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헤드헌터 김상팔-178화 (178/250)

178.

178.

“체포하는 것 같은데요?”

디마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나도 그를 따라 뒤를 돌아봤다.

뉴 월드 신도들과 경찰들이 서로 뒤엉켜 있었다.

그런데 잘 살펴보니 의경들은 방패로 진형을 맞춰서 신도들을 포위하는 정도였지만, 신도들은 어디선가 무기를 구해 와서 적극적으로 경찰을 공격하고 있었다.

“진짜 폭동?”

나와 디마는 다시 집회 현장으로 돌아갔다.

놀랍게도 구지태는 H력까지 뿜어내면서 능력발동으로 강화된 신체 능력을 뽐내고 있었다.

“하하하! 뉴 월드 만세!”

구지태의 주먹에 의경들이 날아갔다.

신도들은 구지태를 따라 경찰들의 포위망을 돌파하려 했다.

현행법에 따라 H력을 지닌 능력자는 경찰과 군인이 될 수 없기에 지금 당장 저들을 막을 사람이 없었다.

“하여간 시대착오적인 법이 문제야!”

능력자를 배제한 이유는 능력자보다 비능력자의 목소리가 더 컸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능력자는 총으로 충분히 진압이 됐기에 다들 심각하게 이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

“상팔 씨, 설마 나서시려고요?”

디마는 뛰다가 도중에 멈췄다.

난 대답 대신 눈빛을 보내면서 홀로 현장에 뛰어들었다.

“어디 한번 막아 봐! 우리에겐 믿음이 있다!”

진압용 장비만 갖춘 경찰들로선 발포하는 것 외에 구지태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경찰이 총을 꺼내 쏘려고 하면 즉각 일반 신도들이 구지태를 둘러쌌다.

“뉴 월드 만만세!”

신도들은 한 덩이의 생물체처럼 빠르게 경찰들을 제압했다.

“이런 미친 새끼들!”

나도 H력으로 능력발동하며 높이 점프했다. 그리고 구지태 앞에 착지. 녀석이 반응도 하기 전에 주먹을 녀석의 복부에 질렀다.

“윽!”

구지태는 눈과 입을 벌린 채 옆으로 고꾸라졌다. 녀석이 쓰러지자 다른 신도들은 겁을 먹고서 항복했다.

***

“엥?”

나까지 체포되어 끌려왔다.

경찰들은 나에게 커피와 과자를 내주며 상당히 친절하게 대해 줬다.

“정말 죄송합니다. 일단 전원 신원 확인만 완료되면, 김상팔 씨는 바로 귀가하실 수 있게 조치해 드리겠습니다.”

비록 경찰을 도운 일이었지만, 어쨌든 구지태를 폭행한 걸로 되어서 조사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미치겠네.”

참고로 난 보호자로 루호를 불렀다.

이런 일로 부모님을 부를 순 없는 일이었다.

“이거 놔! 우릴 풀어 줘!”

네오서울 지방경찰청 수사과는 그야말로 사람으로 미어터졌다.

경찰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구속된 신도들을 통제하고, 조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야, 김상팔!”

신도 중 일부가 날 알아보고 소리쳤다.

난 그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가만히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네가 경찰이야? 너 능력자지? 와! 이 나라는 능력자가 막 민간인 패고 그러냐?”

난 같은 능력자만 팼는데?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다과용 과자를 뜯어서 입어 넣었다. 그리고 망할 놈들을 씹는단 심정으로 잘근잘근 꼭꼭 씹었다.

“너같이 특권 의식 있는 놈들 때문에 이 나라가 안 되는 거야! 내가 네놈 신상 털어서 인터넷에 올려 줄 테니까, 기대해! 숨지마!”

미친놈. 어차피 루호 때문에 여기저기 취재하러 와서 신상은 진작 털렸거든? 게다가 기기래의 인터뷰로 이미 얼굴도 다 알려졌고…….

난 한숨을 쉬었다.

“너 이 새끼, 지금 사람 무시하……아얏!”

계속 지껄이던 신도의 머리를 한 형사가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야, 인마! 너 신도 아니잖아? 요즘은 사이비 시위도 다녀? 돈만 주면 진짜 무슨 시위든 다 다니는구나. 참 지랄도 풍년이다.”

형사의 일침에 신도는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형사는 날 데리고 따로 구석에 가더니 실실 웃으며 말했다.

“이제 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저, 그런데 그 폭력 행위에 대해선…….”

