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헤드헌터 김상팔-186화 (186/250)

186.

186.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제대로 말씀해 주세요!”

거기서 통화가 끊겼다. 정확히는 휴대전화 배터리가 다 된 것이었다.

“젠장!”

난 휴대전화를 집어넣고 바닥에 벌러덩 누웠다.

“뭐지? 왜 갑자기……?”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고……그게 아저씨와 관련된 거라면……?

“지부와 플레잉?”

또 뭔가 벌어지는 건가? 아니면 그저 아저씨의 농담?

머리가 어지러웠다.

“혀, 형님!”

오박이 헐레벌떡 나에게 달려왔다.

“무슨 일이야?”

“우태훈 일행이 돌아왔습니다!”

“오오!”

우리는 함께 우태훈 일행을 맞으러 갔다. 그들은 분명 계획한 대로 물과 식량을 갖고 돌아왔다.

“그런데 양이……?”

다섯 명의 헌터가 짊어지고 온 양은 고작 정수기 생수 두 통, 라면 두 박스.

“이게 다예요?”

어이가 없어서 우태훈을 보다가 그의 몸에 난 상처를 알아차리게 됐다.

“어떻게 된 거죠?”

우태훈은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답했다. 평소 그가 입고 다니던 흰 천은 완전히 불에 타 있었다.

“벙커 바로 앞에서 매복에 당했어.”

“매복?”

“모습은 보지 못했어. 맞서 싸우기보단 그냥 돌파하는 데 주력했거든.”

우태훈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

“고생하셨어요. 서둘러 전진하면 이걸로 충분할 거예요.”

이틀 식량으로 1인당 라면 하나. 그리고 물 약간.

우리는 H력을 쥐어짜서 전진했다.

식량과 탄환이 떨어져 짐은 가벼워진 덕분에 빠르게 광야지대를 돌파할 수 있었다.

“이제 입구 부분……!”

무사히 빠져나왔단 기쁨도 잠시 미루고, 우리는 잔뜩 긴장한 채 시멘트로 잘 포장된 경사를 올랐다.

―이쪽은 아직 아무것도 안 보여요.

정찰조인 호규로부터 무전이 왔다.

“혹시 모르니까 계속 살펴봐 주세요.”

―넵.

다행히 우리가 정문을 빠져나올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주차장에는 엄청난 취재 인파가 있었다.

“저, 저기 온다! 헌한발이다!”

기자? 뭐지? 또 뉴 월드?

갑작스런 플래시 세례에 우리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무슨 일이죠?”

내가 묻자 사방에서 리포터의 마이크가 다가왔다.

“축하드립니다! 헌터 협회 한국지부 최대 사냥 일수 기록을 갱신하셨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이 사람들 여기서 얼마나 죽치고 있었지? 혹시 우태훈 일행을 습격한 매복자들을 봤을까?

“혹시 저희가 나오기 전에 사람이 나왔나요?”

“아니요? 저희가 일주일 전부터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은 못 봤는데요?”

기자들이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

그럼 아직 사냥 구역 안에서 숨어 있는 건가?

“자자! 몸매 좋은 사람은 노출 위주로 찍고, 미인들은 얼굴을 찍어! 흉터 있으면 그걸 부각시키고! 옷이 찢어졌으면 1순위!”

각종 촬영 장비가 쉴 새 없이 원정대를 비췄다.

“앗! 카리다!”

최향기를 알아본 누군가의 외침에 이번엔 그녀에게로 관심이 쏠렸다.

“아, 안 돼요! 쌩얼이란 말이에요!”

최향기는 부랴부랴 검은 과부들 뒤로 숨었다.

“어서 찍어!”

다들 황당한 표정으로 각자 할일을 했다.

부산물과 시신이 담긴 비닐 팩, 아이스캡슐은 트럭. 부상자는 출동한 구급차.

기자들의 인터뷰 요구에 아무도 응해 주지 않았다.

솔직히 싫은 것은 아닌데, 그냥 다들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었다.

“김상팔 씨, 며칠 후에 조루호 씨의 2위 자격을 놓고 랭킹전을 할 거라고 하던데, 소감이 어떠십니까?”

“예?”

그런 일이 있었어?

내가 반응을 보이자 기자는 신이 나서 떠들었다.

“조루호 씨에게 도전하기 위해 다른 랭킹 헌터들이 줄을 섰다고 합니다. 아마 다음 달이 될 것 같은데, 방어할 자신이 있으신 겁니까?”

근데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본인한테……?

난 고개를 돌려 루호를 쳐다봤다.

물론 나에게 그랬듯이 기자들이 질문을 퍼부었지만, 루호는 그것을 모두 무시하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기기래를 찾고 있는 건가?

그러고 보니, 기기래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좋은 특종을 놓칠 사람이 아닌데? 혹시 사적인 관계 때문에?

