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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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구가 사라졌으니까, 지금 폭발대제를 이끌고 있는 사람은 마바일이겠지?”
마바일은 그나마 폭발대제에서 가장 정상적인 인물. 실력으로나 인격으로나 리더에 적합했다.
“하아. 마바일이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노건의 무시무시한 파워로 이용도를 이기긴 했지만 진짜 시합은 이제부터다.
폭발대제의 진짜 실력자들은 지금부터 나올 것이다.
“다, 다음 선수를 소개하겠습니다!”
이서현이 흥분된 목소리로 소개를 시작했다.
“폭발대제의 2인자! 충직한 거인! 태산과 같은 힘으로 적을 제압한다! 한국 헌터 랭킹 18위! 이번 연전제의 유일한 2군! 마, 바, 일!”
하상구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랭커. 승리를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벽. 그가 필드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쯤 마취가 풀렸는지 노건은 몸을 일으켰다.
유리 돔이 닫히고 시합이 시작됐다. 그리고 그 즉시 마바일은 능력발현으로 자신의 신체를 암석으로 바꿨다. 그리고 노건과 비슷한 크기로 몸집을 부풀렸다.
“와라.”
한 마디. 마바일의 도발에 노건은 참고 있던 분노를 해방하며 단숨에 그에게 뛰어들었다. 그리고 서로 주먹을 주고받는 난타전이 시작됐다.
“하아아앗!”
노건은 마구잡이로 마바일을 때렸다. 그러나 마바일은 침착한 태도로 그의 공격을 모두 막아 냈다.
덩치만 같을 뿐이지, 그야말로 어른과 아이의 싸움. 노건이 무투전에서 밀리는 건 처음 봤다.
마바일은 노건의 뒤로 돌아가 재빨리 그의 허리를 잡았다. 그리고 단숨에 그의 몸을 들어서 뒤로 넘겼다.
프로레슬링 기술로 일명 ‘저먼 스플렉스’라 불리는 동작. 마바일은 물 흐르듯 부드럽게 움직였다.
마바일은 노건에게 부족한 경험과 유연함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이래서야 노건은 그의 열화판. 도저히 승기가 안 보였다.
마바일은 머리가 지면에 박힌 노건을 놓고는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다행히 노건은 머리를 빼내고 금세 일어섰다.
“훌륭한 맷집이군.”
“하아아앗!”
또다시 난타전. 그러나 여전히 상황은 똑같았다. 노건은 일방적으로 마바일에게 맞았다.
“이런 싸움은 오랜만이군.”
마바일은 노건을 때리면서 기분 좋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뒷골목에 살다 보면 이런 막싸움에 익숙해지지. 어쩌면 너도 나랑 같은 출신일지 모르겠군.”
노건의 주먹이 마바일의 안면에 꽂혔다. 그러나 마바일은 그것을 꼿꼿이 받아 내며 오히려 양 주먹으로 노건의 관자놀이를 때렸다.
“막대기, 방망이, 파이프, 칼, 심지어 총까지 든 상대랑도 싸워 봤지만 모두 너에 비하면 애교야.”
마바일은 노건이 관자놀이의 충격으로 비틀거리는 틈을 타 노건의 명치에 한 방, 복부에 두 방, 심장 쪽에 한 방 주먹을 날렸다.
가볍고 날카로운 지르기는 마치 복서의 그것과 같았다.
“뒷골목에서 벗어나기 위해 뭐든지 했다. 복싱, 유도, 레슬링, 태권도, 합기도, 이종격투기!”
노건은 비틀거리면서도 마바일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마바일은 거리를 재면서 그 공격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내가 능력자라는 걸 깨달았지. 그때 내 미래는 사라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시합엔 나갈 수 없었지. 결국 남은 건 뒷골목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뿐이었어.”
“하아아앗!”
노건은 무턱대고 달려들어 마바일의 하체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위로 높이 마바일을 집어던졌다. 천장까지 날아간 마바일은 그대로 유리 돔에 충돌. 둔탁한 소리와 함께 추락했다.
“하아아앗!”
노건은 마지막 힘을 짜내 쓰러진 마바일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함정. 누워 있던 마바일은 노건이 다가오자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반대로 이번엔 그가 노건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때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준 게 바로 폭발대제였다! 만약 그 손을 잡지 않았다면 지금도 뒷골목을 배회하는 쓰레기로 살고 있었겠지.”
