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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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기둥지대의 지형을 제대로 파악하는 게 우선이야. 저 기둥들 뒤에 충분한 공간이 있다면 잘라도 상관없겠지만, 만약 잘랐는데 또 막히면 그땐 어쩔 거야?
우태훈의 말에 모두들 동의했다.
난 속으로 감탄했다.
그냥 관종인 줄 알았는데……!
결국 우리 지원조가 맨 먼저 수정 기둥들을 통과하기로 했다.
우리는 비좁은 틈으로 몸을 밀어 넣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드나들기엔 적당…….”
우리 앞에 반듯하게 뚫린 구멍이 보였다.
누가 봐도 사람이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터널이었다.
“흐음.”
모두들 구멍의 단면을 세세히 살폈다.
“이건 자른 거야.”
최향자가 말했다.
그 말에 빙신연맹의 팀장인 오시오도 동의했다.
“아주 예리한 칼날이야. 어쩌면 능력일지도 모르겠는데?”
칼날 능력자.
내 머릿속에 태한이 떠올랐다. 난 높이와 넓이를 재며 말했다.
“여기서부턴 괜찮을 것 같네요.”
“그럼 자를까?”
최향자는 대검을 빼들어 단번에 수정들을 잘라 냈다.
깔끔하게 잘린 수정 조각은 정육면체로 쏙 빠졌다.
“좋았어! 다시 정찰조 전진!”
최향자의 무전에 도로시는 다시 앞장서서 날았다.
태한이 뚫어 놓은 통로 덕에 우리는 아주 편안히 수정 기둥들을 통과했다.
“광야지대랑 비슷한 것 같은데?”
이곳 수정의 특성 탓에 작은 빛만 비춰도 그것이 확산되어 대낮처럼 주변이 밝아졌다.
“오오!”
다시 눈앞에 거대한 평지가 펼쳐졌다.
“여기 어딘가에 기가트라우가 있단 말이지?”
일단 모든 조장을 집합.
전투 대형을 짰다.
“방어 장비를 갖춘 하이퍼맨과 대한기사단이 맨 앞 1열에 서 주시고, 헌한발, 빙신연맹, 검은 과부들은 2열에 서세요. 3열엔 KK마스터즈, 최고의 최고, 불타는 고구마, 그리고 공포특급이 서 주세요.”
만약 계속 이런 넓은 지형이 이어진다면, 우리도 쭉 경계하면서 나아가야 했다.
언제라도 7급 괴물의 정점인 기가트라우가 튀어나올 수 있었다.
예외적으로 정찰조는 독자적으로 계속 정찰을 하게 했다.
“그럼 다시 전……!”
다시 어둠 속을 나아가려고 하는 그때, 우리 앞에 거대한 소 대가리가 스윽 나타났다.
1개의 머리, 3개의 얼굴.
“기가트라우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들 멍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한가로이 넋을 잃고 있을 순 없었다.
“받아라!”
변해라는 도로시를 몰아서 기가트라우의 가운데 얼굴에 상처를 냈다. 그리고 연이어 옆에 탄 호규가 초음파를 뿜어서 기가트라우의 주의를 끌었다.
“전투 준비!”
각 팀장들의 외침에 따라 헌터들은 서둘러 대형을 갖췄다.
“온다!”
노구와 이성구는 팀원들 앞에 서서 H력을 뿜어냈다.
두 사람을 따라 하이퍼맨과 대한기사단 전원 힘을 합쳐 인간장벽을 만들어 냈다.
“단, 결!”
H력이 모이고 모여 강하게 밀집하는 게 보였다.
정찰조가 시간을 버는 동안 1열은 수비를 공고히 했다.
2열인 우리는 각자 능력을 발현해 공격할 기회를 노렸다.
기가트라우는 세 개의 얼굴로 도로시를 쳐다보고 있었다.
녀석은 무슨 귀찮은 파리를 상대하듯 손을 휘둘러 도로시를 쳐내려 했다.
“하아아앗!”
호규의 초음파가 강력하게 뿜어져 나오며 잠시나마 기가트라우의 손을 느리게 만들었다.
그 틈을 타 도로시의 톱날이 기가트라우의 손목을 그었다.
기가트라우는 통증 때문인지 가운데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양옆의 얼굴은 냉정히 우리와 도로시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거 설마……!”
머리 3개가 독자적으로 판단하는 건가?
기가트라우는 도로시에게서 돌아서서 1열을 향해 움직였다.
도로시에 탄 변해라와 호규가 계속해서 녀석을 도발했지만, 움직임을 멈추기엔 역부족이었다.
“디펜스!”
노구의 구호를 따라 두 팀은 기가트라우와 충돌했다.
“하아아앗!”
하이퍼맨과 대한기사단의 함성.
기가트라우는 보이지 않는 장벽에 막힌 듯 움찍거리며 멈췄다.
비록 한 명, 한 명의 힘은 약할지라도 40여 명이 하나가 되면 7급 괴물에 대응하는 힘을 낼 수 있었다.