“의왼데?”

“예? 뭐가 의외라는 겁니까?”

아차!

난 기침으로 목을 풀면서 기자들에게 대답했다.

“누가 도전해 오든 저희 루호는 모두 이겨 낼 겁니다! 그리고 저희 헌한발의 고공행진은 앞으로 계속될 겁니다!”

“오오!”

기사로 쓸 만한 언급.

기자들은 침을 질질 흘리며 또 질문을 퍼부었다.

“손평화 씨와 열애설이 있으시던데, 사실입니까? 최향자 씨와는 어떤 관계죠? 카리 씨가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호감을 표했는데 알고 계십니까?”

“예?”

“플레잉과 악연이라고 하시던데, 그들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소문엔 그들이 김상팔 씨를 노리고 있단 말이 있습니다.”

“예?”

“누군가 뒤에서 헌한발을 조종하고 있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예?”

이건 또 뭔 개소리야?

“뉴 월드와는 어떤 관계이시죠? 그들이 주기적으로 김상팔 씨에게 접촉한 정황이 포착됐는데요?”

“전 피해자예요! 그쪽에서 그냥 접근한 거라고요!”

이건 명확하게 말해 주마!

내가 기자들에게 시달리는 사이, 다른 팀장은 뒷정리를 끝내고 날 기다렸다.

“안 되겠다. 그냥 해산하자.”

최향자의 말에 다른 팀장들도 동의.

심지어 우리 팀원들까지 날 그냥 기자들에게 내주고는 자기들끼리 먼저 가 버렸다.

“야, 이 배신자 새끼들아!”

미니 밴에 탄 루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난 너무나 큰 배신감을 느꼈다.

“루호……너 마저……!”

다들 나에게 손을 흔들며 주차장을 나섰다.

내가 기자들에게 풀려난 것은 그로부터 무려 3시간이 지난 뒤였다.

“썅!”

이를 갈면서 콜택시를 불러 몸을 실었다. 다행히 내가 부른 택시는 참 빨리 와 주었다.

“아, 피곤해.”

정말 몸이 녹아내릴 것 같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면서 택시 창문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살짝 단잠에 빠졌다.

“음냐, 음냐…….”

덜컹!

차가 멈추는 충격에 잠에서 깨어났다.

“벌써 도착했나요?”

“후후후.”

응? 우, 웃음소리가……?

난 황급히 두 눈을 비볐다. 그리고 운전석의 기사를 확인했다.

“엥?”

디, 디마!

저 허여멀건 면상을 보고 있자니, 겨우 풀리려 했던 피로가 꽉 관자놀이를 죄어 왔다.

보기만 해도 빡친다.

“언제 택시 기사가 되셨어요?”

“오늘부터요.”

이 자식, 사실은 무슨 스파이 아니야? 어떻게 날 이렇게까지……!

“무슨 용무시죠?”

이젠 이 인간 정체 같은 건 아무래도 좋을 것 같다.

“한돈 씨에 대해서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요.”

뜨끔.

가슴이 철렁였다.

한돈 아저씨랑 통화한 사실을 알고 온 건가?

난 매서운 눈으로 디마를 노려보다가 황급히 주변 경치를 확인했다.

“여긴 어디죠?”

“아하. 여긴 제가 묶고 있는 네오서울 호텔이에요.”

엥?

익숙한 광경. 호텔 정문을 보니까, 안심이 됐다. 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괜찮으시다면, 다음에 말씀을 나누면 안 될까요? 지금은 정말 피곤하거든요.”

“하하하.”

디마는 히쭉 웃으며 윙크를 했다.

“저도 오늘밖에 안 돼서요. 죄송합니다.”

전혀 죄송한 얼굴이 아닌데? 이번 기회에 한 번 웃는 얼굴에 침을 뱉어 볼까?

우리는 택시에서 내려 이 건물 고층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여기 되게 자주 오네. 거지 신세인데…….

솔직히 식욕보단 휴식이 더 간절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가 됐든 그냥 적당히 대답해서 얼른 끝내자고 다짐했다.

“상팔 씨, 많이 드세요.”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 갖가지 고급 요리가 차려졌다. 향긋한 음식 냄새를 맡으니, 갑자기 없는 식욕이 확 올라왔다.

“크윽!”

얄미운 놈. 정말 사람 갖고 놀 줄 아는 녀석이다.

“어서 드세요.”

디마는 손수 고기 한 덩이를 포크로 찍어 내 접시에 내려놓았다.

“자아, 어서요.”

크윽, 이건 독이 든 사과. 먹으면 분명 달콤할 것이다. 그러나 먹는 순간…….

난 물 한 잔을 들이켠 후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디마에게 물었다.

“용건부터 말씀하시죠.”

“식으면 맛이 없으니까, 먼저 드세요.”

