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헤드헌터 김상팔-168화 (168/250)

168.

168.

“아무튼 조심하세요. 다음 주 시합은 아마 헌한발 최대의 시련이 될 거예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뉴 월드의 ‘형제! 자매!’타령은 더욱 소리가 커졌다. 그때 머리가 번뜩이며 좋은 생각이 났다.

“그래! 이씨 십 형제가 있었지?”

당장 휴대전화를 꺼내 이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다음날. 이일을 제외한 이씨 형제들과 초조선은 우리 헌한발 소속이 되었다.

***

대망의 연장전 날. 우리 헌한발은 전원 투기장으로 들어갔다.

“와! 사람 좀 봐요!”

아란의 말처럼 우리 주변엔 엄청난 인파가 있었다. 모두 오늘의 시합을 구경 온 관람객이었다.

2위 쟁탈전이 30퍼센트라는 시청률을 기록한 후 지부는 오늘 연장전을 아주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참고로 티켓은 온라인 판매 시작 1시간 만에 매진됐다고 한다.

“이러다가 나중에 연예기획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오면 어쩌죠?”

아란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비슷한 경우로 카리, 최향기를 생각하면 아주 불가능하진 않았다.

“오빠 내 말 좀 들어!”

“아니, 네가 오빠 말 좀 들어!”

다들 참가 의사는 밝혔지만 변해라와 호규는 여기까지 와서 말다툼을 벌였다.

“오빠가 빠져! 오빠는 허접이잖아? 다치면 어떻게 하려고? 죽을 수도 있잖아! 오빠 몸을 좀 소중히 해!”

“해라야. 너야말로 도로시가 없으면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 없잖아? 그냥 네가 빠져. 네가 다치면 오빠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아.”

이 빌어먹을 커플! 목숨 걸고 싸워야 하는데 염장을 지르네?

아저씨가 보고 싶었다.

“숫자는 제법 늘었는데, 이길 수 있을까요?”

유정이 걱정스런 말투로 물었다.

현재 헌한발은 원래 멤버 8명에 이씨 구 형제와 초조선까지 합쳐 모두 18명. 난 고개를 끄덕이며 유정에게 답했다.

“전 질 생각으로 시작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우리, 서로 최선을 다해요.”

“맞아요! 열심히 해요!”

노건이 우리 사이에 툭 끼어들면서 유정에게 손을 내밀었다. 유정은 활짝 웃으며 노건의 손을 잡았다.

“그래요!”

아니, 여기도 사악한 커플의 징조가……! 근데 유정이 여자인 사실을 아는 건 나랑 변해라뿐일 텐데?

투덜거리며 투기장 내부의 대기실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직원 하나가 대기실에서 우리를 맞이했다. 그는 손에 든 태블릿PC를 조작하며 물었다.

“첫 경기 때 나가실 분을 정해 주십시오. 연장전은 오후 1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시작했다.

이씨 구 형제는 분명 일류가 될 자질을 가진 헌터들이다. 그건 직접 가까이서 본 내가 보증할 수 있다.

그럼 그런 이씨 형제들이 왜 아직까지 괜찮은 팀에 정착하지 못한 것일까?

첫 번째 이유는 형제. 이씨 형제들은 언제나 형제 전원이 팀에 소속되길 원했다. 그러나 좀 급이 되는 팀 입장에선 한 번에 열 명이나 팀원을 받는다는 게 보통 껄끄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거친 업계인 만큼 팀 내 정치나 파벌이라도 생기면 곧 죽음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두 번째는 업계의 텃세. 이씨 십 형제는 재능이 있는 만큼 여러 헌터들의 견제를 받았다.

그렇기에 그들이 겨우 팀에 들어가도 맡는 일은 대부분 허드렛일뿐이었다. 즉, 제대로 된 경력을 쌓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신뢰. 이건 첫 번째하고도 연관되는데, 팀 입장에선 한번 계약한 헌터와 계속해서 같이 일하길 원한다.

그런데 이씨 십 형제 같은 경우에는 나중에 팀에서 탈퇴해 자기들끼리 독립적으로 팀을 꾸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솔직히 나도 그런 의심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때 문을 열고 이서현이 들어왔다.

“큰일 났어요!”

이서현은 고함을 치다가 직원을 보고는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잠깐 자리 좀 비켜 줘요.”