“밀린다!”
이성구는 고개를 돌려 2열을 향해 외쳤다.
“오래는 못 버텨! 빨리 공격해!”
난 2열 전체를 향해 외쳤다.
“공격!”
수십 개의 광탄이 발사!
그 뒤를 따라 육탄전 능력자들이 뛰어들었다.
최향자는 나에게 무전기를 던진 후 대검을 들고 뛰쳐나갔다.
난 무광탄을 쏘면서 집요하게 기가트라우의 눈을 노렸다.
기가트라우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에 고개를 휘저었다. 그리고 3개의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양팔을 마구 휘둘렀다.
“으아아악!”
거대한 주먹은 마치 공성망치처럼 1열을 박살 냈다.
하이퍼맨 몇 명은 완전히 형태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으깨졌고, 대한기사단은 거대한 타워실드를 세워서 겨우 목숨만 부지했다.
“방벽 설치!”
난 빙신연맹에게 소리쳤다.
“가자!”
오시오를 포함한 빙신연맹은 대한기사단의 타워실드를 기초로 얼음벽을 만들었다.
처음엔 사람 크기로 만들어진 얼음벽은 점점 커지면서 기가트라우의 허리 높이까지 올라갔다.
“좋았어! 그럼 우리도 간다!”
하이퍼맨은 산탄총, 대한기사단은 대궁을 들고 방벽 위로 올라가 사격을 시작했다.
“하하하! 이거 무슨 공성전 같은데?”
이성구는 호탕하게 웃으며 활시위를 당겼다.
노구도 그의 옆에서 함께 웃었다.
“어차피 헌터 인생 뭐 있나!”
두 아재를 따라 그 팀원들도 죽음을 각오하고 기가트라우에 맞섰다.
우리 팀의 노건은 거구로 변신해 기가트라우의 얼굴로 뛰어올랐다.
그의 주먹에 기가트라우의 왼쪽 얼굴이 잔뜩 찡그렸다.
―우린 언제 돌입할까?
우태훈의 무전. 일단 그에게 신중히 대답했다.
“아직은 안 돼요. 공포특급 여러분의 힘은 결정적인 순간에 쓸 거예요. 일단 준비하고 있어 주세요.”
―오케이.
난 무전기를 주머니에 넣고, 슈트를 착용!
그 다음 양손에 무광권을 만들고, 다시 그 위에 무광탄을 모았다.
“최대 위력을 보여 주마.”
분명 기가트라우의 맷집이 9급에 필적한다고 했지?
“후후후!”
어디 한 번 킹메라도 엿 먹였던 내 공격을 받아 봐라.
날파리처럼 날아오는 공격에 기가트라우는 정신이 없었다. 녀석의 여섯 눈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빙글빙글 돌았다.
“호규 씨! 도로시는 이제 직접 싸우지 말고 부상자를 후방으로 옮겨 주세요!”
―알겠습니다!
도로시는 기가트라우 주변을 빙빙 돌면서 부상자를 찾았다.
난 다음으로 루호에게 무전했다.
“루호야, 잠깐 와서 나 좀 도와줄래?”
―예!
루호는 빠르게 내 옆으로 왔다.
“내가 신호하면 변신해서 돌진해 줘.”
“알겠어요!”
―으아아악!
노구의 비명 소리가 이어폰으로 들려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눈앞의 얼음벽이 무너졌다.
“저런 미친……!”
기가트라우는 수비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그냥 쓰러뜨리기만 해도 버거운데, 그런 자식이 날뛰기까지 하니 그 위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공포특급 준비되셨죠?”
―오케이!
우리 뒤로 공포특급 4인이 왔다.
난 루호에게 지시했다.
“변신!”
“넵!”
루호는 갑옷사슴으로 변했다.
나와 공포특급은 그 위에 올라탔다.
“돌격!”
갑옷사슴은 얼음벽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한참 그곳을 부수고 있는 기가트라우를 살포시 뛰어넘었다.
“지금, 공격!”
나와 공포특급은 기가트라우의 머리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각자가 할 수 있는 최대 공격을 날렸다.
“전기충격!”
손평화의 발전.
“저주다. 낄낄낄!”
갈리의 저주.
“받아라!”
김두의 펀치.
“하아아앗!”
난 폭발의 여파를 고려해 기가트라우의 목으로 내려가 공격했다.
내 근접 무광탄, 무광권이 동시 폭발하며 무려 4배의 위력으로 녀석을 때렸다!
“좋았어!”
기가트라우의 머리가 뒤로 꺾였다. 녀석은 순간 무방비 상태가 되어 점점 뒤로 쓰러졌다.
―모두 피해! 베이베!
우태훈의 무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것은 극소수였다.
난 무전기를 꺼내 소리쳤다.
“다들 대피! 기가트라우한테서 떨어져!”
우리는 허겁지겁 기가트라우에게서 도망쳤다.