형사는 주위를 살피더니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비밀로 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희도 이런 일은 처음이고, 워낙 상황이 다급해서 준비가 미흡했거든요. 일단 외부엔 불법 강제 점거 시위를 진압했다고 발표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난 형사가 알려 준 뒷문을 통해 조용히 경찰청을 빠져나왔다.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를 잡기 위해 모텔촌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휴대전화로 뉴스 항목을 보니 벌써 속보가 속속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헌한발 팀장! 법 위에 서다!]

“이럴 줄 알았어. 아직 경찰의 정식 발표도 안 나왔는데?”

예전엔 정보가 너무 없어서 문제였다면, 지금은 정보가 너무 많아서 문제다!

정보도 정보 나름인데, 이런 가짜 정보는 정말 발암물질 같다.

[종교의 자유 침해!]

[고삐 풀린 김상팔!]

“구지태는? 나만 싸웠어?”

[능력자 제재 법안 필요!]

[선량한 시위자들이 다치다!]

“걔네가 경찰 팬 건……?”

아니, 시위라는 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필요한 거긴 하지만……이건 너무하잖아!

[경찰 과잉 진압 의심!]

[능력자까지 필요했나?]

“빌어먹을 황색 언론!”

기기래는 양반이었다.

난 이를 갈면서 휴대전화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주변의 이목을 피해 얼른 가까운 모텔에 들어갔다.

“방 하나요. 자고 갈 거예요.”

“혼자 오셨어? 출장 안마 아가씨 불러 줄까?”

“됐습니다.”

난 황급히 방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리고 침대에 드러누워 TV를 켰다.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최근 빠른 속도로 그 수가 불어나고 있는 뉴 월드란 종교 단체의 집회에서 불법 폭력 행위가 있었다고 합니다.”

뉴스 앵커의 또박또박 명확한 발음에 난 작은 희망을 걸었다.

“저희 취재팀에 따르면 이번에 새롭게 헌터 랭킹 2위가 된 조루호 씨의 팀인 헌한발의 팀장, 김상팔 씨가 이 일에 연루됐다고 합니다.”

그래, 이거 공용 방송 뉴스잖아! 제발 나에게 희망을 좀 줘!

난 귀를 쫑긋 세우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김상팔 씨는 대치 중인 시위대와 경찰을 습격해 양쪽 모두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고 합니다.”

“뭐라고?”

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TV앞에 섰다. 그리고 절규했다.

“미친 새끼들 아니야?”

설마 언론까지?

순간 무서운 생각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에이, 아니겠지. 무슨 대한민국 단체들이 다 호구도 아니고…….”

난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팀원들에게 문자를 돌렸다.

[언론을 믿지 말 것.]

곧 이어 모든 팀원에게서 한 번씩 전화가 왔다.

난 전화를 받는 대신 그냥 안부 문자로 대신했다.

“아까는 다들 전화기 꺼져 있었으면서……!”

난 다음 주 약속 날짜를 정한 다음 전화를 꺼 버렸다.

***

일주일 후 루호네 집.

헌한발 전원이 심각한 얼굴로 한자리에 모였다. 둘이 지낼 땐 넓어 보이던 실내가 열댓 명이 모이니 참 좁아졌다.

다들 걱정스런 얼굴로 쉴 새 없이 나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자자, 지금부터 제가 차근차근 말해 줄게요.”

일주일 동안 나에 대한 악성 보도가 줄지어 나타났다. 그러나 그런 뜬구름도 경찰의 정식 발표가 나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거품처럼 사라졌다.

내 설명을 들은 팀원들은 안도하면서 그제야 얼굴을 폈다.

“우린 언제나 널 믿고 있었어!”

이이와 초조선은 동시에 소리치며 기뻐했다.

두 사람 뒤에 선 이씨 형제들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이번 일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우린 하루 빨리 힘을 키워야 할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의뢰는 무척 중요합니다.”

난 지부에서 받은 의뢰를 알려 줬다. ‘원정’이란 말에 다들 걱정 반, 기대 반의 눈빛을 띠었다.

“계획은 세우셨나요?”

루호의 질문. 난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어. 태한이 알려 준 구조에 따르면 아마 일주일 정도 걸릴 거야.”

“일주일?”

아란이 겁먹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솔직히 나조차 일주일씩이나 사냥 구역에서 지내 본 적은 없다.

대부분의 사냥은 빠르게 치고 빠지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왜 지부에선 기가트라우를 해치우라는 거죠?”

유정의 질문.

난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건 기가트라우의 뿔 때문이에요.”

아님 그저 우릴 골탕 먹이려는 수작이든가…….

이 의뢰를 맡았던 태한도 그 전부터 지부에 미움을 받고 있었다.

“뿔? 지부가 그걸 왜 원하죠?”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성공 보수가 확실하니까, 반드시 해내야 해요.”

내 빚을 갚는 것보다 우리 헌한발의 입지를 위해서라도 해내야 한다.

