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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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후.”
장중우는 피식 웃으며 이육에게 말했다.
“내 겉모습만 보고 당연히 네가 이길 거라고 생각했지?”
이육도 장중우를 따라 웃었다.
“어, 그래. 티 나냐?”
두 사람의 힘겨루기는 다소 지루해 보일 수 있었다.
실제로 서로 손을 맞잡은 채 그저 H력을 뿜어내는 게 전부였다. 다만 두 사람의 완력, 지구력, 정신력, 투지는 보통 사람의 그것을 완전히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지금이다!”
이육은 돌연 능력을 발현하며 등에서 날개를 꺼냈다. 그리고 날개를 팔처럼 휘둘러 손을 맞잡은 장중우의 몸통을 후려쳤다.
기습적으로 시작된 공격에 장중우는 그냥 무방비로 두들겨 맞았다.
“뭐하는 거야? 포기한 거냐?”
이육의 말에도 장중우는 그냥 맞기만 했다. 그런데 아무리 맞고 또 맞아도 그의 얼굴엔 힘든 기색이 없었다. 그는 계속 이육의 손을 붙잡으며 버텼다.
이육의 날개 치기가 계속될수록 장중우의 전신에 상처가 늘어 갔다.
장중우의 왼쪽 눈은 퉁퉁 붓고, 양쪽 콧구멍에선 피가 흘렀으며, 입술도 퉁퉁 부어서 검붉게 변했다.
입고 있던 상의는 다 찢어져서 사실상 상반신이 노출된 상태였고, 하의는 바짓단이 다 너덜너덜해져 반바지처럼 변해 있었다.
“그만 고집 부려! 넌 최선을 다했어!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그러니 기권해!”
이육은 때리면서도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는지 말로써 장중우를 다독였다. 그러나 오히려 그 말에 장중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닥쳐! 승부는 오직 하나, 승패로 결정한다! 다른 건 없어!”
반죽음이 됐음에도 장중우는 이육을 다그쳤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도발까지 했다.
“이 정도 실력이 있는데도 여태껏 랭킹에 오르지 못한 건 아마 이일 때문이겠지? 그놈은 랭킹 헌터의 수치였으니까 말이야. 못난 형을 두어서 힘들었겠어?”
“흐아아앗!”
이육은 단번에 도발에 넘어가 날개를 움직였다.
양 날개는 장중우를 가운데 두고 박수를 치듯 서로 부딪쳤다. 그야말로 압살. 확실한 끝내기였다. 그러나 날개 사이에 갇힌 장중우의 목소리가 또박또박 울렸다.
“진짜배기 랭킹 헌터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를 보여 주마!”
그 말에 이육은 그대로 힘을 줘서 날개로 장중우를 으스러뜨리려고 했다.
“고의로 살인하면 실격패라는 건 알고 있겠지?”
장중우의 말에 이육은 화들짝 놀라 날개를 벌렸다. 그러자 그 벌어진 틈으로 장중우가 빠져나와 이육에게 주먹을 날렸다.
“원 펀치!”
장중우의 외침과 동시에 그의 오른팔이 비정상적으로 커졌다.
마치 오른팔만 거인의 신체가 된 것 같은 변화. 장중우는 팔의 팽창과 지르는 힘을 합쳐 이육의 안면에 주먹을 질렀다.
둔탁한 소리가 울리며 이육의 몸이 뒤로 꺾인 채 날아갔다.
이육은 비명이나 신음 소리 없이 바닥을 굴렀다. 그는 두 눈을 부릅뜬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폭발대제 : 2 VS 헌한발 : 1]
“의, 의료팀 서둘러 주세요!”
이서현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직원들이 서둘러 이육을 옮겼다.
“순간의 방심으로……. 아깝게 됐네요.”
루호가 안쓰럽게 말했다.
난 다음 선수를 고르기 위해 팀원들을 살폈다. 장중우는 극히 단순한 무투파. 다만, 그 풍부한 경험과 강력한 한 방이 무서운 헌터였다.
“절 내보내 주십시오! 복수를 하고 싶습니다!”
이씨 형제들은 아주 난리가 났다. 그러나 내 결정은 그들이 아니었다.
“호규 씨.”
내가 호규를 부르자 다들 입을 쩍 벌렸다. 특히 변해라는 노발대발하며 반대했다.
“안 돼! 우리 오빠를 저런 위험한 녀석들이랑 싸우게 할 수 없어!”
