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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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자!”
가장 떠들썩한 건 역시 이씨 형제 아홉과 초조선. 그들은 고주망태가 되어서 가게를 통째로 뒤흔들었다.
“히히히!”
열 명의 목청이 얼마나 큰지 완전 시장 바닥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들이 입으로만 떠든다는 점이었다.
“응?”
호규와 변해라는 어느새 둘이서만 사라져 버렸다.
이것들, 설마……!
“커플 지옥!”
술을 들이키며 이를 갈았다. 그때 문을 열고 방 안으로 새로운 손님들이 들어왔다. 난 문으로 가서 그들을 맞이했다.
“김상팔, 많이 컸네?”
남주나를 필두로 공포특급이 들어왔다. 그런데 그 중에 이상한 얼굴이 하나 있었다.
“김두?”
네가 거기 왜?
2위 쟁탈전 배틀로얄 때 나름 선방을 했던 김두가 보였다. 그는 얼굴에 붕대를 감은 채 자신을 ‘미라’라고 소개했다.
“공포특급에 들어갔어요?”
김두는 히죽 웃으며 갈리를 가리켰다.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났거든.”
김두와 갈리라니……썅!
하나는 가학성애 전투광이고, 다른 하나는……. 최강으로 끔찍한 커플의 탄생이다.
“상팔 씨!”
손평화가 달려와서 내 품에 안겼다. 난 얼떨결에 그녀를 안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네! 상팔 씨, 저 랭킹이 올랐어요!”
“그래요? 축하드려요.”
전 여전히 100위예요. 2위 쟁탈전을 하면서 헌터 랭킹엔 파란이 일었다.
배틀로얄에 참가했던 모든 랭킹 헌터의 랭킹이 뒤바뀌었고, 대부분 몇 단계 순위가 하락했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팀 같은 경우 새롭게 랭킹에 진입하거나 상승하면서 팀 자체의 명망이 올라갔다.
김상팔 100위
조루호 2위
호규 97위
유정 99위
주아란 98위
변해라 89위
노건 95위
루호를 제외하면 다들 하위권이지만 그래도 랭킹에 들었단 점에 의의가 크다.
이제 루호를 시작으로 팀 자체의 수준을 크게 끌어올리면 지부에서도 날 인정하게 될 것이다.
참고로 공포특급은 다른 빅4의 소속 헌터들 랭킹이 떨어진 덕에 반사이익으로 랭킹이 상승했다. 그리고 한 사람 더…….
“우리가 늦었나?”
태한과 이서현, 그리고 오이해가 들어왔다. 오이해는 방 안을 보자마자 휘파람을 불었다.
“이거 참, 아주 훌륭한 파벌이군.”
전 랭킹 8위, 그리고 현 랭킹 7위 오이해. 그는 하상구가 추락한 덕에 한 계단 상승할 수 있었다. 난 손평화와 강제로 팔짱을 낀 채 세 사람과 각각 악수를 나눴다.
“분위기 좋군요?”
오이해는 고갯짓으로 손평화를 가리켰다.
“어서 오세요.”
“그나저나 자금 사정이 안 좋은가 보지요? 명색이 로얄의 탄생인데 이런 곳에서 축하를 하다니…….”
“뭐, 그렇죠. 태한의 재정은 지부의 감시를 받고 있거든요.”
스페셜 매치에서의 작전은 엄연히 따져서 사기가 아니다. 그러나 지부에서 작정하고 꼬투리를 잡으면 나뿐만 아니라 태한까지 연루될 수 있다.
그렇기에 태한이 가진 판돈은 적어도 몇 년 동안 건드릴 수 없을 것이다. 그 돈은 금전적 의도보단 그냥 김익조를 엿 먹였단 점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그렇군요. 흠…….”
오이해는 방 안 사람들을 천천히 살폈다.
“시간을 들여서 잘 키우면 꽤 거물이 될 수 있겠어요.”
“뭐가요?”
“그냥 여러 가지로……. 혹시 괜찮으면 저랑 일 하나 해 보지 않겠어요?”
난 오이해의 제안에 일단 적당히 얼버무렸다. 오늘은 일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하하하! 일단 한잔 하시죠.”
난 세 사람을 데려와 내 맞은편에 앉혔다. 우리가 잔을 주고받는 사이, 손평화는 내 옆자리를 두고 불타는 고구마 4인과 한바탕 신경전을 벌였다.
술이 몇 차례 돌고, 다들 분위기에 취해 흥겹게 대화를 나눴다.
“아저씨만 계시면 완벽할 텐데…….”
시합이 끝나고 하상구는 네오강원도 인근 바다에서 낚시를 하던 어부에게 발견되었다. 그러나 아저씨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상팔 씨?”
뜨끔. 기기래가 말을 걸어왔다.
난 본능적으로 술잔을 원 샷 한 다음 대답했다.
“예?”
