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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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좀 아까운데? 이 녀석만 옮겨도 억은 될 텐데…….”
노구가 혀를 차면서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들은 최향자는 그의 엉덩이를 걷어차면서 호령했다.
“그걸 누구 코에 붙여? 지금 여기에 몇 명이 있는 줄 알아?”
“하, 하긴 그렇지. 헤헤!”
해체가 끝나고 우리는 다시 전진했다.
놀랍게도 그 뒤로도 제노스네이크가 두 마리나 더 나왔다. 그리고 녀석들과 연달아 전투를 벌였다.
나중에 안 것이었지만 제노스네이크는 큰 덩치만큼이나 감지 능력이 뛰어난 괴물이었다.
그날 밤. 우리는 동굴 벽을 등에 지고 간이 야영장을 세웠다.
가져온 조립식 천막과 울타리로 영역 표시만 한 정도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안정감을 주었다.
사방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끝도 없이 펼쳐진 시야는 우리의 사기를 꺾기 충분했다.
“형, 커피 드세요.”
루호가 컵 하나를 내밀었다.
난 커피를 받아 한 모금 마셨다.
은은한 인스턴트의 향에 한결 마음이 놓였다.
역시 뭐니 뭐니 해도 아는 맛이 최고다.
“대단했어요. 오늘 7급 괴물을 연달아 세 마리나 만났는데, 사망자가 하나도 없잖아요?”
루호는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사상자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은 잘 조직화된 구성, 그리고 나존귀가 데려온 치료술사들 덕분이었다.
그들은 내 생각보다 훨씬 유능했다.
“이번 원정은 중요해. 우리가 이번 의뢰를 성공시키면 더 이상 한국 헌터들이 우릴 깔보지 않을 거야.”
“네, 물론이죠.”
우리는 함께 커피를 마시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바라봤다.
***
다음날.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다시 원정에 올랐다.
“하암!”
다들 늘어지게 하품을 하면서 전날 미처 풀지 못한 피곤과 씨름을 했다.
광야지대의 특성상 사방이 발광하는 탓에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눈을 감아도 계속 눈꺼풀 위로 빛이 번쩍였기 때문이다.
“빨리 통과해야지, 몸이 힘든데 잠까지 못 자니까 죽것다.”
다들 비슷한 생각. 그래도 원정은 신중하게 진행됐다.
―여기서부턴 제노스네이크가 없어.
우태훈이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잠을 못 잔 탓일까?
―여기서부턴 넝마코브라가 나온다. 섹, 시…….
의무적인 ‘섹시’구호.
난 피식 웃으며 넝마코브라에 대해 떠올렸다.
넝마코브라. 제노스네이크가 거대한 뱀이라면, 녀석은 이름처럼 거대한 코브라였다.
다만 일반적인 코브라와 다르게 볏이 완전 걸레처럼 늘어져 있는 게 특징!
그래서 ‘넝마’코브라인 것이다.
―전방에 넝마코브라로 보이는 괴물이 있어요. 크기는 제노스네이크보다 조금 작아요.
그럼 대략 코끼리만 한 건가?
어차피 녀석은 제노스네이크와 달리 크기가 아닌 넝마에 위협 요소가 있었다.
―팀장님, 어떻게 할까요?
호규의 질문에 난 짧게 답했다.
“어제처럼 우회합니다. 정찰조는 유도해 주세요.”
―네.
이번엔 성공!
우리는 안정적으로 넝마코브라를 피해 갔다.
“좋았어!”
전투 없이 처음으로 무사통과. 넝마코브라와 거리가 벌어지자 다들 환호를 지르며 좋아했다.
―전방에 넝마코브라가 또 있어요!
얼마 안 됐는데?
그 무전기 소리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녀석이 저희를 본 것 같아요!
“젠장!”
어쩐지 잘 풀린다 했지!
―지원조, 돌……!
최향자의 지시가 끝나기도 전에 전방에서 뭔가 충격음이 들렸다.
“지원조장님, 무슨 일이죠?”
난 서둘러 무전기로 물었다.
―녀석이 날아올랐어요!
엥? 코브라가 난다고? 그러면 벗어날 길이 없는데……!
우리는 더 빨리 달렸다. 그리고 도로시와 공중전을 벌이고 있는 넝마코브라를 발견했다.
“사격 개시!”
최향자를 포함해 우리 조는 전원 볼트액션 소총을 들었다. 그리고 넝마코브라를 향해 총을 쐈다.
―꺅! 조준 똑바로 해!
변해라가 호규의 무전기로 날카롭게 소리쳤다.
아무래도 넝마코브라와 가까이 붙어 있기에 도로시에게도 총탄이 튈 수밖에 없었다.