“넌 변씨고 호규 씨는 호씨인데, 어떻게 ‘우리’ 오빠야?”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변해라는 최선을 다해 날 째려봤다. 난 그 무서운 시선을 피하며 호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호규 씨. 저번 수련으로 전 호규 씨의 진가를 알았어요. 호규 씨야말로 지금 우리 팀을 구원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에요!”
“팀장님!”
호규는 내 말에 감동해서 출전을 결심했다. 심지어 여자 친구인 변해라의 타박에도 그의 의지는 흔들리지 않았다.
“후후후.”
계획대로!
난 흐뭇하게 두 명이 말다툼하는 것을 바라봤다.
호규는 사춘기 아들이 반항하듯 변해라와 대화를 나누다가 그냥 대기실을 뛰쳐나갔다.
“오빠, 어디 가!”
변해라는 고함을 고래고래 지르다가 호규가 나가자, 그 대신 나에게 외쳤다.
“오빠가 다치기만 해 봐!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 그래.”
네 번째 시합은 빠르게 준비됐다.
이서현은 호규의 소개도 생략하고 곧바로 시합 시작을 알렸다.
“시작!”
호규는 다리를 벌벌 떨면서 능력발동으로 신체를 강화했다.
장중우는 호규를 천천히 살피다가 씩 웃었다.
“헌한발에 벌써 사람이 다 떨어졌나? 너 같은 겁쟁이를 내보내다니……. 훗!”
장중우는 능력발동만 한 채 호규에게 덤벼들었다.
“너 따위는 주먹만으로 끝내 주마!”
“히익!”
호규는 화들짝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장중우는 몸을 날려 주먹을 뻗었다. 그러자 호규는 한순간에 표정을 바꾸며 씩 웃었다.
“하아아앗!”
빠른 능력발현. 호규는 가볍게 소리를 질렀다. 평소의 우람한 충격파가 아닌 장벽과 같은 짧은 파장의 충격파가 뿜어졌다.
“으아아악!”
장중우는 투명한 벽에 부딪친 듯 짧은 충격파에 의해 뒤로 날아갔다.
너무 정직한 무투파이기에 원거리 전문인 호규야 말로 그의 천적! 내 예상은 적중했다.
호규는 벌떡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무섭지만 그래도 해라보단 안 무서워요!”
아이고, 왜 저런 발언을……?
내 옆에 선 변해라가 슬쩍 욕설을 내뱉었다.
장중우는 덤블링으로 몸을 일으켰다.
“후우, 좋아. 내가 널 얕봤다는 건 인정하지. 하지만…….”
장중우는 옆으로 뛰어 유리 돔에 발을 댔다. 그리고 비스듬히 달리면서 유리 돔을 타고 점점 위로 올라갔다.
“이것도 막아 봐라!”
장중우는 호규의 근처까지 이동한 후 펄쩍 호규를 향해 뛰어내렸다. 그리고 능력발동을 해 오른팔을 거대화시켰다.
“원 펀치!”
호규는 피하지 않고 제자리에 서서 고개만 장중우를 향해 치켜들었다. 그리고 길게 숨을 들이마시며 함성을 준비했다.
“핫! 핫! 핫……!”
짧고 강하게 여러 번. 호규의 입 주변에 작은 유리구슬 크기의 구체가 생겨났다.
호규는 장중우의 주먹이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 번 더 크게 고함을 질렀다.
“흐아아아!”
큰 소리 한 번에 입 주변에 떠 있던 구체들이 반응했다.
구체의 정체는 바로 소형 충격파. 나눠서 뱉은 충격파가 산탄처럼 여러 방향을 향해 동시다발적으로 날아갔다.
당연히 그것들이 도달한 목표는 거대한 주먹과 그 주먹을 달고 있는 장중우였다.
연쇄적인 폭발과 함께 유리 돔에 금까지 갔다.
강력한 충격에도 불구하고 장중우의 주먹은 그대로 호규의 위로 떨어졌다. 그러나 산탄 초음파를 직격으로 맞았기에 장중우는 축 늘어진 채 주먹에 매달려 있었다.
또 무승부?
다들 예민한 심정으로 이서현의 판정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때 필드 위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앗!”
이서현도 너무 놀라 마이크를 켠 채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기절한 장중우가 왼팔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승자는 장중우!”
[폭발대제 : 3 VS 헌한발 : 1]
제기랄! 종이 한 장 차이였나?
일어선 장중우는 힘겹게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는 호규를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애송이 녀석.”
호규가 실려 나가고, 변해라는 치료실로 달려갔다.
“다음은 누가 나가죠?”
