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헤드헌터 김상팔-185화 (185/250)

185.

185.

우리 셋은 신속하게 원정대로 복귀했다.

“또 미아가 되지 마세요.”

장마리는 농담을 던지며 다른 헌터들을 돕기 위해 달려갔다.

난 고맙단 소리도 못하고, 이육과 함께 다시 수정늑대 무리와 싸웠다.

“제기랄!”

하이퍼맨과 대한기사단의 대형이 무너지면서, 결국 전열은 완전히 붕괴. 헌터와 괴물은 한데 뒤섞여 개판으로 싸웠다.

이십은 분신을 가득 만들어서 수정늑대 무리의 주의를 끌고, 나머지 이씨 형제들은 그 틈을 노려 수정늑대들을 공격했다.

“회전공격!”

긴 봉을 돌리며 날아오른 이이는 이육과 함께 공중에서 수정늑대들을 내려찍었다.

루호는 철구가 달린 유성추. 유정은 방벽 위에서 저격으로 싸웠다.

노건은 평소처럼 광전사로 변하지 않고, 간호사로 일한 경력을 살려 부상자를 치료하고 있었다.

혼란스러움만 따지면 기가트라우 때보다 더 심했다.

***

“으아아아…….”

사방이 박살 난 수정 조각과 수정늑대 천지. 전신이 너무 피곤했다.

몇 마리나 쓰러뜨린 건지 셀 수조차 없었다.

처음엔 분명 수십 마리 정도였는데, 싸우면서 점점 숫자가 불어난 것 같았다.

나 말고도 원정대 대부분이 그냥 땅바닥에 누워서 쉬고 있었다.

치료술사들은 자신들도 피로할 텐데도 쉬지 않고 다른 헌터들을 치료했다.

“그러고 보니까, 수정늑대는 그냥 그 자체로 값어치가 있었지?”

난 몸을 일으킨 후 바로 옆에서 펄떡이고 있는 수정늑대의 다리를 들었다.

수정지옥을 구성하고 있는 일반 수정과 달리 수정늑대의 몸은 영롱한 분홍빛을 띠고 있었다.

“여러분, 이거 다 돈이니까 모아주세요!”

난 아직 몸이 멀쩡한 헌터들과 함께 수정늑대 조각들을 모았다. 그리고 부상자를 부축해서 수정 통로 쪽으로 이동했다.

“어휴!”

다들 배낭 가득 짐을 챙겨서 다리를 움직였다.

통로를 지나고 다시 절벽에 도착할 때까지 특별한 일은 없었다.

우린 버섯절벽을 오르기 전 이틀 간 휴식을 취하며 부상자를 치료하고 체력을 보충했다.

원정 17일째.

우리는 버섯을 밟으며 절벽을 올랐다.

오르는 것은 내려오는 것에 비해 더 힘이 들어서 속도가 나지 않았다.

“일단 20일이 넘어가는 건 확정인데…….”

문제는 식량과 식수.

양쪽 모두 귀환할 때까지 아껴 먹어도 모자랐다.

“괴물이라도 잡아먹어야 하나?”

그때 절벽 위에서 여러 마리의 괴물이 날아서 내려왔다.

난 처음 보는 형체. 그러나 다른 헌터들은 비명을 지르며 기겁했다.

“핸드버드다!”

핸드버드. 가까이서 보니, 이름처럼 손 모양을 한 괴물이었다.

다섯 개의 손가락 같은 부분은 마치 날개처럼 위아래로 펄럭이고 있었다.

“무슨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이냐?”

난 배낭에서 소총을 꺼내 원거리 사격을 했다.

다른 헌터들도 총기를 꺼내 사격을 시작했다.

수백, 수천 번의 총성이 절벽을 울리며 핸드버드를 꿰뚫었다. 그러나 핸드버드는 총알 몇 발 맞아서는 죽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날뛰면서 버섯 위에 있는 헌터들을 덮쳤다.

“으아아악!”

나도 한 마리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녀석은 손으로 움켜쥐듯 날 감싼 후 강력한 힘으로 짓눌렀다.

“젠……장!”

슈트를 생성. 광권을 만들어 근거리에서 폭발시켰다. 그러자 아귀힘이 살짝 약해졌고, 난 그 틈으로 핸드버드에게서 빠져나왔다.

“맛 좀 봐라!”

핸드버드의 중지 같은 부위를 잡고 손가락을 연상하며 관절 반대 방향으로 꺾었다.

정말 손가락을 꺾는 것처럼 ‘우드득’소리와 함께 핸드버드가 몸부림을 쳤다.

“떨어져!”

난 발로 차서 핸드버드를 버섯 아래로 떨어뜨렸다.

중지가 꺾인 녀석은 다시 날아오르지 못하고 그대로 추락했다.

“사, 사람 살려!”

오박이 배낭을 멘 채 버섯에서 떨어졌다. 그러자 거기로 여러 마리의 핸드버드가 몰려들며 그를 잡으려 했다.

“비켜, 이 자식들아!”