“앞으로는 정말 행동을 조심하셔야 해요. 이번 2위 쟁탈전의 여파로 랭킹이 하락한 헌터들은 이를 갈면서 복수하려 들 거예요. 거기다 우리 루호 씨가 역대 가장 약한 로얄이라고 소문이 나면서 다들 랭킹전을 신청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다고요!”
‘우리’ 루호 씨? 감히……! 난 눈에 불을 켜면서 기기래를 째려보다가 그녀가 한 말을 되뇌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충고 감사합니다.”
취기 때문인지, 스트레스 때문인지 모르지만 갑자기 머리가 아파 왔다. 보통의 두통을 훨씬 넘어, 마치 송곳으로 머리를 쑤시는 것 같았다.
“이놈의 술!”
술 때문일까?
처음 느껴 보는 감각이었다. 난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며 고통을 완화시켰다.
“어머? 머리 아파요?”
술에 취해 얼굴이 빨개진 손평화가 손수 내 관자놀이를 눌러 줬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였다.
“크으으윽!”
난 H력이 바닥난 상태라 손평화의 손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 통증은 머리를 터뜨릴 위력의 지압에 완충되어 사라졌다.
“오오!”
한돈 아저씨 손길 같아!
머리가 말끔해지니까 정말 기분이 개운했다. 난 어깨춤을 추면서 웃었다.
“감사합니다! 평화 씨 덕에 살았어요.”
“우리 데이트는 언제 할 거예요?”
손평화는 눈을 번뜩이며 재빨리 말을 꺼냈다.
“흠, 그건…….”
내가 머뭇거리자 맞은편의 태한이 윙크를 날렸다. 난 손평화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다음 주에 시간 되세요?”
“그럼요!”
손평화는 흥분하다 못해 능력발동을 하며 전기를 뿜어냈다. 그 덕에 그녀 주변에 있던 모든 이가 감전됐다.
***
주말. 난 지하철 옆 앞에서 손평화를 기다렸다.
“오호.”
기다리는 동안 휴대전화를 통해 튜트리팟을 켰다.
[업로더 등급 : 플래티넘 / 누적 조회 수 : 3억 5백만]
“3억!”
루호가 로얄이 된 후 나에 대한 관심까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내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동영상 계정 말고도 매일같이 언론의 취재 요청이 날아들었다.
물론 당장 언론에 노출될 생각이 없던 우리는 오직 기기래만을 통해 인터뷰를 했고, 그 덕에 그녀는 회사에서 고속 승진을 하게 됐다.
“자리가 무섭긴 무서워.”
거기에 우리와 친하단 사실만으로 지금껏 인터넷 방송만 전전했던 최향기가 단번에 공중파 방송에 데뷔했다.
덕분에 최향자로부터 엄청나게 상냥한 감사 인사까지 받았다!
“문제는 돈이란 말이지…….”
다 좋은데……실질적으로 돈이 될 만한 사건은 없었다.
무려 8억이란 빚이 있기에 대규모로 벌 사냥은 엄두도 못내는 상황.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돈, 돈, 돈……!”
항상 돈이 문제다. 돈을 벌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모순. 입술을 씹으며 한참을 생각해도 역시 사냥 외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저기 김상팔 아니야?”
엥?
지나가던 행인들이 날 쳐다봤다.
“정말이네? 김상팔이다!”
“와! 조루호네 팀장 맞지?”
“진짜다! 조루호가 소속된 헌한발 팀장이야!”
난 ‘김상팔’보단 ‘조루호네 팀장’으로 더 유명하다. 뭐, 이건 내가 의도한 일이라 상관없다.
젊은 사람일수록 소문과 유행에 민감한 법. 행인들은 휴대전화를 꺼내 다짜고짜 내 사진을 찍었다.
난 별다른 반응 없이 묵묵히 지하철 계단 아래를 응시했다.
“상팔 씨!”
아래에서 올라오는 사람들 사이로 손평화가 보였다. 난 손을 흔들면서 그녀를 맞았다.
“와!”
셔츠에 바지, 그리고 재킷 차림인 나에 비해 손평화는 엄청나게 신경 쓴 패션이었다.
흉부의 특징을 가려 주는 프릴 블라우스에 단아한 체크 치마. 그리고 허리로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빨간 띠로 허리띠 대신 리본을 묶고 있었다.
머리는 적당히 볼륨감이 있는 것이 생기 있게 찰랑거렸다.
“예쁘다.”
난 짧은 감탄과 함께 위로 올라오는 사람들을 피해 지하철 역 입구에서 물러섰다.
잠시 후 위로 올라온 손평화는 폴짝 뛰면서 내 손을 잡았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니요. 저도 방금 왔어요.”
1시간 전이라 쓰고, 방금이라 읽는다!
그것이 데이트의 기본 소양이다.
“그럼 영화 보러 갈까요?”