우리는 서로 불편한 미소를 지으며 노려봤다. 그러다가 갑자기 디마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은 디마의 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잘 들리진 않았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매우 격양돼 있었다.

“알겠습니다.”

디마는 전화를 끊고, 한숨을 쉬었다.

“좋아요. 그럼 본론부터 말씀드리죠.”

좋았어!

난 사소한 승리에 기뻐하면서 잠시 식욕을 억눌렀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리는 이야기는 기밀 사항입니다.”

디마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우리가 만나고 처음 보는 정색이었다.

“이야기를 시작하죠.”

***

며칠 후, 랭킹 모임.

“그럼 지금부터 오늘의 안건인 랭킹전에 대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박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나와 루호의 테이블을 쳐다봤다.

당연히 다른 랭킹 헌터들의 시선도 우리에게로 쏠렸다.

“헌한발에서 조루호 씨의 랭킹 방어전을 받아들이신다면, 대전료를 제공하겠습니다.”

랭킹전이라는 것은 거절할 수도 있다. 물론 거절이 누적될 때마다 그에 따른 불이익도 받게 된다.

우리 팀의 경우 아마 다른 팀보다 더 가혹한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다.

난 루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후후후.”

박장은 크게 박수를 쳤다. 그러자 지난번에 본 그의 운전기사가 나타나 우리에게 한 장의 종이를 건넸다.

“잘했다, 멍청이들아.”

운전기사는 우리에게만 들리게 속삭였다.

빠르게 그의 오른쪽 가슴에 달린 명찰을 확인했다.

[운전기사―김구남]

나와 루호는 김구남의 무례한 말을 들으며, 잠자코 종이를 확인했다.

“이, 이건……!”

대전표. 이번에 루호가 싸워야 할 상대들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랭킹전과 다르게 연속 시합 방식이었다.

“이게 뭐죠?”

일반적으로 랭킹전이 참가자끼리 랭킹을 노리고 싸우는 방식이라면, 이번엔 오로지 루호 한 사람만을 노리고 싸우는 방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럴 수가!”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분노로 주먹을 쥔 채 부들거리며 떨었다.

[랭킹 4위, 강자기―슈퍼타이거]

[랭킹 17위, 최강지―어금니]

[랭킹 20위, 남궁만―슈퍼타이거]

[랭킹 22위, 김목록―슈퍼타이거]

[랭킹 25위, 제갈신―로얄가드맨]

[랭킹 50위, 손평화―공포특급]

[랭킹 54위, 이장군―로얄가드맨]

[랭킹 62위, 장만사―로얄가드맨]

[랭킹 66위, 남돌진―로얄가드맨]

[랭킹 72위, 최상길―로얄가드맨]

[랭킹 76위, 왕오릉―로얄가드맨]

[랭킹 77위, 최향자―검은 과부들]

[랭킹 79위, 박산―로얄가드맨]

[랭킹 외, 김광녀―무소속]

[랭킹 외, 김구남―무소속]

아무리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지만, 이건 그냥 공개 처형이나 마찬가지다.

정말 때려 치고 싶었다.

“그럼 한 달 뒤를 기대하지요. 완벽한 준비를 부탁드립니다.”

박장과 김구남은 히죽 웃으며 퇴장했다.

여기저기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재밌겠는데? 이번엔 나도 스페셜 매치에 참가해 볼까?”

“천하의 조루호라도 이번엔 힘들겠지? 과연 몇 번째에서 무너질까?”

“역시 한국지부야! 이런 거 짜는 데 천재적이라니까!”

내 일이 아닌 그저 강 건너 불구경. 이런 일이 자신들에게도 벌어질 거란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다.

이래서 지금의 한국지부가 개판이 된 걸까?

“루호야, 가자.”

“네.”

우리는 지부를 빠져나와 집으로 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하아.”

창문을 향해 한숨을 내쉬자, 하얗게 김이 서렸다.

“정말 엿 같네.”

기가트라우 사냥 성공 보수. 그리고 원정으로 얻은 각 괴물의 부산물.

각 비용을 제외하고 1인당 떨어진 금액은 무려 1억.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우리 팀은 날 제외하고 전원 랭킹 상승. 각 팀에서도 랭킹에 진입하거나 상승한 사람이 나왔다.

가장 놀라운 점은 바로 나존귀의 랭킹 진입!

[99위, 나존귀―KK마스터즈]

내 바로 위였다.

“더러운 세상!”

난 여전히 100위. 아무래도 지부가 사라지기 전엔 랭킹이 오를 수 없는 모양이다.

“에잇!”

난 휴대전화를 꺼내 태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 지냈어?

“응. 부탁이 있어.”

―루호의 랭킹전?

“척하면 척이구나!”

우리는 그렇게 루호의 수련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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