마바일은 이야기를 끝내고 본격적으로 노건을 움켜 안았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신체로 노건을 조였다.
“하아아…….”
노건의 몸에서 뿜어지던 H력이 사라졌다. 그러자 마바일은 순순히 노건을 풀어 줬다.
원래 덩치로 돌아온 노건은 바닥에 쓰러져 다시 일어서지 않았다.
[폭발대제 : 5 VS 헌한발 : 4]
대기실 분위기는 급격히 어두워졌다.
마바일의 능력은 둘째치고, 격투 실력과 감각에 다들 혀를 내둘렀다.
“후우,”
이씨 형제들을 제외한 팀원들은 전원, 태한에게 훈련을 받아 비약적으로 강해졌다. 다만 유정의 경우에는 무기가 없으면 제 실력을 낼 수 없고, 변해라도 도로시가 필수. 아란은…….
“젠장!”
육체적으로 가장 강한 노건이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다면, 앞으로 누가 나가든 접근전은 금물이었다.
“내가 나가야 하나?”
하지만 내가 나가서 운이 좋아 이긴다고 해도 적지형은 누가 상대하지?
둘을 연속으로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김상팔.”
이이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우리 형제들 중 하나를 추천하고 싶은데 괜찮을까?”
“그게 누구죠?”
“이칠!”
호명된 이칠이 우리 앞에 섰다. 그는 굉장히 작은 키에 다부진 체격이 특징이었다.
“절 보내 주십시오! 승리하지 못해도 마바일의 체력을 확실하게 깎겠습니다!”
소모전! 이제 그 수밖에 없는 건가? 3명? 4명? 그렇게 쓰러뜨려도 점수 차이는? 그 다음엔……?
마바일을 쓰러뜨려도 랭킹 25위 한림, 랭킹 40위 적지형, 랭킹 55위의 장도람이 기다리고 있다.
이서현이 우리팀의 전력을 50위권으로 예상했으니, 셋 모두 쉽지 않은 상대일 것이다.
“이용도는 예외.”
걘 너무 찌질해서, 별 볼일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분석하자면 이용도의 경우 상대가 노건이기에 압살당한 것이었다.
만약 그가 마바일처럼 노건을 두려워하지 않고 침착하게 맞섰다면 이길 수도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난 이칠에게 신신당부를 하며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절대 근접하시면 안 돼요. 거리를 벌리면서 싸우세요.”
“알겠습니다!”
이칠이 나가고, 열 번째 시합이 시작됐다. 이번 시합은 우리팀에게 있어 중요한 고비였다.
사실 루호를 내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마바일처럼 노련한 상대에게 루호의 시간제한은 너무나 치명적. 그가 노건을 갖고 논 것을 보고 난 후에는 루호를 내보낼 마음을 싹 접었다.
마바일은 이칠을 보며 말했다.
“의외군. 당연히 조루호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잘 부탁드립니다. 이칠입니다.”
“그래? 열심히 해 봐.”
마바일은 덕담 반, 조롱 반을 섞어서 이칠에게 악수를 권했다.
이칠은 조심스레 그의 손을 잡았다.
“미숙하군. 무슨 생각으로 내 손을 잡은 거지?”
마바일의 말과 함께 시작 신호가 울렸다. 아직 두 사람은 악수 중! 보고 있는 내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하앗!”
마바일은 한손으로 이칠을 당기며 다른 손으로 주먹을 질렀다. 그러자 이칠도 급히 다른 손으로 주먹을 쥐면서 H력을 뿜어냈다.
“크악!”
맞은 쪽은 마바일! 이칠의 주먹에서 뭔가가 번쩍하면서 그의 면상으로 날아가 폭발했다.
마바일은 급히 이칠의 손을 놓고 뒷걸음질 쳤다.
“절 너무 우습게 보셨군요.”
이칠은 양손에 주먹을 쥐면서 H력을 끌어 올렸다.
“우리 형제들은 출세를 위해 여러 팀을 전전했죠. 하지만 그 어느 팀에서도 우릴 반겨 주는 곳이 없었어요.”
이칠은 H력을 양 주먹으로 분배한 후 그것을 마바일을 향해 뻗었다.
“물론 폭발대제도 예외는 아니었죠! 우릴 버린 걸 후회하게 해 주겠습니다!”
이칠의 양 주먹에서 주먹 형상의 광탄 같은 것이 튀어나왔다.