정확히는 녀석이 아니라 녀석 머리 위에 있는 우태훈의 기술 때문이었다.
“광, 기, 옥!”
태양처럼 거대한 광탄. 우태훈의 공격은 즉시 폭발하지 않고 그 규모만으로 기가트라우를 짓눌렀다.
“쓰러진다!”
안 그래도 균형을 잃고 있던 기가트라우는 광기옥의 압박에 완전히 벌러덩 넘어갔다.
녀석이 쓰러지면서 지하층 전체가 뒤흔들렸다.
“여, 여기 무너지는 거 아니야?”
갑자기 그런 불안감이 엄습했다.
“섹, 시!”
광기옥의 대폭발.
흡사 전략무기의 그것처럼 폭발의 충격으로 인해 생긴 에너지가 빠르게 퍼져 나갔고, 그 후폭풍이 뒤를 이었다.
“꺄아아악! 상팔 씨!”
엥?
어느새 다가온 손평화가 내 품에 안겨 있었다. 그녀는 정확히 폭발 방향으로 내 몸을 돌렸다.
“크윽!”
난 양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필사적으로 버텼다.
등으로 느껴지는 풍압에 순간적으로 숨이 막혔다.
거기에 수정들이 와장창 깨지며 산탄처럼 날아들었다.
만약 슈트 상태가 아니었다면, 수정 조각에 꼬치가 됐을 것이다.
“다들 괜찮아요?”
무전기로 물었지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고장 난 건가?
아주 잠시지만 폭발이 잦아들고 수정지옥에 정적이 흘렀다. 사람도, 괴물도 모두 축 늘어져 있었다.
“끄응…….”
위력이 더 세진 것 같은데?
난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불이 다 꺼진 수정지옥엔 어둠뿐이었다.
“기, 기가트라우는?”
기가트라우는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죽은 건가?
“괜찮아요?”
난 손평화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네. 괜찮아요.”
우리는 함께 기가트라우에게 다가갔다.
“살아 있어요!”
손평화의 말처럼 손전등을 꺼내 비추자, 헐떡이는 기가트라우의 목이 보였다.
“맷집이 엄청나네요.”
난 무광탄을 모으며, 손평화에게 말했다.
“뒤로 물러서세요.”
“네!”
―김상팔?
최향자의 목소리.
그 뒤를 이어 우태훈, 나존귀의 목소리가 무전을 통해 들려왔다.
난 재빨리 대답했다.
“다들 주변 사람들을 잘 살펴 주세요.”
난 아직 정신을 잃지 않은 기가트라우의 머리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무광탄을 녀석의 미간에 가져다 댔다.
“한 방에 끝내자.”
압축, 그리고 또 압축.
무광탄의 위력이 최고조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능력발현 및 조금 전 날린 공격으로 인해 H력이 바닥나기 일보직전이었다.
“하압!”
기가트라우의 미간에 손을 댄 채 무광탄을 터뜨렸다. 그러자 큰 충격과 함께 녀석의 전신이 움찔거리더니 내가 있던 자리 전체가 피로 물들었다.
“끝났나?”
무광탄 공격을 맞은 녀석의 미간에 구멍이 뚫려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역시 안 죽는구나.”
여기저기 불이 켜지며 헌터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그것은 기가트라우도 마찬가지였다.
“젠장!”
녀석의 여섯 눈이 날 쳐다봤다.
난 허겁지겁 녀석의 위에서 내려와 사람들이 없는 방향으로 유인했다.
“여기야! 여기로 와!”
원정대가 수습하는 동안 시간을 끌어야 했다.
난 능력을 해제하고 순수한 다리 힘으로 달렸다.
기가트라우는 날 따라왔다.
녀석은 세 개의 입으로 날카로운 고함을 지르며 빠르게 움직였다.
“으악!”
난 펄쩍 뛰어서 옆으로 몸을 날렸다.
내가 옆으로 오자마자 내가 있던 자리에 거대한 주먹이 떨어졌다.
“젠장.”
놀랄 시간도 없다.
서둘러 몸을 일으켜 다시 달렸다. H력이 거의 바닥이라 낭비는 할 수 없었다.
“으아아악!”
주먹이 떨어지며 날리는 바람이 계속 뒤통수를 스쳤다.
명중하면 즉사. 오직 그 생각만으로 다리를 움직였다.
“근데 나 너무 떨어지는 거 아닌가?”
눈앞의 시야는 오직 랜턴 빛뿐!
살짝 뒤를 돌아보니, 원정대의 불빛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서, 설마 너무 멀리 온 건가?”
망했다.
기가트라우는 원래 여기서 살던 괴물이니까 어둠에 익숙할 테고…….
“그렇다면……!”
난 뒤돌아서서 남은 H력을 모두 쥐어짰다. 그리고 H력을 다리에 집중. 높이 뛰어 올라 단번에 기가티라우의 머리에 도달했다.
“받아라!”
손전등의 강도를 최대로 설정!
그 강력한 빛으로 기가트라우의 눈을 비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