“알겠습니다.”

직원이 나가고 이서현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 뭔가를 보여 줬다.

“폭발대제의 첫 번째 선수는 하상구예요! 처음부터 완전히 끝장내겠단 속셈이라고요! 죽고 싶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기권하세요.”

처음부터 끝판왕을 내보내다니, 이런 양심 없는 새끼들!

이를 갈면서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나 아무리 무섭고 두려워도 지금 포기하기엔 너무나 아까웠다.

“슈트가 용암에도 버틸까?”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이서현이 얼빠진 얼굴로 물었다.

“네? 뭐라고요?”

“아, 아닙니다. 정보를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오래 계시면 보기 안 좋을 테니, 그만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네, 알았어요.”

이서현이 나가고, 우리는 완전 초상집 분위기가 되었다.

든든한 이씨 형제들도 하상구에게는 대적할 방법이 없었다.

“내가 나서야 되나…….”

시작하자마자 용암에 바로 녹을 것 같은데…….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 누군가가 또 문을 열고 들어왔다.

“누구세요?”

누더기 천을 뒤집어쓴 방문자는 말없이 나에게 다가와 자신의 얼굴을 보였다.

“당신은……!”

***

[폭발대제 : 0 VS 헌한발 : 0]

이서현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투기장에 쩌렁쩌렁 울렸다. 그녀가 연장전을 설명하자 시끌시끌하던 관객들은 한순간에 침묵 상태가 되었다.

“그럼 지금부터 첫 번째 시합을 시작하겠습니다. 폭발대제의 선수는 무려 팀장! 절대적인 강자! 한국 헌터 랭킹 7위에 빛나는 정점의 로얄!”

관중의 환호가 쏟아졌다. 소문과는 별개로 자극적인 인기만큼은 최고였다.

하상구가 필드로 나오자 다들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필드는 그의 능력을 대비해 열에 강한 특수 소재로 교체되어 있었다.

“하, 상, 구!”

이서현의 소개에 하상구는 손을 들었다.

우리는 대기실에 설치된 TV를 통해 그 모든 걸 생생하게 보고 있었다.

“제발……!”

난 간절히 기도했다.

이기지 못해도 좋다. 죽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그에 맞서는 헌한발의 선수! 엥?”

이서현의 말이 끊겼다. 그녀가 느낄 당혹감은 내가 느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할 것이다.

설마 이 타이밍, 이 중요한 순간에 그런 이름을 호명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겠지.

“한……손? 하, 한손 선수입니다! 별명은 한돈! 헌한발의 전속 치료술사입니다!”

거지 차림의 아저씨가 필드에 모습을 드러냈다.

관객들은 하상구 때와 전혀 반대의 반응을 보였다.

“한손? 한돈? 그게 누구야? 먹는 건가?”

“어디서 저런 땅딸보, 난쟁이 똥자루, 못난이 드워프 같은 놈이 나왔어?”

“헌한발! 지고 싶어서 환장한 거냐? 차라리 기권해라!”

야유가 도를 넘었다. 그러자 아저씨는 양손을 번쩍 들어서 중지를 세웠다.

“저 새끼가 미쳤나?”

관중은 급격하게 흥분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저씨는 차분하게 소리쳤다.

“등장할 때 음악 같은 거 안 틀어 줘? ‘웰―잇 이즈 더 빅 쇼!’나 ‘유 캔트 시 미’ 같은 거……!”

그거 비싸요, 아저씨! 용케도 프로레슬링 음악을 알고 계시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넌 뭐야?”

하상구가 자신의 맞은편에 선 아저씨를 보며 물었다. 아저씨는 손을 내리며 대답했다.

“어린놈의 자식이……! 너 인마, 몇 살이야?”

“뭐?”

전형적인 꼰대식 화법. 하상구도 어이가 없었는지 굵고 짧게 웃었다.

“하? 하! 이런 미친놈을 내보내다니……! 반드시 죽여 버리겠어!”

“엿이나 먹어라. 이 아저씨가 특별히 원 플러스 원으로 주마.”

아저씨는 양손의 중지를 하상구에게 겨눴다.

하상구는 가래를 모으더니 아저씨 앞에 ‘퉷!’하고 뱉었다.

“1분 안에 끝내 주지.”

“그 말, 패배하는 놈들의 전형적인 표현이다. 끌끌끌!”