팀원들은 빠르게 그 본질을 깨달았다.

“그럼 도움이 필요하겠네?”

초조선의 발언. 그녀의 말처럼 전투만 한다면, 지금 여기 인원만으로 충분하다.

문제는 기가트라우를 만나기 위해 깊은 땅굴을 통과하면서 만나게 될 괴물들.

녀석들까지 상대하면 막상 기가트리우와 싸우기 전에 힘을 다 소진할 게 뻔했다.

“물론이죠. 필요한 인원은 연락을 취해 놨어요.”

아마 이번 사냥이 우리가 겪을 사냥 중 최대 규모일 것이다.

난 여차하면 7급 사냥 구역을 그냥 다 싹 쓸어버릴 각오까지 하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온전히 기가트라우에게 다가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대충 멤버가 상상이 가는데요?”

호규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나도 그를 따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준비는 언제나 완벽한 것 같다.

그러나 항상 계획은 틀어지고 실제 상황에선 항상 돌발 변수가 생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나에겐 우리 팀원들이 있다!

팀을 시작한 지 이제 겨우 1년이 되어 가지만 다들 너무도 든든하게 날 지탱해 줬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인연. 그렇기에 앞으로의 싸움에선 누군가를 잃게 된다면…….

난 담담히 말했다.

“그럼 준비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다들 최상의 컨디션으로 와 주세요.”

그렇게 굵고 짧은 회의가 끝나려고 했다. 그런데 누군가 루호네 벨을 눌렀다.

“누구시죠?”

집주인인 루호가 문을 살짝 열었다. 그러자 그 틈으로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헌한발! 헌한발이다! 이 문 여십시오! 얼굴 좀 찍겠습니다!”

“제정신이십니까? 왜 선량한 종교인들을 공격하신 겁니까?”

“저희는 뉴 월드24란 전자 신문인데요! 당신들 같은 작자들을 고발하려 왔습니다!”

루호는 단호한 말투로 외쳤다.

“떠나 주세요! 여긴 사유지입니다.”

“닥쳐! 대한민국에는 보도의 자유가 있거든? 언론의 힘을 보여 주마!”

“찍어, 찍어! 기자가 취재하겠다는데 뭘 어쩔 거야?”

“배 째라! 대한민국 언론의 힘과 종교의 힘으로 상대해 주지!”

루호는 한 번 더 말했다.

“떠나 주십시오!”

뉴 월드는 막무가내였다. 심지어 단체로 달려들어서 힘으로 문에 걸린 걸쇠를 떼어 내려고 했다.

“당겨! 당겨! 까짓것 힘으로 제압해! 우리가 이겨!”

안하무인. 루호는 조용히 분노했다.

“이 사람들이……!”

루호는 힘으로 문을 잡은 손가락 하나하나를 떼어 냈다.

루호가 힘을 줘서 손가락을 꾹 누르자 뉴 월드 사람들은 고함을 지르며 떨어졌다.

“이 헌터 새끼가 사람 잡네! 동네 사람들! 여기 사람 칩니다!”

루호는 그러거나 말거나 기어이 문을 닫았다. 그리고 거실 창문을 살짝 열고 바깥에 소리쳤다.

“백구야!”

루호가 창문과 커튼을 닫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깥에서 비명 소리가 났다.

아란이 호기심에 커튼을 살짝 들추며 바깥을 확인했다. 그리고 걱정스런 말투로 루호에게 물었다.

“저 사슴 물어요?”

루호는 주스가 담긴 잔을 아란에게 내밀며 커튼을 닫았다.

“우리 백구는 안 물어요.”

응, 맞아. 안 물고 패지.

나도 직접 얻어터지기 전에는 전혀 상상도 못했다.

커튼에 비친 실루엣을 통해 바깥 상황이 대충 상상이 됐다.

백구는 사람을 때리고, 차고, 집어던지고, 매다 꽂으면서 능수능란하게 퇴치했다.

“괜찮을까요? 저러다 저쪽에서 소송이라도 걸면…….”

노건이 매우 염려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유정은 그런 그의 등을 쓰다듬으며 진정시켰다.

루호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저희 집은 마당부터 사유지고, 저들은 그 사유지를 함부로 가로질러서 왔어요. 그리고 제 퇴거 요구를 3회나 불응했죠. 저도 주거침입죄와 퇴거불응죄로 신고하면 돼요.”

“오오!”

난 엄지를 세웠다.

우리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바깥의 비명 소리는 사라져 있었다.

“갔나?”

난 커튼을 들춰서 확인했다

아까 왔던 뉴 월드 사람들은 온데간데없고 백구 혼자서만 개집 지붕에 누워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