루호가 자신을 보내 달라는 눈빛과 함께 물었다. 그러나 난 고개를 저으며 이씨 형제들을 불렀다.
“나가고 싶으신 분?”
“저요, 저요, 저요……!”
여덟 명이 한 목소리로 웅성거렸다. 거의 야시장 수준의 소음이었다.
“그만!”
내가 소리치자 이씨 형제들은 입을 다물며 손을 들었다. 난 이이를 불러서 물었다.
“추천해 주세요.”
이이는 동생들의 눈치를 살피다가 한 사람을 지목했다. 난 그의 선택을 믿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이팔! 나가세요.”
“알겠습니다!”
이팔은 자신만만하게 대기실을 뛰쳐나갔다.
이서현은 호규 때와 달리 이팔의 소개에 신경을 썼다.
“헌한발의 다음 선수! 이씨 십 형제의 여덟째! 이육의 복수는 내가 한다! 이, 팔!”
장중우는 필드로 나온 이팔을 보더니 헛웃음을 지었다,
“넌 또 뭐냐? 꼬리라도 돋아나나?”
엥?
장중우의 비아냥거림에 이삼이 흠칫 놀랐다.
그러고 보니, 이삼의 능력은 꼬리가 돋아나는 거였지.
나와 루호는 눈빛을 교환하며 피식 웃었다.
“각오해라.”
이팔은 말수가 적은 듯 말을 마치고 얌전히 시작 신호를 기다렸다.
장중우는 어떻게든 그를 도발하려 계속 떠들었다.
“애초에 이름이 뭐 그 따위야? 무슨 B급 영화 시리즈 같잖아? 첫째는 이일이고, 막내는 이십. 완전 아동 학대급 작명이군 그래?”
이팔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팔짱을 낀 채 장중우의 말에 따라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응, 그래.”
이팔의 대답에 나와 팀원들은 웃음이 빵 터졌다. 그야말로 포커페이스. 심리적 측면에서 장중우를 크게 앞서고 있었다.
장중우는 입을 꾹 다물면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시작!”
체력적인 조건으로는 이팔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장중우는 앞선 두 번의 시합으로 완전히 지친 상태였다.
“원 펀치!”
장중우는 시작부터 능력발현을 했다. 그는 거대해진 주먹을 앞세우며 이팔에게 돌진했다.
이팔도 H력을 뿜어내더니 능력발현인지 손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뭔가를 옆으로 집어던지고 나서 거대 주먹을 피했다.
“으악!”
시합은 한순간에 끝났다. 이팔이 거대 주먹을 피한 직후 그 전에 던졌던 무언가가 옆으로 빙 돌아 장중우에게 직격했다.
부메랑과 같은 움직임, 그리고 폭발. 거대한 주먹을 앞세웠기에 장중우는 시야가 가려져 이팔이 던진 것을 볼 수 없었다.
사실상 자업자득. 머리를 맞은 그는 곧바로 쓰러졌다.
[폭발대제 : 3 VS 헌한발 : 2]
이팔은 기쁨의 환호 대신 조용히 오른팔을 들었다. 그것으로 자신의 승리를 선포한 것이다.
여섯 번째 시합. 폭발대제에서 내보낸 선수는 장덕이었다. 이서현은 간단명료하게 그를 소개했다.
“헌터 랭킹 84위! 근성의 사나이! 장, 덕!”
장덕이 오르자마자 유리 돔이 닫히고 시합이 시작됐다.
장덕은 능력발동을 하면서 침착하게 이팔을 주시했다.
“난 쉽지 않을 거다.”
장덕은 주먹을 쥐면서 자세를 취했다. 이팔은 그런 그를 보면서 양손에 또 뭔가를 만들어 냈다.
흰색으로 빛나는 구체, 그것은 분명 광탄이었다. 이팔은 그 광탄을 얇게 펴서 마치 부메랑과 같은 형태로 만들었다.
아무래도 저건 능력이 아니라 H력의 응용 기술인 것 같다.
H력을 물질화시키는 것처럼 H력 자체를 다루는 게 아니라 H력으로 만든 광탄을 2차 가공하는 것. 저런 건 처음 봤다.
즉, 광탄 부메랑!
“재미있는 기술이군. 어서 던져봐!”
장덕의 도발에 이팔은 광탄 부메랑 하나를 던졌다.
빙그르르 회전하며 날아간 부메랑은 장중우에게 그랬듯 장덕의 옆을 노렸다. 그러나 장덕은 침착하게 제자리에서 뛰어올라 부메랑을 피했다. 그러자 이팔은 나머지 하나를 위쪽으로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