도로시와 이육이 오박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이육이 오박을 낚아채고, 도로시는 그들을 노리는 핸드버드들을 원형 톱날로 썰어 버렸다.

남은 핸드버드는 불과 십여 마리.

녀석들은 파닥거리며 우리와 거리를 벌리더니 하나로 합체해 거대한 개체로 변했다.

“와, 이런 양아……!”

거대 핸드버드는 주먹을 쥐더니, 내가 서 있는 버섯으로 떨어졌다.

난 황급히 다른 버섯으로 점프!

내가 있던 버섯은 거대 주먹에 맞아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거대 핸드버드는 버섯과 함께 떨어지는 듯했다가 다시 손가락을 펄럭이더니 날아올랐다.

“지랄 같은 괴물이네.”

난 펄쩍 뛰어서 거대 핸드버드에게 매달렸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녀석의 H력을 빨아들였다.

“하하하!”

이젠 어떤 괴물이든 힘을 충전할 수 있다!

이건 확실히 내 능력 자체가 성장한 것이다.

거대 핸드버드는 비틀거리다가 아래로 떨어졌다.

난 가볍게 뛰어서 버섯에 착지했다.

―잘했어!

나존귀의 칭찬.

난 크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럼 계속 가죠.”

엿새 후 우리는 버섯절벽을 통과해 광야지대로 올라왔다. 그런데 거기서 문제가 생겼다.

“큰일 났어!”

팀장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댔다. 그리고 혹여나 말이 새어 나갈까 봐, 이어폰을 끄고 소곤소곤 이야기했다.

“물은 다 떨어졌고, 식량은 하루치밖에 없어. 그것도 아껴 먹는 걸 기준으로……!”

전투 중 일부 배낭과 짐이 유실됐는데, 그게 하필 식량과 물이 든 것이었다.

앞으로 빨라야 이틀. 괴물을 만나면 적어도 사흘이다.

식량은 좀 굶으면 된다지만, 식수가 문제였다.

“광야지대에 고인 물을 마셔도 될까요?”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곧바로 우태훈이 심각하게 입술을 내밀며 대답했다.

“그건 아마 안 될 걸? 여기 물은 가급적이면 손도 대지마.”

하긴 땅 자체가 형광인데…….

최향자가 의견을 냈다.

“남은 물과 식량을 속도 능력자들한테 몰아주고, 터널에 있는 벙커에서 물과 식량을 가져오게 하는 거야. 걔들 속도면 하루나 이틀 안에 돌아올 수 있을 걸?”

우태훈은 기쁘게 동의했다.

“좋은 생각이다! 거기라면 음식과 물이 충분할 거야!”

“오오! 그거다!”

다른 팀장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빠른 사람이…….”

날개를 만들 수 있는 이육.

다리를 가볍게 만드는 주아란.

달리기가 빠른 장마리.

자원한 우태훈과 김두.

다섯 사람은 H력을 뿜어내며 능력발현과 능력발동으로 광야지대를 뚫고 나아갔다.

저들이 물과 식량을 구하는 동안 원정대는 절벽 근처에서 버티기에 들어갔다.

“다들 힘들겠지만, 조금만 참아 주세요.”

원정 23일째.

예상대로라면 벌써 원정이 끝났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도 최악을 가정했을 때 그다지 나쁜 건 아니었다.

“후우.”

광야지대라서 그런지 딱히 조명이 없어도 시야가 잘 보였다. 그래서 절벽에 걸터앉아 아래를 내려다봤다.

“엄청나네.”

여길 내려갔다가 올라온 게 실감이 나질 않았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맨몸으로 움직여도 한참 걸렸을 거리인데…….

“이제 조금만 더…….”

명확한 건 아니지만,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랭킹 1위, 조금만 더 가면 손에 닿을 것 같다.

“아저씨는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가급적이면 위로 올라간 내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은데…….

아저씨는 정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내 선에서 나름 열심히 찾아봤는데,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아저씨가 누구야? 한돈?”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최향자였다.

“네. 맞아요.”

최향자는 터벅터벅 걸어와 내 옆에 앉았다.

“그 인간이 작정하고 숨었다면 찾는 건 거의 불가능해.”

“그런 것 같아요. 엉덩이가 크신 분치곤 그럴 땐 잽싸시죠.”

“뭐 처먹을 때랑……!”

우리는 한돈 아저씨 이야기를 하며 처음으로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너한테 고마워하고 있어. 향기 때도 그렇고, 이렇게 불러 준 것도 그렇고…….”

“그래요?”

의왼데?

최향자는 무뚝뚝하게 웃었다.

“남자 친구가 죽은 후론 남자는 딱 질색이었거든. 특히 약한 남자는 아주……!”

애인이 눈앞에서 살해당했으니, 보통 충격이 아니었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누님이라면 잘 이겨 내실 거예요.”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응원 고맙다.”

“아저씨가 누구야?”

최향기가 와락 최향자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둘이 무슨 이야기하고 있었어?”

“한돈 아저씨 얘기요.”