“젠장!”
넝마코브라는 걸레와 같은 볏을 날개처럼 쫙 편 채로 공중을 날고 있었다.
녀석의 날갯짓 한 번에 바람이 불어오며 우리의 조준을 방해했다.
―날개를 쏴!
최향자의 말에 다들 넝마코브라의 볏을 공격했다. 그러나 본래 볏 상태가 걸레처럼 쭈글쭈글해서 총알이 뚫고 지나간들 비행에 지장을 주진 않았다.
“그렇다면……!”
난 소총의 탄창을 빼고 주머니에서 특수탄을 꺼내 장전했다.
“받아라!”
총구 끝에서 붉은 화염이 튀어나와 용오름처럼 휘감으며 올라갔다.
물론 총알은 명중!
볏에 불이 붙으며 넝마코브라의 비행에 지장이 생겼다.
―나이스!
넝마코브라가 추락하려 하자, 도로시가 톱날을 회전시키며 녀석과 충돌했다.
“와!”
야생의 괴물에게 등급의 차이는 절대적. 그러나 도로시에게는 변해라의 H력이 주입되어 있다!
그러니 지금 도로시는 보통 원반가오리보다 훨씬 강해진 상태. 1급 차이 정도는 충분히 커버가 가능했다.
도로시의 톱날이 넝마코브라를 수직으로 갈랐다.
두덩이로 쪼개진 넝마코브라는 그대로 바닥에 추락.
우리는 부산물 채취를 한 후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비행 능력이 있어서 그런가? 의외로 제노스네이크보다 약하네?”
나와 우리 팀원들은 ‘쌍두하피’에게 지독하게 당한 탓에 비행 괴물 공포증 같은 것이 있었다.
솔직히 지금도 쌍두하피를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우리는 이른 점심을 먹으며 힘을 충전했다.
다행히 이틀째에는 한 번의 전투가 전부였다.
***
사흘째.
우리는 넝마코브라의 영역을 벗어나 광야지대의 마지막 괴물 서식지에 들어섰다.
그 괴물의 이름은 바로 꼬리머리렉스!
이 녀석은 지부에 정보가 없어서 그다지 대응 방안을 준비할 수 없었다.
“제발, 제발, 제발……!”
그냥 넘어가라!
간절히 기도했다.
잊지 말자. 이번 사냥은 단순히 끝까지 가서 기가트라우를 잡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왕복. 즉, 돌아와야 한다. 그러니 설사 갈 땐 무사통과라도 돌아올 때 무사하리란 보장은 없다.
―이상해요. 근처에 괴물 그림자도 없어요.
호규의 말을 듣자마자 노구가 말했다.
―이거 사이클인가 본데?
사이클. 쉽게 설명하자면 괴물이 다시 재생성되는 기간이다.
괴물의 생태가 제대로 연구되지 못하는 것도 괴물이 죽고 나면 영역 내에서 새로운 괴물이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괴물을 잡아다가 실험했을 때 해당 괴물이 죽고 나서야 그 영역에 다시 새로운 괴물이 출현하기도 했고, 그냥 그거랑 상관없이 출현하기도 했다.
즉, 일정한 법칙이나 패턴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이클’은 베테랑 헌터로서도 그다지 자주 접할 수 없는 현상이 아니다.
“쾌속 전진!”
내 외침에 원정대 속도가 빨라졌다.
우리는 고속 행군을 하듯 빠르게 광야지대를 통과했다. 그리고 그 경계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인 나흘째.
도로시가 먼저 2층에 해당하는 버섯절벽에 도달했다.
―낭떠러지가 보여요.
호규의 무전. 이번엔 내가 답했다.
“정찰조는 거기서 스톱하세요. 거기가 바로 다음 지역으로 갈 경계예요.”
모든 조가 낭떠러지 앞에 집합. 가져온 등반용 로프를 꺼내 설치했다.
이제부턴 버섯절벽의 시작이었다.
낭떠러지를 내려다보자 조금 아래로 수많은 거대 버섯이 절벽에 매달려 있는 게 보였다.
문제는 어둠.
광야지대는 그 특유의 발광성 덕에 딱히 조명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부터 내려갈 버섯절벽은 어둠 천지!
아래를 내려다봐도 보이는 것은 어둠뿐이었다.
앞으로 여길 사흘 간 내려가야 한다.
“공기도 좀 갑갑해졌는데?”
아직까진 숨은 쉴 만하다. 그러나 3층까지 도달하면 호흡으로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태한, 이 자식. 똑바로 좀 알려 주지.”
자기는 2위였다고 너무 무신경한 거 아니야?
난 무전기를 통해 각 조장들에게 설명했다.
