유지하며 싸우다가 루호가 접근하자마자 한 방에 끝났다.
[승자 조루호]
다섯 번째 시합.
[조루호 50 VS 최상길 0]
멋들어진 최강실의 장검은 루호의 유성추에 맞아 와장창 깨졌다.
검이 깨지자마자 승부는 끝났다.
[승자 조루호]
여섯 번째 시합.
[조루호 50 VS 박산 0]
박산은 분신 하나를 만들어 루호를 교란시키려 했다. 그러나 루호는 H력을 이용해 순간적으로 엄청난 속도를 내서 본체와 분신을 동시에 쓰러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