예매는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스크린 독점에 의해 영화관에서 상업 영화 하나만 상영 중이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모범적인 자본주의 논리. 이럴 거면 왜 영화관 가서 영화를 보는지 모르겠다.
“어서 가요. 헤헤.”
손평화가 내 팔을 끌어안았다.
놀랍게도 팔꿈치에서 푹신한 감촉이 느껴지자 나도 모르게 빨리 영화를 보러 가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응?”
주변의 사진 촬영이 신경 쓰였지만 그것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이 다가왔다.
“뭐지?”
외제 고급 세단. 그런데 왠지 방향이 우리 쪽인 것 같은 착각이…….
“착각이 아니잖아?”
세단은 도로가에 비상등을 켜고 정차했다. 그리고 거기서 무려 박장이 내렸다.
“박장 씨?”
헌터 협회 한국지부 부지부장. 혹은 그냥 김익조의 개. 박장은 우릴 보더니 히죽 웃으며 다가왔다.
“사, 상팔 씨!”
불안감을 감지한 손평화는 울먹이면서 내게 몸을 붙였다. 그러나 박장은 빤짝빤짝한 머리에서 광채를 뿜으며 날 불렀다.
“김상팔 씨. 같이 가시죠?”
왜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을까?
난 박장과 손평화를 번갈아 봤다.
“김상팔 씨. 이건 지부의 정식 의뢰입니다.”
박장이 목소리를 낮추며 무게를 잡았다. 난 하는 수 없이 손평화의 품에서 내 팔을 빼냈다.
“죄송해요. 데이트는 다음에 해야 될 것 같아요.”
“히잉…….”
손평화는 콧소리를 내며 입을 쭉 내밀었다. 난 박장을 따라 자동차를 타면서 그녀와 계속 눈을 마주쳤다.
“나중에 전화할게요.”
손평화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동차가 출발하면서 뒤돌아보니, 홀로 남은 그녀에게 젊은 남성 둘이 말을 걸고 있었다.
“헌팅?”
와, 눈 감으면 코 베어 가는 망할 세상! 아무리 예뻐도 그렇지, 어떻게 1분도 안 돼서?
그러나 걱정과 달리 정확히 10초 뒤, 손평화는 전기를 발산해 남성들을 쓰러뜨렸다.
“아……!”
화난 건가. 근데 능력자가 저렇게 일반인 공격하면……흠, 손평화는 전기 충격기라도 우길 수 있을 테니 괜찮을지도……?
보조석에 앉은 박장은 헛기침을 하며 내 주의를 끌었다. 참고로 운전은 전문 기사가 하고 있었다.
“할 말 있으세요?”
그냥 여기서 얼른 하고 내려 주시면 안 될까요?
난 간절한 눈빛으로 박장에게 호소했다.
“그……상팔 씨는 종교가 있으신가요?”
종교?
그 말에 갑자기 내 가슴이 차갑게 식었다. 그리고 예지력이 생긴 것인지 앞으로 박장이 무슨 말을 할지 알 것만 같았다.
난 이를 갈면서 말했다.
“없는데요.”
“그럼 제가 괜찮은 종교 하나 소개시켜 드릴까요? 아주 합리적인 종교입니다.”
“합리적이요?”
내가 아주 조금 관심을 보이자 박장은 신이 나서 떠들었다.
“돈을 내거나, 선행을 할 때마다 교단 내 직위가 결정됩니다. 거기에 인간의 구원을 허황된 믿음이 아닌 H력이란 실존하는 힘에서 찾고 있죠.”
“그래서요?”
일단 맞장구쳐 줬다.
“성녀 예카테리나는 H8로 이름 높은 센의 후손으로, 그 힘을 구원을 위해 쓰고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분 덕에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죠.”
“그래요?”
내가 계속 맞장구를 쳐 주자 갑자기 운전하고 있던 기사가 입을 열었다.
“혹시 지금 말씀하시는 교단이 요즘 가장 잘 나가는 ‘뉴 월드’인가요?”
응? 서, 설마……! 이건?
난 섬뜩함을 느끼며 어금니를 씹었다. 박장과 운전기사는 자기들끼리 북치고, 장구치고 하면서 이야기를 이어 갔다.
“맞습니다. 기사님도 뉴 월드를 아시는군요?”
“요즘 뉴 월드를 모르면 간첩이죠. 얼마나 훌륭한 종교인데요?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핫 하죠.”
“맞습니다. 뉴 월드를 믿으면 즐거운 일만 가득하고 나쁜 일은 전부 사라지죠.”
“그야말로 세상의 빛이자 유일한 구원이군요. 저도 빨리 신도가 돼야겠습니다. 하하하.”
바, 람, 잡, 이! 그중에서도 최악인 사이비 바람잡이, 시발!
난 속으로 분노의 눈물을 흘리며 손평화의 모습을 떠올렸다.
즐거운 하루를 포기하고 내가 왜 여기 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