“절벽에 달린 버섯들을 오가면서 내려가야 해요. 다들 조심해 주세요. 떨어지면…….”
백프로 사망 확정. 다들 조마다 로프를 이중으로 연결한 후 몸에 조명을 달았다. 그리고 손에는 또 손전등을 들었다.
정찰조는 공중을 날기 때문에 사실상 우리 지원조가 처음으로 버섯을 밟았다.
“오오!”
시험 삼아 버섯의 머리를 발로 밟아 봤다.
정보대로 딱딱하다!
그것만으로 안심할 수 있었다.
버섯의 머리는 대략 킹사이즈의 매트릭스에서부터 원룸 평수까지.
안전을 위해 줄을 더 길게 섰다.
―저희는 먼저 내려갈게요.
난 호규에게 당부했다.
“10미터씩 내려가시고, 지원조가 도착하면 그 다음 10미터를 내려가 주세요.”
―알겠습니다.
우리는 버섯 하나하나에서 점프하며 조금씩 아래로 내려갔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니까 조심해서 내려오세요. 특히 운반조는 더 조심해 주시고요.”
난 무전기로 모두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그러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위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뭔가가 우리 옆을 스쳐 아래로 떨어졌다.
“무슨 일이죠?”
―불타는 고구마 녀석 하나가 떨어질 뻔했어. 연결된 로프 덕분에 괜찮아!
노구의 무전이 왔다.
근데 뭐가 떨어졌는데?
“물품은 무사한가요?”
내 질문에 잠시 긴 침묵이 이어졌다.
불길한데? 언제나 불길한 예감은 틀리질 않는다.
―식량이 떨어진 것 같아.
“시발!”
육성으로 욕이 나왔다.
식량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 버섯이라도 뜯어먹어야 하나? 근데 이 버섯 먹을 수 있나? 아니지, 먹을 수 있다고 해도 먹으면 안 되잖아?
이 버섯이 발판인데!
난 한숨을 쉬면서 무전을 날렸다.
“3층에 도착할 때까지 식량 문제는 미뤄두겠습니다.”
지금 사기가 떨어지는 것도, 잘잘못을 따지는 것도 금지. 난 씁쓸한 심정을 애써 감췄다.
―여기는 후방조! 뭔가가 위에서 내려온다!
우태훈의 다급한 목소리. 다들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봤다.
“엥?”
어둠 때문에 먼 거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다들 집중한 탓인지 입을 다물자 정적 사이로 뭔가 소음 같은 게 들렸다.
거품 같은 게 유리를 흐르는 소리랄까?
약하게 뽀글뽀글 소리가 들렸다.
H력을 두 눈에 집중해 야간 시야와 시력을 강화시켰다.
“앗!”
버섯들 사이로 뭔가가 떼거지로 내려오고 있었다.
움직이는 게 꼭…….
―갑옷달팽이다!
갑옷달팽이?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무전으로도 우태훈을 제외하면 다들 모르는 눈치였다.
―총을 쏴! 광탄을 쏘면 절벽이나, 버섯이 박살날 수 있어!
그 말에 모두들 소총, 산탄총, 권총을 들었다. 그리고 절벽을 내려오는 갑옷달팽이를 향해 총을 쐈다.
사람들은 능력발동을 통해 신체능력을 강화시켜 양손으로 산탄총을 들고 쏘거나, 대구경을 쏘기도 했다.
“젠장!”
총에 맞은 개체 하나가 내 앞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버섯이 살짝 기울어 절벽과 연결된 부분에 금이 갔다.
갑옷달팽이는 민달팽이처럼 생긴 형태에 겉면이 강철 같은 금속으로 덮여 있었다.
“다들 조심해요! 갑옷달팽이가 버섯에 떨어지려고 하면 어떻게든 쳐내요!”
사격과 동시에 쳐내라?
내가 한 말이지만, 개소리 같았다.
―으아아악!
노구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내 바로 위 버섯에서 광탄이 폭발하는 소리가 났다.
“광탄은 쏘지 마세요!”
―닥쳐! 지금 당하기 일보직…….
나존귀의 목소리? 무전기를 안 줬는데? 누구 무전기로 말하고 있는 거지? 노구?
“버섯에 충격을 주면 안 됩니다! 그럼 그냥 떨어진다고요!”
―당장 죽는 것보다 나아!
또 광탄이 폭발했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주변 버섯들이 흔들렸다.
“젠장! 미친 새끼야! 다른 사람까지 죽이지 말라고!”
답장이 오지 않았다.
난 욕설을 내뱉으며 일단 사격에 집중했다.
백여 명의 사격이 효과가 있었는지 몇 마리의 갑옷달팽이가 추락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