“미친 노인네!”

“내가 노인네면 넌 애새끼야, 인마!”

둘은 갑자기 힙합에서나 나올 디스전을 시작했다.

“태어나다 만 것처럼 생긴 땅딸보!”

“인상 더럽게 생긴 예비 전과자!”

“사회 밑바닥을 기어 다니는 기생충!”

“강자한테 약하고 약자한테 강한 허세충!”

와, 둘 다 말로 뼈를 때린다. 시작하기도 전에 서로 정신적으로 황폐화되겠는데?

듣다 못한 이서현이 스피커를 통해 시작을 준비했다.

“유리 돔 내려!”

이서현의 명령에 필드 위로 유리 돔이 씌워졌다.

“시작!”

“와아아아!”

관중은 열광적으로 호응하며 뜨거운 열기를 발산했다.

하상구는 씩 웃으며 자신의 H력을 마음껏 뽐냈다.

“영감, 뒈지면 저승 가서 잘 생각해. 뭘 잘못했는지 말이야.”

하상구는 자신의 몸을 용암으로 바꿨다. 그리고 점점 덩치를 키우더니 5미터 정도 되는 거인이 되었다.

“받아라!”

용암 거인은 단번에 무너져 내리며 봇물 터지듯 유리 돔 안을 용암으로 가득 채웠다.

아저씨는 용암에 휩쓸려 한순간에 모습을 감췄다.

“아저씨!”

난 TV화면을 붙잡고 울먹였다.

“역시 내보내는 게 아니었어!”

다들 침울한 목소리로 날 위로했다. 그러나 나에겐 소중한 사람 중 하나가 사라졌단 상실감이 너무나 컸다.

“하하하! 시합 끝이다! 나머지 4시합도 이렇게 만들어 주마!”

하상구의 외침. 즉석에서 벌어진 살인 쇼에 관중은 즐거워했다. 마치 고대 로마의 검투사를 구경하는 콜로세움의 대중 같았다.

그 시절 로마가 전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의 문명이었던 걸 생각하면 결국, 인간이 즐긴 최고의 오락은 ‘살인’이었다.

이서현도 당황했는지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냈다.

“처, 첫 번째 시합……승자는……하상…….”

“끌끌끌!”

엥?

나도, 우리 팀원들도, 관중도, 그리고 하상구도 모두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용암 속에서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환청?”

아니다!

“끌끌끌!”

용암 속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새하얗게 빛나는 그것은 용암 위로 떠올라 손을 들었다.

“앗!”

뼈. 정말 깔끔하게 발라진 사람의 뼈였다. 골격으로 봐선 분명 아저씨였다.

놀랍게도 성대 없이 입을 벌린 것만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끌끌끌! 겨우 이게 다냐? 아주 따뜻하구나.”

“뭐, 뭐라고?”

용암 상태의 하상구는 거인의 형상을 취하더니 자신의 눈을 비볐다. 그리고 아저씨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어, 어떻게 살아 있지?”

“몰라, 이 새끼야.”

아저씨는 뼈만 남은 상태에서도 중지를 폈다.

“끌끌끌! 어른을 공경해야지! 어디 그 잘난 공격 더 해 봐라! 내가 얼마든지 받아 주마.”

하상구는 정말로 정신적 충격을 받았는지 가만히 서 있었다. 처음 겪어 보는 상황이라 완전히 패닉에 빠진 것 같았다.

“왜 공격 안 해? 천하의 하상구 새끼 능력이 이게 다야? 이런 양아치 같은 새끼, 새끼야! 내가 말했지? 넌 강한 사람한테 약하고 약한 사람한테 강하다고!”

아저씨의 말이 실제 상황을 통해 묵직하게 울렸다.

다들 경외와 경악을 담아 아저씨를 쳐다보고 있었다.

“인간이 아니야……!”

아란은 절규하면서 유정에게 안겼다. 유정도 아란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 정도면 완전 사기잖아.”

아군이라 정말 다행이야!

하상구가 당황한 사이, 아저씨는 뼈에서 싹이 돋듯이 살이 생겨나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허나 문제는 아저씨의 알몸이었다.

“끌끌끌! 어떠냐! 팬 서비스다!”

투기장 전체가 들썩이며 현 시대에 존재하는 온갖 욕설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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