“엑!”

한돈 아저씨란 말에 최향기는 혀를 내밀었다.

“전 솔직히 그 아저씨 별로예요. 만날 이상하게 웃고, 진상 부리고, 먹을 것만 밝히고…….”

뭐, 이게 아저씨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겠지. 이것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건 그렇죠.”

우리는 다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최향자는 벌떡 일어나면서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수다를 너무 떨었네. 난 간다!”

“가세요!”

혼자가 된 난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면 아저씨도 꽤나 발이 넓으시구나.”

“아저씨가 누구에요?”

이거 무슨 데자뷰인가?

이번엔 손평화가 내 옆으로 와서 앉았다. 그녀는 검지를 세워서 ‘쉿!’하더니 품속에서 작은 캔 커피 두 개를 꺼냈다.

“같이 마셔요. 제가 따뜻하게 데워 왔어요.”

“오오!”

우리는 정말 맛있게 커피를 마셨다.

달콤한 커피처럼 달콤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손평화 씨는 제가 왜 좋으세요?”

스스로 생각해도 등신 같은 질문이었지만, 참 뜬금없이 말이 튀어나왔다.

“음…….”

손평화는 얼굴을 붉히면서 커피를 마저 마셨다.

“예전에 상팔 씨 사냥 영상을 봤는데……정말……정말 위험한 상황이었거든요. 다들 포기하고, 힘들어하고…….”

“그…….”

그런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닌데?

“그런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용기를 내는 상팔 씨가……너무 멋있었어요.”

“그건……그냥 살려고…….”

너무 쑥스러워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내 말에 손평화는 조금 목소리를 높였다.

“살아가는 것도 용기에요! 누군가는…….”

손평화의 눈에 갑자기 눈물이 고였다.

“누군가는……그것도 무서워서 포기하거든요.”

“그, 그렇군요.”

항상 손평화의 밝은 모습만 봐 왔기에 당황스러웠다.

난 그저 손을 뻗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손평화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전 어릴 때부터 쭉 불안했어요. 아무리 꾸며도 외모에 자신이 없고, 랭킹 헌터가 돼도……공포특급에 들어가도 남들과 비교가 될 뿐이었어요.”

사실 내 생활만 봐도 알 수 있지만, 랭킹 헌터라는 게 말은 거창해도 극과 극인 것을 알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명예, 누군가에게는 훈장, 누군가에게는 도구, 누군가에게는…….

더구나 소수 정예, 개성 만발인 공포특급이란 팀 특성상 그것이 꽤 버거웠을 것이다.

하나하나가 인간 병기인 그들을 보고 있자면, 나도 어느새 묘한 열등감을 느끼곤 한다.

“힘내요! 평화 씨는 지금 그대로도 충분히 멋지니까요.”

난 활짝 웃으며 손평화를 위로했다. 그러자 그녀는 호들갑을 떨면서 말했다.

“바로 그거예요! 지금 그 표정……!”

“예?”

“응원 고마워요.”

우리는 서로를 바라봤다. 미소도, 슬픔도 아닌 복잡한 표정이었다.

***

달콤한 것은 순간일 뿐, 물 없이 이틀이 지나자 다들 초토화가 되었다.

몸속에서부터 말라 간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아주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으아아아…….”

이틀 전에 마신 캔 커피의 맛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뭐라도 좋으니 목구멍으로 넘겼으면 좋겠다.

심한 갈증에 공기라도 들이켰다.

“아아아아…….”

7급 최강의 괴물과 싸워 승리한 원정대는 물 부족으로 인해 전멸할 위기에 처했다.

“오늘은……오늘은 올 거야.”

제발……!

목이 너무 마른 그때 갑자기 주머니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엥?”

휴대전화?

난 전화를 꺼내서 받았다.

―끌끌끌!

“엥?”

환청인가?

“아저씨?”

―잘 지내냐?

“아니요.”

환청이라도 좋다.

아저씨와 대화한단 생각에 잠시나마 갈증을 잊을 수 있었다.

“어디세요?”

―그건 비밀이지롱! 그나저나 루호 소식 들었다. 2위가 되다니, 대단한데?

“그렇죠? 헤헤.”

―그건 그렇고, 상팔아. 잠시 휴가를 다녀오는 건 어떠냐?

“네?”

이게 뭔 개소리야? 휴가? 프리랜서는 일 안 하면 그 즉시 휴가인데?

―해외여행이라도 다녀오는 게 어떠냐? 아니면 캐나다나 호주에 근로 유학이라도 가던가?

“무슨 말씀인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왜 갑자기 한국을 떠나라고 하시는 거지?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가?

목이 너무 말라서 뇌세포가 일을 하지 않았다.

“돈 없어요. 돈 주세요. 그럼 다녀올게요.”

―그래, 알았다. 네 계좌로 넣어 주마.

“엥?”

이런 미친……!

갈증이고, 생명의 위기이고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돈 아저씨가 돈을 준다고? 전무후무한 일이다!

그제야 난 제정신을 차리고 통화에 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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