주먹형상은 광탄처럼 직선이 아닌 자유비행으로 날아가며 마바일의 주변을 어지럽게 날았다.
“원격인가?”
마바일은 얼굴을 찌푸리며 눈으로 주먹 광탄을 쫓았다. 그러나 아무리 목과 눈을 움직여도 동시에 두 방향을 살피는 것은 불가능했다.
“크악!”
또 한 발이 마바일의 뒤통수에 명중. 폭발과 함께 그의 몸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 틈을 노려 나머지 한 발이 마바일의 복부에 직격했다.
“크으으윽!”
마바일은 서둘러 능력발현을 써서 육체를 바위로 바꿨다. 그리고 긴 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너무 방심했군. 확실히 너희 형제들은 무섭구나. 이일도 처음엔 싹수가 괜찮았지. 녀석이 타락하지만 않았어도 너희는 진작 괜찮은 팀에 들어갔을 거야.”
이일의 이야기를 꺼내자 이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큰형 이야기는 그만두시죠. 전 그거 아주 싫어하거든요.”
“뭘 싫어한다는 거지? 큰형을? 아니면 큰형이 너희 형제들 앞날을 망친 것?”
“하앗!”
이칠은 또 두 개의 주먹 광탄을 쐈다.
“한 번에 쏠 수 있는 건 두 발뿐인가? 역시 어설프군.”
마바일은 바위가 된 상태에서 풀쩍 위로 뛰어올랐다. 그러자 당연하게도 두 발의 주먹 광탄이 그를 쫓아서 날아올랐다.
“나도 널 우습게 봤지만 너도 날 우습게 봤어!”
마바일은 공중에 뜬 상태로 양팔을 각각의 주먹 광탄을 향해 뻗었다. 그리고 그가 기합을 외치자 그의 양팔이 분리되면서 주먹 광탄처럼 독자적으로 날아다녔다.
“나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어.”
바위 주먹과 주먹 광탄이 충돌! 폭발과 연기를 뚫고 바위 주먹 두 개가 곧장 이칠에게로 날아갔다.
“쳇!”
이칠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바위 주먹을 향해 정면으로 달렸다. 그리고 부딪치기 바로 직전에 몸을 숙여서 바위 주먹들의 아래로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이칠을 맞추지 못한 바위 주먹들은 그대로 필드에 충돌했다.
“하앗!”
이칠은 그 틈을 타 마바일에게 주먹 광탄을 쐈다. 그러나 마바일은 이칠의 공격을 그냥 맞아 주면서 필드에 착지했다. 그리고 빠르게 돌진하며 이칠과의 거리를 줄였다.
“받아라!”
이칠은 다시 주먹 광탄을 쏘려고 했지만 이번엔 마바일이 더 빨랐다.
마바일은 돌덩이 같은 몸을 그대로 이칠에게 부딪쳤다.
“으아아악!”
한 방. 그 한 방으로 이칠은 기절했다.
[폭발대제 : 6 VS 헌한발 : 4]
“역시 차이가 벌어지는 건가…….”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이씨 형제들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마바일에게는 절대적 약자였다.
“응?”
화면에 비친 마바일에게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보였다. 그는 필드에 떨어진 자신의 양팔을 조종해서 붙이는 대신 자신이 거기까지 가서 직접 붙이고 있었다.
“왜 저런 번거로운 짓을……?”
혹시 몸을 불리해서 원격으로 날리는 건 H력이나 체력의 소모가 큰 건가?
난 이이를 불러서 급히 내 생각을 말했다.
“그런 작전이라면…….”
이이의 추천은 막내 이십. 난 그 선택을 믿고 이십을 내보냈다.
“마바일을 혼란스럽게 만드세요.”
“넵!”
열한 번째 시합. 마바일은 이십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 어린 것 같은데?”
참고로 이십의 나이는 20세. 아란과 달리 엄연한 성인이었다.
“후회하게 해 주지!”
시합이 시작되자 두 사람은 동시에 H력을 뿜어냈다.
마바일은 당연히 바위 인간으로 변신했고, 이십은 그런 그에게 맞서기 위해 능력을 발현했다.
“하압!”
이십은 기합과 함께 광탄을 만들어 자신의 발밑에 쐈다. 그러자 폭발과 함께 먼지가 일면서 그의 모습을 감췄다. 마바일은 일단 뒤로 물러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